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결합의 축 다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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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합의 축은 단락과 단락,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의 연결처럼 옆으로 연결하는 축을 말합니다.
따라서 시에서는 연과 연, 행과 행, 시어와 시어의 관계가 결합의 축에 해당합니다.
이 축을 다듬을 때는 단락과 단락의 관계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나, 시어의 문제는 이미 앞에서 살펴봤고, 단락과 문장의 관계는 행과 연 나누기에서도 살펴볼 예정이니,
단락과 문장에 관한 일반적인 원칙만 살펴보기로 합시다.
문장의 층위를 다듬을 때는 첫째로 너무 지시적(指示的)이고 외연적(外延的)인 문장이 아닌가 살펴보고,
되도록이면 함축적인 문장으로 바꿔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시적이란 화자가 객관적인 위치에서 어휘를 사전적 의미(lexical meaning)로 사용하면서
이건 뭐고, 저건 어떻다고 설명하는 어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화자가 대상을 지배하는 어법입니다.
반대로 함축적은 화자가 대상속에 투입되고, 사전적 의미 이외에도 문맥적 의미(contextual meaning)를
만들어내는 어법을 말합니다.
따라서 대상 또는 문맥 중심의 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 꽃이 활짝 피었다.
ⓑ 꽃이 활짝 웃고 있다.
이들은 모두 ‘꽃이 활짝 피었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는 화자가 객관적 위치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는 대상(꽃)에 화자의 감정을 이입하고, 동원한 어휘 역시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
문맥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꽃이 웃는다>는 것은 화자가 웃는 것처럼 받아들인 결과이며,
대상과 화자가 하나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화자의 욕망과 정서, 그가 처한 상황에 따른 문장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 때 가급적 문법(文法)을 지키되, 문법 안에서 자기 느낌을 다 표현할 수 없을 때는
앞에서 살펴본 미당의 '화사' 처럼 부분적으로 이탈해도 무방합니다.
셋째로, 우리말 의 어법에 맞는 표현인가 검토해 봐야 합니다.
이때 유의할 것은, 인구어(印歐語)는 <화자 중심(話者中心)>이며,
우리말은 <청자 중심(聽者中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말에서는 주어를 강조할 경우가 아니면 잠재시키고, 서술어는 드러내는 게 원칙입니다.
반복적으로 주어를 사용하면 주관적 사고에 사로잡혔거나 어린이 글처럼 보이며,
엉뚱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험은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강의는 빠지지 않고 다 받았다. 그런데 학점이 나빴다.
ⓑ 강의는 빠지지 않고 다 받았다. 그런데 나는 학점이 나빴다.
ⓐ에서는 지시하는 내용 이외 다른 뉘앙스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는 ‘다른 사람들은 강의를 빠졌지만 나는 다 받았다. 그런데 강의를 잘 받지 않는 사람들보다
학점이 나쁘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어는 서술 대상이 바뀌었을 때만 밝히고, 나머지는 생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할까요?
나는 집에서 나왔다. 나는 버스 속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반갑게 인사했다. 나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위 예문에는 3개의 ‘나’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2개는 생략하고, 마지막 것만 남겨야 합니다.
앞의 것은 ‘나’라고 밝히지 않아도 행위의 주체가 나임을 알 수 있지만, 마지막 것을 생략하면
그 앞에 '그'가 나와 누가 차창 밖을 내다봤는지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지 않은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말에서 서술어는 그 문장의 맨 마지막에 오고, 인구어는 주어 다음에 옵니다.
그런데, 화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성분은 서술어입니다.
그로 인해 서술어가 맨 뒤에 오는 우리말은 끝까지 읽지 않으면 의미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장이 길 때는 서술자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를 증가시키는 꼴이 되어
이해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하기는 어느 언어든 긴 문장으로 조직하면 이해의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입니다.
<A+B+C+D+E+F…>의 단어로 구성된 문장에서 현재 <C>를 읽는다고 할 때, <A→B→C>처럼
직선적으로 읽는 게 아나라, <A↔C>, <B↔C>, <(A․B)↔C>의 상호관계를 따져가며 읽고,
제대로 의미가 파악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읽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 단어로 이뤄진 문장은 고려할 사항이 늘어나고, 독서의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단락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문장이나 단락의 길이를 무조건 짧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화자의 성과 정서 상태와 상황에 맞춰 조절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 때 유의할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화자와 구문(構文)
⒜남성화자 : 자유로운 구문
⒝ 여성화자 : 정치법(正置法)에 가까운 구문
② 화제와 구문
⒜우울하거나 장중한 화제 : 긴 문장
⒝경쾌한 화제 : 짧은 문장
⒞다급한 상황: 서술어로 이뤄진 일어문(one word sentece)이나 서술어를 앞으로 내세우는 도치문(倒置文)
⒟혼란스러울 때 : 불규칙한 어순의 문장
다섯째로 서술어의 시제(時制)도 가다듬어야 합니다.
처음 시를 쓰는 사람들은 과거의 일은 모두 과거시제(過去時制)로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는 과거에 보고 느낀 것을 <현재의 심정>으로 이야기하는 장르로서,
과거시제로 쓰면 산문의 성격이 강화됩니다.
그러므로 회상(回想) 가운데에서도 대과거(大過去)의 일만 과거시제로 표현하고,
나머지는 <-한다>와 같은 현재 진행형이나 <있다>와 같은 존재태(存在態)로 표현해줘야 합니다.
여섯째로, 시어의 의미 폭이나 뉘앙스가 대조와 조화를 이루도록 가다듬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작품 다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알맞은 시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어도 대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밋밋한 작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 작품을 살펴보면서 함께 생각해봅시다.
사랑은
어둡고도
고요한 늪.
