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여러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오케스트라들은 어떻게 같은 악보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여 자신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가나를 느껴 보기로 하자.
1809년 나폴레옹이 1805년에 이어 두번째 빈을 침공한다.도시는 밤낮 포격에 시달리고,베토벤의 강력한 후원자이자 제자인 루돌프 대공은 피난을 떠나 경제적인 걱정에 힘든 시기를 보낸다 그해 5월엔 77세로 하이든이 세상을 떠났고 베토벤은 어려운 시기 빈을 지키며 쓴 곡이 이 황제 피아노 협주곡이다.
황제 협주곡은 안밖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유럽사회의 한 중심에서 낭만주의의 인간적인 요소의 개혁과 수구사이에서 결코 그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고 확고한 자신을 고집스럽게 적립해 나간다. 피아노 협주곡 4번에 비해 더욱 대담해진 악상과 확대된 형식 카덴자의 파격적 생략등 이때를 기점으로 그의 음악은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이루는 경지에 다다른다.
큰 폭의 오케스트라 코드를 뚤코 이어지는 피아노의 알페지오로 시작되는 1악장은 그간의 협주곡 형식에서 보지 못한 거대한 도입부이다. 좀 긴듯한 오케스트라의 도입부 후 제1주제나 가볍고 명료한 제2주제의 콘트라스트와 악장 말미에 항상 있었던 카덴자의 생략은 카덴자 없이도 충분히 느껴지는 피아노의 화려함 때문 일 것이다.
현악기의 부드럽고 멜랑꼴리한 태마에 피치카토 다른 현파트의 받임으로시작되는 2악장은 피아노의 변주와 주제가 보석과 같이 아름답다.베토벤의 곡중 선율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낭만주의의 꽃일 것이다.3악장의 도입은 2악장의 말미에 예견되 바로 이어저 연주 된다. 독주 피아노의 상쾌하고 박력있는 주제는 여러번 조성을 바꾸며 때론 잔잔하게 때론 아주 강력하게 폭발이 되 이 3악장이 피아니스트의 역량 차이를 가장 느낄수 있는 곡이라 생각된다.
이곡은 이러한 특성상 피아니스트들의 성격과 그가 가진 테크닉,음악적인 연주자의 세계를 자장 잘 파악 되기도 한다.
자 그러면 각 연주자의 연주를 감상하며 그들의 음악 세계에 빠져 보자.
첫번 연주자는 괴팍하기로 소문난 미켈란젤리. 1920년 이태리 브레시아에서 태어나 1995년 서거한 그는 밀라노 음악원을 거쳐 1939년 쥬네브 콩쿨에서 우승하여 화려한 데뷰를 했지만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공백기가 있었고,그후 영국,프랑스의 연주여행에서 크게 각광을 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바로 앞에 연주를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취소를 하고 녹음은 시간 예술이란 음악적 특성을 존중하여 하지 않았고 자신의 음색과 컨디션을 위해 연주여행에는 자신의 악기와 전속 조율사를 꼭 대동 했다.
그는 이 베토벤 협주곡을 통해 연주자로서 보다 철학가적인 곡 해석과 한없이 넓은 폭과 깊이의 음악을 선사 한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선 절대 느낄수 없는 그의 깊이,카리스마. 그의 연주를 겨우 몇장의 실황녹음에 의존하여 느낄수 있어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이연주는 빈 심포니커와 쥴리니가 함께 한 것으로 (이연주를 한 장소는 해마다 열리는 빈 필의 신년 음악회가 열리는 무직 페어라인 잘이다.) 동질의 음악성을 함께한 환상의 콤비로 지휘자나 피아니스트는 잔가지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히 큰그림으로만 이곡을 그려 낸다.
그들의 음악은 순수함의 극치에서 시작된다. 딱딱하게 느껴 질정도로 단순 명료하고 가식이라곤 찾아 볼수가 없다.
조미료를 전혀 사용 하지 않고 천연 재료로만 최상의 맛을 만들어 낸 음식 같다.
특히 2악장에서의 오른손 주제의 타건에선 꼭 끈어질듯 끈어질듯 하며 그 큰 프레이즈를 이어가는 대 정말 순수미의 극치를 이루고 그의 과감성을 느낄수 있다.두 이테리 대가들의 연주에 빈 필에 비해 항상 1%가 부족한 빈 심포니커의 반주가 흠이라면 흠일까?
