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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신춘문예 투고용. 200자 원고지 99매. 아직 교정 수정 중.
시퍼런 바다 위로 바람도 억세게 불었다.
기다랗게 뻗은 신작로 옆으로 지천으로 깔려 있는 돌.
연지는 커 갈수록 저 바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이 더 해 갔다.
갓 스무 살 때 시집이라고 와서 남편에게 육지로 나가 살자고 했지만,
고향을 떠나 살 수 없다며 고깃배를 탔다가 배는 파선하고 남편은 실종됐고 그 뒤 10년째 소식이 없었다.
연지는 자식도 남편도 없는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섬의 조그만 마을에 주민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연지는 동민을 찾아갔다.
"동민아 여기서 떠나, 우리가 귀양살이 하는거야 뭐야, 왜 이런 좁은 섬에서 살아야해,
"그래, 떠나자, 어디론가 멀리 떠나자".
섬은 장수하기 좋은 곳이고 예술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지만,
한가지 중요한 건 섬엔 큰 인물이 안 나온다고 했어".
"나도 예술을 택하느냐 출세를 택하느냐? 어느쪽을 택하긴 택해야 되겠는데
나도 이젠 섬이 싫어졌어, 단 하루를 살고 죽더라도 출세 한 번 해 보고 싶어!".
도전에 몇 번 출품하여 입선한 때가 10년 전 이었는데 그 이상의 발전 없이
자신은 그림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캔버스와 붓을 모두 꺾어 버리고 다시는 그림을 안 그릴려고 작정하고 배 일을 했다.
"그래 떠나, 빠르면 빠를 수록 좋아, 나도 이 섬을 빠져 나갈 날만 기다렸어".
연지는 바다 건너 낙원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부산행 표를 끊었다.
배 안에서 동민은 세상만사 잊은양 코만 골았다.
부산에 도착하자 익숙한 동작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한참 가더니
교통부라는 데서 원룸을 하나 잡고 짐을 풀었다.
벽 이곳 저곳에는 벽지가 뜯겨져 있고 천장에는 형광등만 뎅그러니 달려 있었다.
둘은 신혼여행 온 것 처럼 이곳 저곳 구경부터 하고 다녔다.
영화도 보고 유원지도 가서 마냥 즐거워했다.
동민은 페인트 도장업을 하는 학교 미술부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민을 만난 선배는 도장업을 함께 하자고 하면서숙소가 있어 그곳에서 자라고 하자,
동갑나기이자 소꿉친구였던 과부하고 눈이 맞아 부산에 왔다는 말과 함께 출퇴근 하겠다고 했다.
선배는 양미간을 모으면서 불쾌한 듯 이야기를 꺼냈다.
"넌 아직 총각이잖아, 총각이 뭐가 아쉬워서 과부하고 살어!,
아무리 소꿉친구이긴 하지만 그만 헤어져,, 너가 내 친동생 같아서 하는 소리야!,
그 여자가 좋으면 할 수 없지만, 아니면 빨리 끝내버려!".
동민은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말이 맞아 난 총각인데 과부와 왜 살어?,
아냐 그 여자는 나만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어?.
동민은 스스로 자문자답을 했지만 아직 결정을 선뜻 못 내리고 있었다.
선배가 그의 등을 툭 치면서 용기를 내라는 듯 말했다.
"넌 도전에 입상한 뒤 그림을 계속 그렸지만 그 뒤 별다른 전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림을 하주 포기 한 건 아니겠지,
내가 보기엔 넌 분명히 소질 있어 페인트칠 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계속 그림을 그려 봐, 그럼 꼭 성공할거야, 결혼을 그 뒤에 해도 충분해!".
동민은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선배의 말에 다시 투지가 활활 붙었다.
"그래 맞습니다. 전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났고 그림이 내 인생의 전붑니다,
그래도 나만 믿고 따라 온 여인은 버릴 수 없으니 당분간 함께 있겠습니다.
연지도 동민을 따라 페인트 도장일을 함게 했다.
연지가 일에 능숙해지자 동민은 미련없이 훌훌 떠나 버렸다.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 있어 준 동민이 고마왔다.
해운대에 새로이 일기 시작한 아파트 붐으로 인하여,
백사장 앞에는 크다란 콘도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자연경관을 해 친다는 여론도 관광수입에 밀려 아무런 저항도 못한채
구경만 하고 주변 학교에서도 바다가 탁 보이는 경관을 이 거대한 괴물이 가로채 버렸다.
