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의 최측근인 정진상이 구속되면서 민주당이 급속도로 어수선해지고 있다. 정진상은 이재명의 20년 지기라는 점에서 그의 구속이 당에 미치는 파장은 김용 때와는 또 다르다는 평가다.
두 사람은 검찰의 표현처럼 오랜 정치적 공동체다. 단순히 오래 일했고, 정진상이 항상 지근거리에서 이재명을 도왔다는 것만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이재명 변호사 사무실 ‘새길’과 정진상
이재명과 정진상은 2000년대 초반 시민운동을 하다 처음 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재명이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을 당시 정진상은 사무장으로 일했다.
이재명의 변호사 사무실 이름은 ‘새길’이었는데, ‘새길’은 정진상이 과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노래패 ‘한반도’에서 활발히 활동할 때 발표한 앨범(한반도 3집)에 수록한 노래 이름과 똑같았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당시 성남시 시민사회에서는 변호사 사무실 이름을 이 노래 제목에서 따왔거나 사무실 이름을 차용하여 노래를 지을 정도로 둘의 친분이 두터웠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당시 두 사람을 잘 알고 지내던 성남시 한 관계자는 “처음엔 사무실로 들어오는 사건이 없어서 직원들 월급도 못 줬는데 (정진상이랑은) 계속 (일)하더라”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측에선 보도자료를 통해 “정진상이 사무장으로 일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재명이 정치권에 뛰어든 후 두 사람은 그야말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특히 2010·2014년 성남시장 선거, 2017·2022년 대선,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2022년 재보궐선거 등 이재명이 굵직한 정치 행보를 보일 때마다 정진상은 지근거리에서 정책실장, 비서관 등 공직 자리 취임과 퇴임, 재임용을 반복했다.
검찰은 이런 오랜 관계를 두고 정 실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두 사람의 관계를 ‘정치적 공동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표현이 일종의 ‘레토릭’이라면, 과거 성남시의회 회의록 등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시의원들의 성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시청 6급 직원에 불과했던 정진상이 이재명을 등에 업고 사실상 전횡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질의를 시청 관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했다.
“6급 정진상이 의전팀장 밑으로 조직표에는 들어가 있는데 직위는 정책실장으로 표기하고 있단 말이에요. 성남시에 이런 직책이 어디 있고 이렇게 쓰는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별정직 6급 직원이 정책실장이라는 직위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 성남시 조직에 정책실장이라는 조직이 있어요? 없는데 쓰는 것을 그대로 묵인하고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2010년 9월 행정기획위원회 회의 당시 최윤길 성남시의원 발언)
“위원이 요구하고 당연히 비서실도 예산이 수반되기 때문에 당연히 올 한 해 비서실의 업무 방향이라든지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 오시라고 해보세요. 나는 정진상이라는 사람을 이름은 들어봤는데 얼굴은 몰라. 가능한지 확인해 보세요.”(2012년 2월 행정기획위원회 회의 당시 박권종 성남시의원 발언)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경기도청 산하 공공기관 노조에서 작성해 논란이 됐던 이재명 낙하산 인사 명단에서도 정진상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김용과 함께 가장 상단에 우선적으로 기입되기도 했다.
이재명의 여타 측근들과 비교했을 때 정진상의 역할이나 관계가 남달랐다는 평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현재 정진상은 2013년 2월〜2020년 10월 이른바 ‘대장동 일당’에게서 각종 편의 제공 대가로 6차례에 걸쳐 총 1억4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하고 대장동 개발 이익을 나눠 갖기로 약속한 혐의, 위례신도시 사업 관련 성남시 내부 기밀을 흘려 일당이 개발 사업자로 선정된 후 거액을 챙기게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11월 9일 정진상 집 및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는데, 해당 압수수색 영장엔 ‘이재명’이라는 단어가 총 102회 등장했다. 정 진상측은 지난 11월 21일 법원에 구속 적부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그의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는 이야기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11월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재명이 측근들이 힘을 행사하는 걸 알았는지 조사해야 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당연히 필요하다”며 “피의자 정진상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향후 누구를 수사할지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반발 “측근 의혹 정말 몰랐겠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 안팎에선 이재명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이재명 리스크’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처음 등장한 바 있다. 각종 사법적 의혹에 휘말린 이재명 당시 후보가 당 대선 주자로 나설 경우 대선이 쉽지 않을 거라며 이낙연 당시 후보 측이 앞세웠다.
이재명은 결국 대선에서 졌고,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나서자 이재명 리스크는 한층 더 불거지는 형국이다. 특히 비명계에선 이재명이 사정기관의 표적이 될 경우 당이 와해될 수 있다는 내용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재명의 혐의 관련성을 떠나 일단 측근인 정진상 문제는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겠나. 그런데 요직에 앉히면서 당 전체가 검찰 수사 방어 논리를 짜는 데 매몰되며 대장동게이트에 빨려들어가고 있다”라며 “이재명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진상을 비호하는 당의 모습이 이상민 장관을 감싸는 국민의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박용진 의원도 지난 11월 23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측근 구속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 뭔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해영 전 의원 역시 11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손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며 “눈앞에 손(損)으로 보이는 상황도 대처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익(益)으로 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응천 의원도 11월 21일 “(이재명이) 최소한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다’는 유감 정도는 표시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