그들의 넓은 프레이즈는 큰 호흡으로 베토벤의 커다란 음악을 더욱 우리 마음속 깊이 각인 시킨다. 여러분들은 크고 긴 호흡으로 이 연주를 느껴 보시기를 바란다.오래전 녹음이라 녹음 상태를 감안 하여 감상하시길.....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자랑 할수 있는 피아니스트중 김 선욱군의 연주를 감상 해보자
1988년생 김군은 3살때 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피아니스트 김 대진의 지도아래 순수 우리나라에서 만 교육으로 2006년 리스 콩쿨에 우승한다. 그의 음악은 철저한 기초에 의지하여 섬세함과 모나지 않은 테크닉으로 그의 성장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 베토벤의 연주에서 아주 평범한 부분의 섬세함을 느낄수 있고 전반적으로 모나지 않게 그의 음악을 이끌고 있지만 큰 그림의 호흡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아직 그의 음악적 완성이 충분한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들이 각자의 예술가들의 그릇을 어렸을 때라도 느낄수 있는 그 무었이 있다면 가장 아쉬운 부분일 것 같다.
그가 더 큰 성장을 하려면 과감하게 음악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여러 다른 세계와의 교류를 해 보기를 필자는 권해 보고 싶다. 여러분은 그의 섬세함과 미켈란젤리와 브렌델의 폭을 비교하여 느껴 보시길 바란다. 비교적 바른 프레이즈의 분할 아주 정직한 음악적 해석이 이 커다란 베토벤에서는 약하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지만 그 음악적인 부분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가지는 공통의 숙제 일 것이다. 과거 피아니스트들 보다 섬세하고 확실한 테크닉 을 가진 현대 연주자들은 폭과 예술적인 부분에서는 한없이 작아 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그가 빨리 우물안을 탈출해 그만의 폭있는 음악 세계가 만들어 지기를 기원 해 본다.
이제 이곡의 교과서 연주로 필자가 선택한 폴리니의 베토벤을 느껴 보기로 하자.
폴리니는 1942년 밀란에서 태어 났다. 1960년 쇼팡 콩쿨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을 해 각광을 받았다. 그때 심사위원장이었던 루빈스타인의 이야기가 걸작이다. 우리 심사위원들중 누가 과연 폴리니 만큼 연주 할수 있겠는가 ....
그는 한해 먼저 태어난 여성 거장 피아니스트 말타 아르게리히와 운명적으로 부딪친다.1957년 쥬네브 콩쿨에서 말타가 1등을 하고 폴리니가 2등을 한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폴리니가 쥬네브에 나가지만 다시 1등없는 2등을 하고 쇼팡 콩쿨은 폴리니가 먼저 1등을 하고 이듬해 말타가 1등을 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같이 미켈란젤리의 제자가 된다.
비록 폴리니는 6개월이란 짧은 시간을 통해 미켈란젤리의 제자가 되지만 평생 그를 흠모하고 존경함을 유지하며 지냈다.
비발디 음악은 이태리 연주자들이 아니면 그 느낌이 훨씬 덜하다.이무지찌의 사계와 베를린필의 사계는 천지 차이다.
모짤트와 베토벤의 음악도 빈필의 모짤트와 베토벤은 정말 다른 오케스트라가 흉내 내지 못하는 그 무었이 존제한다.
그런 점에서 폴리니와 칼뵘의 빈필이 연주한 이곡은 베토벤을 가장 느낄수 있는 역작이다. 폴리니의 섬세함이 과감함을 요구하는 5번 황제 협주곡에서 약함이 정말 아쉽지만,똑 같은 연주자들이 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음원은 정말 백미 음반이다.미켈란젤리의 폭을 따라가지 못한 폴리니의 극히 작은 연약함을 제외 한다면 섬세함이나 정확함에서는 스승인 미켈란젤리가 따라갈 수 없는 장점을 폴리니는 보여준다. 지휘자 칼뵘, 그와 빈필의 모짤트는 그 어떤 지휘자,교향악단이 가질수 없는 모짤트를 품고 있다. 뵘은 베토벤의 음악도 그 순수성의 표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
칼뵘과 폴리니 빈필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5번은 정말 세기의 음원이다.
