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1독서: 2열왕 4,8-11.14-16ㄴ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니, 그곳에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2독서: 로마 6,3-4.8-11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태 10,37-42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제목: 비움으로 세우는 은총의 처소
1. 나그네를 위한 작은 방과 성령의 침묵
고대 사막의 교부들은 열왕기 하권에 등장하는 수넴 여인의 일화를 인간 영혼의 심오한 비유로 읽어냈습니다. 여인은 나그네 엘리사가 늘 지낼 수 있도록 벽을 둘러친 작은 옥상 방을 꾸미고 침상과 식탁, 의자와 등잔을 놓아둡니다(2열왕 4,10 참조). 세상의 번잡함과 내면의 동요를 멀리하고 하느님의 사람을 위해 온전한 여백을 마련한 것입니다. 교부들은 이 거룩한 환대를 세상의 애착을 끊어낸 영혼이 성령을 맞이하는 관상적 깨어있음으로 해석했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오직 거룩함 자체를 알아보고 영접한 이 작은 방에서, 자식이 없어 메말랐던 여인의 삶에 생명의 약속이 잉태됩니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부인은 한 아들을 안게 될 것이오."(2열왕 4,16)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이 자신의 소유와 집착을 비워내고 온전히 깨어 맞이하는 그 고요한 처소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2. 제자도의 엄격한 조건과 환대의 신비
예수님께서는 이 영성적 환대의 지평을 제자도의 철저한 이탈과 절대적 사랑으로 확장하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이 말씀은 자연적인 혈연의 의무를 저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적인 무질서한 애착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언입니다. 수도 전통의 위대한 스승 성 베네딕도는 이 복음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보다 아무것도 앞세우지 말라"는 영적 나침반을 세웠습니다. 혈연과 자아로부터 철저히 이탈하여 하느님을 삶의 첫 자리에 두는 것, 그것이 곧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입니다(마태 10,38 참조). 역설적이게도 이 엄격한 자기 비움은 타인을 향한 가장 지극한 환대로 완성됩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마태 10,40) 주님을 위해 자신을 비운 이는 찾아오는 가장 보잘것없는 손님 안에서조차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식별하며, 제자의 이름으로 건네는 시원한 물 한 잔으로도 예언자의 상을 잃지 않게 됩니다(마태 10,42 참조).
3. 세례의 급진적 실천과 하느님을 향한 삶
이 모든 포기와 환대의 영성적 뿌리는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에 닿아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세례가 단순한 도덕적 정화 예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 신비에 실질적으로 잠기는 사건임을 선포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로마 6,4) 물속에 잠기며 죄에 종노릇하던 옛 인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물 위로 오르며 그리스도의 부활 영광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교부 오리게네스는 이 세례의 신비를 영원히 돌아설 수 없는 근본적인 선택으로 보았습니다. 세례는 단 한 번의 예식으로 끝나지 않고, 매일의 삶 속에서 죄의 영역을 거슬러 하느님의 통치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역동적인 투쟁을 요구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 6,11)
4. 담담하고 간곡한 삶의 권유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새 생명을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유혹과 고단함 속에서 흔들리는 종말론적 긴장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은 나의 가장 소중한 애착마저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아픈 결단에서 증명됩니다. 일상의 고통을 수동적으로 견디는 데 머무르지 않고,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비워내는 수덕의 삶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내 안의 무질서한 욕망과 세상적 안락을 매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이웃을 편견 없이 맞아들이는 참된 환대의 처소가 될 수 있습니다. 세례 때 시작된 이 파스카의 신비를 나의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구현해야 하겠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죽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오직 하느님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신실한 제자가 됩시다. 주님의 자비와 부활의 희망을 신뢰하며,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기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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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 요셉수도원
최 빠코미오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