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라서
이동민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경북대학교 북문 앞 거리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년세가 지긋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곡예를 하듯이 학생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갔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위태위태하게 느껴져서 ‘그만 내려서 가시지’라는 마음이었다. 아뿔사! 그 노인은 젊은이의 옆구리를 치고는 자전거에서 급히 내렸다. 획 돌아선 젊은이는 화난 얼굴로 노인네를 노려보았다. 곁을 지나던 나는 나도 몰래 젊은이의 어깨를 툭 치면서 ‘이봐 젊은이, 노인에게 무슨 태도냐’며 나무랐다. 젊은이는 나를 힐끗 처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가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노인네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불안한 마음으로 보라보지 않았는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노인 편을 들었다. 솔직하지 못한 태도였다.
집에 와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라며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집사람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냥 지나치지, 잘못하다가는 챙피를 당한다더라’라고 했다. ’그래 운이 좋았나 보다, 세상이 바뀌었지‘라면서도 씁쓸해 했다. 그때부터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노인이라고 하여 어른 행세를 하지 못한다. 세상이 바뀌었지, 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이유도 있으리라.
전통적인 예술 교육에서는 사제 관계가 주종관계나 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 이문열의 ’금시조‘이다. 주인공은 스승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물도 길러오고, 마당도 쓸면서 머슴처럼 일했다. 3년 동안 마당을 수도 없이 쓸었지만 배우고자 했던 예술 공부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주인공은 선생님을 거슬려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어서 묵묵히 일만 했다. 소설을 읽어보면 주인공의 바보 같은 짓이 오히려 아름답게 보이도록 표현하였다. 왜일까? 요즘의 너무 피팍한 세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일까“
요즘은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은 사람이더라도 금시조의 주인공처럼 스승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공부하지 않는다. 대학이나 전문 교육기관에 나가서 공부한다.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느슨하다 못해 남남처럼 보여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는 것은 공부의 폭이 넓힌다고 오히려 좋게 말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지인이 말했다. 지인이 말한 두 사람은 내가 이름까지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듣기 거북한 말로 몰아세우는데, 대꾸 한 마디 없이 듣고만 있더라. 이해가 가지 않아 나중에 왜 당하고만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선생님 이라서------’라면서 말꼬리를 흐리더라고 했다. 나는 요즘 세상에 ‘선생이라서,’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그 분은 교직에 근무하지 않은 분인데 선생님 이라니.”
“문화교실에서 수필을 배웠데.”
그 말을 듣고, 아하, 요즘도 금시조 시대가 살아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선생님 이라서------’ 라는 말의 꼬리 달린 여운이 ‘금시조 시대’가 아니다라는 것도 느꼈다.
금시조 시대의 사승관계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스승일 것이다. 그래서 스승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옛 가치를 지키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바뀌어져 있다. 그런데도 고집하면 아름답게 보일리 없다. 배우는 사람도 옛 가치를 지키지 않는다. 스승 집에서 기거하지 않고 문화교실에서 배우는 때문인지 누구에게 배운다고 말하기 보다는 어느 교실에 나간다고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스승을 벗어나려니 남이 나쁘게 볼까봐서 승복하는 척 한다. 내가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못마땅하였고,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나는 ‘선생님 이라서------’라는 말에서 답을 찾아보았다. 왜냐면 말꼬리에는 승복이 아니고 강한 불만이 숨어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금시조의 주인공은 마음으로 스승을 따랐기에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따르지 않으면서도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겉보기로만 ‘예, 예’한다면야 아름다울리 없다.
나는 ‘금시조’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3년을 머슴처럼 일만 한 세월이었을까. 요즘에 와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자기의 방식으로 작업을 함으로 개성을 드러낸다. 스승의 집에서 머슴살이는 단순히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을 짓기 위한 주춧돌을 놓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고 설명해보았다.
요즘의 작가들이 쓴 글을 읽으면 기초가 안 잡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평을 말하다가 낭패당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나는?
나도 옛 틀에 갇혀 있기로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솔직한 젊은이가 우리더러 할아버지, 겉과 속이 다르게 사시면 흉해요. 하겠다.
첫댓글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변해가는 시대상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다도를 배우러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엄연히 수강료를 내고 배우는데 첫날부터 다실을 청소하라.
수업 끝나고 다기를 씻어 정리하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지요.
저는 그게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자기는 저를 제자로 생각하는지 몰라도 저는 그냥 수강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래 옆에서 배우다보면 스스로 스승으로 모실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그러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