이제 대기 만성형의 노신사 알프레드 브렌들을 느껴 보자. 브렌들은 1931년 체코의 작은 마을 비젠베르그에서 태어 났다. 6세때 자그레브로 가족들이 전부 이주를 해 그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고 1947년에 빈으로 이주를 다시해 에드윈 휘셔에게 사사을 받아 그의 말로는 그에게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배웠다고 한다.그는 1949년 부조니 콩쿨에서 4위로 입상하고 이를 계기로 1960년부터 3년에 걸처 폭스 레이블과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의 음원을 낸다. 그러나 위로는 당대의 최고 각광 받고 있는 명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루빈스타인등과 아래로는 부조니 에서 1등한 말타 아르게리히와 폴리니등 신성 피아니스트들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런던으로 이주를 해서 그의 나이 30대 후반인 1969년 필립레코드사의 전속으로 베토벤 서거 200주년 기념 사이클 연주와 1970년 부터 다시 7년에 걸처 두번째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 음반으로 전 세계 음악인들에게 거장이란 칭호를 드디어 듣게 된 대기 만성형인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노력은 1992년 부터 다시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에 도전해 1997년에 마치게 되는대 음악인들의 평가는 레코딩 할때 마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그의 레파투어는 베토벤,슈벨트,하이든 모짤트.슈만등 고전에서 낭만 까지의 좁은 부분이 흠인것이 사실이지만 철저한 곡 분석력을 바탕으로 성실한 연주로 항상 최상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20세에 인정 받지 못하면 나가 자빠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그가 보여준 성실하고 꾸준한 노력이 가져다 준 거장이란 타이틀은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의 베토벤은 한없이 넓고 화려하고 끈낌이 없다. 그는 연주를 하면서 소리를 내어 멜로디를 따라 읍조리며 몰입한다. 그의 왼손 타건은 오른손과의 발란스에 휼륭한 균형을 이루고 그 바탕이 베토벤의 웅장함과 폭을 깊게 소화해 청중들을 몰입시킨다.
동독출신의 한없이 괴팍하고 고집이 끝없을 것 같이 생긴 우리의 할아버지 쿨트 마주어 ,그는 정말 고집장이인 것이 맞다. 1989년 동독이 무너 졌을 때 그렇게도 동독인들이 대통령직을 맡아 달라 애원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음악인으로 남았던 참 음악인 그의 베토벤은 칼 뵘에서 느낄수 없는 그 무었을 가지고 있다. 뵘의 모짤트 까지의 한계라면 비록 모짤트의 섬세함에서 뵘보다 느낌이 덜 할수 있지만 베토벤에서는 달라진다. 뵘이 베토벤의 氣를 충족 시켜주지 못한다면 마주어는 넘치고도 넘친다. 강한 카리스마가 약한 오케스트라를 몰아 부쳐 브렌들의 베토벤을 돕고 있다. 이는 마주어만의 베토벤이고 대 음악가에서만 느낄수 있는,우리들이 그의 음악만 들어도 氣를 받는듯한 단단함이 있다.
알프레드 브렌들 비록 그는 어린시절 각광 받는 연주자가 아니었을지라도 80이 넘은 몇년 전까지도 해마다 잘츠부르그 훼스티발에 초청되 휼륭한 연주를 들려 주었고 그의 철학적 사고는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독서광에 기초하고 있다.
또 에세이를 비롯하여 여려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들이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본받아야 할 여술가의 태도 아닐까 생각 해본다. 어려움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삶에 폭에 있어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격어 본 예술가들과 현대의 물질 문명에 풍요 속의 현 예술가의 깊이를 어떻게 동일 하게 느낄수 있을까.....
이제 마지막으로 현대 피아니스트로 각광? 받고 있는 중국 랑랑의 베토벤을 느껴 보자. 그는 현대인들이 원하는 탈렌트적 요소가 듬뿍 있는지 전통의 음악 나라 유럽에서도 신드롬이 일어 날 정도로 그의 매 연주는 빈이든 런던이든 베를린이든 청중들로 차고 넘친다.그러나 필자가 느끼는 그의 음악은 예술적인 요소 보다 화려한 테크닉을 앞세워 꼭 써꺼스를 보는 듯 하다. (심하게 말하면 사무라이가 칼 쓰듯 한 연주 자세,전혀 큰 음악 안에서 진지함과 성실을 느낄수 없는)바른 베토벤의 곡 해석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뜻이다. 지휘자 에센 바하는 1970년대 주목을 받았던 피아니스트 였다. 그가 지휘로 전공을 바꿨을 때 많은 아쉬움이 있었었는대 지휘자로써의 현 그의 모습은 한없이 안타갑기만 하다. 잘못 바꾼 지휘자로의 길이 좋은 피아니스트를 잃은 셈이다. 한국에서도 수원시향 지휘을 맡고 있는 피아니스트 출신 김 대진군, 정말 좋은 피아니스트의 자질도 있고 그의 피아니스트로써 제자 양성에서 김 선욱을 길러 낸 것을 볼때 그가 에너지 아직 있는 시기에 좋은 후학 양성에 더 신경을 쓴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화려해 보이는 지휘자의 길
그길은 아무나 해서는 안되는 길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를 꽤 뚤고 전체를 조화시키고 하는 것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고, 보기보다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센 바하 필자의 젊은 시절 선망의 피아니스트가 기 하나없는 지휘자로 변해 있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세계가 그리도 열광하는 랑랑의 음악에서 무었을 느끼수 있는지 그저 광대의 베토벤을 들었다면 필자의 톨라란트 없는 편협된 사고일까 . 여러분들이 여러 연주자들의 모습에서 답을 찾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