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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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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찰 스크랩 비슬산 대견사 참꽃축제 하는 날에(1/2)
현림 추천 1 조회 400 16.05.05 15:51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비슬산 대견사 참꽃축제 하는 날에(1/2)

 

비슬산 참꽃축제가 열린다기에 모처럼 용기를 내어 찾아가 보았다.

이름난 축제라 교통 혼잡은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행여 일찍 찾아가면 다소 피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하여 이른 새벽 대구로 내려갔지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8시도 아니 되었는데도 비슬산 진입로부터 교통이 통제 되어 임시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대견사 오르는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운행되는 임시버스를 한참 줄을 서 기다려 간신히 차에 오를 수 있었다.

대견사 오르는 셔틀버스 주차장에 도달했지만 그곳 셔틀버스도 마찬가지였다.

3시간 넘게 기다려나 한다기에 포기하고 좋지 않은 몸 상태였지만 산행을 감했다.

쉬엄쉬엄 오르는 데도 탐방객들의 줄이 끊어지지 않는다.

전국에서 몰려던 참배객과 등산객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참꽃축제라는 홍보와는 달리 꽃은 이미 만개가 끝나 지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축제는 축제인 모양이다.

꽃보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더 만개한 것 같다





@비슬산자연휴양림

참꽃(진달래) 군락지로 알려진 비슬산 자연휴양림은 대견봉(1083.59m)을 중심으로

 좌우에 조화봉(1,058m), 관기봉(990m)을 거느린 341ha의 면적에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1993118일에 달성군에 의해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어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소재사전경









백색으로 모셔진 삼존불과 뒤편 탱화 역시 기존 탱화와는 특이하다.





삼성각






지장전


지장전의 지장보살 








일연스님 조상


일연스님 기념비








한 시간 여를 오르니 대견사의 삼층탑이 보인다.


@비슬산(琵瑟山)은 해발 1083m로 비슬산이라 불리게 된 그 명칭과 유래를 살펴보면

신라 흥덕왕 원년에 도의(道義)가 저술한 유가사 사적(瑜伽寺寺蹟)에 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비슬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산에 식생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포산(苞山)이라고 부른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달성군지에는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이다. 내고장 전통 가꾸기(1981년 간행)에 보면

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범어로 부를 때 일컫는 말이며

중국말로는 포산(苞山)이란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이 우리나라에 놀러 왔다가

인도식 발음으로 비슬(琵瑟)이라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가사사적(瑜伽寺寺蹟)에도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비슬산의 최고봉은 천왕봉이다. 옛적의 이름은 대견봉으로 2004년부터 천왕봉으로 불리게 되었다.


@비슬산에는 유가사(瑜伽寺소재사(消災寺용연사·용문사(龍門寺임휴사(臨休寺용천사(湧泉寺) 등의

많은 사찰이 산재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용연사는 경내에 보물 제539호인 석조계단(石造戒壇)이 있다.

가까이에 유명한 약수터도 있고 1986222일에는 달성군 군립공원으로

 앞산의 북쪽 중턱에는 장군수(將軍水)라는 약수터와 안일암(安逸庵)이 있다.






비슬산(琵瑟山) 대견사(大見寺)는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지금은 제9구 본산 팔공산 동화사의 말사로 설악산의 봉정암, 지리산의 법계사와 더불어

1,000m이상에 자리 잡은 사찰 중 한 곳이다. 유가면 용리 산1-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대견사는 일연스님이 122722세의 나이로 승과에 장원급제하여 초임주지로 온 이래,

22년간을 주석한 곳으로 삼국유사 자료수집 및 집필을 구상한 사찰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 강제 폐사된 후

100여 년만인 201431일 달성군에 의해 중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세수하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문종은 신하들에게 찾게 하였지만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신라로 사신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이 절터가 문종이 대야에서 비친 그곳과 같다고 해서

대국에서 보았던 절터라 하여 대견사라 명명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대견보궁은 아직 불사중인 모양이다. 적멸보궁 자리는 조감도를 조성해 놓았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지만, 1416(태종 16) 229일과

1423(세종 5) 1129일 이 절에 있던 장륙관음석상(丈六觀音石像)이 땀을 흘려

조정에까지 보고되었고, 종파는 교종(敎宗)에 속하였다고 한다.

    절의 폐사에는 빈대와 관련된 일반적인 설화가 전래되고 있으며, 그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로 전해지고 있다.

그 뒤 1900년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재인(李在仁)이 중창하였으나

1908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17년 다시 폐허화되었다.


대견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아닌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어 대견보궁이라는 편액을 단 적멸보궁을 두고 있다.

대견사에 봉안한 진신사리는 201311월 동화사가 스리랑카 쿠루쿠데사원에서 모시던 부처님 진신사리 1과를 기증받아

이운한 것이다. 이 진신사리는 서기 103년부터 스리랑카 도와사원에서 보관해오다

1881년부터 쿠루쿠데 사원에 모셔진 사리 4과중 하나다.

대견보궁은 건물은 완성되어 있지만 사리를 모실 보궁은 아직 불사(佛事) 중이다.


지금의 대견사는 201111월 착공되어 20143월에 완공된 건물로

폐허가 되었된 대견사가 100여년 만에 다시 복원된 것이다.

현재 대견사는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30m, 높이 6m의 축대가 남아 있고,

무너진 구층석탑과 거대한 석조선각불상,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동굴대좌(洞窟臺座) 등이 있다.

이 중 축대는 현재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동굴은 참선 또는 염불도량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도굴꾼에 의해서 무너진 구층석탑은 원래 높이 4.5m, 기단 너비 1.2m이었던 우수한 작품이다.


대견보궁 뒤는 우람한 바위군이다.

전성기에 이 절은 비슬산의 중심사찰이었다고 한다. 산 밑에 있는 소재사(消災寺)는 옛날 이 절의 식량이나

종 생활용품·의식용품 등을 공급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소재사 앞터에는 방앗간을 비롯하여 두부공장·기왓골 등도 있었다 한다.

현재 이 절의 축대 밑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터가 있으며,

가뭄 때면 달성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대견보궁 바로 옆은 산신각이다. 산신각에 모셔진 대견봉 산신


대웅전 옆 마당에는 차공양하는 의식이 열리고 있었다.


동굴대좌가 있었다는 바위굴이다. 대견보궁 뒤편과 연결되어 있다.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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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5.05 17:43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16.05.05 19:56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감사 합니다

  • 16.05.05 20:20

    _()_
    나무 아미타불

  • 16.05.10 16:45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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