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02장 (구 408장) / 갈라디아서 2 : 11 - 21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02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갈라디아서 2장 11절 – 21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아멘!
오늘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알고 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몇몇 유대인 신자들이 외식하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않음으로 바울에게서 책망 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11절로 14절 말씀에 보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않은 베드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건은, 최초로 이방에 세워진 안디옥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안디옥교회는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이방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담임목사로 파송하여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을 돌보도록 하였습니다. 교회가 너무나 급속하게 성장하므로 바나바 혼자 감당할 수 없어 바울을 불러서 공동목회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은혜 가운데 성장을 하고 있을 때에, 베드로가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따뜻한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사도를 만나서 그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는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행복하였을 것입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교회의 기둥과 같은 베드로 사도가 왔기 때문에 베드로를 초대하여 대접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람들이 그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야고보에게서 파송 받은 어떤 사람들이 오기 전에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앉아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친밀한 교제를 하다가 율법주의자들인 그들이 오자마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간 것입니다. 베드로 뿐 아니라 다른 유대인들과 심지어 바나바까지 외식적인 행동에 유혹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율법의 전통을 철저하게 지키던 율법주의자들, 혹은 바리새인들에 의하면 이방인들은 개처럼 취급되어도 좋은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들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징표인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고발과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베드로는 그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위선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외식을 하게 되니까 다른 유대인들과 바나바까지도 외식적인 행동에 유혹을 받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은 다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저들도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베드로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베드로 자신이나 바울이 전하여온 영광스러운 복음의 진리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성령의 지시로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하였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그들에게 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지만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있어서 유대인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오순절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그들에게도 임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니 물로 세례 주는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명하여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한 베드로였으나 유대인의 높은 장벽을 뛰어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외식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한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자 앞에서 게바 - 곧 사도 베드로를 책망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잘못된 행동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었던 바울은 베드로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시켜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의 바른 진리 안에서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베드로를 책망한 것입니다.
14절 봉독 / 베드로가 이러한 바울의 책망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을 까요? 바울의 표정을 바라본 베드로는 처음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은 수치심으로 빨개졌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놀라운 은혜의 복음을 탈취해 가려고 했던 이 율법주의자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 것이 얼마나 큰 죄였는가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비록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들어 쓰시는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함정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복음의 진수가 무엇입니까?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선포한 복음의 진수가 오늘 본문 15절부터 21절에 나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①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②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그러므로 무엇인가 내가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은 모순된 행동입니다. / 17절 말씀 봉독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오직 그 은혜를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삶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17절 말씀 봉독 / 여기에서 “헐었던 것”이라는 말씀은,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으려고 했던 과거의 바리새적인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세우면”이라는 말씀은 율법을 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드린 자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그 율법을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초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은혜로 구원받고 회개한 후에 율법주의에 빠진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범법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맙시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행함은 지푸라기와 같은 것입니다. 썩은 동아줄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붙잡는 순간 영원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닥다리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분을 믿을 때 우리는 그 사닥다리를 무사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있게 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십니까? 베드로 사도나 바나바와 같은 위대한 주의 종들도 외식하고 그 외식에 유혹을 받았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겠습니까? 사람의 심리는 뭔가를 해야 의롭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잘못된 생각을 완전히 깨뜨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십시오. 그러면 살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바로 우리 성도님들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