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옥급오
애옥급오(愛屋及烏)를 직역하면 ‘어떤 집(屋)을 사랑하면, 그 사랑이 그 집 지붕위에 앉아있는 까마귀(烏)에도 미친다’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어떤 집을 지극히 사랑하면 그 집에 까마귀도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비롯된 성어로서 우리의 속담 중에 “색시가 예쁘면 처갓집 외양간 말뚝 보고 절한다.”와 판박이처럼 닮은꼴이다. 이 성어의 출현 배경과 관련된 고사(故事)를 통해 그 의의와 만남이다.
이 성어는 주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를 멸(滅)한 직후 상나라 권신(權臣)과 귀족의 처리 방법에 대해 강태공(姜太公) 즉 강상(姜尙)에게 문의 했을 때 대답했던 내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된 고사를 전하고 있는 출전(出典)은 ⟪설원(說苑)*⟫ ⟨권5(卷五)⟩의 ⟨귀덕편(貴德篇)⟩이다. 동의어로서 옥오지애(屋烏之愛)가 있고, 유의어로 옥오추애(屋烏推愛), 옥상첨오(屋上瞻烏)가 있다. 출전에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중요한 줄거리를 요약해 정리하며 실체를 살핀다.
중국 역사상 포악무도한 왕의 상징이 걸주(桀紂)*이다. 이 중에 상(商)나라 마지막 주왕(紂王)이 애옥급오라는 성어를 생성하는데 사실상의 주인공이다. 원래 주왕은 폭군인데다가 애첩 달기(妲己)의 치마폭을 헤어나지 못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아 수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런 꼴이 마뜩치 않았던 서부(西部) 제후(諸侯)들의 우두머리인 서백후(西伯侯) 희창(姬昌)이 주문왕(周文王)으로 즉위하기 이전의 일이다. 그는 상주왕(商紂王)의 행동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가 투옥되어 고초를 겪고 풀려나 고향인 기산(岐山)으로 돌아가서 언젠가는 상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별렀다. 그 준비 일환이었을 게다. 주문왕 희창은 강태공으로 널리 알려진 강상을 군사(軍師)로 모시는 한편 병사들을 조련하며 전쟁 준비를 차분하게 하면서 주변의 제후국들도 암암리에 복속(服屬)시키고 세력을 넓혀나갔다. 게다가 상나라와 전쟁을 위해 수도까지 천도(遷都) 하고 나서 어느 날 갑자기 타계했다.
뜻하지 않게 주문왕 희창이 별세하고 나서 그의 아들 희발(姬犮)이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바로 주무왕(周武王)이다. 갓 즉위하여 야심만만한 주무왕은 선왕(先王)의 유지(遺旨)를 받들어 대업을 이루겠다면서 기어이 상나라를 정벌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강태공이 조언하는 책략을 바탕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출정을 감행했다. 폭군 밑에서 시달리던 군사는 이미 전의를 상실해 제대로 된 군사가 아니라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다. 주무왕 군사들과 제대로 대적도 못하고 투항하거나 도망을 했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곧바로 수도 은허(殷墟)까지 일거에 점령했다. 그렇게 막다른 벼랑 끝으로 몰리자 상주왕은 자결했으며 자연스럽게 상나라는 멸망했다.
상나라가 멸망한 후에 주무왕의 가장 큰 고민은 ‘상나라 권신(權臣)과 귀족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이었다. 강태공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 ...... / 신(臣)이 듣기로는 사람을 사랑한다면(臣聞愛其人者 : 신문애기인자) / 그 집의 지붕 위(屋上)에 있는 까마귀(烏)까지도 사랑하며(兼愛及屋上之烏 : 겸애급옥상지오) / ....... /
라고 하며, 만일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집의 종들까지 미워한다고 얘기 합니다. 그러하니 상나라에 충성하던 골수분자에 해당하는 그들을 모조리 처단함이 후환을 없애는 길이지 싶다고 아뢰었다. 위의 내용에서 애옥급오라는 성어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강태공의 말에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대상자가 너무 많아서 결코 내키지 않고 뭔가 찜찜해서 다른 신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 똑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들을 모두 처단한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 같사오니 은혜를 베푼다 생각하신다면) 마땅히 그들을 모두 자신의 둥지(집)나 터전(일터)으로 돌려보내시는 방법을 취하시는 게 민심을 안정시키는 최선의 길이라고 사료됩니다.”
결국 주무왕은 뒤에 조언해준 신하의 뜻을 받아들여 상나라 모든 권신과 귀족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풀어주니 민심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안정되었다.
앞에서 이미 살폈듯이 애옥급오는 우리 속담의 ‘색시가 예쁘면 처갓집 외양간 말뚝 보고 절한다.’와 서로 빼닮아 닮은꼴로 사촌쯤 되지 싶다. 결국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와 연관된 모두가 그렇게 여겨짐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이다. 이런 무조건적인 감정이 결코 녹록치 않은 문제를 야기하거나 잉태함을 도외시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 모든 걸 그렇게 대응한다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거나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정치집단이나 특정 정치인이라도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은 엄격히 구분해서 가름해야지 무조건 모두를 한 데 묶어 두둔하고 감싸는 분위기는 분명 개선되어야 할 암적(癌的)인 과제이다. 이런 정서는 건강한 사회를 해치고 좀 먹는 독이 될 수밖에 없기에 이르는 독백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애옥급오라고 하더라도 흑묘백묘(黑猫白猫) 구별도 안하고 두루뭉술하게 감싸거나 두둔하는 병폐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어렵고 어려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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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說苑) : 중국 한(漢)나라 시절 유향(劉向)이 편찬한 교훈적인 설화집(說話集)이다. 군도(君道), 신술(臣術), 건본(建本), 입절(立節), 귀덕(貴德), 부은(復恩) 따위의 20편으로 고대의 제후ㆍ선현들의 행적이나 일화를 수록하였다.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다. 한편 ⟨권5(卷五)⟩에서 ⟨귀덕(貴德)⟩은 통치자가 갖춰야 할 정치의 덕을 담고 있다.
* 걸주(桀紂) : 중국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이는 천하의 폭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작가, 2024년 가을호(제21호), 2024년 9월 1일
(2024년 7월 9일 화요일)
첫댓글 교수님 감사합니다
주옥같은 글에서 하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