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컬 쳐 ]
 
사람들을 홀리는
스타벅스 로고의 숨겨진 비밀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는 초록 세이렌
얼마 전 서래마을에서 고속터미널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함께 걷던 친구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야 저게 뭐야?” 경악에 찬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내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진짜 뭐야?”
스타벅스의 상징인 세이렌이 실로 거대한 형상으로 건물 외벽에 붙어있었다. 100미터 밖에서도 선명하게 눈에 띄는 모습으로 양 손(실제로는 꼬리라고 한다)들고 웃고 있는 여자는 여-기-가-바-로-스-타-벅-스-다 라고 만 천하에 알리고 싶은 것 같다.
스타벅스 파미에파크 점 전경. 건물 좌측의 거대한 세이렌을 주목할 것 |
허먼 멜빌의 <모비딕> 속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딴 이 커피체인점이 세이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세이렌은 흔히 알고 있듯 화재경보를 의미하는 ‘사이렌’의 어원이다. 강의 신과 뮤즈 사이에서 태어난 세이렌은 보통 반인반어(半人半漁)의 모습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에 등장해 바다를 건너는 오디세우스를 아름다운 외모와 노래로 홀려 잡아먹으려 다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몸을 배에 묶는 바람에 사냥(?)에 실패한 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신화 때문에 선원들은 사람을 홀려 배를 암초에 부딪히게 하는 세이렌을 두려움의 상대로 여겼다.
'Ulysses and the Sirens', Herbert James Draper, 1909 |
19세기 영국의 화가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는 신화와 고전문학 속 여인들을 주로 그렸으며 이 방면에서 전문가라 불렸다.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가진 세이렌은 워터하우스에게도 매혹적인 소재였을 것이다.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은 워터하우스의 세이렌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표정으로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절망에 빠뜨렸을까.
'The Siren' John William Waterhouse, 1900
'The Sirens' Gustave Moreau, 1876
'Dead Siren' Rene Magritte, 1935
'The Sirens' Gustav Klimt, 1889 |
모로와 부셰의 세이렌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반면, 발상의 전환으로 세이렌을 그려낸 작가도 있다. 마그리트의 세이렌은 '반인반어(半人半漁)'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인어의 이미지를 완전히 역전시켜 사람들의 인식을 파괴하고자 했다. 또한, 클림트의 세이렌은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데에 실패하고 분해하는 표독스러운 표정이다.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으로 상대를 파괴하는 세이렌의 마력은 예술가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인상적인 소재임이 분명하다.
스타벅스는 바로 이 세이렌을 차용해 '뱃사람을 홀리듯 사람들을 홀려서 커피를 마시게 하겠다' 는 포부를 내 보인 것이다. 스타벅스의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카페가 생소한(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그린티 프라푸치노에 샷 하나 추가해주시고 자바 칩 갈지 말고 올려주세요 우유 말고 두유로 해주시구요' 라는 매우 간단한 문장을 말하기 싫어하는 일반적인 남친들)사람들에게도 초록색의 세이렌은 이 장소가 커피전문점임을 인지시키기 때문이다. 세이렌이 노래로 선원들을 홀리는 것과는 반대로 스타벅스는 각종 커스터마이징을 거친 악마의 프라푸치노로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스타벅스
커피빈 |
초기의 스타벅스 로고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세이렌이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두 개의 꼬리를 활짝 벌린 모습이다. 여성의 벌린 다리를 연상시킨다는 여성단체의 항의 탓에 세이렌은 점점 조신해지기 시작했고 나이도 어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스타벅스는 문자를 없애고 이미지만을 내세우는 로고의 간략화를 시도한다. 앞으로는 초록색 점 밖에 남지 않을까라는 조롱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간략한 로고는 오히려 '심플한 것이 가장 좋은 것' 이라는 최근 디자인 트렌드에 편승해 각종 md 상품과 매장 디스플레이를 더욱 세련되어 보이게 만들고 있다. 타 커피체인점의 로고와 비교해보았을 때 커피 빈 앤 티 리프-속칭 콩다방-의 커피 콩 모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로고에 문자가 포함되어 있다. 로고가 가진 ‘상징성’ 이라는 면에서 해당 업체가 가진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한 눈에 보기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스타벅스 로고 |
그런 점에서 스타벅스의 아이콘 선택은 탁월하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어 봤음직한 ‘세이렌’ 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성격과 특징을 통해 회사의 목표를 뚜렷이 드러낸다. 또한, 디자인 측면에서 변형/발전의 과정을 거쳐 한 기업의 ‘로고’ 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냈을까, 굴복 했을까. 참고로 인터넷에서 한참 난리였던 악마의 음료를 소개한다. 그린티 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에 간 자바 칩, 샷을 하나 추가한 후 휘핑크림 위에 또 다시 초코드리즐을 추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자바칩을 얹는다. 칼로리는 900+@.
글. 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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