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 공기업 전수 조사했더니… 야권 인사로 분류되는 임원 33명
일러스트=양인성
지난 16일 열린 제8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대한석탄공사는 기관장 해임·경고 대상 공공기관 17곳에 포함됐다. 2020년 총선에서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원경환 사장은 2021년 11월 석탄공사 사장에 취임해 아직 임기가 1년 반가량 남았다. 석탄공사 김경수 상임감사는 강릉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석탄공사의 내부 서열 1, 2위가 모두 지금 야당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물이다.
김영문 전 관세청장은 지난 총선에서 울산 울주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듬해 4월 에너지 공기업 한국동서발전 사장이 됐고, 7월부터는 에너지경제연구원·석유공사·에너지공단 등이 회원으로 있는 울산에너지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공기업 4사 사장은 내년까지 임기
본지가 22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시장형 공기업 13곳, 준시장형 공기업 19곳 등 공기업 32곳을 전수 조사해 봤더니 내년 11월이 돼야 지난 정부가 알박기한 사장·감사가 모두 물러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당에서 당직을 맡거나 선거에서 (예비)후보로 활동한 경우, 청와대나 국회 등에서 정무직으로 근무한 경력이 알리오와 인물 데이터베이스 등을 통해 확인되는 경우에 한정한 결과다. 시민 단체 경력자 등을 포함하면 임기 말 알 박기 인사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공기관장은 기관의 지속성과 정치로부터 독립 등을 위해 법으로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임기 말 정치적 배경으로 알박기 선임된 인사들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자리는 지키는 데 방패막이가 되기도 한다.
원경환 석탄공사 사장에 이어 임기가 가장 많이 남은 공기업 사장은 이백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장으로 내년 10월 6일까지이고, 이삼걸 강원랜드 사장, 김영문 동서발전 사장(2024년 4월), 명희진 한국남동발전 감사, 김명수 한국남부발전 감사(2024년 2월)도 임기가 반년 이상 남았다.
이번 조사에서 기관장이나 감사가 야권 인사로 분류되는 공기업은 기관장 4곳, 감사 11곳으로 중복을 감안하면 모두 12곳에 달했다. 전체 공기업 중 3분의 1 이상에서 이전 정부가 임명한 인사들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특히 석탄공사를 비롯해 강원랜드와 동서발전 3곳은 기관장과 감사가 모두 전 정부 인사로 분류됐다. 강원랜드는 2018년 민주당 소속으로 안동시장 선거에 나선 뒤 2020년 총선에서 경북 안동·예천에서 후보로 나섰던 이삼걸 사장과 지난 정부에서 총리 공보실장을 지냈던 김영수 상임감사가 근무 중이다. 동서발전도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 있었던 김상철 상임감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기업 등 주요 공공기관은 임기 관련 제도 개선 필요
상임이사, 비상임이사까지 넓히면 32개 공기업 가운데 지난 정부 인사가 자리를 지키는 곳은 20사, 33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비상임이사로 있으면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른바 ‘늘공(직업 공무원)’ 출신들도 지난 정부 정책 추진 과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받게 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상황에서 선거에 출마할 정도로 정치색이 짙은 인물들이 현 정부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건 해당 조직은 물론 정부 정책 추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새 정부와 엇박자를 내는 일이 없도록 정권과 공기업 기관장 임기를 맞추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공기업에서 사장이나 감사는 정부의 국정 철학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자리”라며 “지난 정부와 의리를 지킨다는 측면에서 봐도 전 정부 출신은 새 정부에서는 스스로 물러나고 길을 열어주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