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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미국과 중국의 딜레마
박홍서(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Ⅰ. 들어가며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논쟁들이 정치적 허수아비를 쫓는 블랙 코미디가 되고 있다. 실 체적 진실을 밝혀줄 결정적 물증은 가려진 채 정황과 정치적 목적에 따른 주장들만 난무 하고 있다. 애초에 TOD 화면, 교신일지 및 관련 자료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었다면 이런 소모적 논쟁은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료가 없다거나 기밀이라는 이유로공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확실한 물증이 나오기 전까지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주류언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북한 어뢰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이 담겨 있을 핵심적 자료들의 공개를 거부하면서 인간어뢰설까지 등장시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 분명 상식과 비상식이 거꾸로 서 있다.
이러한 국내적 논란과는 달리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중 양국의 대응은 신중하고 차분 하다. 각각 남북한의 동맹국인 미중 양국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상황의 악 화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일관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4월 25일 클린턴 국무장관의 “전쟁 운운 하지 말 것(no talk of war)”이라든지 4월 20일 중국외교부 찌앙위 대변인의 “적절한 처리를 믿는다(相信妥善理)”는 발언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양국 은 정확한 진상 조사가 사후 대응책보다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을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다. 국제정치가 결국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면,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중 양국의 대응 은 사건의 향후 전개방향을 가늠케 해주는 매우 중요한 준거점이 될 것이다. 한반도 위기심화를 차단하려는 미중 양국의 공통된 의지는 어떠한 맥락에 기인하는가? 천안함 사건은 6자 회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남․북․미․중간 동맹딜레마라는 프레임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Ⅱ. 미중 협조체제와 대한반도 동맹딜레마 동맹관계를 맺는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상호간 안보딜레마를 갖는다. 즉, 상대방으로 인해 제3국과의 분쟁에 연루되는 것도 원치 않으며, 그렇다고 상대방에 의해 버림(방기) 받는 것도 원치 않는다. 보통 두 상황은 반비례 관계이기 때문에 동맹 상대국으로 인한 분쟁에 연루될수록 그에게 버림받을 가능성은 낮아지고 반대로 연루 안되려고 발버둥 칠 수록 버림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동맹딜레마에는 해결책이 없으며 단지 극단으로만 치닫 지 않게 적절히 관리할 수 있을 뿐이다. 한미동맹과 북중동맹 역시 이러한 딜레마에 직면해왔다. 한국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의
호전적인 북진통일론과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한국으로 인 한 원치 않는 한반도 분쟁연루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반면,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의 급속한 대중 접근에 대한 미국의 민감한 반응은 한국으로부터의 방기를 우려한 이유에서였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베트남전, 이라크전 참전은 자발적 연루를 통해 미국으로부터의 방기가능성을 최소화시키려는 전략이었으며, 반대로 전략적 유연성 및 미사일방어 체제에 대한 미온적 태도는 미중 간 분쟁상황으로 말려 들어갈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기인한다. 북중동맹 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경제 발전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
의 벼랑끝 외교로 인해 한반도 분쟁에 연루될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반대로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중국의 입장이 무시된 채 진행되는 북한의 급속한 대미관계개선 역시 우려할 수밖에 없다. 한편, 북한은 중국에 비해 동맹딜레마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현재 중국으로 인해 원치 않는 분쟁에 연루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화평굴기 외교노선에 비추어 본다면, 북한의 군사지원을 요구하는 중국 주도의 분쟁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것이다. 결국 북한으로서는 대중국 관계에서 연루 걱정 없이 버림받는 상황만 차단하면 된다. 이러한 남북미중간 중층적 동맹딜레마의 전개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인은 무
엇인가? 국제정치가 ‘강대국들의 놀음’이라면 미중관계는 역시 가장 핵심적 변인이라 할 수 있다. 이렇다면, 미중관계가 좋을수록 양국은 남북한에 대한 동맹딜레마를 적절히 관리할 수 있다. 남북한 분쟁 발생 시 양국은 상호 협의를 통해 각각의 동맹국을 지원하 기보다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중관계가 악화될수록 양국은 남북한 간 경쟁 구도를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1950년 한국전쟁은 그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이익상관자’로 호칭되는 미중 간 협력관계는 한반도 문제가 양국사이에서 적절히 관리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미국은 과도한 헤게모니 유지비용을 분담시키기 위해 중국이 필요하고,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안정적인 대미관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조합은 19세기 유럽협조체제, 2차대전 이후 미소 간 얄타체제와 유사한 미중 간 협조체제를 출현시키고 있다. 경쟁은 하되 공멸은 막자는 G2 미중 간 국제정치에 대한 과점협정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중 양국의 행태도 이러한 협조체제의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다.