연지는 검푸픈 파도와 일렁이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치 고향 포구에 와 있는 듯 했다.
연지는 바다가 보이는 이 도시가 좋았다.
고층 아파트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 보면 모래 위에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직였다.
좀 더 나가면 엷은 청록빛의 물결이 일렁이고, 더 멀리 나가면 짙은 남색빛을 띤 물결이 살아 숨쉬는 듯 넘실 거렸다.
살아 숨쉬는 듯한 푸른 물결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갔다.
버스 이쪽 종점에서 저쪽 종점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몇푼 모은 돈으로 조금 더 넓은 방으로 이사를 했다.
옆방에 사는 김씨가 일하기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김씨는 목수일을 한다고 했다.
자신이 목수일을 하다가 다리를 다쳐 지금은 일을 못하지만 곧 완쾌되어 일만 나가면 돈을 잘 번다고 떠벌였다.
김씨도 꽤 성실한 사람이라고 이웃들도 돈 한 푼들지 않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리가 빨리 완쾌되지 않아 갑갑하다며 연지의 방에 놀러오기를 수차례 하더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한 방을 쓰게 되었다.
김씨는 처음엔 성실한 사람이었으나, 치료도중 점점 게을러져 일을 하기 싫어했다.
그동안 모안둔 돈도 치료비와 생활비로 다 써 버리자, 허탈감을 달래기 위해 술을 습관적으로 마셔 대다가 차츰 알콜중독 증세가 나타났다.
연지와 한 방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일의 의욕을 상실한 폐인이 되다 시피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웃들이 처음엔 성실했던 사람이었다며 같이 살며 잘 구슬러보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갈 것이라고 했다.
연지는 아직 어두운 새벽을 헤치고 출근을 서둘렀다.
버스 안에서 잠시 졸았지만 아직껏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해 길게 하품을 했다.
모두 조금씩 늦게 나왔다.
연지도 시계를 보니 10분이나 늦었다.
업자가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일장훈시를 늘어 놓았다.
하루해가 뉘웃뉘웃 기울자
집에서도 피곤한 몸으로 언제쯤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도 하루 일과였다.
기다리다 못해 찾으러 나갔다.
'술집에 남편 찾으러 다니는 여자'가 꼴불견 인줄 알지만, 혹시 술주정이라도 누구로 부터 얻어 맞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이 앞섰다.
술을 마시면 곧 잘 싸움이 붙었다.
이기지도 못하는 싸움을 하여 이빨이 나가고 머리도 깨어지고 갈비뼈도 몇 대 부러져서 돌아오곤 했다.
이럴때면 연지도 화가 잔뜩 나
"아니 누가 이렇게 때렸어, 누가 이렇게 때렸나고?, 말해봐!".
남편의 대답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몰라 아주 땅땅하게 생겼던데 그 친구 주먹하나 잘 쓰더군 내가 비록 맞기는 했지만 말야".
"누군지 알아야 치료비도 받고 경찰서에라도 쳐 넣을 것 아냐 말해봐, 누군지?".
남편은 밑도 끝도 없는 횡설수설만 늘어놓다가 돌아 누워 자 버렸다.
그다음날 만신이 아프다고 병원에 간다.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디가서 안 얻어 맞아 병원비 안내는 일이었다.
남편이 어디가서 얻어 맞아 치료비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선지국 집에 갔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조금 크다 싶은 남자 키에 드럼통 만한 허리에 보통 여자 다리통만한 팔뚝으로 선지국밥을 열심히 말고 있었다.
귀도 복귀로 축 쳐진 귀밥에다 귀걸이도 진짜 금인지 가짜인지 모를 누런 색깔로 고양이 방울만한 큼직한 것을 끼고 있었다.
연지는 국밥집 안을 열심히 두러번 거렸다.
남편은 등을 돌린채 소주잔을 한 손에 받쳐들고 한 손은 누구와 어깨동무를 한 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정답게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다.
누굴까?.
뒷모습이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어렴풋 정이 든 사람 같기도 했다.
남편과 어개동무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사내가 자석에라도 이끌린듯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아, 그 얼굴이 아닌가!".
함께 고향을 등져온 남자, 그리고 떠나간 남자, 예전의 선비풍의 긴 얼굴에다,
새로이 코 밑으로 까무잡잡하게 기른 수염과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카락, 예술가에게 은은히 풍겨 나오는 미소.
