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 정준일
물고기의 기억은 20초까지라 한다
한 자리에서 두 세 번씩 떡밥 삼키는 것으로
낚시꾼이
지어낸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좁은 어항에서도 평화로운 모습은
모든 것을 온전히 잊은 자의 여유이다
날마다, 아니
20초마다
새로운 물길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맛을 즐기며 평생을 모험으로
새 삶을 누리는
물고기
작년과 같이, 어제와 같이
그럭저럭 오늘을 살아내며
환상도 잊지 못하고 원한도 버리지 못하여
싸우고 하늘을
쳐다보고, 하늘보고 또 싸우는
나보다야 얼마나 훌륭하냐
어항 속의 돌멩이와 나뭇가지 사이로
금붕어는 수 없는 길을
낸다
유리벽에 입을 맞추고는
휙, 휙 몸을 돌려 새 물결 속으로 돌아간다
유유히
내 이야기/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시간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부 즉 마음의 역량에 있다.” 정말 그럴까요? 시간은 인간 개개인의
마음속에 ‘각자’존재할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나이를 먹고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지요. 내가 나이를 먹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이가 나를 먹습니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에 의해 내가 잡아먹히는 게 인생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을까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달콤한 데이트를 꿈꿉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는 현실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청년이 떠올리는 미래의 일인 것이지요.
며칠이 지났습니다. 이제 청년은 그녀와 만나 멋진 데이트를 즐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현재라고 느끼는 순간 현재는 그야말로 빛보다도 빠르게
과거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획획. 마치 우리가 보는 현재의 별은 수천 억 광년 전의 과거의 별이 지금 눈앞에 당도해서 보이는 것에 불과하듯
그렇게 말입니다. 해서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른 각도에서 이해됩니다. 현재(現在)!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밀고 가 보겠습니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이렇게
말했지요. “의식에게 있어 현재란 없다.(…)엄밀히 말해서 그것(현재)은 이해될 수 있지만, 결코 지각될 수 없다.” 이해될 수는 있지만 지각될
수는 없다? 역시 어렵네요. 현재는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것일까요? 존재하는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 비존재일까요? 존재와 비존재를 공유하는 놀라운
현재의 비밀을 저는 캐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가 버린 시간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지요. 바로 기억과 망각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억 잘하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고 잘 잊어버리는 것을 무능하다고 여깁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정신분석이
기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망각을 기억의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의식에 가라앉았던
사건들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망각은 그저 수동적이고 무능한 것에 지나지 않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망각을
긍정했습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
최초의 운동, 거룩한 긍정이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노는 아이를 보십시오. 모래로 만든 두꺼비집이 파도에 휩쓸려도 계속해서 새로 집을
짓습니다. 결코 무너진 집으로 인해 우울해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망각이 없으면 기억 또한 없습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우리들의 실용적인 지력(知力)에 있어서 망각은 기억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우리들이 만약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하면 마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대부분의 경우 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회상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흘러간 원래 시간만큼 소요될 것이며, 우리들의 사고는 진척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회상 시간은 단축된다.…이 단축은 그들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사실을 생략함으로써 발생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억한다는 조건은 망각해야만 하는 조건이라는 역설적인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방대한 양의 의식 상태를 통째로 망각하고 많은 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하지 않고는 우리는 전연 기억할 수가 없다.…’고 리봇은 말하고
있다.”(다이엘 J. 부어스틴 『발견자들Ⅱ』)
이제 시를 보겠습니다. 우리는 ‘망각’을 긍정하기 위해 먼 길 돌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물고기의 기억이 3초라고 알고 있는데 화자는 20초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십보백보에 불과합니다. 어항 속 물고기를
봅니다. 저 답답한 공간에서 어찌 살까 싶습니다. 늘 똑같은 환경이 답답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럴까요? 20초 기억!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항 속 물고기를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물고기를 바라보고 느끼는 저의 답답함일 뿐입니다. 물고기는 망각이라는 능력 덕분에 20초마다
새롭게 새로운 삶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언제나 모험의 길. 망각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작년과 같은 올해. 그래서 환상도
미움도 버리지 못한 채 매번 되풀이 되는 삶에 지친 나. 어항 속 물고기에게서 한 수 배웁니다. 잊어라. 망(忘)!
박윤수
첫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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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모험의 길. 망각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작년과 같은 올해.
그래서 환상도 미움도 버리지 못한 채 매번 되풀이 되는 삶에 지친 나.
어항 속 물고기에게서 한 수 배웁니다. 잊어라. 망(忘)!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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