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와 조사불교는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선택은 자유다.
The west추천 1조회 23524.07.18 00:00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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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몸으로 하는 行인 실천입니다. 우리는 견성성불 확철대오라는 선종의 종파에 속해 있습니다.
선종은 매양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극락세계는 다 마음 속에 있다고요. 서울이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서울은 저 멀리 한국의 중심도시로 엄연히 있습니다. 극락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도 현실적으로 우주의 중심에 엄연히 있습니다.
죽을 때 열 번만 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 간다고 합니다. 죽을 때 지 정신도 못 차리는데 무슨 정신으로 아미타불을 10번을 부른답디까. 다 헛소리입니다.
죽을 때는 자기 눈꺼풀도 닫을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 눈을 뜨고 죽습니다. 그렇게 눈 맞추고 싶었던 사람들도 눈 뜨고 죽으면 무섭습니다. 그래서 빨리 눈을 감겨버립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최후의 예의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런 소리를 믿으면 안 됩니다. 이 극락정토 신행은 타력신앙입니다. 타력신앙은 소승불교나 조사불교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군의론에 천무일실千無一失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천명이면 천명 다 극락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타력신앙인 아미타불의 본원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집이 세고 어른 말을 듣지않는 자들은 기어이 대승불교 속에서도 자력신행으로 깨달음을 얻으려 합니다. 이 더운 날 멀쩡한 고속 엘리베이터 놔두고 수 만개의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진짜 손발이 무지하게 고생 고생합니다.
지금의 한국불교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교론에 십진구퇴 十進九退라고 했어요. 즉 열이면 아홉이 중도에서 다 떨어져 나간다는 말입니다.
바다는 하나입니다. 그 하나를 법신부처의 세계로 비교합니다. 여기서 바다로 나갈 때 자력신행은 걸어서 걸어서 개고생 개고생하고 동해로 나갑니다.
동해로 나가면 거기에 노사나불이 계십니다. 그래서 조사불교에서 삼신불을 부를 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승불교로서 타력신행을 합니다. 바로 서해바다로 직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라고 삼신불을 불러야 합니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아미타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이라고 해야 합니다.
바다는 하나인데 나아가는 방향이 다릅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당신들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 원효센터 공파스님.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 백중기도 입재법문 중 한 대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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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지혜
대승불교와 조사불교는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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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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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활속불교에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거룩하신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
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
원공법계 제 중생
자타일시 성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