연지는 그동안의 세파 속에서 이마에 인생 계급장이 몇개식 붙고 손이 많이 거칠어
졌는데, 그는 콧수염만 빼면 변함없는 예술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예술가는 한쪽 손을 쳐들고는
"고여사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보는군요, 사는 재미가 어떻소".
화가가 던지 한마디였다.
마치 옛 소꿉장난 친구라도 만난듯한 인사였다.
연지는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저 남자와 살았던게 한 낱 소꿉장난 이었던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데 이제와서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흥 아직 안 죽고 살았군, 어디가서 콱 되져 버리지나 않고".
"아니 여보,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나를 찾아온 손님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석찬은 "여보" 라는 말이 부부관계를 인정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도 되는 듯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
연지는 자신의 입에서 그토록 심한 욕지거리가 나올줄은 미처 몰랐다.
자신의 천박해진 언행에 스스로 놀라 얼굴이 붉어졌다.
선지국밥집에서는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대해 모두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멀거니 구경을 했다.
"부인 제가 너무 심했다면 용서 하십시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결례를 했군요".
"아녜요, 제가 너무 배우지 못해서 그랬어요, 지금 어떻게 지내세요?".
연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연지는 석찬과 처음 동거를 시작할때 부터 진짜 남편이라고 믿는 동민이 언젠가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늠름한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을 데려 갈 줄로 믿었고 그때 까지만 석찬에게 잠시 자신을 의탁 할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두 사내는 연지가 돌아 간 연후에 식당 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쏠린 것을
알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앞에 놓인 술과 순대를 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똥을 앞에 두고 그냥가지 못하고 한 입이라도 더 핱고 가고 싶은 똥개처럼 비실비실 앉아 있었다.
"지금 연지는 내 마누라야 과거야 어찌 되었건 현재는 내 마누라라고,
세상사람들과 법이 내 마누라고 인정해 줬거던 면사포야 못 썼지만 혼인신고까지 했어,왜 호적등본이라도 한번 떼어다 보여줘!".
"아니야 그건 거짓말이야 혼인신고를 했다고, 내가 이혼신고를 해 준 일도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냥 살고 있는거잖아, 간통죄로 쳐 넣어 버리기 전에 순순히 물러나!".
혼인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는건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연지는 실종된 첫번째 남편하고 아직 혼인 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내가 그의 진짜 남편이야, 지금 난 연지가 필요해, 난, 연지를 데려 가겠어".
"그건 안돼, 연지를 보낼 수 없어".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노려 보았다.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그것도 잠시뿐 또 술잔을 기울여 술을 마셨다.
자신이 진짜 연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확인해 주기 위한 유일한 한가지의 수단이 바로 술 마시시는 것이라도
되는 것 처럼, 마치 자신들이 마셔 버린 술 만큼이나 연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처럼 보이기 위해 마셔댔다.
식당에 쭉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말씨름 하는 내용으로 봐서,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라는 것을 알고 무척 재미 있다는 듯이 쳐다 보았다.
두 사내가 마셔버린 술병들이 어지럽게 늘리자 선지국밥집 주인은 팔뚝을 걷어 부치고 내 몰았다.
육중한 허리에서 나오는 힘은 두 남자의 힘으로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떠 밀려 나왔다.
술 값을 요구하자 두 사람은 다 연지가 낼 거라고 하자 국밥집 주인은 재수 없다고 왕소금을 홱홱 뿌렸다.
"에이 재수없어, 뭐 저런 인간들이 살아 숨쉰다고, 저승사자는 뭐하는지 몰라, 에이 재수없어".
두 사내는 자신들이 왜 싸우는지도 금새 잊어 버리고 어깨동무까지 하고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어깨동무는 서로 좋아서 한듯 보이지만 두 다리 보다는 네 다리로 걸어가는 것이 더 넘어질 위험이 적기 때문에 한 것 뿐이었다.
네 다리가 비틀대며 걸어 간 곳은 연지의 집이었다.
연지를 본 순간 두 사내는 또 희미한 기억 속을 더듬거리며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 이겨야 한다는 투지가 용 솟음쳤다.
이곳에서는 싸움이 잦아 왠만한 싸움은 구경거리도 되지 않았다.
연지는 이웃에게 창피 하기도 해서 두 사람 다 방으로 끌여 들였다.
방에 들어서자 마자 젖든 옷을 입은 채 곧 골아 떨여져 자기 시작했다.
