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72장(구 330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본문의 중심내용 :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든 여인을 고쳐주심으로 영적 희년의 도래(4:18-19)를 알리시고, 이 안식과 자유가 겨자씨와 누룩처럼 퍼져나갈 거라고 하십니다.
[성경보기]
안식일의 여인 치유
10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겨자씨와 누룩 비유
18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해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0-16절 18년 동안 귀신에 매여 있던 여인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이로써 안식일을 ‘지키는’ 날이 아니라 ‘누리는’ 날로 바로잡으십니다. 일을 쉬는지 감시하고 정죄하는 날이 아니라 이웃에게 안식을 선물하는 일에 힘쓰는 날로 회복하십니다. 또 장차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영적인 희년(4:18-19)을 가져오실 것을 생생히 보여주십니다. 안식년인 7년에 도달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6년만 세 번 반복해온 여인은 뒤틀림과 매임에서 풀려나 홀가분한 쉼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에게 선물로 받은 자유와 안식은 내 삶에서 어떤 모양과 태도로 드러나고 있습니까?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여유와 휴식을 경험합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4-17절 무미건조한 문자주의는 말씀을 규범화하고 공식화하는 것을 신앙의 전부인 양 착각합니다. 포용의 여백과 실험적 실천, 예언자적 상상력은 결여되고 맙니다. 안식일의 법령에 집착하느라 안식일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 회당장처럼 말입니다. 자기 과시를 위한 법령에는 가차 없으면서 자기 이득과 관련된 가축에게는 예외조항을 두는 위선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죽을병이 아니므로 안식일이 지난 후에 치료했어야 한다’, ‘안수하는 것은 노동에 해당하므로 선포로만 치료했어야 한다’는 등의 무가치한 논의를 멈추고, 글로만 읽고 말로만 들어왔던 안식의 실현과 실재에 몸을 던졌어야 합니다. 내 묵상은 어떻습니까? 나를 통과한 말씀이 닿는 곳에 안도와 쉼이 피어납니까?
18-21절 하나님 나라는 작고 미미해 보이지만 새들이 깃들 만큼 큰 나무로 자라날 잠재력을 지닌 겨자씨와 같습니다. 불임의 아브라함이 민족과 나라로 불어나고, 이스라엘 시골 마을에 선포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의 교회로 뿌리내린 것처럼 말입니다. 적은 누룩이 반죽 덩어리 전체에 영향을 미치듯, 그 나라는 강력한 침투력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것입니다. 복음전파에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꾸준함입니다. 당장 우리 눈에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조용히 저절로 자라나 번성할 복음의 능력에 대한 신뢰입니다.
[기도]
공동체-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참된 자유와 쉼을 누리게 하소서.
열방-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중부 유럽에 가뭄 피해 면적이 7배 이상 증가했다. 유럽 각국이 탄소배출량 감소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미래 세대에 안전한 자연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애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