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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1 주일낮설교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막 6:14-29 / 정치적 폭력에 대항하라!
(♡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은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말씀의 소제목은 “세례요한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주제를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와 권능이 드러났다는 사실과 정치적인 폭력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보면서 무엇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싶으신지 생각해보세요. 생각해보시라고 오늘은 제목을 먼저 말씀드리지 않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드러난 예수님의 신적 권위와 권능, 하나님의 정의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선교하라고 보내셨습니다.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이런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다양한 지역을 다녔을텐데, 그런 제자들의 활동을 통하여 예수님이 가진 신적 권위와 권능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반응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15절) 어떤 이는 예수님을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하였는데,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하였습니다.
왜 헤롯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당시 이스라엘의 위쪽 갈릴리와 요단강 동편 지역인 베레아의 분봉왕은 헤롯 안티파스였습니다. 사마리아와 유대는 아켈라오가 다스리고, 갈릴리 우측은 빌립이 다스렸습니다. 후에 아켈라오가 쫓겨나며 그 지역은 총독직할령이 됩니다.
“안티파스”는 “아버지와 같은 모습(=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뜻입니다. (실제로 폭력적인 모습이 닮았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헤롯 대왕의 아들로, 원래 왕의 신분을 얻지 못한 군주였는데 로마의 칼리굴라(Galigula) 황제 시절에 로마로부터 왕의 신분을 얻으려 하다가 실패하여 A.D.39년에 실각(失脚)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왕이라는 칭호를 써주고 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아버지 헤롯대왕보다는 유능하지 못하였다고 평가되었습니다.
아래쪽 아라비아 왕인 아레타스의 딸 파사엘리스를 아내로 맞아들였지만 강제 이혼하고 자신의 배다른 동생인 빌립의 부인이었던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이 문제를 세례요한은 나쁘다고 지적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헤롯 안티파스나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을 죽일 만큼 기분 나쁘게 생각했고, 결국 죽였습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부인인 아라비아 왕 아레타스의 딸 파사엘리스는 화가 나서 친정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헤롯과 전쟁을 하라고 하였고, 결국 전쟁이 일어나 헤롯은 패전 당하게 됩니다.
한편 헤로디아는 그의 연약한 남편 빌립을 버리고, 사치와 허영에 빠져 헤롯 안티파스와 결혼하고, 헤롯 안티파스를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도록 부추겼습니다.
하지만 헤롯 안티파스는 7만 명의 병력과 무기를 몰래 쌓아놓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었고, 이것이 황제에게 반역을 꾀하려 한 것이라는 모함을 받아 결국 프랑스 리용으로 유배당하고 맙니다.
중요한 문제는 헤롯 안티파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욕심을 따른 헤로디아와의 결혼을 합법화하려 하고 있지만 모두가 침묵할 때 이 문제에 대해 예언자 세례 요한은 그것은 잘못된 결혼이며, 이런 잘못된 결혼을 바탕으로 하는 헤롯의 정치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잡혔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 헤롯이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외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① 세례요한보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와 권능이 더욱 강력하게 보여졌다는 것입니다.
②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이고 그의 입을 막음으로 정의가 폭력 앞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정의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역사로 다시 살아난 정의의 문제는 결국 헤롯의 정치적 폭력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되며, 이것은 결국 헤롯의 정치적 생명에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와 그의 삶이 좋지 않게 끝날 것이라는 큰 불안감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놀라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의 영역은 깨지기 시작하고, 각종 질병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구원받는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보는 헤롯의 정치적 폭력의 부당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정의가 이 시대에 실현되도록 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2. 헤롯의 정치적 폭력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헤롯은 배다른 동생인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욕심으로 얻었고, 헤로디아는 사치와 허영으로 더 큰 매력을 지닌 헤롯을 얻고자 남편 빌립을 버렸습니다.
원래 왕들은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죽이기도 하였지만, 헤롯의 경우는 배다른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입에도 오르내렸을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하여 헤롯은 도덕적, 정치적 합리성을 주장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가장 강력한 예언자 세례요한이 이 문제에 대해 이 결혼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자 헤롯과 헤로디아의 입장에서는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헤롯과 헤로디아는 요한을 잡아 감옥에 두었는데,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을 원수처럼 여겨서 빨리 죽이고 싶었지만,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을 죽일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헤롯의 생일이 다가왔고, 헤로디아는 자기 딸 살로메를 헤롯의 생일에 성적인 대상으로 주려고 생각하여 춤을 추게 했는데, 헤롯은 이런 의도를 알고 기뻐하며 살로메에게 “네가 원하는 것은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였습니다.
살로메는 밖으로 나가 엄마 헤로디아에게 무엇을 구할지 물었고, 헤로디아는 즉시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여 세례요한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녀의 결혼은 합법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세례요한이 죽은 것은 헤롯의 욕심과 헤로디아의 교묘한 술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 정치적 폭력은 많은 사람의 인권을 유린하고, 양심을 짓밟으며, 국민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게 됩니다.
자기의 잘못과 부패를 정당화하고, 언론을 조작 · 통제하며, 잘못된 정보로 위협과 보복을 일삼으며, 입을 막으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정의는 이 땅에서 실현됩니다.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납니다.
결국 정치적 폭력배들은 퇴출되고, 역사적인 심판을 받으며, 하나님의 정의는 세워집니다.