연지는 잠결에 누군가 자신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손을 뿌리치자 더욱 억세게 파고 들었다.
파고 드는 순서가 석찬이 아니고 동민이라는 것을 알았다.
석찬은 아는 듯 모르는 듯 계속 코를 골아대며 잠을 자고 있었다.
일이 끝나자 화가도 잠이 들었다.
연지도 피곤에 못이겨 거친 코고는 소리를 몰아대며 잠이 들었다.
"한바탕의 격동과 봄이 저만치 가고 여름의 문턱에 왔는지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졌다.
현장 사무실에도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자 인부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이뤄 수군거리고 있었다.
건물주가 부도가 나고 건설회사에서 부도수표 대신 건물을 떠 안게 되었다는 둥,
원래 건물주와 건설회사 사장이 한 인물이라 그럴리 없다는 둥,
건물주와 건설회사 사장이 친형제 라는 둥,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직원들은 부도수표때문에 머리를 싸매는 것이 아니라 공사기일 연장에 따른
그 책임추궁으로 인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연지도 사장의 모습을 한번도 본 일이 없으나 여름이 다가오자 고급 중형차 탄
사장의 얼굴을 몇 번 볼 수 있었고 땅땅한 키에 머리가 반쯤 벗겨져 건물 중간층에서
현장사무실의 창문사이을 들여다 볼테면 사장이 각 공정별 책임자를 호되게 야단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음 불똥은 자신들에 튀지 않나 하고 연지는 조바심이 났지만 다른 인부들은 오히려 재미있어하고 키득대고 웃고 있었다.
사실 인부들 각자에게 완공은 강 건너 불이었다.
초 봄에 완공해서 봄에는 선전기일로 잡고 여름 성수기에 본격적 영업에 들어 가려 했으나
초 여름인 아직도 공사가 끝나지 않아 회사에서도 인건비와 영업을 못해 손실이 엄청났다.
사장은 소장을 다그치기 시작했고 공사기일 단축 대책 보고를 받고 마음에 들지 않을때는
그 자리에서 온갖 욕설을 퍼 부었다.
회사의 부도건에 대해 인부들끼리 수군거린건 모두 맞는 말이었다.
건물주와 건설회사 사장은 친형제 지간이었고, 동생인 건물주가 형이 공사 기일을 자꾸 늦추자
돌아오는 수표를 감당못해 부도를 내었으며 형이 수표와 건물을 떠 안는 것 처럼 위장해 은행대출을 내어 급한 불을 꺼고 있었다.
소장들은 휘하의 반장들을 소집하여 공기단축 방안을 심각하게 얘기하자 반장들은 인원증원을 내세웠다.
다 끝나가려는 현장에 붙을려는 인부들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달리 뾰족한 방안이 없었다.
도장팀에서도 한 사람이 들어왔다.
30대 후반으로 보였으며 아무리 봐도 이런 공사판 일을 할 것 같지 않고 말투가 남해 말씨를 써는 것 같았다.
고향이 어딘지 물어왔다.
"고향이 어딘가요?".
"고향은 제주도고 그곳에서 쭉 자랐지요, 그런데 아주머니 고향은 어딘가요?".
연지는 고향사람을 만나 반가웠지만 어쩐지 불길한 마음이 들어 시치미를 뗐다.
"나는 저 거제도예요".
"그럼 같이 섬이 고향이네요".
"이런 일 하기 전에는 뭘 했어요?".
"교편 잡았지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시작했나요?".
"어찌 단 한번 실수로 10년 넘게 일한 직장에서 쫒겨나고 퇴직금도 다 날리고 이렇게 됐습니다".
"어떤 실수를 했는데요?".
"그런 얘기는 차차 합시다".
다른 인부들 처럼 검게 그을리지도 않은 피부에 가느다란 손마디로 연장을 잡고 일어섰다.
그는 현장내에서 교사로 불려졌다.
도장팀 반장이 전직 교사라고 "교사"라고 처음 불렀는데 다른 사람들도 따라 불렀다.
자신보다 연하인 반장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어이, 교사" 하면 별반 기분 나쁘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뒤부터 그의 호칭은 교사로 통했다.
교사는 사범대에 무사히 입학과 졸업을 치르고 교사발령으로 이어지고
곧 결혼하여 장남이 태어나고 차남이 태어났다.
교사는 고향이 있을 서쪽 바다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고향의 섬에 가보고 싶었다.
