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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울로 올라갔던 다음날, 다시 내려와서
다음날 봤던 시험은 완전히 엉망진창 이였다.
이 시험을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 했었는데.
정말 처음으로 밤을 새가며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어제 나이트 클럽에서 봤던 유현과 그 여자의 모습이
시험 보던 도중 자꾸만 떠올라서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 학기는 이 시험으로 마지막 학점을 매길꺼에요."
안그래도 엉망인 내 기분을
더욱 더 다운되게 만드는 교수님에 말씀.
하아.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점이 턱 없이 모자랄텐데-.
덕분에 졸업도 남들보다 더 늦게하겠구만..
완전히 망쳐버린 기분을
떠안고 가방을 싸기 시작했는데.
그 때 마침 내 귀로 들려오는 반가운 소리.
"따라서, 점수가 낮은 사람들에게는
한 번 더 기회를 주겠어요.
주어진 과제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 리포트를 작성하면,
그 리포트로 점수를 매겨 조금 반영하도록 할거에요."
언제나 저 교수님이 미웠었는데.
심지어는 늙은 여우라고 불러왔었는데.
지금 저 말을 하는 교수님에 뺨에 뽀뽀라도 해드리고 싶은 심정이였다.
덕분에 암담하고 깜깜했던 눈 앞에서
한 줄기 빛에 희망이 내려오는 듯했다.
........
...................
가방을 싸고 나와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돌아왔을 때 쯔음.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해오는 것이 느껴졌다.
..
-지 유현-
발신자 정보를 보니..
내 남자친구, 유현이였다.
그의 이름이 찍혀나오는 액정을 보며
잠시 고민하였다.
받을까. 아니면 받지 말까.
...한참동안 핸드폰만을 내려보다가
결국 진동은 끊겼고,
부재중 전화라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
결국 또 오랫동안 그 화면만 바라보다가
침을 꿀꺽 한 번 삼키고는.
..유현의 번호를 선택한 뒤 통화 버튼을 꾸욱 눌렀다.
.....
'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루.'
몇 번의 신호음이 흐르고.
딸깍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유현이 전화를 받았다.
-"어, 예화야."
부드러운 그의 음성이 내 귀로 들려온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걸
깨달았을 즈음에는
유현과 춤추던 그여자의 모습이 떠올라버리고.
내 입에 걸렸던 미소는 싹 가셔버린다.
"왜 전화했었어?"
나도 모르게 뱉어내어 버린
퉁명스러운 목소리.
..한동안 그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빰빠밤빠밤 빰빠밤빠밤 빰빠밤빠밤!!!!!!!!!
예화와 유현의 800 일을 축하합니다!!!!!!!"
커다란 유현의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로 신나게 들려오면....
그제서야 난 달력을 넘겨보았다.
언젠가 유현이 멋대로 내 달력에
낙서를 해놓아두었었는데, 내일이 딱 800 일 이라고 쓰여있었다.
-"우리 내일 벌써 800 일이다 예화야."
....800 일..
벌써 그렇게 되었나.
"그렇네. 만난지 800 일이나 됬네."
여전히 틱틱 거리는 듯한 말투를
바꿀 수가 없었다.
조금 쯤은 상냥하게 대답해주고 싶어도
어제의 그 여자와 유현의 모습을 생각만 하면
화가 나고, 이 녀석이 괘씸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서울 올라오지 않을래?
같은 과 친구들이랑 선배들이 너 보고 싶다고 그래서."
..같은 과.... 친구들이랑.. 선배?
그 말에 또 다시 즉각 떠오르는 유현의 행복한 표정.
내 앞에서는 자주 지어보이지 않았던
환하고 신나게 웃고 있는 즐거운 표정...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너무도 신나게 떠들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또 다시 왠지 모르게 기분이 불쾌해져만 갔다.
-"예화야? 내 말 들..."
"미안. 못가-."
유현의 말을 도중에 뚝 끊어버린채
말해버렸다.
그러자, 내 딱자른 대답에
당황한 목소리로 더 말을 잇는 유현이였다.
-"예화야, 내일만 시간 내주라.
응? 우리 내일이면 800 일 이잖아."
"미안."
연신 안된다는 대답만 되풀이 하는
내게 결국은 비는 듯한 목소리까지 자아내며
매달리는 유현 이였다.
몇 번이나 매몰차게 안된다고
말을 했지만 그는 포기 할 줄을 몰랐다.
