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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의 금강경 핵심 강좌
5강 3부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2012.01.16
第二十七 無斷無滅分
제이십칠 무단무멸분
(5강 2부에서 연결)
第二十七 無斷無滅分 (二十三, 斷佛果非關福相疑)
제이십칠 무단무멸분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莫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라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說諸法斷滅가 莫作是念이니
수보리야 여약작시념하대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설 제법단멸 막작시념
何以故오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法에 不說斷滅相이니라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상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그대가 혹 생각하기를 ‘여래는 잘 갖춰진 상호를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지 않는가? )
須菩提야 莫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라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수보리)야, 그러니까 수보리야,
莫作是念(막작시념)호대, 그런 생각하지 말라, 이런 생각하지 말라.
如來(여래)가 不以具足相故(불이구족상고)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하라, 구족상을 활용하지, 사용하지 아니한 것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다 말이야. 얻었다라고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 이말이야. 莫作是念(막작시념).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說諸法斷滅가 莫作是念이니
수보리 여약작시념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설 제법단멸 막작시념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汝若作是念(여약작시념)호대, 그대가 만약 이러한 생각을 하되,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說諸法斷滅(설 제법단멸)가 莫作是念(막작시념)이니, 모든 법이 단멸, 말하자면 텅 비어 없다, 공하다, 무다, 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말이야.
莫作是念(막작시념)이니, 이런 생각 짓지 말지니,
何以故오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法에 不說斷滅相이니라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상
何以故(하이고)오, 왜냐하면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於法(어법)에 不說斷滅相(불설단멸상)이니라,
斷滅相(단멸상), 법에 있어서, 이치에 있어서, 진리에 있어서, 斷滅相(단멸상)을 말하지 않는다. 단멸도 말하지. 하지만은 또, 단멸 아닌 것도 말한다.
그러니까, 雙遮(쌍차)도 말하지만 (雙照)쌍조도 말한다. 단멸은 쌍차고, 단멸을 말하지 않는다는 쌍조고, 그래서 遮照同時(차조동시), (遮)차와 (照)조, 긍정과 부정을 함께 가지고 간다. 차와 조를 함께 가지고 간다. 긍정과 부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아~무리 허망한 그 종이에 부처· 佛(불)자 낙서를 했다 손치더라도 이미 부처· 佛(불)자로 낙서를 했어. 이거 우리 불자들은, 정말 상식 있는 불자들은 그 종이 함부로 하지 못해. 함부로 뭐 코를 풀거나 무슨 쓰레기를 담거나 못한다고.
왜냐? 그거 부처 불자가 써져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걸.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도 또한 종이에 써졌다. 동시에 우리는 이제 말하자면 이해하는 그런 마음자세가 그게 이제 중도적인 상식인 거라. 중도적 상식, 중도적 견해.
아주 하잘 것 없는 종이라고도 볼 수가 있어야 되고, 아무리 신문지, 버리는 신문지에 쓰인 거기에 부처· 佛(불)자가 써져 있다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이거 함부로 할 수가 없다하는 그러한 그 양면을 우리가 함께 가지고 가는 것, 그러한 소견을 우리가 함께 하는 것, 이게 이제 중도적 소견이고, 중도적 안목, 중도적 생활방법이야.
그게 바람직한 거야. ‘이거 뭐 좋은 기라고 아무리 부처· 佛(불)자 아니라, 부처님 할아버지가 써주셔도 이건 종이인데’ 하고, 사정없이 그렇게 하면 그건 불자로서의 도리가 아니야. 이게 이제 말하자면 중도적 삶의 형태입니다.
중도, 중도하는 것이 무슨 불성처럼 그렇게 있는 걸로 이해하면 안 돼요. 혹은 그렇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어.
이거는 어떤 법을 보는, 사물을 보거나 사람을 보거나, 아니면 이치를 보거나하는 보는 공식이야. 보는 공식.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七 無斷無滅分(무단무멸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七 無斷無滅分 (二十三, 斷佛果非關福相疑)
제이십칠 무단무멸분
제27.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그대가 혹 생각하기를 ‘여래는 잘 갖춰진 상호를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지 않는가?
須菩提야 莫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라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그러한 생각을 하지 말라. ‘여래는 잘 갖춰진 상호를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지 말라.”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說諸法斷滅가 莫作是念이니
수보리 여약작시념하대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설 제법단멸 막작시념
“수보리야! 그대가 만약 생각하기를,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모든 것이 아주 없다고 말한다’라고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何以故오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法에 不說斷滅相이니라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상
왜냐하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모든 것이 아주 없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자, 그 다음에,
第二十八 不受不貪分
제이십팔 불수불탐분
第二十八 不受不貪分
제이십팔 불수불탐분
須菩提야 若菩薩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어든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지용보시
若復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야 得成於忍하면 此菩薩이 勝前菩薩의 所得功德이니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 소득공덕
(何以故오) 須菩提야 以諸菩薩이 不受福德故니라
하이고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덕고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云何菩薩이 不受福德이니잇고
수보리 백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須菩提야 菩薩의 所作福德은 不應貪著일새 是故로 說不受福德이니라
수보리 보살 소작복덕 불응탐착 시고 설불수복덕
第二十八 不受不貪分
제이십팔 불수불탐분
第二十八 不受不貪分
제28분, 불수불탐분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또한 탐하지도 않는다, 그랬습니다.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탐하지도 않는다.