아이들도 보고 싶었다.
교사는 오후 간식시간에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인부들이 모인 곳에서
한바탕 이야기를 재미있게 늘어놓았다.
"남들이 보면 난 아무런 고생없이 순탄하게만 살았어, 여유있는 집안에 태어나 교사가 되었고
소꿉장난 하던 색시와 결혼해 얘 낳고 부부교사로 여유있게 살았는데,
어느날 문득 뒤 돌아보니 너무 편한게만 살아온게 불만이더란 말이야,
나이 서른이 넘었지만 마음은 아직 10대 처럼 호기심도 많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언가 중요한 것 하나를 잃어버렸고, 또 쟁취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는것 같더라고".
연지는 그게 무엇인지 귀가 쫑긋해졌다.
모두 듣기에 재미있는 표정이었다.
무언가 잡힐듯 말듯 잡힐듯 말듯 한 것을 끝내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허탈감이랄까!".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판 검사가 되어야 하는데 기껏 교사노릇이나 하고 말이야,
교사 노릇할 바엔 놀기나 실컷 놀아보던지!".
"선생, 그것 파고 들면 공사판 인부보다 더 못 배워 먹었고 한심한 인간들이야,
내 언젠가는 그 비리들을 다 까 발려 버리겠어, 어린 학생들을 담보로 정말 추악해,
물론 그중에는 나처럼 순수하게 후진양성을 위해 제 몸 안 돌보고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진짜 존경 받을 만한 교사도 있지만 말이야".
잡념이 생기자 수업도 제대로 안되고 나이트 클럽에 갔어,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뛰어노는 처녀들을 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어,
어디 삼삼한 생선있나 두리번 거리다가 술만 마시고 나와버렸어".
"이왕 갔으면 찔러나 보죠, 왜 그냥 나왔나요?".
인부들이 물어 보았으나 교사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이번엔 카바레에 가 봤자, 온갖 바람난 여편네들이 득실거리더라,
바람 났구나 싶은 여편에 하나를 골라 한번 같이 잤어,
그때 그것으로 끝내야 되는데 늦게 배운 서방질 밤새는 줄 모른다,
서방질도 해봐야 는다,고 또 갔어,
이번이 진짜 마지막으로 간다고 갔고 어떤 바람난 여편네하고 눈이 맞았어,
여자가 앞장서서 택시를 타고 어디 작은 호텔에 세우더니 방을 구해 들어갔어,
잠시 어디 갔다 온다더니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전화 걸러 간 모양이야.
샤워를 끝내고 한참 하는데 문이 활짝 열리고 여자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고
그 여자 남편인듯 싶었어, 이년 저년 쌍년 빰 몇대 때리고,
여보 잘못했다 어쩌고 저쩌고 아무리봐도 어설픈 연극배우들이었어,
남편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는거야, 고소당하기 싫으면 돈을 내놓으라고 했어
아무리 봐도 각본에 짜여진 연극같고 어색한 것이 사기꾼 같았어,
처음엔 몇 푼 쥐어주고 무마하려 했어,
자꾸 그러면 공갈죄로 처 넣어버리겠다고 하면서 말야,
그런데 이게 왠 걸, 그 놈이 진짜 간통죄로 고소해 버린거야,
경찰서에서 오라 가라 하고 조서 꾸미고, 퇴직금 찾아 돈 준다고 해걸해서
어찌어찌 빠져 나왔어, 말 마라, 그 창피 온갖 욕 다 먹고,
소문도 학교에 쫙 퍼졌어, 그래서 학교도 그만두고, 집에선 집대로 난리가 난거야".
해운대 백사장은 여름 피서객들의 인파로 빼곡히 채워졌다.
호텔도 그럭저럭 다 지어 손님들을 받았다.
공사판 일이 마무리 되자 인부들도 각자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도장팀 반장도 나름대로 자신의 사업을 펼쳐 보겠다면 포부를 단단히 가졌다.
다음 공사에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은 사흘 뒤 식당으로 나오라고 했다.
사흘뒤 나온 사람은 교사와 연지 두 사람만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일을 찾아 갔지만 연고가 없는 두사람만 반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을 기다리다 지루해서 교사가 연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제주도 고씨 맞죠?,
땅땅한 키에 둥근 얼굴 투박한 말씨 남자를 능가하는 열성 고향이 제주도가 틀림 없지요?".
"그래요 그게 어쨎다는 거죠?".
