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마크 퉤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
작가 ; 마크 퉤인(사무엘 랭흔 클레멘스 1835-1910)
초판 발행 ; 1885
허클베린 핀의 모험은 서점에서 아동문학으로 빠질 수 없는 책이지만 사실은 아동도서가 아니다., 어릴 때 읽은 아동 도서는 원본에서 상당히 많이 수정된 내용이다. 톰 소여의 모험(1876)과 함께 미시시피 강 가의 작은 마을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소설에는 다채로운 인물과 미신, 속어, 강의 전승으로 가득 차있다. 지금까지 나온 모험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자주적이고 자족적으로 살아가는 미국인의 원형을 그려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통해서 19세기 미국인들은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모험적이고, 개척정신은 유럽의 귀족주의적 전통문화와는 다르다) 유럽과는 다른 미국의 정체성을 이끌어 낸 작품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미국문학의 전통을 만드는 데 중요한 밑바탕을 제공했다.
이 작품은 독자들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시키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미국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유해 보게 하기 때문에 미국문학 전통을 논의할 때도 빼놓을 수 없다.
강을 따라, 또는 숲 속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헉(허클베리)의 삶은 문명사회가 부여하는 구속의 틀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유를 향유하고자 한다. 미국인들이 시도해보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미국인들의 바람을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인종, 종교문제 등 당대의 사회문제를 천진난만한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제목처럼 소년 헉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며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과부 더글러스가 강요하는 경직된 ‘문명화 교육’에 불만을 품은 헉은 자신처럼 문화적 적응에서 도태된 아버지 팹과 외딴 오두막에서 자연과 더불어 원초적인 삶을 산다.
비록 숨 막히는 문명교육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폭력 역시 견디기가 힘들었던 헉은 근처 잭슨 섬으로 도망치게 된다. 그곳에서 헉은 노처녀 잡슨 에게서 도망친 흑인노예 짐을 만나게 된다. 이후 헉과 짐이 강을 따라 내려가며 벌이는 모험과 그 속에서 형성되는 돈독한 우정은 당시로서는 꿈도 꾸기 힘들었던 ‘흑과 백의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헉은 짐과의 생활을 통해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만끽하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고, 심지어 짐에게서 그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부성애까지 느끼게 된다.
소설 중간엔 어린아이의 순진한 눈으로 당대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비판한다.
뗏목이 부서져 헉은 그랜저포드 집안에 피신하게 되는데 이 가문은 근처 셰퍼드슨가(家)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총기를 난사하는 등 험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두 집안의 싸움을 통해 작가는 우매한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계속된 모험 중에 만난 사기꾼, 자칭 왕과 공작을 통해 인간이 돈 때문에 얼마나 비열할 수 있는지도 그리고 있다.
소설 후반부에는 지금까지 온전히 형성된 헉의 정신적 성장과 짐과의 흑백 갈등을 넘어선 형제애가 갑자기 사라진다. 이들에게서 이전의 당당한 모험가의 모습은 간데없고 어린아이 톰의 황당한 지시에 복종하는 것이다. 인종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도 사그라지면서 작가가 현실의 복잡한 문제에서 도피하는 것처럼 해석돼 ‘도피부’라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톰이 상징하는 백인에 의해 흑인과 약자는 종국에는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당시 미국사회의 현실을 고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더불어 흑백문제에 관해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극소수의 백인이 톰이 상징하는 그 사회의 주류를 지배하는 문명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는, ‘시대의 배타성’을 풍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소설이 전개하는 모험과 사회를 그린 내용은 단순한 모험 소설이 아님을 보여준다. 헉은 성자가 아니다. 소설이 진행하면서 관습적 도덕과 사회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함으로 직접적인 풍자보다는 은근하면서도 위선과 불의 , 사기와 무자비에 대한 폭로를 더 엄격하게 한다.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자기(독자) 나름의 사유를 하면서, 작품을 해석해보는 것도 재미이다.)
첫댓글 <마크 퉤인>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 1835년 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다. 4세 때 가족을 따라 미시시피 강 서쪽 해니벌로 이사했으며, 이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에(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큰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는 남부 출신으로서 천성이 유머적이었고, 불쌍한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동정심이 아주 많았다. 지방판사이자 상점 주인이었던 아버지를 1847년에 여읜 후 여러 신문사에서 식자공으로 일했으며, 미시시피 강을 누비는 증기선의 수로 안내인으로도 일했다. 이때 마크 퉤인이라는 이름을 얻엇다. (강의 깊이를 말하는 용어이다.)
1861년 남북 전쟁이 일어나자 남부군 민병대에 들어갔으나 이 주일 만에 그만두고 네바다 주의 서기관으로 있던 형의 비서 자격으로 네바다로 갔다. 그 후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했고 여러 문인들과 교제했다. 1863년부터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고, 1867년 첫 단편집 『캘러베러스 군의 유명한 뜀뛰는 개구리 및 그 밖의 스케치』를 출간하여 명성을 얻었다. 또한 특파원 자격으로 유럽 성지 여행단에 참가하여 여행기를 신문에 연재하다가, 귀국 후 정리하여 『순진한 사람의 해외 여행기』(1869)를 출판하였다.
1870년에 올리비아 랭던과 결혼하였다. 아내와 장인은 반노예운동가로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우연히 신분이 뒤바뀐 두 소년의 순수한 눈을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인간애를 찬미한 『왕자와 거지』(1882)를 비롯해 『톰 소여의 모험』(1876),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 『미시시피 강의 생활』(188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1890년 대에 들어서자 마크 퉤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건강도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1894년에는 투자 실패로 파산 선언을 하였다. 그는 이런 이유로 결정론적인 염세관과 허무 사상을 가졌다.
말년에는 개인적인 불행과 염세주의적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위대한 유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미국 예일 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등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한 트웨인
은 1910년 코네디티컷 주 레딩에서 사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톰 소여의 모험’이 훨씬 더 유명하다. 허클베리 핀의 주인공 핀이 톰의 절친으로 나오므로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편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어권에서는 ‘톰 소여의 모험’을 문학적으로 연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연구의 대상으로 많이 다룬다.
영화로, 만화로, 에니메이션으로도 많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