→ 우리는 정치적 폭력에 세례요한처럼 항거해야 하고, 나아가 거짓된 믿음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폭력을 행하는 잘못된 이단들의 폭력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3. 역사적인 정치적 폭력의 예
1) 엘살바도르의 정치폭력
엘살바도르 공화국은 중앙아메리카에 있고, 경상북도만한 크기에 인구는 640만 정도이고, 과거 스페인의 침략을 받아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침략과 화산 같은 자연재해, 여러 분열과 다툼으로 정권이 불안정하였고, 20세기에 들어서도 쿠데타가 빈번하였고, 군사독재정권 기간에는 수만 명의 국민이 국가폭력으로 학살당했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은 소수의 군인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였고, 이것에 반대하는 많은 농민들이 학살당하고, 난민으로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카톨릭의 영향아래 있었는데, 군사독재정권의 잘못을 지적하고 민주화를 외치는 일에 카톨릭도 앞장서고, 사회구원을 외치며 해방신학이 등장하게 됩니다.
해방신학은 사회구원을 위해 사랑만 말하면 안되고, 대항적 폭력을 써서라도 잘못된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카톨릭의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도 군사 독재 정권의 폭력에 의해 (미사 중에) 암살당하고, 이것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로 영화화되기도 하였습니다.
2) 튀니지의 정치폭력과 재스민 혁명
아프리카 북부의 지중해에 닿아있는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2010년 12월 17일, 수도 튀니스 남쪽 300km에 위치한 중부 시디 부 지드라는 곳에서 실직 중이던 26세 남성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과일과 채소를 거리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판매 허가가 없다고 경찰관이 상품과 저울을 몰수하였으며 손찌검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경찰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이날 오전 11시 30분 지방청사 앞에서 휘발유를 둘러쓰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후 그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사촌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튀니지에서는 실업률이 공표되는 14%보다 높고, 청년층에 한정하면 25~30%라는 높은 수준에 이르러, 길거리에서 과일과 야채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실업자도 많았습니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조직의 권리, 언론자유화, 대통령 주변의 부패에 대한 처벌 등을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파업과 시위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시위가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면서 군대와 충돌로 많은 사망자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튀니지에서 일어났다고 하여 튀니지 혁명이라고 하고, 튀니지의 나라 꽃인 재스민에 빗대어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 혁명으로 1987년부터 23년 동안 계속된 장기 집권해왔던 벤 알리의 군사독재정권은 종말을 맞이하였으며, 많은 중동지역과 중국 같은 곳에서 혁명의 불꽃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3) 우리나라
대한민국 건국 이후 경찰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들이 많은 폭력을 행해왔었습니다.
1980년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학생과 노동자, 시민들에게 공권력에 의해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거나 폭력을 일삼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이나 ‘백골단’ 등은 그 이름만으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유신체제를 비판했다, 군사정권을 비판했다고 피의자를 영장 없이 잡아다가 자백을 강요하고 폭행하며, 물고문ㆍ성고문ㆍ전기고문ㆍ고춧가루 고문을 행하고, 삼청교육대 보내고, 병신 만들고, 죽이고, 간첩 누명 씌우고 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그런 얘길 들었습니다.)
4) 독재와 폭력
독재라는 것은 기원전 5세기 로마공화국에 있어서 통령(統領)에 의해서 임명된 독재관(dictator)이 외국과의 전쟁이나 내란이 일어났을 경우 6개월 동안 정권을 장악하게 된 제도에서 나온 말인데, 오늘날에는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여 국민 또는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나 자유를 억압하는 현상 또는 체제를 말합니다.
독재의 대표적 예는 히틀러(A. Hitler)나 무솔리니(B. Mussolini)에 의한 파시스트독재, 레닌(V.I. Lenin), 스탈린(I. Stalin)에 의한 공산주의독재, 일부 후진국에서 볼 수 있는 군사독재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들만이 국가와 민족의 안전을 지키고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킨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설득과 타협과 대화보다는 폭력을 통하여 해를 끼치고, 두려움을 주고, 구속을 하며 인권을 유린하며, 불의와 부정을 행하게 됩니다.
이런 잘못된 폭력에 맞서 싸우는 것을 대항적 폭력이라고 하는데, 악을 근절하기 위해 이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① 악의 세력이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을 내리려고 하는 경우에서는 정상시의 도덕률과 윤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고, 그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폭력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본회퍼(Bonhoeffer) 목사님의 주장입니다.
그는 미친 운전사가 버스를 몰아 사람을 살상하는 경우 우리는 그 운전사에게 폭력을 사용하여서라도 그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파쇼정권에 항거하였습니다.
② 포악한 무리가 연약한 민중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을 때, 분노한 민중더러 가만히 폭력을 받고만 있으라고 하는 것은 민중에게 주체적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기 때문에, 이 경우 폭력을 사용하더라도 그들에게 항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폭력은 자신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됨을 깨우쳐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나 제임스 콘(James Corn)의 주장입니다.
억눌린 사람은 폭력에 항거함으로써 그의 정신상태를 건강하게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③ 사랑의 채찍이라 하여 억눌린 자들이 힘을 모아 대항할 때 강자들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는 흑인 민권운동가들 (또는 인디언들의 저항)의 말.
④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낡은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생산력에 올가미를 씌우는 상태에서 낡은 생산관계를 고수하려는 지배계급을 폭력으로 타도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교회는 사랑의 원리를 내세우지만 대항적 폭력은 필요하며 불가피한 경우가 많습니다.
→ 여하튼 올바른 지성의 사람들과 믿음의 사람들은 잘못된 정치폭력에 맞서 싸워야 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와 권능이, 하나님의 정의가 제자들을 통하여 나타난 것처럼 오늘날에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주의 권위와 권능이 사람들 속에, 정치와 사회와 문화 속에 나타나져야 합니다.
⇒ 주여, 주의 권위와 권능이, 하나님의 정의가 우리를 통해, 교회를 통해 나타나게 하옵소서!!
(근로자의 날입니다. 우리 사회 근로자들의 고민과 아픔, 길거리 시위를 새롭게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