"여기서 고향 사람 만나니 반가와서 그래요, 제주 어디서 살았소?".
연지는 대답이 없었다.
성산포에서 살았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기 싫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애써 지우고 싶었다.
천정가족도 시댁가족도 모두 만나기 두려웠다.
"사실 난 반장을 믿지 않소 실천보다는 말이 앞서는 놈이요,
지금이 시간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걸 보면 신의가 없소,
일이 안되면 나와서 안 된다고 이야기라도 해야 될 것 아니오,
여기서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딴 데 가서 이야기 좀 합시다".
연지는 마지 못해 따라 갔다.
피서객들이 북적대는 해변가와는 달리 조금 떨어진 곳은 조용했다.
나무 밑 벤취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사실 얼마전 본 부인과 만났소,
전화로 연락해서 오라고 했지, 처음엔 같이 살려고 마음 먹고
만났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소, 내가 살고 싶은데로 살기로 했소".
"만났을때 기분이 어땠나요".
연지는 짖굿은 질문을 했다.
자신이 화가와 헤어져 다시 만났을때의 기억이 떠 올라 물어 보았다.
교사는 자신의 처지를 연지가 이해해 주리라 믿고 기억을 떠 올렸다.
객지생활의 고달픔으로 이젠 집과 가정으로 가고 싶은 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자존심을 찌르고 말았다.
"당신의 행동은 이혼사유로 충분해 하집만 두 아이의 장래를 위하여 이번만은 용서해 주겠어".
아이들을 끌여 들었다.
순간 한규는 역겨움이 울컥 치밀었다.
나는 두 아이의 장래만을 위해 살아야만 되는가,
저 여자가 필요로 하는 건 남편인 내가 아니고 두 아이의 장래 뿐이구나.
"남편의 실수를 이해해 줄줄 모르는 여자와는 차라리 이혼하는게 더 나을거야!,
두 아이의 장래는 나 말고도 능력있고 실수 안하는 남자들이 얼마던지 많이 있어".
'당신 이게 최선책이 아니잖아,이혼만은 안 돼,
당신이 잘못했다고 백배사죄해야 되는데 이렇게 나오면 어떻해!".
교사는 애원하는 아내를 다시 미끄러니 쳐다 보았다.
애원하는 아내의 모습에 오히려 더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우리 다시 한번 시작해봐, 아이들도 있잖아, 나혼자 어떻게 키워".
교사는 아이들이 떠 올랐다.
무절제한 아버지로 낙인 찍어 버린 장본인이 바로 앞에 있는 여자가 아니던가!.
"절제할 줄 모르는 아버지는 아이들의 장래에 도움이 안 돼,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오히려 내가 없는게 나을거야!".
교사는 부인을 만나 나누었던 대화를 연지에게 이야기 하고는 잠시 쉬었다.
그리고 결심을 굳힌듯 하고 싶은 얘기를 용기를 내어 했다.
"연지씨, 우리 떠납시다,
우리들의 세계로, 이젠 고향에 있는 가족도 싫고 내가 살고 싶은데로 살고 싶소,
난 시인이 되는게 꿈이었소,
이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고 싶소,
이 도시는 너무 시끄럽소 도장일도 이젠 익숙하니
현장 소장이 고등학교 선배던데, 다음 공사는 충청도 제천에서 한다더군요,
제천에 큰 관광호텔을 짓는다던데 그 공사에 도장일을 나한테 준다던데 함께 같이 갑시다".
연지는 교사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 보고는 화가의 모습과 닮은 점을 찾아 내려고 했다.
연지의 집에는 화가와 백수가 건들건들 집에 틀어 박혀 있었다.
화가는 하루종일 그림만 그려댔고 백수는 술만 마셔댔다.
그래도 화가는 물감이 떨어지면 해운대에 나가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 그려주고 물감값은 벌었다.
이웃에서도 고연지를 보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세상에, 한 남편도 없이 지내는 여자도 많은데 두 남편을 거느리다니 참 복도 많은 여자야!".
이웃에서도 이상한 부부들의 관계에 비웃거나 손가락질 했다.
연지는 자신의 팔자인가 보다 하고 벗어나는 걸 체념해버렸다.
바닷가쪽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다고 장씨가 부추켜 세울때도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생활력이 강하다는 건 그만큼 고생을 한다는 말이었다.