須菩提야 若菩薩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어든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지용보시
須菩提(수보리)야 , 수보리야!
若菩薩(약보살)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로, 항하사등세계에 가득한,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에, 그 세계에 가득채운 금은보화 칠보로써
持用(지용)布施(보시)어든, 그것을 가져서 보시에 사용한다.
若復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야 得成於忍하면 此菩薩이 勝前菩薩의 所得功德이니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 소득공덕
若復有人(약부유인)이, 또 한 사람은
知一切法無我(지일체법무아)하야, 知一切法無我(지일체법무아), 일체법에 我(아)가 없음을 알아서,
모든 존재, 모든 이치, 뭐, 부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도 無我(무아)고, 우리자신도 무아고, 또 이 마이크도 무아고, 종이도 무아고, 일체, 저 자동차도 무아고, 산도, 강도, 들도 모두가 무아다.
이건, ‘無我(무아)’라고 하는 말은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 이런 말이죠. 그것을 알아가지고서,
得成於忍(득성어인)하면, 忍인을 얻으면, 성취하면은 이말이지.
왜 참을·忍(인)자를 쓰느냐? 모든 있는 것에는 없는 것이 깔려있어. 무아도 깔려있어. 무아가.
내가 이렇게 육척장신을 가지고 있지마는 내면에는 또 무아야. 한편으로 보면 무아라고. 아무 것도 없는 거야. 그런데 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안 보여. 안 보인다고.
진리는 안 보여.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으로 틀어서 아는 것입니다.?
그 忍(인)자가 왜 참을·忍(인)자를 쓰느냐? 내가 이 忍(인)자를 해결하지 못해가지고 온~ 팔만대장경을 다 뒤졌는데, 유마경에서 어떤 조사스님이 말하자면 그걸 주해를 내기를 그렇게 내 놨어요.
사람이 병이 들어서 아프다 이 말이야. 이 가운데에도 지금 앓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여. 그런데 얼굴에 아무 것도 안 나타나. 뭐 아프다, 아프다하고 소리 지르지도 않아. 그냥 참고 왔어. 공부하러 왔어. 아픈 거 전혀 안 보여.
참기 때문이라. 참으나 안 참으나 아픈 것은 보이지 않아.
그와 같이, 그와 같이 진리는 무아의 진리라든지, 불성이라든지, 본래부처라고 하는 것이라든지, 이 모든 것은 아픔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듯이 그렇게 눈에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런 뜻으로 忍(인)자를 썼다, 하는 거여. 그렇게 번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산스크리트 어로는 뭘로, 뭐로 돼 있는 건지는 모르지마는,
특히 무아는, 우리가 전부 ‘有我(유아)’잖아요. 현재 전부 유아잖아.
우리가 뭐 견문각지도 전~부 이해하는 게 전부 유아인데, 그런데 무아, 무아, 무아를 이야기를 하는데 무아는 그와 같이 숨어있다.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하다.
아픈 것이 보이진 않지만 너무 아파. 죽을 지경이라 아파서. 너무 확실하다 이거여. 그러나 안 보여.
이 忍(인)자의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得成於忍(득성어인)하면, 그 무아의 진리를, 忍(인)자는 여기서 무아의 진리입니다.
무아의 진리를 얻게되면은
此菩薩(차보살)이 勝前菩薩(승전보살)의 所得功德(소득공덕)이니,
이 보살이 勝前菩薩(승전보살)의 所得功德(소득공덕)이니, 앞의, 앞 보살이 얻는 바 공덕보다도 훨씬 수승하다.
여기 칠보로, 말하자면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에다 칠보로 가득 채운, 그런 그 공덕보다도 훨씬 수승하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以諸菩薩이 不受福德故니라
하이고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덕고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야, 왜냐하면 수보리야!
以諸菩薩(이제보살)이 不受福德故(불수복덕고)니라, 이 모든 보살이 복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뭐 복덕이 있다고 복덕을 받아들이고, 복덕이 없다고 뭐, 안 받아들이고, 그런 거 복덕 관심 없다 이거여. 그런 거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면 뭐 貪着(탐착)할 일이 뭐있어요? 줘도 안 갖는데, 뭘 남의 것을 가지려고 하겠습니까?
그래, 不受不貪(불수불탐)이라.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또한 탐착하지도 않는다.
곧 貪着(탐착)이 나오잖아요.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云何菩薩이 不受福德이니잇고
수보리 백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須菩提(수보리)가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云何菩薩(운하보살)이 不受福德(불수복덕)이니잇고, 어째서 보살이 복덕을 안 받아들입니까?
우리는 얼마나 복받을라고 “복 받으십시오, 복 받으십시오.”“복 많이 받으십시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저 자나깨나 우리 불자들 그저 ‘복덕’인데, 금강경하고는 영 다른 길을 가고 있죠. 왜 보살이 복덕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須菩提야 菩薩의 所作福德은 不應貪著일새 是故로 說不受福德이니라
수보리 보살 소작복덕 불응탐착 시고 설불수복덕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菩薩(보살)의 所作福德(소작복덕)은 不應貪著(불응탐착)일새 是故(시고)로 說不受福德(설불수복덕)이니라,
자기가 아무리 복덕을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그 복덕에 거기에 탐착하지 아니해. 아무 관심 없어. 그저 보살로서 으레이 할 일일 뿐이야.