미중 양국은 천안함으로 인한 한반도 위기심화 반대를 이미 명확히 하였다. 구체적으로, 미중 양국 모두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중국은 4월 20일 외교부 브리핑과 30일 한중정상회담에서 “과학적이고 객관적 조사( 调查)”를 기대하였으며, 미국 역시 4월 28일과 29일 국무부 및 국방부 정례브 리핑을 통해 성급한 대응보다 사실관계에 기초한 원인파악이 최우선임을 재차 강조하였 다. 문제는 진상조사의 주관자가 한국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미중 양국의 희망은 한국에 대
한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라는 표현에는 진상 조사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우려가 이미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따라 북한연루설이 확증되고 따라서 한반도 긴장상황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미국은 천안함 사건 직후 북한연루설을 부인하기도 하였다. 3월 28일
월터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특이동향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였고, 3월 29일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의 소행이라 믿을만한 이유가 없음을 밝혔다. 또한 같은 날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차관은 “천안함 침몰에 함정 자체 이외의 요인을 알지 못한다”(I don’t think we’re aware that there were any factor in that other than the ship itself)라고 공식 논평하기도 하였다. 비공개 기밀자료를 갖고 있을 것이 확실한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천안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연루설을 조기 진화함으로써 위기상황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이후, 미국의 입장이 조사결과를 ‘일단 지켜보자’로 변화되면서 북한연루설을 염두
해 두는 것은 아닌가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4월 23일 스티븐 보즈워스북핵 특별대표는 천안함 사건으로 북핵문제가 “단기적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든지, 26일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가 천안함 사건에 관해 중국 역할을 주문했다는 보도, 그리고 같은 날 익명의 미군관계자로부터 북한연루설이 CNN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묘한 기류변화는 동맹국 한국에게 자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는 미국의 입장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동맹딜레마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으로 인한 연루가능성을 낮추려할 때 필연적으로 증가하는 한국으로부터의 방기가능성을 관리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중국의 입장은 어떤가? 중국은 미국에 비해 정확한 진상규명과 적절한 처리라는 대전
제 이외에는 사건관련 발언 자체를 자제하고 있다. 4월 30일 한중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의 천안함 사고에 대한 위로와 객관적 조사 의지를 평가한 것에 대해 중국이 한국의 입장에 동조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기예언적 언론보도가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중정상회담에 관한 신화통신의 기사에 후진타오의 천안함 사건 관련 발언이 없는 것을 보면, 중국의 입장이 한국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더욱이 한중정상회담의 기사바로 앞 내용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과의 북중 정상회담에 관한 것으로 혈맹국 북한에 대한 중국의 협력관계를 읽어낼 수 있다. 특히, 북한이 4월 17일 이미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을 신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든 최소한 중국은 한반도 상황의 악화 와 이로 인한 분쟁연루 우려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의 결백 주장은 한미 양 국에 대한 메시지임과 동시에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난처해진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메시지로 이해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천안함 침몰원인이 북한의 소행으로 최종 결론 내려진다면 중국의 입장이 매
우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1,2차 북핵실험 시 보다 유사하거나 보다 심각 한 중국의 대북 동맹딜레마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한미 양국의 대북제재를 전적으로 찬성할 수도 없으며 반대로 북한을 두둔할 수도 없다. 전자의 경우 동맹국 북한이라는 중국의 중요한 안보자산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자의 경우 중미 간 협조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과학적이고 객관적 조사"를 강조하는 중국의 속내에는 이런 우려가 담겨있다. Ⅲ. 6자회담, 좌초? 혹은 돌파? 따라서, 현재 활동 중인 합동조사단의 최종 결론은 천안함 사건을 넘어 북핵문제를 비 롯한 한반도문제의 향배를 결정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만약 확실한 물증에 의해 북한연루설이 확증된다면, 북핵문제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없다. 한미 양국이 대북제재를 주도하고 중국이 공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면,결백을 주장하는 북한은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국면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3차 핵실험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북한은 분쟁상황을 오히려 극대화시켜 중국으로부터 동맹국의 지원의무를 강요케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미중 간 공조를 돌파하기 위해 2006년 10월 핵실험을 감행했던 것과 유사하다.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든 이러한 상황은 미중 양국에게 '악몽'일 수밖에 없다. 반면, 침몰원인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일정한 냉각기를
거쳐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우 중국은 상술한 대북 동맹딜레마에서 상당히 벗어나 안정적인 대북관계를 바탕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게도 북핵문제가 "단기적 불확실성"을 벗어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6자회담재개에 상당한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4월 28일 크롤리 국무부 공보차관이 천안함사건과 6자회담 문제의 연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사실에 비추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이 경우 한미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를 수 있다. 천안함 사건 직후부터 한국정
부와 주류언론이 북한연루설을 기정사실화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남한의 북한 때 리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동맹국 한국의 대북 강경입장을 무시하고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6자회담 재개에 협력하는 대가로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작권 환원시기 재협상 등 미국의 동맹의무를 재확인케 하는 한미 간 거래가 가능할 수도 있다. 일종의 완화된 형태의 '남한판 벼랑끝 전술'이다. 천안함 사건의 최종 원인이 침수나 좌초와 같은 배 자체의 문제로 결론 내려질 수 있 다. 그러나 그런 경우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정권이 감내해야 할 정치적 비용이 클 수밖에 없고 또한 동맹국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배려로 인해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 국, 핵심자료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려지는 조사결과는 무엇이든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게 이미 정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장 '무난한' 결론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자기식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결론일 수밖에 없다. 미중 간 협조체제를 훼 손시키지 않으면서도 남북한 모두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결론이 될지 모른다.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영구미제설'이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블랙코미디의 씁쓸한 엔딩이 될 수도 있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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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복잡하게 얽힌 국제적 이해관 때문에 블랙코미디의 쓸쓸한 엔딩이 될 수도 있겠네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