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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모시도록."
"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아주 장관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과 차량. 카메라들.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윤 우만은 신경이 곤두서있다. 청와대 경호원. 처음에는 마다한 일이었지만 막상 시작하고보니까 스릴도 있고 보람찬 일이라는 생각 속에 살고있다. 적성에도 맞는다. 그리고 더할나위없이 좋은 꿈의 직업이기도 하다. 차 안에 있는 대통령은 역대 최초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자랑했다. 금전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으며, 화목한 가정도 자주 언론에 기사화될 정도로 훌륭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이름 앞에 붙었다. 그러나, 윤 우와는 관련이 없었다. 대통령이 잘해봤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깟 대통령. 맨날 좋은 차타고 좋은 음식먹는 것밖에 더하나. 그저 자신은 상관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그걸로 되는 것이었다.
"지금, 입국하신다고 합니다."
"오는 즉시 나에게로 오라고 해주게. 아니, 오는 즉시 나에게로 데려오게."
"예. 알겠습니다."
"....이게 몇 년만인지. 3년 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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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간지러워. 하하하!"
"형. 장난치지만 말고. 집에 안 가?"
"말했지. 안 간다고. 두 번 반복하게 하지마라. 하하하. 간지럽다니깐?"
"그럼 언제까지 공항에 있을건데."
"글쎄? 돈 떨어질 때까진 있어야겠지. 야. 나 여기 스튜어디스랑 진짜 친해졌어. 다들 미모가 예술이더만."
"형. 형 이제 스물 여덟이야."
"....너 자꾸 잔소리하면 나 또 잠적해버린다. 쓸데없는 소리만 할거면 빨리 콜리 데리고 가버려."
"이모가 많이 걱정하신다니까..."
"....내가 뭐가 걱정이 돼. 나 잘 지낸다고 너가 가서 전해주라. 나대신 좀 챙겨줘. 지운아."
"...후. 갈게."
지운이 한숨을 쉬면서 앞에서 꼬리를 신나게 흔들면서 앉아있는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가버린다. 재혁은 지운이 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기지개를 켜면서 다시 공항의자에 몸을 기댔다. 어두운 과거. 온몸을 짓눌렀던 죄책감. 아파져오는 머리를 흔들고는 공항의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는 와중에 멀리서 밝은 갈색의 머리를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선글라스를 끼고 경호원 비슷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서는 게이트를 빠져나온다. 뭐지. 연예인인가. 신기하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따르는 여자아이들 무리는 없는 것같고.. 재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남자에게로 다가섰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누군지 좀 알아야겠다 싶었다.
"연예인이에요?"
"......?"
"누구에요? 선글라스 좀 벗어봐요~"
"뭐야."
"더 이상 이 분에게 접촉하지 마세요. 경고합니다."
"아 거참, 누군데요? 네? 누군데~ "
밝은 갈색의 머리를 한 남자가 인상을 찡그린 상태로 재혁을 쳐다보다가는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풉- 하하하항- 웃음 소리 한 번 특이하네. 남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에게 먼저 가라는 말을 한다. 남자들은 머뭇거리다가 남자가 인상을 쓰는 것을 보더니 인사를 하고 가버리고 남자는 명품 크로스백을 고쳐 매더니만 재혁에게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까지오니 재혁은 되려 자기가 당황하게 되었다.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는다. 엑. 아무리봐도 누군지 모르겠구만.
"자, 벗었다. 됐냐?"
"뭐.....예예. 근데 누군지는 모르겠네요."
"그럼, 난 간다."
"아니, 근데 왜 초면에 반말질이에요?"
"띠꺼우시면 너도 하던가."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건 내가 할 말인 것 같은데. 너 원래 이렇게 아무한테나 갈 길막고 누구냐고 물어보는 취미있냐?"
"내가 여기서 살다살다 너같은 놈은 처음 봐서 그랬다. 근데 뭣도 아닌 놈인 것 같네. 갈 길가라."
"여기서 산다고?"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만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묻는다. 귀염상이네. 이거. 어디 부잣집 도련님 이라도 되시는건가보다.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부잣집 막내아들 스타일. 정확히 말하자면, 재혁과는 정반대 의 환경에서 자라난 인간이다.
"그래. 공항에서 살아. 정말로. 집이 없어서."
"...한국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도움 받고 싶으면 연락해."
남자가 손을 내밀길래 덥석 잡았더니 손을 뿌리치고 인상을 찡그리면서 휴대폰 달라고. 휴대폰. 그런다. 아하.. 그렇다고 손을 쳐낼 것까지는 없잖아. 지운에게 받은 휴대폰을 꺼내자 남자가 번호를 입력한다. 아니 무슨, 얘는 남자가 저렇게 손이 조그맣고 고울까싶다. 역시 부잣집 아들래미는 다르군.
"아마, 나 이용할만 할거야."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선글라스를 다시 쓰더니만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는 남자. 세상에 살다살다 별 놈을 다 보겠네.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는 다시 공항구경에 열중했다. 이용한다라....뭐. 꽤 흥미로운 말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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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영식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하게."
"나 왔어요."
"멀리서 오느라 피곤하겠구나."
"아니요. 뭐. 재밌었어요. 나름."
"이제 어떻게 지낼 생각이냐."
"조금 더 공부할 생각이에요. 그건 그렇고, 축하드려요. 각하."
"그래. 열심히 하거라. 그리고, 조심하고."
