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왕과 한주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군요.
제가 아는 내용은,
안장왕이 태자시절에 백제에 염탐하러 갔다가 한주란 여인과 만나서 사랑에 빠졌는데,
훗날 대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안장왕은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 왕위에 올랐는데,
왕위에 오른뒤에 한주를 만나기 위해 백제공략을 시도했는데 잘 안되더라는 거죠.
거기다 한주는 살던 고을의 관리한테 의심되어 잡혀서 사형을 당하기 직전까지 가고.
그래서 한 신하가, 안장왕의 공주랑 결혼시켜주면 한주를 구해오겠다고 하니, 왕이 허락해서,
그 신하가 백제로 가서 사형직전의 한주를 어떻게 구해가지고
어떻게 덤으로 백제영토를 일부 점령까지 했다더군요.
그래서 그 신하와 안장왕은 사이좋게 결혼하고 살았단 얘기...
이거 더 자세히 아시는 분 계신지요?
한주를 대체 어떻게 구한거죠? 거기다 백제영토를 어떻게 유린해낸건지...
놀라울 따름. 이거 진짜로 있던 일인가여?
첫댓글 삼국사기와 조선상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王逢縣> [一云<皆伯>. <漢>氏美女迎<安臧王>之地, 故名<王逢>.
왕봉현[개백이라고도 한다. 한씨 미녀(韓珠)가 안장왕을 맞던 곳이라하여 왕봉으로 불렀다.]
[<漢>氏美女, 於高山頭點烽火, 迎<安臧王>之處, 故後名<高烽>.]
달을성현[한씨 미녀(韓珠)가 높은 산마루에서 봉화를 놓고 안장왕을 맞던 곳이라 하여 후일에 고봉이라고 불렀다.]
삼국사기에는 한씨미녀라 되어 있고, 조선상고사에는 그 이름을 한주라 명명하고 있죠.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이 고봉산의 유적에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안장왕조 기사를 보면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기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5년 가을 8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침공하였다.
11년 겨울 10월, 왕이 백제와 오곡에서 싸워 승리하였다. 2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신채호 선생은 백제 성왕(聖王) 7년(안장왕 11년.529년) 고구려가 북쪽 변방 혈성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혈성이 곧 강화와 인근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며 안장왕의 한주구출작전을 안장왕 11년인 529년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헐, 조선상고사 사놓고 안읽고 있었는뎅... 환빠들 얘기가 아닐까 해서 방치해놨었는데 그래도 한번 읽어봐야 겠네여.
환빠 아류라 할 수 있는 대륙설론자들은 단재 신채호 선생 사관을 쪽발이사관, 반도사관에 벗어나지 못했다며 비판을 합니다. ㅎ 단재 선생께서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를 만주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한 논리로 말이죠. 적어도 조선상고사는 가치가 있는 서적이라 저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