....또 다시 '안되' 라고
모질게 말을 뱉어내려던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친 생각.
...유현의 자존심을 한 번에 짓눌러 버릴 수 있는 것이였다.
조금은 잔인하다고 생각되기도 했지만,
어제 나와 다른 여자에게 실실 웃어주며
같이 춤을 추던 유현의 모습을 떠올리며 괘씸하다는
생각으로 내 머리를 꽉 채워버린 뒤 정당화 시켜버렸다.
그리고는..
비열한 미소를 얼굴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내일 보자."
내 대답을 듣자, 유현의
뛸 듯이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예화야!!
약속한거다? 그럼 내일 서울로 올라오는거지?"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그가
가소롭게만 느껴졌다.
"그래. 내일 서울로 갈꺼야.
그대신, 너희 같은 과 선배랑 친구 잔뜩 불러.
기왕이면 사람 많은게 좋잖아!!"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한 그의 우렁찬 대답소리에
난 그를 속으로 비웃어주었다.
내일이면 무너질 자신의 무너짐에 얼마나 비참함을 느낄까.
...
[서울 XX구 XXX동 Reddish로 5시 까지 와^^-유현]
난 비웃음을 얼굴에 머금으며 그의
문자를 받았다.
...지 유현.
내일이면 그 잘나신 선배들과 친구들 앞에서
잔뜩 초조해하고 결국엔 창피 당할 각오는 되어있겠지?
내일이.. 기대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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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저기 멀리 수혁이가 보인다.
여전히 단정한 머리 스타일이지만,
건들건들한 그의 포즈가 어디 가겠는가.
미리 서울 올라온다고 연락을 해두었을 때는
투덜투덜 대면서 마중 안나온다고
그러더니만. 결국 나와줬네. 뭐.
"야!!!!!! 강 수혁!!!!!!!!!!!!!!"
큰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고.
건들건들. 마치 양아치 처럼.....
아니, 정정하겠다. 저 놈은 양아치가 맞으니까.
어찌됬든.
양아치의 전형적인 자세로 삐딱하게
서있던 놈이 자신을 부르는 날 발견했는지
그제서야 내게 다가오려 발걸음을 옮기는 그였다.
바로 코 앞에 선 그에게
내가 씨익 웃어주자.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저께 서울 올라왔던 놈이
얼마나 됬다고 왜 또 왔냐?"
툴툴 대면서도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을
얼른 대신 들어주는 수혁이 놈.
대충 상황짐작이 가셨으리라 믿지만.
덧붙이자면, 현재 이곳은 서울역.
어제 유현과의 약속을 잡자마자 표부터 끊어버린 나였고.
결국 이렇게 서울로 또 다시 올라와버렸다.
작성해야할 리포트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내가 진행하려는 일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기에
망설임 없이 서울로 와버린 나였다.
"볼일이 있어서 올라왔어."
"무슨 볼일?"
잠시 그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었고.
".........왕자님.. 짓밟기."
내 대답에 살짝 표정을 굳히는 수혁이.
...이내 내 머리를 툭 치며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왠만큼 해라. 그 남자도 너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건데.."
어울리지도 않는 충고를 하려는 수혁에게
난 황당하다는 얼굴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이제와서 철들었냐 강 수혁?
고등학교 때는 옆에서 나보다 더 쌤통이라며 좋아하던 놈이.."
"야야. 나 아직도 고등학생이라고.
복학했다니까."
"어쨌든."
수혁이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분명히 그만두라는 둥 아서라는 둥의 잔소리일 것이
뻔했기에 먼저 발걸음을 옮김으로써
그의 나오려는 말을 막아버렸다.
서울역을 나오며.
시계를 보니.. 4 시 30 분 이였다.
...
지금 여기서 바로 출발한다면,
유현과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인 Reddish에
약속 시간인 5 시 까지 무사히 도착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그렇게 칼같이 약속시간에 맞추어 간다면.
.....여기에 온 보람이 없잖아.?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운전석에 앉아서 어디로 갈꺼냐고 물으며
차 키로 시동을 걸고 있는 수혁이에게
대답했다.
"우선 너희 집 가서 저녁부터 먹자."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지.
그런 날 넌 멍청하게 기다리는거야.
암, 그래야 착한 내 왕자님이지.
그래야 내가 그 착한 왕자님을 짓밟을 수 있지.
.......
....................
..
시간은 너무 지루하게 흘러갔다.
