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 왕으로서 마음대로 행하는 사건이 또 발생합니다. 바로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는 사건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은 왕궁(왕의 겨울 별장)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에 아합이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자신에게 팔아 채소밭을 삼게 하라고 합니다. 나봇은 그 포도원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께로 분배 받은 땅으로 사고 팔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봇의 말대로 하나님의 율법에서 금하는 것이었습니다(신명기 19:14). 이에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하여(침울하여) 밥도 안 먹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합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줄 몰라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이세벨은 나봇을 모함에 빠뜨려 죽이고, 대신 왕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사악한 여인입니다(1-6). 이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아합이 또 죽이고 빼앗은 것을 책망합니다. 왕으로서 자기 마음대로 백성들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세벨이 일을 꾸몄지만 그대로 받아들인 아합 역시 같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엘리야는 돌아 맞아 죽은 나봇의 피를 개가 핥아 먹은 것 같이 아합의 피도 개들이 핥아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식이 다 죽어 왕조가 끊긴 여로보암의 집과 같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 이세벨에 대해서 저주를 하십니다. 이세벨은 죽으면 그 시체를 개들이 먹을 것입니다. 또 아합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의 시체는 개와 새가 먹게 될 것입니다. 아합은 이세벨의 꾀임에 빠져 온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하게 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7-27). 아합은 이 모든 말을 듣고 겸비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서 기가 죽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셔서 재앙을 그의 아들 시대에서야 내시겠다고 하십니다(28-29).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뺏거나 혹은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것은 작은 죄가 아닙니다. 가나안 이방인들의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의 땅을 뺏거나 거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달랐습니다.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자기 땅을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었고, 팔아서도 안되며, 혹 부득이 담보가 잡혔을 때에는 매 오십 년 마다 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왕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자였고,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어야 하는 자입니다. 또 땅의 참된 주인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이로써 왕의 모습을 통해서 참된 평화를 가져다 주는 메시야적 사역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이방인 왕의 모습을 쫓아 갔습니다. 섬기는 왕이 아니라 지배하는 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우상 숭배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불신자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왕으로서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참된 평화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왕이신 예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참된 왕의 방식으로 사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섬김과 그의 길을 생각하며 불신자와 같은 삶을 버리고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주님의 길, 말씀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