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기도란 말은 천주교에만 있는 말이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는 개신교신자들은 화살기도를 많이 한다.
어떤 사람은 장소을 옮길 때 마다 잠깐씩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차를 타고 떠나기 전, 차에서 내리기 전, 차에서 내린후, 현관에서,
집에 들어 와서, 방에 들어가서...등등.
어떻게 보면 광신같이 보이지만,
진정한 기도를 그렇게 수시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화살기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화살기도의 정확한 정의는 나도 모르지만,
무슨 일이 생각날 때 마다 즉흥적으로 하는 기도를 말할 것이다.
화살이라는 말은 내 생각에 어떤 과녁이 나타났을 때
재 빨리 쏘아 과녁을 맞춘다는 상황에서 나오지 않았을 까 생각된다.
나는 화살기도를 좋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선 내용이 청원기도 일색이 될 수 밖에 없으며,
기도의 형식도 갖추지 않고,
깊은 하느님과의 만남이 될 수 없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이 내 생각은 사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얼마전 부터 나는 이 화살기도가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아내가 아이를 키울 때
화살 기도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이가 이유없이 너무 울거나 보채거나 할 때
아내는 "성령이여 당신이 계시다면 제 애를 재워 주시 옵소서"
하는 기도를 많이 하였다.
기도를 하자 마자 그렇게 난리 치던 아이가 금방 잠드는 것을 볼때,
하느님이 확실히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한 기도가 아니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 했을 뿐
나는 여전히 깊은 묵상기도를 선호 하였고,
유학 생활 내내 화살기도라는 것은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생활이 바빠져 단 삼십분도 낼 수가 없어,
깊은 기도를 할 시간이 없어지자,
나는 자연히 짧은 화살기도 쪽으로 관심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화살기도를 함으로써 기도를 더 많이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화살기도라는 것은 기도시간을 따로 낼 필요가 없다.
소리를 낼 필요고 없으면, 형식도 필요없다.
일을 하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잠들기 전에 누워서
잠깐씩 하는 것이 그 양을 따져 보니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도 단지 청원기도만이 아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찬미 받으소서" 하는
감사기도 찬미기도로 얼마 든지 할 수 있다.
다른 기도들은 딴 생각을 하면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짧은 화살기도는 그 순간에 반드시
하느님을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간절해 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것이 바로 기도가 아닌가?
그리고 항상 기도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내 가 일하는 곳에
기도할 제목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는 그것이 눈에 띌때마다 잠깐 씩 기도를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제목들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는 이루어 져서 새로운 제목을 넣었다.
그리고 몇개는 곧 이루어 질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다.
결국 다 이루어 질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면서 정말 하느님의 실존이 느껴지고, 때로는 두려워 진다.
그러면 화살기도만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살기도는 단지 시작일 뿐이며,
다른 기도를 할 시간이 없거나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경험하게 하는 좋은 기도가 될 수 있으나,
묵상기도나 깊은 기도로 이어져
하느님과의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참 신앙생활을 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화살기도를 하게 되면,
하느님을 생각하게 되고 짧지만 간절하 기도 하게 되고,
그 기도가 이루어 지면서,
하느님이 정말로 계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을 더 깊이 알고 싶어 지고,
아무리 바빠도 깊은 기도를 하고 싶어 지는 열망을 갖게 된다.
중요한 것은 화살기도를 할 때,
결코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에 의심을 품고 있다면 기도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의심이 생긴다면,
의심을 없애달라고 화살기도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