그저 호흡하듯이, 호흡하듯이, 그저 할 일 일 뿐이야.
불교는 아까 말씀드리기를 ‘만선을 행하는 일이다’그랬어요. 그 만선을 행한다고 그 굳이 뭐, 상내고 선을 행하는 게 아니단 말이야.
으레이 불교를 아는 사람이라면은 그저 그야말로 무변승복해해요.
온갖 수승한 복, 가 없는 수승한 복을 전부 다 가지고 가야 되는 거야.
그게 우리의 당연한 삶의 길인데, 뭘 그걸 복덕을 짓느니 뭐 받아들이느니 뭐 탐착을 하느니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是故(시고)로 說不受福德(설불수복덕)이니라, 그러므로 설하기를 복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지어놓은 복은요, 자기가 아무리 안 받을라고 도망을 가도 자기를 따라옵니다. 자기가 지어놓은 죄는 아무리 도망을 가도 따라옵니다.
죄도 따라오고 복도 따라오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굳이 뭐 복 밝힐 필요가 없는 거예요. 지어 놓기만 하면 저절로 따라오니까. 굳이 내가 지은 복 내가 가져야 되겠다, 이건 내가 지은 것인데 내가 가져야 되겠다 할 필요가 없어요. 저절로 오게 돼 있어요. 저절로 안 오는 것은 그것은 자기가 지은 것이 아니야, 아직은.
저절로 안 오는 것은 지은 게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돼요.
아, 이런 좋은 이치가 있어가지고 그래서, 소의경전으로 우리 조계종의 교과서로 아마 쓰게 돼 있나 봐요.
참 좋은 내용 아닙니까? 이걸 스님들은 포교일선에서 각자 그 경험과 어떤 상황에 맞춰서 또, 여러 각도로 해석을 이제 하는 거죠. 또 그렇게 부연설명을 또 하셔야 되고요.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八 不受不貪分(불수불탐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八 不受不貪分
제이십팔 불수불탐분
제28.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탐착하지도 않는다.
須菩提야 若菩薩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어든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지용보시
“수보리야! 만약 어떤 보살이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 찬 금․은․보화로써 널리 보시한 이가 있고,
若復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야 得成於忍하면 此菩薩이 勝前菩薩의 所得功德이니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 소득공덕
또 어떤 사람은 모든 존재의 무아(無我)의 도리를 알아서 그 숨은 이치를 깨달으면 이 보살이 얻은 공덕은 앞의 보살이 얻은 공덕보다 훨씬 뛰어나리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以諸菩薩이 不受福德故니라
하이고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덕고
왜냐하면 수보리야! 모든 보살들은 복덕을 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云何菩薩이 不受福德이니잇고
수보리 백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누리지 않습니까?”
須菩提야 菩薩의 所作福德은 不應貪著일새 是故로 說不受福德이니라
수보리 보살 소작복덕 불응탐착 시고 설불수복덕
“수보리야! 보살은 자신이 지은 복덕을 반드시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덕을 누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느니라.”
그 다음에는,
第二十九 威儀寂靜分
제이십구 위의적정분
第二十九 威儀寂靜分 (二十四, 斷化身出現受福疑)
제이십구 위의적정분
須菩提야 若有人이 言如來가 若來若去若坐若臥라하면 是人은 不解我所
수보리 약유인 언 여래 약래약거약좌약와 시인 불해아소
說義니 何以故오 如來者는 無所從來며 亦無所去일새 故名如來니라
설의 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第二十九 威儀寂靜分
제이십구 위의적정분
제29분, ‘威儀寂靜分(위의적정분)’
위의가 고요하다, 적정하다 하는 내용입니다.
須菩提야 若有人이 言 如來가 若來若去若坐若臥라하면 是人은 不解我所說義니
수보리 약유인 언 여래 약래약거약좌약와 시인 불해아소설의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有人(약유인)이 言(언), 만약에 어떤 사람이 말하되,
如來(여래)가 若來若去若坐若臥(약래약거약좌약와)라하면, 여래가 온다느니, 간다느니, 앉았다느니, 누웠다느니, 이런 외형적인 것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은
是人(시인)은 不解我所說義(불해아소설의)니,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를 아직까지도 이해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한 바를 아직까지도 이해 못하고 있다.
‘여래’는 뭐라고? ‘견문각지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견문각지하는 것 이 바로 ‘여래’다.”견문각지하는 게 뭐 누웠다고 이해 안 되고, 뭐 섰다고 이해 안 되나요? 누웠다고 안 보이고, 섰다고 안 보이나? 그거 하곤, 거래좌와하곤 아무 관계없는 거야.
何以故오 如來者는 無所從來며 亦無所去일새 故名如來니라
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何以故(하이고)오, 왜 그러냐?
如來者(여래자)는 無所從來(무소종래)며, 여래자는 쫒아오는 바도 없으며
亦無所去(역무소거)일새, 가는 바도 없다.