1 초가 1 분 처럼 느껴졌고,
지금 수혁이 자신의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동안에
보고 있는 TV 쇼 프로그램도 전혀 웃기지가 않았다.
약속시간인 5 시가 지나가는 걸 시계를
통해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불안해져왔다.
지금이라도 그냥 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고 있으면...
내안의 또 다른 내가 그 생각을 하는 것을
멈추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뭐야.
지금 뭐하자는 플레이야 은 예화?.
이제와서 마음이 약해진다고?
뭐때문에?
니가 원하던 일이잖아!!
너에게 헌신적으로 사랑만을 바치는
그 모든 것을 가진 왕자님을 짓밟는거!!!!!!
그걸 위해 지금까지 녀석과 사겨온거잖아.
뭘 망설여.
불공평한 하늘을 탓해야하는거야.
나에게는 이런 빌어먹을 상황과 빌어먹을 성격을
주시고 유현에게는 완벽한 배경과 제너러스한 성격을 주신
그 불공평한 하늘을 탓해야지.
상관없잖아?
내가 원하는건.
그 뭐든지 완벽한 그 녀석이
나 때문에 무너지고 망가지고 상처 받는거야.
..그래.
그게.. 그게 내가 원하는거야.
애써 지금 내가 하는 이 못된 행동을
정당화 시킴으로써 잠시나마 그 불안함이 사라지는 듯 했다.
약속한 시간에서 30 분이란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내 핸드폰이 진동함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이 핸드폰을 받으면 재미가 없지.
난 그저 무시한채로 진동 소리가 듣기 싫어서 수혁의
쇼파 배게로 핸드폰을 꽉 눌러놓았다.
그리고는 수혁의 부름에 따라
저녁을 먹고. 웃고 떠들며 수다를 떨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금 현재 날 기다리고 있을 왕자님을 비웃으며.
그리고 그가 잔뜩 불러모은 잘난 선배들과 후배들에게
한 순간에 여자친구에게 바람맞는 못난 놈으로 절락하는 그를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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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저녁 먹은 후,
아예 동네 작은 슈퍼마켓에서 소주를 보따리채
싸들고 본격적으로 술판을 벌이기 시작한 수혁과 나 였다.
전에도 이미 말했듯이.
난 술을 그다지 잘 마시는 편이 아니기에
되도록 자제하려고 노력하고 노력을 또 해보아도..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안감을
해소 하려는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이 술로 향해간다.
작은 소주잔은 또 어디서 났는지.
부엌에서 소주 전용 잔을 가져오는 수혁의 모습에
난 피식 웃어버렸다.
"고등학교 복학생이라는 놈이
소주잔 까지 집에 두고 사냐? 어지간히 해라~ 너도."
"그런 고등학교 복학생한테
술판 벌이자고 제안한 인간이 누구더라?"
"큭큭.그 인간이 나다, 임마.~"
별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가
둘 사이에 오고가고.
그 뒤로는 소주병 부딪히는 소리와
꿀꺽 꿀꺽 술 삼키는 소리만 조용히 집 안에서
울려퍼질 뿐 이였다.
그리고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꽤나 많은 양의 소주병들이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고.
슬슬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대화도 오고가지 않는 이 지루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리모콘으로 TV를 켜자, 들려오는 수혁의 목소리.
"그나저나 볼일이 대채 뭔데 이 시간 까지
우리 집에서 떡하니 자리 차지 하고 있냐."
수혁이의 핀잔 아닌 핀잔에
슬쩍 손목 시계를 바라보면.
어느 덧 시간은 8 시에 가까웠다.
약속시간으로 부터 3 시간 이라는 시간이
벌써 흘러버린 것이다.
....유현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갔을려나?.
선배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을 보였을까.
날 욕하며 자리를 떴을까?
아니면 별 것 아닌 나같은 여자에게
바람 맞아버린 유현을 불쌍히 여기며 가버렸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문득 아까전 배개 아래 두었던 핸드폰이 떠오른다.
-부재중 전화 31 건.-
..내가 받지 않은 부재중 전화가
그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하며 떡하니 핸드폰 화면에
뜨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면..
역시나.
역시나 모든 번호는 유현의 이름을 달고 있다.
.....제기랄.
..왜 이렇게 불안해오는거지.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겠지...
...
갑자기 밀려오는 이상한 기분에
어쩔줄 몰라 안절 부절 하고 있으면..
그 감정을 일시적인 것이라고 치부해버린채
입술을 꽉 깨문다.