"....그 말씀은 얌전히 지내라- 허튼 짓 하지말고. 뭐 이런 거죠? 아, 엄마는 어딨어요?"
"격식을 갖추라고해도 저렇게 말을 안 들으니. 아. 너에게 경호원을 하나 붙일 생각이다."
"....그런 건 필요없는데."
아민이 옆에 세워진 도자기를 매만지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제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다. 늘 스스로하기를 원했고, 격식있는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과는 맞지 않았다. 미술 공부도 반드시 외국가서 하고 싶다고 겨우겨우 아버지를 설득해서 간 것이었는데, 이제 아버지가 소망하던 것을 이뤘으니 더욱 더 하나뿐인 외동아들을 잘 단속해서 본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고싶으셨을테지.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거참, 엄마는 어디있냐니까 말도 안해주고. 엄마는요?하고 경호원에게 묻자, 무뚝뚝하게 안내를 한다. 여기 사람들은 다 이런가? 싫증난다. 아까 낮에 공항에서 본 그 남자가 문득 생각난다. 웃게된다.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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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영식님 담당 경호원 윤 우라고 합니다."
"아. 당신이구나. 몇 살이야?"
"스물 일곱입니다."
대통령의 아들이 맞는건지. 진짜 이 나라의 영식인건지.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청와대 어딜가나 눈에 띈다. 대통령이 늦게 낳은 외동아들이라 그런지 철도 없어보인다. 이러다가 사고치면 윤 우 자신도 경호원 인생이 간당간당할텐데. 대통령이 직접 불러다가 아민을 잘 부탁한다면서 맡긴 통에 거절도 할 수 없고. 나이도 자신보다 어린게 반말을 찍찍하는게 뒷통수를 한 대치고 싶다. 드라이브를 하고 싶대서 차까지 에스코트를 해서 상석인 뒷자석에 타라고 했더니 그것도 싫단다. 앞좌석이 탁 트인게 시원하고 좋다면서 앞에 앉겠단다. 아이고. 머리야. 윤 우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넥타이를 살짝 끌러서 내리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와, 많이 변했다. 저기, 나 떡볶이 사줘."
"...그런 음식을 드시면...."
"노인네같이 설교하지말고 내가 하라는 거만 해."
어휴, 저걸. 누구한테 한탄할 사람도 없고. 알겠습니다. 정중히 대답을 하고 차를 길가에 세운 뒤에 주정차 딱지를 끊을세라 얼른 뛰어서 떡볶이 1인분을 사가지고 왔다. 떡볶이가 담긴 봉지와 이쑤시개를 건네고 차를 출발시키는데, 아민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뭔가 맘에 안 드는 모양.
"...불편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센스라고는 요만큼도 없네. 떡볶이 안 먹어봤어? 순대나 튀김은 왜 안 사오는데?"
"죄송합니다. 다시 사올까요?"
"됐어."
떡볶이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아민.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무슨 대통령의 아들이 길거리 음식에 환장을 한담.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가면서 다시 서울 시내를 돌기 시작했다. 휙휙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다시 떡볶이는 내팽겨치고 입을 벌린 상태로 창문 밖을 쳐다보는 아민. 윤 우는 그게 또 신기해서 힐끔힐끔 그런 아민을 운전하면서 훔쳐보았다. 서민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였나. 입가에는 뻘건 떡볶이 국물을 묻히면서 먹는데 스물 다섯이 아니라 다섯살 꼬마 같다. 신호에 걸려서 차가 멈춰서자, 윤 우가 티슈를 꺼내서 아민의 입가를 살살 닦아주었다. 갑자기 먹는 것을 멈추고 윤 우의 손에서 티슈를 뺏는 아민.
"...죄송합니다."
"이런 건 신경끄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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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제시해주시죠."
"예?"
"요즘 들어서 공항에 매일 오셔서 사시다 싶이 하시다는 소문이 돌아서,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하하하하하! 살다뇨! 공항에는 매일 오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보고싶은 사람도 있고 해서 이렇게 매일 오는 건데."
"신분증 좀 제시해주시죠."
"여기요. 민증. 거참,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섭섭하지~ "
"곧 조사하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니면, 같이 동행하시겠습니까?"
"아뇨. 그냥 가져가셨다가 돌려주세요."
공항 직원이 가버리자마자 표정이 굳어지는 재혁. 젠장. 이제 여기도 못 올 곳이 되었다. 매일 이 곳에서 얼쩡 거리고 스튜어디스들에게 말 시킨 것이 소문이 돌았나보다. 분명히 전과자라서 안되겠다고 나가라고 하겠지. 그래도 지하철보다 청결하고 좋았는데. 다시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돈을 벌어야 되나 싶다. 집이 없는 내가 잘못이지 싶다. 지운의 오피스텔에가면 부모님이나 누나들이나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떠돌이 생활이 나을 것이다. 담배가 피고싶다. 그 사람이 생각난다. 자신을 인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그 사람이. 지독하게 사랑했던, 그 사람이. |
첫댓글 대통령 아들이라..기대되는데요~재밌게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레븐님^^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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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즌스님! 앞으로도 응원 부탁드릴게요~
흥미가 가는 소설이에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휘아랑님! 흥미가 가신다니 다행이에요~ 예전부터 써놓았던 글인데 많이 걱정하면서 고치고 또 고쳤거든요ㅠㅠ 많은 격려 부탁드려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