故名如來(고명여래)니라, 그러므로 이름을 ‘여여하게 온다’, 또, ‘如(여)’, 진리의 자리, ‘如(여)’에서 왔다.
‘如(여)’에서 왔다라는 것은 옴도 없고, 감도 없는 자리야.
왜냐? 진리는, ‘如(여)’의 자리는, 여여한 자리는 같은 뜻인데, 그 자리는 우주의 별 만 해 있어서 어디는 있고, 어디는 없는 게 아니니까. 모든 곳에 다 있기 때문에 사실은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어.
그게 여래라. ‘如(여)’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나 다 같다’.
뭐, 글자대로 해석합시다. ‘어디에나 다 같다’, ‘어디에나 다 같다’ 이 말이야.
화장실에도 같고, 뭐 똥에도 같고, 저기 뭐 산꼭대기 올라가도 같고, 교실에도 같고, 법당에도 같고, 저 길거리에도 같고, 그렇다 이겁니다. 그러면 별 만 해 있는 것인 까닭에,
如來者(여래자)는 無所從來(무소종래)며 亦無所去(역무소거)다.
(여래자는 쫒아오는 바도 없으며 가는 바도 없다.)
그런데, 無所從來(무소종래)며 亦無所去(역무소거)인데 왜 여래라 그랬어요?
여 자를 왜 붙였어? 편의상 붙인 거여. 편의상 붙인 말이다.
이 여래가 ‘卽非如來(즉비여래)’, ‘是名如來(시명여래)’!
그렇게 알면됩니다. 금강경 공식대로라면,
‘如來者(여래자)는 卽非如來(즉비여래)면 是名如來(시명여래)’
여래라고 하는 것은 곧 여래가 아니다. 이 이름이 여래다. 고렇게 딱 써놔 버려요.
그러면 여기는 허물이 없어요. 故名如來(고명여래)란 말에 허물이 없어요.
허물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이제 찾아집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九 威儀寂靜分 (위의적정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九 威儀寂靜分 (二十四, 斷化身出現受福疑)
제이십구 위의적정분
제29. 위의가 적정하다
須菩提야 若有人이 言如來가 若來若去若坐若臥라하면
수보리 약유인 언 여래 약래약거약좌약와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혹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라고 한다면
是人은 不解我所說義니 何以故오 如來者는 無所從來며 亦無所去일새 故名如來니라
시인 불해아소설의 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이 사람은 내가 말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님이니, 이름이 ‘여래[여여하게 오다]’로 부르느니라.”
그 다음,
第三十 一合理相分
제삼십 일합이상분
第三十 一合理相分 (二十五, 斷法身化身一異疑)
제삼십 일합이상분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以三千大千世界로 碎爲微塵하면 於意云何오
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이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어의운하
是微塵衆이 寧爲多不아
시미진중 영위다부
(수보리)甚多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若是微塵衆이
심다 세존 하이고 약시미진중
實有者인댄 佛이 卽不說是微塵衆이니 所以者가 何오 佛說微塵衆이
실유자 불 즉불설시미진중 소이자 하 불설미진중
卽非微塵衆일새 是名微塵衆이니이다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世尊하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가 卽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
세존 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 즉비세계 시명세계
何以故오 若世界가 實有者인댄 卽是一合相이니
하이고 약세계 실유자 즉시일합상
如來가 說一合相은 卽非一合相일새 是名一合相이니이다
여래 설일합상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
須菩提야 一合相者는 卽是不可說이어늘 但凡夫之人이 貪著其事니라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단 범부지인 탐착기사
第三十 一合理相分
제삼십 일합이상분
제30분, ‘一合理相分(일합이상분)’
一合理相(일합이상)’, 글자대로, 일합, 하나로 뭉쳐진, 하나로 합해진, 합할·合(합)자잖아요. 하나로 합해진.
이 우주 는 하나로 합해졌죠. 한 덩어리죠. 이 지구는.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以三千大千世界로 碎爲微塵하면 於意云何오
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이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어의운하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善男子善女人(약선남자선녀인)이 以三千大千世界(이삼천대천세계)로 碎爲微塵(쇄위미진)하면,
만약 선남자선녀인이 삼천대천세계로써, 碎爲微塵(쇄위미진), 부셔가지고서 이 지구를 부셔가지고서 작은 먼지를 만들었다고 하자.
於意云何(어의운하)오, 어떻게 생각하는가?
是微塵衆이 寧爲多不아
시미진중 영위다부
이 작은 먼지 숫자들이 얼마나 많음이 되겠는가?
(수보리빠짐여기는)甚多니이다, 世尊하
심다 세존
甚多(심다)니이다, 世尊(세존)하,
(수보리가 말하기를) 매우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을 것입니다. 그렇죠 뭐. 주먹 만 한, 주먹덩어리만한 흙을 하나 부셔갖고 미진을 만들어도 그 숫자가 어마어마할 텐데, 이 지구를 다 부셔가지고 미진을 만들었다면 그거는 뭐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何以故오 若是微塵衆 實有者인댄 佛이 卽不說是微塵衆이니
하이고 약시미진중 실유자 불 즉불설시미진중
何以故(하이고)오, 왜 그런고 하니,
若是微塵衆(약시미진중) 實有者(실유자)인댄, 이 미진중이 실로 있는 것이라면은,
佛(불)이 卽不說是微塵衆(즉불설시미진중)이니, 부처님이 곧 이 미진중을 말하지 아니 하셨을 것입니다.