아니, 그 늪 가
늘어진 풀이파리 끝
뾱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 <뾱>. 가볍고도 무거운 반향(反響). 둥글게 둥글게 번지는 파문. 원유(原油)처럼 끈끈한 윤기. 그걸 뚫고 퍼덕이며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비늘. 차이콥프스키의 <비창(悲愴)>을 닮은 반짝임. 그 다음엔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붉어지는 꽃이파리의 느린 낙하 동작. 다시 <뾱>,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
― 필자, 「시(詩) 또는 시가 아닌 사랑에 대한 단장(斷章)‧8」
저는 이 작품을 쓸 때, 사랑에 대한 아주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모두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아름답다든지, 우울하다는 어느 한쪽의 의미보다 이를 포함한 모든 느낌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 망막하대요. 그래서 아래와 같은 제 느낌을 정리해봤지요.
① 사랑은 때로는 고요하고 어두우면서 어느 순간 반짝인다.
② 사랑은 끈적거리면서도 슬프고, 어느 순간에는 강렬하게 타오르고, 다시 고요로 빠져든다.
③ 사랑에 대한 느낌은 문득문득 끊기면서도 또한 지속적이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텔레비전에서 화장품 광고를 보았습니다.
늘어진 풀이파리에서 ‘뾱’ 하고 물방울 떨어지는 광고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중동전(中東戰) 뉴스가 나오고, 송유관이 터져 걸프만에 유막(油膜)이 둥둥 떠다니는 걸
보여주더군요.
문득 두 이미지를 합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대요.
하지만 그대로 쓰면, 텔레비전 광고나 중동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될 것 같아서
원래의 이미지들을 파괴해야 하겠대요.
그래서 각 시어들의 배경이 지닌 에너지들을 이용하기로 했지요.
우선 ‘사랑은/어둡고도/고요한 늪’이라는 구절부터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들은 모두 자연스레 탄생된 어휘들입니다.
그리고 지시하는 영역은 <관념/관념/물질> 또는 <추상/추상/구상>입니다.
따라서 <A-A-B>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아니, 그 늪 가/늘어진 풀이파리 끝/뾱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역시 자연스레 탄생된 시어들입니다.
그러나 사물성(事物性)을 드러내는 차이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뾱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가장 구체적이므로 <A-A-B>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격렬한 사랑이 아니라 고요하고 침잠된, 그러면서도 간혹 ‘뾱’하는 물방울 소리처럼
솟구처 오르는 사랑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 연의 감각이 너무 하향적(下向的)이대요.
‘뾱’에 재빠르게(-) 튀어 오르는 상승 감각(↑)이 숨어 있지만, 앞 구절의 ‘늘어진’과 그 다음 ‘떨어지는’의
완만(+)하고도 하강적(↓)인 감각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둘째 연은 1연과 달리 산문시 형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뾱'이라는 음향을 ‘가볍고도 무거운’이라는 상반된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또 눈으로 볼 수 없는 소리의 파문을 ‘원유’처럼 검고 끈끈한 빛깔로 그리고, 앞부분이 인공적이라서
물고기 비늘에 대한 묘사를 자연적인 것으로 해봤습니다.
그리고 ‘반향’․‘파문’․‘원유’․‘차이콥프스키의 비창’ 같은 현대적이면서 인공적인 시어 다음에
화심(花心)이 붉은 '꽃이파리의 낙화 동작'이라는 자연적이고도 보편적인 시어들을 배치하여
대결을 벌이도록 만들었습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뭘 의미하는 거냐고요?
글쎄요. 아주 여러 가지 의미로 썼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모든 시어들을 너무 의도적으로 고른 것 같아서 그냥 소음(騷音) 역할하면서,
섹스 뒤에 화장지로 닦는 소리를 연상시키려고 했지요.
너무 야한가요? 슬픈 것들만 모아 놓으면 그 슬픔이 반감되기에 야한 것을 추가하여 더욱 슬프게 만들려고요.
이렇게 조직하니까 모든 어휘들이 전경과 배경으로 나뉘어 모이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대요.
그러니까, ‘둥글게 둥글게 번지는 파문’은 좌우 확장감(←․→)을, ‘원유(原油)처럼 끈끈한 윤기’는
수평 상태를 유지하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 누르는 압박감(↓)을, ‘그걸 뚫고 퍼덕이며 튀어 오르는 물고기’는
강력한 상승감(↑)을, ‘차이콥프스키의 「비창(悲愴)」을 닮은 듯 반짝이면서 사라지는 ‘물고기의 비늘’은
다시 하강감(↓)을 환기시키대요.
그리고 그 다음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수평적인 확장감(←․→)을,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붉어지는
꽃이파리’는 오므라드는 축소감(→․←)을, ‘느린 낙하 동작’은 부드럽고 느린(+) 하강감(↓)을 환기시키대요.
그리하여 정제되고 가라앉는 느낌을 주던 1연과 대조를 이루면서 새로운 풍경으로 발전하는 것 같대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쓴 시라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하지만, 본문을 다듬을 때는 의미만 다듬어서는 안 됩니다.
어휘들의 탄생 배경, 질감과 뉘앙스, 지시하는 의미의 범주를 비롯하여, 그들이 숨기고 있는
에너지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시를 다듬으라고 하니까 마땅히 들어가야 할 토씨까지 생략하더군요.
그러나, 군더더기 시상과 어휘를 잘라내야지 조사까지 잘라내 도막 난 말처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게 다듬고 잘라낸 자리 역시 군더더기처럼 거치적거리기 때문입니다.
자아, 다듬읍시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갑시다.
【 우리가 할 일 】
○ 결합의 축을 다듬을 때 유의할 점을 시작 노트에 정리해 두시오. ○ 자기가 쓴 작품의 결합의 축을 다듬어 보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