마음 약해져서는 안되.
유현을 만난 이유가 뭔데?
보여주기 위해서잖아.
이 불공평하기 그지 없는 세상에다가
나 같이 못나고 나쁜 년이 유현 처럼 잘나고 완벽한 왕자님을
비참히 짓밟을 수 있다는 거 똑똑히 보여주려는거잖아!!!.
마음을 독하게
표독스럽게 한 번더 다시 먹고.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는데.
또 다시 한 번 진동으로 울려오는 나의 핸드폰.
..발신자정보에 뜨는 이름은.
역시.. 어김없이 유현이였다.
받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플립을 열었고.
전화를 받자마자 핸드폰 너머로
크게 들려오는 유현의 목소리.
-"예화야 어디야!!!!!!!!!!!!!
전화는 왜 안 받았어!!!!!!!!!!!!!!!!
혹시 무슨 일 있는거야?!!!!!!!."
....왜. 화를 내지 않는거야.
욕이라도 실컷 들을 각오로
받은 전화인데.
왜 큰소리로 내 걱정부터 하는거야.
너란 남자.
왜 뼛속까지 그렇게 착해서
날 더 나쁜 년으로 만드는거야?.
....
질끈 눈을 감았다.
"나 지금 수혁이랑 있어."
그리고는.
유현의 다급하던 그 목소리가
거짓말 처럼 뚝 끊겼다.
한참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을 먼저 깬건 내가 아닌 유현이였다.
-"........서울.. 이야..?"
..
"어. 서울에 4 시 30 분에 도착했었어."
내가 생각해도 참 잔인한 목소리.
....유현은..
내 목소리를 어떤 표정으로 듣고 있을까.?
"솔직히 누가 촌스럽게 800 일 파티
꼬박꼬박 챙기고 그래, 요즘? 나 수혁이랑 할 말도
있고 술도 마실 겸 해서 좀 놀다 갈거야. 괜찮지?"
.....묵묵무답.
저 무심한 소리를 들으며.
유현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비참한 표정?
화난 표정?
얼빠진 표정?
아니면. 무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무래도 좋아.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넌 지금 자신에 비해 훨씬 보잘 것 없는 여자한테
보기좋게 놀림 당했다는거야.
지금쯤이면.
너도 깨달았겠지.
그래.
똑똑하고 머리까지 좋은 너니까.
..그래서 짜증나는 너니까.
지금 쯤이면 내가 널 가지고 놀았다는 걸
당연히 깨달았을 거야.
.............한참동안의 침묵이 흐른뒤..
아까와는 사뭇 다른
유현의 단호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를 통해
들려온다.
-"기다릴께. 은 예화.
9 시 까지. 여기서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께.
나와줘. 제발.."
....
..애절하고. 왠지 모르게
슬플정도로 잠긴 그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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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의 그런 슬픈 음성이 내 귀를 파고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한 쪽 가슴이 아려오고.
초조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아까보다 더 증폭한다.
"..........."
내가 아무런 대답도 않자,
한층 더 안타깝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는
유현.
.....
...그가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는 슬픈.. 아주 슬픈 목소리.
-"...날. 아주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9 시 까지 나와."
"..........."
-"알고있었어.
니가 날 바라보는 눈빛은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이 아니란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어.. 너만 내 옆에 있는다면."
.....
....질끈.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파온다.
알고 있었다고.
이미 다 알고 있었단 말이지 넌?.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
니가 9 시 까지 여기로 나오지 않는다면..
내 마음. 완벽히 접을께-."
...뭐라고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전화는 끊겨버렸다.
뚜뚜뚜 거리는 통화 종료음도
왠지 구슬프게만 들렸고 여전히 내 귀에서는
유현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멤돌았다.
알고있었다고.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걸 알고 있었다고.?
그러면서도 내 옆에 있었다는거구나.
그러면서도 내가 주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낸거구나.
......넌.
넌 언제나 그렇게 착한 놈으로 남아버리고.
..난.. 난 언제나 이렇게 나쁜 년으로 몰아가버리는구나.
그게 아니란 걸 잘 알면서도.
너무도 잘 알면서도 구실이 필요했다.
내가 유현을 지금까지 괴롭혀왔던, 못살게굴어왔던
모든 일들을 정당화 시킬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증오와 미움과 비웃음 가득한 혐오감일 뿐이야.
그래. 그 뿐이야.
