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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내가 보는 주몽일대기와 태조왕이전 고씨왕조기록은 용비어천가와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합니다.
선구자 추천 0 조회 672 06.05.12 14:39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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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5.12 19:55

    첫댓글 고구려 초기 기록이 설화라는 증거도 전무한데 조선 태조의 창업 설화인 용비어천가에 간단히 대입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작성자 06.05.12 20:02

    그렇다고 초기기록이 정확하다는 근거도 약합니다. 어짜피 어느시대나 왕실에 대해서 성스럽게 미화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맥락이죠.

  • 06.05.12 20:29

    그것은 학자들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전 고구려 초기 기록을 전부 설화로 파악할 수도 있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태조대왕 때 실질적으로 건국되었다면, 그 이전 대무신왕이나 모본왕 때 중국과 어떻게든 대외적(국가 대 국가)으로 만났던 적이 있던 기록은 무엇으로 봐야 할까요..?

  • 06.05.12 20:55

    이 기록조차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신성한 시절의 이야기에 불과한 걸까요. 분명 고구려에도 추모왕의 건국설화가 있습니다만, 그것과 고구려 초기사는 엄연히 "다른" 문제이지요. 그 초기 임금들이 고씨였던 해씨였든 말입니다. 그리고 해씨->고씨로의 왕실 교체는 계루부 내에서의 교체였을지도 모릅니다.

  • 작성자 06.05.12 21:13

    물론 모본왕이전 고구려 역사 그 자체에 문제삼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고씨왕조가 그때부터 왕위에 있었다거나 주몽이 고구려의 건국시조라는 식의 표현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것입니다.

  • 06.05.12 21:20

    글쎄요. "사실"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아닐런지요. 현대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록을 통해서 가능한한 사실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므로, 그시대를 직접 목격하지 못한 이상 어떠한 것도 단정은 어렵습니다. 고구려 시조 추모왕이 완전한 허상인지, 고씨 가문의 장이었는지, 정말 임금이었는지는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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