‘아, 이거 없는 것을 가지고 부처님이 내~ 우리에게 이해시키려고 이렇게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내 그 속 다 안다 이 말이여.
所以者가 何오 佛說微塵衆이 卽非微塵衆일새 是名微塵衆이니이다
소이자 하 불설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부처님이 말한 미진중이라고 하는 것은 곧 미진중이 아니다. 이 이름이 미진중이다. 이 이름이 미진중이니라.
오늘 卽非(즉비)가 벌써 몇 번이나 나왔습니까?
世尊하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가 卽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
세존 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 즉비세계 시명세계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가,
그러니까 제일 작은 게 미진이죠. 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게 미진, 그 다음 제일 큰 게 뭐? 삼천대천세계.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가 卽非世界(즉비세계)일새 是名世界(시명세계)라.
세계도 마찬가집니다. 여래도 마찬가지고, 중생도 마찬가지고, 전~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마찬가지고, 전부가 즉비야 즉비, 즉비.
何以故오 若世界가 實有者인댄 卽是一合相이니 如來가 說一合相은 卽非一合相일새
하이고 약세계 실유자 즉시일합상 여래 설 일합상 즉비일합상
何以故(하이고)오, 왜 그런고 하니
若世界(약세계)가 實有者(실유자)인댄, 실로 있는 것이라면 세계가
卽是一合相(즉시일합상)이니, 한 덩어리로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여. 一合相(일합상), 한 덩어리, 하나로 뭉쳐진 모양, 이 말이죠.
如來(여래)가 說 一合相(설 일합상)은, 여래가 설하는 한 덩어리로 뭉쳐진 이 모양은, 세계를 두고 하는 거죠.
근데 어디 한 덩어립니까? 한 덩어리로 뭉쳐진 게 아니라 전~부 각각 또 따로 놀잖아요.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차는 차대로, 자유롭게 막, 한 덩어리가 아니라 다 떨어져있어, 또.
그러니까
如來(여래)가 說 一合相(설 일합상)은, 또 어떻게 보면 한 덩어리지. 전부 지구상에는 왜곡돼 있으니까. 그러니까 보는 입장에 따라서, 설명하는 입장 따라서 잠깐 하나다,
지구는 하나다라고 말할 수도 있어. 그렇지마는 어디 또 하난가? 전~부 따로 따로 노는데.
卽非一合相(즉비일합상)일새, 곧 일합상이 아니야.
是名一合相(시명일합상)이니이다, 말을 하자니 이 이름이 일합상이라.
須菩提야 一合相者는 卽是不可說이어늘 但凡夫之人이 貪著其事니라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단 범부지인 탐착기사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一合相者(일합상자)는, 한 덩어리라고 하는 말은, 한 덩어리의 모양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계를 두고 하는 거예요.
卽是不可說(즉시불가설)이어늘, 가히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꼭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인데,
但凡夫之人(단 범부지인)이 貪著其事(탐착기사)니라, 범부들이 그 일을 탐착할 뿐이다. 그랬어요.
범부라고 하니까 또 범부라고 고정된 존재로 생각하면 안 돼요.
생각하면 안 돼요.
如來 說 凡夫者 卽非凡夫일새 是名凡夫라.
여래 설 범부자 즉비범부 시명범부
저 앞에서 금방 우리가 보아 왔죠.
(須菩提야 凡夫者는 如來가 說卽非凡夫 是名凡夫니라)
수보리 범부자 여래 설 즉비범부 시명범부
<참고>
須菩提야 如來가 說有我者는 卽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일새
수보리 여래 유설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須菩提야 凡夫者는 如來가 說卽非凡夫是名凡夫니라
수보리 범부자 여래 설 즉비범부 시명범부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제이십오 화무소화분) 중 일부 -
이 범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뒷걸음질 치면서 마당 쓸듯이 싹 쓸어버렸습니다. 앞에서.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第三十 一合理相分
第三十 一合理相分(일합이상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三十 一合理相分 (二十五, 斷法身化身一異疑)
제삼십 일합이상분
제30.하나로 된 이치의 모습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以三千大千世界로 碎爲微塵하면 於意云何오
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이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어의운하
是微塵衆이 寧爲多不아
시미진중 영위다부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선녀인이 삼천 대천세계를 부수어 아주 작은 먼지를 만들었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작은 먼지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수보리)甚多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若是微塵衆이 實有者인댄 佛이 卽不說是微塵衆이니
심다 세존 하이고 약시미진중 실유자 불 즉불설시미진중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약 이 작은 먼지들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 께서는 곧 작은 먼지들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所以者가 何오 佛說微塵衆이 卽非微塵衆일새 是名微塵衆이니이다
소이자 하 불설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작은 먼지들은 곧 작은 먼지들이 아니며, 그 이름이 작은 먼지들이기 때문입니다.
世尊하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가 卽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
세존 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 즉비세계 시명세계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 대천세계도 곧 세계가 아니고, 그 이름이 세계일 뿐입니다.
