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眞實과 거짓을 바로 알자 ★
『 박정희는 우리 같은 사람 3만명을 못살게 했지만
젊은이들아!!
실의 도탄에 빠져 나태한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새마을 정신혁명으로 잠재력을 일깨워 자신감을 안겨준 지도자, 그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과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독재니 자유니 하며 이론적 정의만을 내세우는 소수의 사람들과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대한민국 그 첫째 '식욕', 당시 우리보다 몇 배를 더 잘 살던 그래도 독재자 박정희라 폄하 하며, 그의 업적과 공을 깎아내리려 애쓰는 젊은이들이 많다. 왜, 그럴까? 16,000불에서 살다 보니 76불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실제로 어땠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유니 독재니 하며 교과서적 정의만을 내세워 따진다. 되면 굶어 죽는 사람이 흔하게 발생했지만, 뉴스거리조차 안되던 때가 바로, 60년대였다. 배를 곯아 봐야 인생이 뭔지 삶의 철학도 깨우칠 수 있음에 너무나 잘 먹어 뱃살 빼기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아!! 살이 찌고 배가 나와야 사장이며 인격, 신분 상승으로 여겨 겨울이면 옷을 많이 입고 살쪄 배 나온 시늉을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1960년 4월19일 학생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과도정부가 들어섰을 때, 각종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 농민, 상인, 이발사, 식당주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길거리로 몰려나와 데모……. 학생들도 교장 선생님 조회 시간이 너무 길다 데모, 짧은 머리 기르자 데모,공부시간 단축하자 데모, 하다못해 초등학생, 선생들까지도 데모, 데모, …… 온 나라가 일 년 열두 달 365일 데모로 지새워 오죽하면 데모를 하지 말자고 데모를 하였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였겠는가? 이를 지켜본 세계에서는 KOREA는 '데모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최루탄 가스를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워 밤이면 마음 놓고 밖을 나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치안은 여기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이 무법이 판을 치던 그때, 하다못해 깡패도 주먹으로 정치를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모든 것이 자유라며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발로 차거나 주먹을 휘둘러대며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의 국민들이 많았으며, (당시에는 초등학교 무학자가 대다수였다.) 라디오로 생중계하여 현장 실황을 남한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남파 간첩들이 포진되어 안보가 위태로웠는지,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그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들아!! 나라를 구하고자 구국에 일념으로 박정희가 나타난 것 아닌가.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당시에 박정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당리당략과 사리사욕, 출세욕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고 보면 지금 쯤 이 나라는 어떻게 되였을까? 너희들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가 월드컵 세계 4강에 올라 올림픽을 개최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가 있었을까? 또, OECD 경제 대열에 오르는 오늘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있어야 하며 냉철한 판단력과 결단력, 추진력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호텔 짓고, 백화점 짓고, 선박 구입 등, 비생산적인 곳에 썼지만, 박대통령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하며 이승만정권 때부터 14년간이나 지지 부진하게 끌어 오던 한일수교를, 결단, 결행, 단행하여 산업의 쌀이라 일컫는 제철공장 짓고, 고속도로 등, 경제 재건을 위한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여 지금은 조선업, 철강업, 기타, 중공업 분야에서 세계 1, 2위로 일본과 경쟁하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는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산업의 동맥으로 토목 건설 기술 축적으로 지구촌 곳곳에 건설수주 외화 획득, 매년 고도성장을 30년 이상 지속, 지금은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박대통령의 업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