....이미 끊겨버린 통화임에도 불구하고
한참동안 핸드폰을 내려둘 수가 없었다.
눈물 날 정도로 그 녀석이 밉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은 뭐지?
날 자꾸만 흔드는 이 감정은 뭐냐고.
...
핸드폰을 닫고. 살짝 바닥에 내려놓고는
다시 한 번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해보았다.
....귓볼까지 빨개져서는 마치
수줍은 어린 소녀마냥 안절부절 못하던 모습으로 고백을 해오던 너였지.
유능하고 이름도 널리 알려진 인자하고
자상한 인상의 아버지. 아름답고 품위있는 귀부인 같은 어머니.
전교 top 3 를 놓져본 적이 없는 명석하기 그지 없는 머리.
그 또 다른 증거로 붙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 힘들다는 명문대 수석 입학을 했지.
그 뿐만이 아니야.
핸섬한 얼굴에 훤칠한 키와 모든 여성이 흠모할 만한 매너.
그게 니가 가지고 있던 것들.
아니,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들.
날 자꾸만 너와 비교하게 만드는 배경들.
..
초라했지.
너에 비하면 난 날파리만도 못할 만큼 초라하고 초라했지.
..아니, 여전히 초라하지.
알콜중독자라는 판명을 받은 무기력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폭력에 끝내 날 버리고 멀리 가버리신 어머니.
그것들만이 아니야.
그런 환경에서 자라버린 탓일까.
빌어먹을 정도로 못된 내 성격.
그리고 아직도 난 기억해.
학생주임 선생님께 담배 피다 걸린 것으로 모질게
뺨을 내리맞았을 때. 너의 한마디로 난 해방되었지.
보통 사람들은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열등감에 휩쌓여 살던 내겐 그건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였고
너와 나는 확연히 다르다는걸 깨닫게 해준 기회였어.
.......그 때부터 니가 미웠어.
아니. 그 전부터 니가 싫긴 했지만.
....
그래. 난 유현이 싫은데.
모든걸 다 갖춘 잘나기 그지 없는 그 자식이
너무 미운데.
초라한 내 모습을 일깨워주는 그가 싫은데....
...왜..... 왜..왜!!!!!!!..
왜 자꾸만 이런 마음이 드는거야.
...
......빌어먹을 정도로 싫어. 이런 기분.
너무나도 짜증나.
갈팡질팡 내 감정에 결론을 끝내 내리지 못하고
수혁의 부름에 살짝 눈을 떴다.
"뭐야. 명상이라도 하냐?"
..
"난.. 지 유현 그자식이 싫어."
".....뭐라는거야.."
"항상 날 비참하게 만드는 그 자식이 싫다구!!!!!!!.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해!!!!!!!
난 단지 그 자식이 미울 뿐인데!!! 이 빌어먹을 기분은 뭐야!!!!!.."
"은 예화!! 진정해!!!!! 너 취했어.!!!!!"
"절대로 가지 않아. 9 시?
하. 웃기지말라고 그래!!!!!!! 어디 10 시 11 시 까지
혼자 잘난 척 하며 기다려보라 그러지!!!!?"
....난 니가 미운거야.
단지 그 뿐인거야. 정말.. 그 뿐인거야.
절대로 가지 않아.
내가 그 녀석에게 줄 건 아무것도 없어.
다만 지독한 상처를 안겨주겠어.
몇 년간이나 내가 느꼈던.
아니. 내 평생동안 느껴왔던 그 모든 비참함 만큼
널 아프게 만들고 말거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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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치 어쩔 줄 몰라하는 날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수혁의 집 거실에 걸려있는 뻐국이 시계는
야속하게도 9 시를 알리며 9 번을 울어대었다.
거실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소주병들이
굴러다니고. 집안에서는 술 냄새가 코를 찌를 듯이 나고 있었다.
수혁이는 벌써 소주병을 품에 안은 채로
곤히 잠에 골아떨어져버렸지만,
난 여전히 깨어있었으며
빌어먹을 시계를 욕하며 술만 연신 퍼부어대고 있었다.
...나가지 않아.
절대로 유현에게 가지 않아.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걸 듯이
계속해서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만 흔들리는 머저리같은
내 모습이 보기 싫었기 때문에.
.......
지 유현..
니가 잘난건 부정하지 않겠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런 잘난 니가 가질 수 없다는 게
있다는 거 꼭 보여주고야 말겠어.