何以故오 若世界가 實有者인댄 卽是一合相이니
하이고 약세계 실유자 즉시일합상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하나로 된 모습입니다.
如來가 說一合相은 卽非一合相일새 是名一合相이니이다
여래 설일합상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로 된 모습이란 곧 하나로 된 모습이 아니고 그 이름이 하나로 된 모습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一合相者는 卽是不可說이어늘 但凡夫之人이 貪著其事니라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단 범부지인 탐착기사
“수보리야! 그 하나로 된 모습이란 것은 실은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거늘 다만 범부들이 그것에 대하여 탐하고 집착하기 할 뿐이니라.”
그 다음에,
第三十一 知見不生分
제삼십일 지견불생분
第三十一 知見不生分
제삼십일 지견불생분
須菩提야 若人이 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하면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수보리 약인 언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수보리 어의운하
是人이 解我所說義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是人이 不解如來所說義니
시인 해아소설의부 불야 세존 시인 불해여래소설의
何以故오 世尊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하이고 세존 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즉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이다
시명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須菩提야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一切法에 應如是知하며 如是見하며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일체법 응여시지 여시견
如是信解하야 不生法相이니 須菩提야 所言法相者는 如來가 說卽非法相일새
여시신해 불생법상 수보리 소언법상자 여래 설즉비법상
是名法相이니라
시명법상
第三十一 知見不生分
제삼십일 지견불생분
제31분, ‘知見不生分(지견불생분)’,
知見(지견)은 生(생)하지 아니한다.
그랬는데, 이 지견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제일 이제 우리 입장에서 못된 지견이 뭡니까?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그래요.
그런데 그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뭐, 아상이라 해도 좋고. 그건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건 실재하는 것이 아닌데,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어떤 때에는 그냥 아상을 그냥 하늘을, 하늘을 찌르듯이 자기를 내세우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뭐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고, 그야말로 참, 마음이 넓을 때에는 저~ 태평양 바다와 같고, 좁을 때에는, 좁을 때에는 바늘 끝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뭐,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須菩提야 若人이 言 佛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하면
수보리 약인 언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人(약인)이 言(언), 어떤 사람이 말하되
佛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라하면
부처님이 아견도 이야기하시고, 인견, 중생견, 수자견도 이야기했다하면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是人이 解我所說義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 해아소설의부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수보리야 어떠한가?
是人(시인)이 解我所說義不(해아소설의부)아, 이 사람이 정말 내 얘기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고 하겠나?
내 제자 답게 내가 말한 바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是人(시인)이 解我所說義不(해아소설의부)아, 그랬어요.
부처님이 얼마나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사실 말 많이 했습니까?
여기 금강경에서만 하더라도 무수히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 그야말로 뒷걸음질하면서 마당 쓸 듯이 당신의 자취를 싹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말씀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말했다, 라고 그렇게 곧이 곧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거는, 부처님 말씀 모르는 사람이다 말이야. 내 제자도 아니다 말이야.
是人(시인)이 解我所說義不(해아소설의부)아, 하니까
(不也니이다) 世尊하 是人이 不解如來所說義니
불야 세존 시인 불해여래소설의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그 사람은 뭐, 불자라고 할 수도 없고 부처님 제자도 아니고, 부처님 말 뜻 하나도 못 알아듣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이에요.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이시여! 는.
그러니까 우리 불교공부 막 할 때, ‘말에 떨어지면 안 된다’, 그런 말 많이 하죠. ‘말에 떨어지면 안 된다’. 그게 뭐 영, 불교초보자들끼리 재미로 하는 소리인데, 또, 이치에 맞는 말이에요 그게. ‘말에 떨어지면 안 된다’.
부처님 말에도 떨어지면 안 된다. 이거 봐요. 이 부처님 말에 떨어졌다라면 이게 부처님 말씀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말에 떨어지면 그 말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된다.
是人(시인)이 不解如來所說義(불해여래소설의)니, 이 사람은 여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何以故오 世尊이 說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하이고 세존 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즉비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何以故(하이고)오, 왜 그런고 하면
世尊(세존)이 說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설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은
세존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설하는 것은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즉비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일새
즉비야, 또.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즉비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일새,
그게 뭐 꼭 고정불변하는 그런 실체로서의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있어서 부처님이 설하신 게 아니야. 뭔가 이치를 깨우쳐주려고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별의 별 소리를 지어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거지.
어렴풋~하면 그만 그것을 이야기를 지어내는 거야. 부처님은 워낙 이야기꾼이니까.
하~ 천하의 이야기꾼이거든요, 부처님은.
그러니까 중생들 저거 마음 쓰는 거 보니까,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라고
딱 붙이면 너무 아주 적절하겠거든, 표현이.
그러니까 지어서 딱 붙이니까 맞기는 맞아. 그렇다고 그게 실재하는 건 아니야.
그래서,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즉비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일새,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시명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니이다>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이다
시명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是名(시명), 이 이름이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니이다,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니이다.
이게 실재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뭐 하~ 아견도 많고, 중생견, 수자견,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다 많은데 그거 너무 겁낼 거 없어요. 그거 분석해 들어가보면은 하나하나 그 분해해서 들어가 보면은 없어.
