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헌현비는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의 후궁으로 조선인 공녀 출신이야 아버지는 농민 출신이라고 알려져있어 1408년 명나라 황제의 명으로 조선에 온 환관은 귀국을 앞두고
‘우리나라 황제께서 조선에 어여쁜 처녀가 있다면 몇 명을 선택해 데려오라고 하셨는데요 ㅎㅎ' 이에 태종이 즉시 금혼령을 내려 각도에서 13세~25세의 처녀를 선발하여 궁에 데려오도록 했어. 그리고 1차 선발 된 후보들에게 명나라의 복식과 화장을 시켜 환관이 직접 뽑도록 했는데, 이 중 1등급으로 뽑힌 5인 중에서도 일 등으로 뽑힌 여인이 권씨였어 그렇게 명나라로 떠난 권씨 영락제는 권씨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고서는
"너는 무슨 재주가 있느냐?" 라고 물었더니
권씨는 냅다 가지고 있던 옥피리를 꺼내서 불었다고 해 옥피리를 부는 모습을 본 영락제는 너무 기뻐서 날뛰었다고 함 미모도 아름다운데 재주도 뛰어나 같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해 그래서 이때 궁중에서 다른 후궁들조차도 권씨를 따라 옥피리 부는 법을 연마했다고 함 심지어 영락제는 권비와 허구한날 꽁냥거리며 같이 가마를 타고 다녔다고 함 권씨의 미모는 자금성에 소문이 파다하여 권씨의 미모를 본 왕사채라는 인물은 권씨에 대해 시까지 썼다고 하는데
왕사채 ◠‿◠
“옥꽃이 씨앗을 옮겨 깊은 궁궐 안으로 들어와 그 그윽한 향기 짙어 늦은 바람과 운을 맞추니 군왕의 가마와 걸음을 멈추게 하누나. 옥퉁소 소리가 맑게 울리니 밝은 달 속에 퍼지네” 시의 내용을 보면 대충 너무 예쁘고 피리를 잘불고 어쩌구저쩌구 이런 내용인걸 알겠지? 심지어 <태종실록> 의 내용을 보면 영락제는 황후 서씨의 죽음 이후 권씨에게 육궁(내명부)을 맡게 했는데 이는 사실상 황후의 자리를 내주었다고 볼 수 있어
영락제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명 황실의 내명부를 관장했던 권씨는 1410년 북방 정벌을 나선 영락제와 동행하게 되는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던 길에 병을 얻어 산동 임성에서 사망하게 돼 짧은 기간 동안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죽음에 크게 비통해한 영락제는 친히 제사를 지냈다고 해 영락제는 그녀가 떠난 지 15년이 지나고, 자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두었던 그 순간까지도 그녀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져 심지어 공비 이후로 더이상 황후를 두지 않았다고 하는데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겠지?
영락제는 권비의 죽음때문에 너~무 힘들었는지 조선에서 진상품으로 조선의 음식을 바쳤는데 영락제는
"권비가 살아 있을 적에 먹었던 맛과 다른거 같애" 라면서 통 입맛이 재기한 모습을 보여줌 그리고 영락제는 조선의 음식과 술, 식재료를 밥상에 올리라며 징징 거리기까지 해 그러던 1414년 권씨의 죽음이 권씨를 질투한 다른 조선의 공녀 여미인이 권씨와 함께 영락제의 북방 정벌을 동행했던 길에 미리 내관을 통해 구했던 독을 권씨가 마시는 차에 넣었다고 하며 관련자들을 다 죽이라고 하는데 결국 영락제의 분노를 사 관련자들은 처형 당해 근데 알고보니 이 사건은 이후 여씨 성을 가진 명나라 궁인이 조선 출신 여미인에게 반해 사귀자고 구애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자 원한을 품고 무고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어이없는 결말..^^ 영락제는 권비를 너~~무 사랑했기에 권비의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도는 지경에 이른거지 *** 봐주셔서 감사합니당👍🏻
첫댓글 오옹 진심 흥미돋..... 외않만나조는 대체.......
피리 진짜 잘 불었나봐 궁금하다..
와 첨에 말도 안통했을텐데 어케 꽁냥됐을까
명나라궁인 이 개색기는 하는 짓이 아무래도 한국출신같은데....빡치는데 흥미롭다 글 잘봤어 여샤 사랑에 빠진게 신기하다....
권 씨는 왜 2년 만에 죽은 걸까ㅜ 궁남은 뻐큐나 드셈ㅗ
2년 만나고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다니 진자 찐사내 ㅠ .. 외않만나조충 진짜 개 빡친다 ... 하
개존잼ㅁ
여미인 살아있는 사람을 회쳐서 죽이는 능지처참 당해서 죽었다고하지않았나? 여튼 그거보고 중국놈들 잔인한건 유전이라고 생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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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 댓글보고 먹먹해짐..
존잼..
ㄹㅇ로 집착광공 황제남주네..ㅋㅋㅋㅋ
딱 불타오르는 시기에 죽어서 죽고 나서도 눈물염병천병한거지 늙어가는 모습 보고도 저런 궁상을 떨었을까 의문임
어여의 난 당시에 중국인 후궁이 권씨 독살한것도 밝혀져서 더 난리였을걸 이때 간통하다 걸린 후궁도 있었는데 네 기력이 쇠해서 그런걸 왜 내탓하냐고 한 기록도 우리나라 실록에 남아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