몇 년 전 화가와 함께 제주도에서 도망쳤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화가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안겠다고 했는데, 이 남자는 시를 써겠다고 한다.
화가는 끝네 붓을 다시 잡았지만 백사장에서 초상화나 그리면서 술값이나 벌어 대는 인간으로 전락했다.
이 시인도 추잡한 글로 세상의 비웃음을 살 것만 같았다.
거절을 해야 겠는데 마땅한 구실이 떠 오르지 않았다.
"저는 남편이 있어요".
이말에 교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연지씨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소,
그것도 둘 씩이나 말이오, 반장에게 이미 들었소
지금의 남편들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그들에게서 떠나는 것이오,
연지씨가 옆에서 도아주니깐 점점 더 무위도식하는거요, 내가 도와주리라,
연지씨도 나를 좀 도와주시오, 같은 고향사람끼리 서로 도우며 의지하고 삽시다".
연지는 마음이 설레었다.
교사출신답게 조리있게 말하는 것을 듣고 보니 그들을 도와 주는게 아니고 오히려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용기를 내세요, 시는 내가 전 부터 쓰고 싶었던 것이었소,
"가정도 있다면서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둘이라면서 그 아이들의 아버지 노릇도 해야 되잖아요".
"그건 조금전에도 말했잖소,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로의 위엄은 벌써 땅에 곤두박질 쳐 버렸다고,
마누라가 사건이 있고 난 뒤,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모욕을 주었던지,
하긴 마누라도 충격이 컸겠지만,하지만 내가 완전히 가정을 내 팽게친 것도 아니고,
난 사내야 한 번쯤 그럴 수도 있는 걸 갖고..".
연지는 역겨웠다.
"난 집에 갑니다".
같이 마주 앉아 있기조차 싫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교사가 앞을 가로 막았다.
"내일 부산역으로 저녁 6시에 나오시오, 기다립니다".
연지는 아무런 대답도 안했다.
저 남자를 따라 가는 것이 옮은 일인지? 아닌지? 혼란이 왔다.
그 다음날에서야 나오라던 식당에 반장이나타났다.
공사를 맡아 보려고 돌아다녔지만 잘 안되더라며 당분간 쉬고 있어라고 말에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교사의 말처럼 반장도 말만 앞서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여름 성수기 북적거리는 백사장 인파 속에 묻혀 보았다.
이 많은 사람 속에 나 하나쯤 죽어도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거야,
연지는 상념속에 언뜻 교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교사와 함께 살자.
연지는 결심을 굳히고 역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연지는 버스 속에서도 몇번이나 망설였다.
버스가 역에 닿자 연지는 내려 역 주위를 맴 돌다가 6시가 다 되어서야 입구쪽을 멀리서 보았다.
교사가 큰 가방을 옆에 두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같이 가야한다".
"가선 안된다".
연지는 두 갈래 기로에서 또 망설였다.
"저분은 나를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필요로 하고 있어,
그러니 가야한다, 가야한다".
마음은 가야 되는데 발 길은 왔던 길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정처없이 걸어 보았다.
날은 벌써 어둑해 지고 있었다..
집으로 갈까 하다가 교사의 말대로 자신이 없어지면 그들도 제 살길 찾아 갈 것이고,
어차피 실업자인 자신이 그들에게는 필요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지 않기로 작정했다.
연지는 시내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른 일을 찾아 보기로 했다.
여자가 손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식당이었다.
어머니는 생선을 기가 막히게 잘 구웠다.
노릇 노릇하고 쫄깃하고 짭쪼름하니 구운 생선이면 밥 한그릇이 뚝딱이었다.
연지도 생선을 구워 봤지만 재료가 부셔지고 맛도 어머니와 같은 깊은 맛이 나지 않았다.
그 비법이 뭔지 알려 달라고 했으나
어머니는 너무 어려워 알려 줄 수 없다.
스스로 공부해서 알아가라고 했다.
비결을 알려 달라고 해도 특별한 비결은 없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라는 것 뿐.
연지는 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다가 매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소금의 양은 얼마나 넣고 소스도 이렇게 저렇게 발라 보았다.
어머니보다 더 노릇노릇하고 깊은 맛이 감치는 생선구이를 개발해 내었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식당을 개업했고
생선구이 맛이 입소문을 타서 손님들이 몰려 들고 돈도 차츰 모이기 시작했다.
연지가 무엇 보다 좋은 건 이젠 남자에에 의탁하지 않는 홀로 설 수 있는 삶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