이 마이크가 지금은 이렇게 조립이 되었으니까 근사한 물건으로 있지만, 요, 하나하나, 요, 어떻게 생겼는가 하고, 그 전에 저기 어떤 조실스님은 처음에 트란지스터 라디오, 그거 나왔을 때 얼마나 신기합니까? 한 60년~70년 전엔.
‘하~ 어째서 여기 사람이 들어앉았는가?’ 계속 소리도 사람 소리가 나고, 웃기도 하고, 노래도 나오고 하니까,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들어앉아있다고 그렇게 생각이 드는 거야. 아~무리 이해할려고 해도 안 되는 거야.
그래 스님이 라디오를 떡 하나 사다놓고는 그 저기 저 뭐야, 드라이버 같은 거 잔뜩 사다놓고 그걸 전~부 분해해 보는 거라. 분해해서 아무리 들여다 보면 뭐가 있어야지. 말이 나오는 게 아니야. 전파라는 걸 모르니까. 전파라고 하는 이치를 모를 때에는 그걸 분해해 보고 싶은 거야. 그 안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고.
분해해 보니까 뭐야, 전부 쇠붙이, 그저 뿐이지. 그래서 그걸 몇 번 뜯었다 고쳤다, 뜯었다 고쳤다, 뜯었다 고쳤다... 그래, 우리가 ‘라디오 잘 고치는 선생님’이렇게 호가 났었어. 누구라고 하면은 아직도 살아계시니까, 내가 실명은 거론 안 하겠는데, 어느 절 조실 스님이야.(일동 웃음) 그, ‘라디오 잘 고치는 스님’으로 그렇게 소문이 났어, 우리 어릴 때에. 그래 갖고 라디오 고장 나면 무조건 그 스님인데 들고 갔는데 그런데 라디오 마다 그게 조금씩 형식이 다르잖아요. 하~ 신기해 가지고 가져 오너라 해가지고 밤새도록 그걸 풀어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고 그래. 대개 복잡하면 또 못 고치기도 하고(웃으심), 그러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분해하면은 없어요. 아상은 없습니다. 너무 겁낼 거 없어요.
‘야~ 나는 욕심이 많은데, 그놈 욕심이 참 탈이야.’겁낼 거 없어요. 욕심 그거 분해해 보면은 실체가 없어. 어리석음도 실체가 없고, 아무 것도 실체가 없어.
그렇지만 이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쌓인 그 업을 통해서 그래도 그 사람은 뭐, 그 실체가 없는 줄 무수히 금강경을 읽어서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래도 뭔가 그 업성의 그늘이 드리워져가지고 잡힐 듯 잡힐 듯 그런 잡히지 않는, 그런 각자의 그 그림자, 탐욕의 그림자, 게으름의 그림자, 뭐, 온갖 그 업성의 그림자들이 있는 듯이 보이지마는 그거 겁낼 거 없어요.
그 하나의 이치 제대로 알면은 그거 다 그냥 봄날에 얼음 녹듯이 녹습니다.
저절로 그래 얼음 녹듯이 녹아요. 하나의 이치 제대로 알면은,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은 본래로 부처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알면은, ‘완전무결한 부처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알면은.
그래, 옛날에 임제 스님에게 그런 문제를 제의를 했어요.
‘업이라고 하는 건 그럼 어떻게 되느냐?’
‘隨緣消舊業(수연소구업) ’ 주1)이라 그랬어요. ‘인연 따라서 舊業(구업)이 저절~로 봄날에 눈 녹듯이 그렇게 녹아진다.’
근본 원리인 ‘사람이 부처다’라고 하는 그거에 대한 아주 철두철미한 확신만 가지고 있으면은 저절로 녹아진다. ‘인연 따라서 구업이 녹아진다’
천하의 임제스님같은 이들이 뭐, 업을 이야기하겠어요? 업, 별로 이야기 안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문제를 딱 한 곳에, 또, 제자들은 그런 데에 관심있는 제자들도 있으니까,
“‘隨緣消舊業(수연소구업)’이라, 근본 원리 제대로만 파악하면은 그거는 봄날에 눈 녹듯이 시간 가면은 저절로 녹는 것이니 절대 걱정하지 말아라.”
‘예를 들어서 뭐, 탐욕이 많다든지, 무슨 뭐 진심이 많다든지, 하는 그런 그 스스로 고민하는 그런 것을 염려하지 마라. ’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렇습니다. 그게 참, 바른 소견입니다.
그러니까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겁낼 거 없다. 없는 것이니까. 근본은 없는 것이니까.
須菩提야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一切法에 應如是知하며 如是見하며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일체법 응여시지 여시견
如是信解하야 不生法相이니
여시신해 불생법상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는, 보리심을 발한 자는,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於一切法(어일체법)에, 일체 법에 대해서
應如是知(응여시지)하며, 응당히 그렇게 알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라. 즉비, 곧 없다, 없는 것으로 알라.
