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텃밭으로
구월 둘째 월요일은 추석에 이어진 대체 공휴일이었다. 백수에게 평일이나 공휴일을 구분 지음에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날이 바뀌는 분절성은 알아 두어야 했다. 새벽녘에 전날부터 펼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마저 읽었다. 저자는 다독보다 정독을 권하면서 나에게도 익숙한 몇몇 문인들의 저술에서 음미할 만한 구절을 찾아내 강의 교재로 삼았고 그 책에서도 쉽게 풀어냈다.
이른 아침밥을 먹고 산행이나 산책을 나서려고 몇 군데 떠올려 봤다. 추석 연휴 뒤끝이라 시내이든 교외든 교통은 그리 혼잡하지 않을 듯했다. 대중교통으로 시내를 관통해 안민터널 앞으로 나가 성주사 언저리로 가볼까 싶었다. 아니면 집에서부터 걸어 용추계곡으로 들어 진례산성을 넘어 평지마을 임도를 걸어 신월마을로 나가볼까 하다가 마음이 바뀌어 사파동 텃밭으로 향했다.
평일이라도 차량 통행이 뜸한 이른 아침이었는데 공휴일은 한적하기가 더했다. 메타스퀘어 가로수길에서 도지사 관사 앞 사거리를 지나도 오가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용지동 주민센터와 창원문화원을 거쳐 경남교육청 사잇길에서 도청 광장으로 진출했다. 중앙대로의 도심 거리를 지나는 그즈음 문득 텃밭으로 나가려고 관공서들이 즐비한 아스팔트 길을 걷는 내 정체가 궁금했다.
올봄 우연한 기회에 내가 사파동 창원축구센터 곁 시청 공한지에 한시적인 텃밭을 경작하게 되었다. 삼십여 년 전 도시개발 계획으로 원주민들이 보상받고 떠났던 토지에 인근 주민들이 새로이 모여들어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근래 체육관이 들어서고 다시 무슨 시설물이 들어설 차례인데 그때까지 이런저런 연이 닿은 경작자들이 수십 명이 되는데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평일이라도 출근 시간대 이전의 도청 광장 거리는 한산했는데 날이 밝아오는 추석 연휴 공휴일은 더 한산했다. 도의회 앞에서 창원시립테니스장을 거쳐 토월동 주택지에 법원 청사를 거쳐 창원축구센터로 향했다. 평일 아침 이른 시간이면 인근 주택지와 아파트단지 중년 여성들이 생활체육 프로그램인 에어로빅을 하러 모여들었는데 추석 연휴라 며칠간 운동을 쉬는 날인가 싶었다.
추석 이전에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간 텃밭으로 올라 가을 무와 배추 이랑의 북을 돋워주고 왔다. 그 이튿날은 나에게 경작권을 넘긴 할아버지로부터 도라지를 캐가라는 연락이 와 한 번 더 들려서 도라지를 캐 왔더랬다. 이번에는 올여름에 동부콩을 심고 수확이 끝난 터를 삽으로 파 일구어 놓을 참이다. 얼마간 시일이 지난 후 시금치 씨앗을 심어 내년 봄까지 캐 먹을 생각이다.
텃밭으로 올라 배낭을 벗어놓고 신발을 바꾸어 신었다. 농막의 농기구 가운데 낫을 챙겨 들고 동부콩 넝쿨을 잘라 치웠다. 그러면서 고구마 이랑의 넝쿨도 일부 잘라 두었다. 고구마는 양이 제법 되어 텃밭에 걸음을 할 때마다 조금씩 캐 가야 할 형편이었다. 낫은 농막에 두고 호미로 고구마를 먼저 캤더니 석 달 전 초여름에 순을 심었던 이랑에서 빨간 고구마 덩이뿌리가 나왔다.
고구마를 캐 놓고 동부넝쿨을 치운 밭의 땅을 삽으로 파 뒤집었다. 태풍으로 많은 비가 오고 난 뒤 습기를 머금은 땅이라 삽이 잘 들어가 힘이 그리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땅만 파 일구어 놓고 거름을 내고 이랑을 짓는 일은 다음에 할 셈이다. 동부밭의 흙을 파 일군 뒤 채소밭으로 가서 싹이 터서 파릇하게 자리는 무와 배추의 김을 매주면서 이랑의 북을 한 번 더 돋우어주었다.
무와 배추 이랑 곁에 심은 쪽파는 싹이 터 잘 자랐으나 함께 심었던 아욱이나 상추는 발아율이 시원찮아 후일 한 번 더 심어야 할 듯했다. 아까 캐 놓았던 고구마의 흙을 씻어 봉지에 담아 배낭을 채워 텃밭에서 내려왔다. 집으로 와 추석 전 캐 베란다에 두었던 도라지가 생각나 거실로 옮겨 껍질을 벗겨 잘게 찢어 놓았다. 도라지에선 특유의 쌉쌀한 사포닌 향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22.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