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내 마음에 보물 하나 모셔두고 살자,
신정일(문화재위원, 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역사와 문화유산을 주제로 강연하다가 청중에게 물을 때가 있다. ”여러분 중에 우리나라 국보 1호에서 10호까지 제대로 알고 있는 분 있으면 제가 1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들지 않는다. ”국보 1호가 무엇이지요.“ ”숭례문“ ”남대문“ ”2호는요?“ 그때부터 말이 막힌다.
”탑골공원에 있는 데요.“ ”3호는요? 북한산에 있었는데.”“ ”4호는요? 여주에 있는데,“ ”5호는 요“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데요.”
“ 그때서야 스마트폰을 꺼내어 여기저기서 “진흥왕 순수비.” 고달 사지 승탑“이라고 얘기한다.
수능시험에 안 나오고. 취직시험에 안 나오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으니 어느 누가 국보를 1호에서 10호까지 외울 생각을 하겠는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천안지역을 답사할 때 암행어사로 온 나라에 명당이라고 널리 알려진 은석산의 박문수를 답사하고. 마일령으로 향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여러 장에 걸쳐 실려 있는 마일령은 추풍령을 넘어온 경상도와 충청도 길손들이나 보부상들이 청주와 목천 거쳐 서울로 가기 위해 넘는 성거산 자락의 큰 고개였다.
그러나 25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일령에서 만일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그 고개를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역사가 서린 그 고개를 넘으며 버스 기사에게 다음 행선지가 홍경사라고 알려주었고, 버스를 타고서 물었다. ”여기서 가깝지요,?“
”가깝긴 한데, 선생님 그 곳이 갈비집으로 변했는데요?” “예? 무슨 갈비집. 거긴 국보 제7호인 홍경사비가 있는 곳인데, 그럴리가요.” 하면서 검색하자 봉선홍경사갈기비라고 쓰여져 있기 때문에 문화재를 잘 모르는 기사가 갈비집으로 착각을 한 것이었다.
지금은 천안과 평택평야의 중심지에 있던 홍경사弘慶寺비 고려 현종 12년(1021년)에 창건된 절이다. 동국여지승람 직산현 역원조에 의하면, 교통의 요지였지만, 갈대가 무성하여 도적이 출몰하므로, 고려 현종이 승려 형극에게 명하여 절을 세우게 하였다. 1016년부터 1021년까지 2백여 칸을 세우고, 봉선홍경사로 이름을 붙였다. 절 서쪽에 객관 80칸을 세운 뒤 한림학사 최충이 짓고, 국자승 백현례가 쓴 비석을 세웠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절도 원 터도 사라진 자리에 비석만 남아서, 홍경사 터라고 불리고 있으니,
조선시대의 옛길인 삼남대로였다가 지금은 국도 1번이 지나는 길에 세워진 이 비가 나라 안에 귀중한 국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대에게 아주 간단한 법칙을 보여주겠네. 눈앞에 엄청난 보물이 놓여 있어도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네. 왜 그런 줄 아는가? 사람들이 보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실린 글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살고 있는 바로 그 옆에 대단한 보물이 있는 것을 감쪽같이 모르는 채 살고 있다. 왜 그럴까?
“미美라고 하는 보물을 끌어오려고 하는 자는 현자賢者의 마술이라고 하는 최고의 기술이 필요하니까요‘“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한 말처럼 최고의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 몇 개 더 외우고, 수학 공식을 더 잘 풀어야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헌법처럼 정해진 나라에서 “국보 1호에서 10호까지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딱이 대답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구성원들이 오천 년 역사 속에 갈고닦은 솜씨와 창의성으로 만들어낸 문화재 중 국보 열 개도 알지 못한다면 그 문화재들이 말은 못해도 얼마나 서운해 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의 구성원들이 민족의 자랑스런 유산인 문화유산을 사랑하게 될까? 간단하다. <내 마음에 보물 갖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
그렇다면 국보나 보물은 무엇을 말함인가?
“국보‘는 ‘나라의 보물’이라는 뜻으로, 문화재 가운데 특히 가치가 큰 문화재를 가리킨다. 문화재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하고,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된다.” 고 <백과사전>에 실려 있고, 보물은 <국어사전>에 “썩 드물고 귀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물건.” “예로부터 대대로 물려 오는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고 실려 있다.
인간 세상에 있는 보물을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세 가지로 분류했다. ”외적인 보물과 마음의 보물, 그리고 육체의 보물“ 바로 이 세 가지가 이 세상에 보물이라고 할 때 지상의 보물 하나를 ‘내 사랑’이라고 여기고 사랑하는 운동,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오래전에 국가에서 일사일산一社一山운동을 벌이도록 독려했던 때가 있었다 한 회사會社가 한 산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형식적인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회 운동이었다. 그 일사일산 운동처럼 문화재 사랑과 국토를 사랑하는 운동을 펼쳐야 할 때다. <내 마음에 보물 하나 갖기 운동>. 그 보물이 국보 일수도. 보물일 수도. 아름다운 옛집이나 정자, 혹은 천연기념일 수도 있다.
예를 든다면,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나, 경주의 다보탑과 속가탑, 안동의 만휴정, 강릉의 경포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나 전주 전동성당,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여주의 영릉, 안동의 충효당. 대전 동춘당, 성종과 손순효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울 경회루나 영남루나, 촉석루, 광한루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이고, 누구나 그중 하나를 내 마음에 보물로 지정하면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 여러 사람들의 보물이 되어 일종의 팬덤현상이 된다면 그 장소에서 작은 축제를 벌여도 좋으리라.
우리나라의 보물, 내 마음속에 보물이 된 그 기적 같은 보물을 세계 속에 널리 알리기 위해, 한류스타인 방탄소년단이나, 전지현, 아이유, 이효리, 배용준, 그리고 아이돌 스타들과 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했던 송창식(토함산이나 선운사)와 양희은(한계령) 이미자(흑산도 아가씨) 등이나 봉준호, 송강호, 김희애, 등의 인기인, 그리고 국내외에 알려진 문화예술인들에게 하나씩 갖도록 하자.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국보나 보물, 명승, 등을 <내 마음의 보물>로 지정하여 사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세계 속으로 번져나가 유네스코도 이 운동에 동참할 것이다.
"비록 나는 가난하지만 당신은 나의 보물입니다. 비록 나의 마음은 어둡지만 당신은 나의 빛입니다"
우수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에 실린 글과 같이 마음이 어둡고, 쓸쓸할 때도 그 보물만 떠올리면 가슴이 훈훈해지고, 생기가 돌며 문득 달려가서 보고 싶은 ‘내 마음의 보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21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네 눈이 미치는 그곳에 네 보물도 있느니라.” 다시 풀어서 말하면.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내 마음속에 들여놓거나 모셔 놓고 사랑하면서 그리워 한다먼. 그것이 바로 문화재 사랑이고 국토 사랑이 아니겠는가?
문득 내 마음속에 그 보물이 그리우면 버선발로 달려가서 얼싸안거나 지긋이 바라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