如是見(여시견)하며, 그와 같이 보고,
如是信解(여시신해)하야, 그와 같이 신해해서
不生法相(불생법상)이니, 법이라고 하는 어떤 소견을 내지 말지니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일체 법에 대해서 응당히 그렇게 알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라. 卽非(즉비), 곧 없다, 없는 것으로 알라. 그와 같이 알고, 그와 같이 보고, 그와 같이 신해해서 不生法相(불생법상)이니, 법이라고 하는 어떤 소견을 내지 말지니,
須菩提야 所言法相者는 如來가 說卽非法相일새 是名法相이니라
수보리 소언법상자 여래 설즉비법상 시명법상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所言法相者(소언법상자)는, 말한 바 법상이라고 하는 것은
卽非法相(즉비법상)일새, 곧 법상이 아닐새,
‘如來(여래) 說卽非法相(설즉비법상)일새 是名法相(시명법상)이니라’여기도 또 卽非(즉비), 끝까지 철저히 즉비, 즉비의 이치로써 우리에게, 우리 뇌리에다가 아주 팍~팍 심어 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卽非(즉비)!
所言法相者(소언법상자)는 如來(여래) 說卽非法相(설즉비법상)이다.
是名法相(시명법상)이다. 이 이름이 법상이다.
그러나, 설명하려고 하면은, 본래는 없는 것이지마는 뭔가 깨우쳐주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조금이라도 깨우쳐줄려고 하면은 뭔가 말을 지어내야 돼.
말을 지어내가지고 깨우쳐 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표현을 지어내다 보니까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무수한 이론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三十一 知見不生分(지견불생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三十一 知見不生分
제삼십일. 지견불생분
제31. 지견은 생하지 않는다.
須菩提야 若人이 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하면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수보리 약인 언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수보리 어의운하
是人이 解我所說義不아
시인 해아소설의부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나라는 지견과 남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과 수명에 대한 지견을 말하더라’고 한다면,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은 내가 말한 이치를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是人이 不解如來所說義니
불야 세존 시인 불해여래소설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何以故오 世尊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하이고 세존 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즉비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이다
시명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나라는 지견, 남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 수명에 대한 지견은, 곧 나라는 지견, 남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 수명에 대한 지견이 아닙니다.
須菩提야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一切法에 應如是知하며 如是見하며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일체법 응여시지 여시견
如是信解하야 不生法相이니
여시신해 불생법상
“수보리야!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모든 존재에 대하여 반드시 이와 같이 알아야하며, 이와 같이 보아야하며,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해서 존재에 대한 상(相)이 나지 않아야 한다.
須菩提야 所言法相者는 如來가 說卽非法相일새 是名法相이니라
수보리 소언법상자 여래 설즉비법상 시명법상
수보리야! 존재에 대한 상이란, 여래는 곧 존재에 대한 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존재에 대한 상이라고 말 할 뿐이니라.”
자 이제 마지막분,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제삼십이 응화비진분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二十六, 斷化身說法無福疑)
제삼십이 응화비진분
須菩提야 若有人이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로 持用布施어든 若有善男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약유선남
子善女人이 發菩薩心者가 持於此經하야 乃至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야
자선녀인 발보살심자 지어차경 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爲人演說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云何爲人演說고 不取於相하야 如如不動이니라
위인연설 기복 승피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부동
【冶父】
(說誼 ; 拂盡今時하야사 始得就體니 須知三點水 却向裏頭圓이니라)
23. (二十七, 斷入寂如何說法疑)
何以故오 一切有爲法이 如夢幻泡影하며 如露亦如電하니 應作如是觀이니라
하이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제32분, ‘應化非眞分(응화비진분)’이라.
‘應化(응화)’는 응신, 화신. 진신이 아니다, 진법신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되겠죠.
須菩提야 若有人이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로 持用布施어든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有人(약유인)이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로)로,
무량아승지세계, 저 앞에서 뭐 항하사 세계, 이런 표현을 했죠? 여~러번 이런 표현이 나오죠. 한량없는 아승지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가득 채운 칠보로써,
持用布施(지용보시)어든, 그것을 가져서 보시에 쓴다.
‘持用布施(지용보시)’가져서 보시에 활용한다, 이 뜻입니다.
‘持用布施(지용보시)’하는 것.
‘隨緣消舊業(수연소구업)’주1)
출처 무비스님 문수경전연구회 임제록 강좌
但能隨緣消舊業(단능수연소구업)하고 任運著衣裳(임운착의상)하야
다만 능히 인연 따라서 옛 업이 녹아지고, 運[운;사정]에 맡겨서 옷입고
要行卽行(요행즉행)하며 要坐卽坐(요좌즉좌)하야 無一念心希求佛果(무일념심희구불과)니,
행하기를 요하면은 곧 행하며, 앉기를 요하면 곧 앉아서,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서, 한 순간의 마음도, 佛果, 부처의 결과를 희구하는 것이 없다.
緣何如此(연하여차)오 古人云(고인운), 欲作業求佛(약욕작업구불)이면 佛是生死大兆(불시생사대조)라하니라
무엇을 인연해서 이와 같이 되는가?
古人[양나라 지공 화상]이 이르시기를, 업을 지어서 부처를 구한다면,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하나 더 올려 놓는 거와 같다 하였느니라.
문수경전연구회 임제록 강좌/시중 10-5 중 일부
기록 禪慧珠
http://cafe.daum.net/yumhwasil/CklL/11
5강 3부(2012.01.16) 마침
첫댓글 생활속불교에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거룩하신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
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
원공법계 제 중생
자타일시 성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