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모처럼 일찍 들어가 서울방송의 일일연속극 아마도, 두 아내,라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류의 드라마에 별 감흥 못느끼는 축이지만, PPL 차량으로 A4가 등장하는 바람에 본능적으로 눈이 가더군요. 그래서 보게 된 장면이, 아마도 남편(김호진)에게 버림받은, 전원일기에 나오던 복길이, 김지영이 한강변-혹시 늘씬한 여자분들이 많이 출몰한다는 잠원지구?- 벤치에서, 호출된 남자 친구(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은?)에게 발견됩니다. 그 젊은 남자친구 물론 A4를 타고 등장합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어깨를 흔들던, 예의 남자친구, 흠칫 놀랍니다. 김지영이, 온 몸을 떨고 있었던 겁니다. 오뉴월 개도 안걸린다는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복길이는 왜 떨고 있었을까.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열대우림 기우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강바람이 차다고 해도 그렇게 떨 정도는 아닌데...하지만 곧 그 장면은 먼 기억 속의 한 순간을 호출합니다.
까까머리 군인 하나가 서울의 한 자취집에서 여자친구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좀처럼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애꿎은 답뱃갑만 점점 가난해져 갑니다. 해가 지고 나서도 자취집 대문은 열릴 줄 모릅니다. 그래도 그 군인은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킵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자취집 주인이 자기집에 들어와 기다리라는 말을 세 번쯤 한 뒤에도 그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까무룩 졸았을까, 딴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양철문이 울며 그녀가 들어섭니다. 그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눈이 커집니다. 손을 잡고 뒤따라 들어오는 낯선 남자. 여자 친구를 놀라게 해주려는 의도는 성공한 셈이었습니다.
눈물이 난다거나 화가 난다기보다는, 군인은 추웠습니다. 온 몸이 덜덜 떨려 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는, 군인에게 히터를 틀어주었습니다. 기차에 올라서도 오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군인은 자신의 몸이 고장난 것 같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이대로 기차 안에서 망가져 버려 다시는 고쳐지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차창 밖의 느티나무며 아카시아가 그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복길이와 군인은 왜 그렇게 추웠을까요? 왜 그렇게 떨었을까요? 이 두 개의 이별의 공통된 detail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요? 혹시 이 군인의 여자친구는 서울방송의 작가가 되었던 것일까요?
첫댓글 언제부터인지, 영화든 책이든, 사랑 얘기가 나오면 마음이 돌처럼 굳어지는 것을 느끼다가, 언젠가 누군가가 쓴 글에서 사랑은 변한다는 그래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그 글을 읽으며, 새삼 마음이 뜨거워지던 기억이 오늘 비가 내려 가라앉은 무거운 대기만큼이나 침잠해 있던 제 마음에, 그래서 어느 유명한 건축가의 미완의 작품이 서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물이 찔끔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아는 동호회 후배의 쪽지에서 또 한 후배를 걱정하는 그 마음에 긴 글을 적어 건네며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는데...오늘 아우디언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굳어지는 마음이 지켜보기가 어려울 정도네요, 두 사람 다
사랑해서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라는 이름으로 이별을 통보 받은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서 받는 직접적인 해석 말고도 아우디언님의 말씀처럼 이별의 공통된 detail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 저와는 달리 아우디언님이 평소에는 감흥을 못 느끼는 여느 한 드라마에서 본능적으로 눈이 가게 만든 이 이별의 공통된 detail이 뭔지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정말 고민하면....다시는...이런 오한과 떨림에서 우리 모두가 벗어날 수 있을런지요....?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난다거나 슬픔의 감정보다 먼저 추위가 엄습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인가 봅니다. 꽃도 지고 계절도 바뀌는 법이니 사랑이 식는 건 어쩌면 섭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떻게 헤어지는가,라는 이별에 임하는 자세 만큼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면 상처받는 거야 당연하지만, 사랑 후에 잊혀진 이름이 된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