내게 반한 멍청한 왕자님. 바보같이 착하기만 왕자님.
항상 여유로운 미소와 상처와 고통이란건
모를 것 같은 따뜻한 표정.
...그 온화한 얼굴을 한순간에
상처와 고통과 아픔으로 얼룩지고 일그러트려버리는게
아무 보잘 것 없는 쓰레기 같은 여자라는거.
이 빌어먹을 세상에 보여줄꺼야.
불공평하고 평등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다가 똑똑히 보여주겠어.
이를 꽉 악물고 몇 번 째 들이키는
건지 기억조차 희미한 소주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술이 약한 나 이기에
안주도 없이 마시는 소주는 상당히 독했고.
멀쩡히 버텨낼리 만무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마시고 마셔도 정신은 말짱했다.
....아니..
아니다.
말짱한게 아닌가보다.
유현의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서 아른거리는 걸 보면.
계속해서 유현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내가 제정신은 아닌가 보다.
..
".....제기랄.. 제길.... 빌어먹을."
자꾸만 밀려오는 답답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낮게 욕을 읊조리고 있으면
수혁이가 큰 소리로 잠꼬대를 하며 그런 내 욕을 묻어버리고야 만다.
....
한참이나 수혁이의 우스꽝 스러운
잠꼬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헤실헤실 웃다가 엉엉 우는 그의 잠꼬대는 참으로
우스웠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왜 이런거야.
왜 이런 빌어먹을 기분이 드는거야.
............
.....왜 자꾸 시계로만 시선이 가는거고.
왜 자꾸 핸드폰으로 손이 가는거야..!!!..
....초조한 마음에 손톱을 자꾸만 물어뜯었다.
9 시 정각에서 분침이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그 불안감은 더해져만 갔다.
아무리 TV를 틀어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고정시켜놓아도
기분 전환은 커녕 그들의 말과 행동이
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만 이제는 9 시 20 분을 가리키는 시계에만
눈이 갈 뿐 이였다.
'드르르르륵.드르르르륵..'
내 초조한 마음을 눈치라도 챈듯.
내 마음속에 흔들림을 더욱 세게 일으켜대려는 것 처럼
핸드폰이 때 마침 진동해오기 시작했다.
발신자 정보는 당연히..
....지유현. 그 였다.
'딸깍.'
...핸드폰 배터리를 떨리는 손으로 빼내어 버리고.
자꾸만 일어나는 흔들림에
그 빼버린 배터리를 부엌 쪽으로 던져버렸다.
...
계속되는 흔들림과 유현의 애절한 목소리가
날 괴롭혀대었지만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엿 시계는 10 시를 훌쩍 넘겨버린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도 그 자식.
날 기다리고 있을까..
......
...한참을 그렇게 유현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꽉 메우고 있다가..
....결국 벌떡 일어나버린 나 였다.
자고 있는 수혁을 지나쳐서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신발장 위에 올려놓았던
핸드백을 어깨에 맨 채로 수혁의 집을 나섰다.
.....기왕 이렇게 된거.
유현의 얼굴이라도 봐줘야지.
그리고 실컷 비웃어 줘야지.
...바보 같은 남자.
나 같은 쓰레기 같은 여자에게 반했다가
배신당하고 상처받고 지독히 아파하는 그의 얼굴을
똑똑히 봐둬야지.
그리고 빌어먹을 몹쓸 세상에다
외치는 거야.
어때!!!!!!. 못되고 더러운 년한테 짓밟히는
왕자님이란거 생각이나 해본적 있어?!!!!!!!!!!!!.
.......라고.....
이겼다는 통쾌한 웃음과
패자를 향한 비웃음을 섞어가며.
...
또각또각.
..처음에는 일정하던 구두굽 소리가
점점 더 빨라지고..
약속장소 였던 카페 Reddish 가 흐릿하게 보일 즘에는
거의 뛰다 싶이한 내 모습이였다.
잠시 손목 시계를 흘끔 바라보니
시간은 10 시 40 분.
본래 약속 시간이였던 오후 5 시로부터
5 시간 40 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
.....유현이 혹시 가버리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유현이라면.. 내가 아는 '지 유현'이라는 남자라면 절대로
그냥 자리를 떴을리가 없었기에 확신을 가지고 Reddish로 갈수있었다.
Reddish..
고등학교 시절. 유현과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부터
지방으로 대학을 위해 내려가기 전까지
모든 데이트의 만나는 장소가 되어왔던 카페.
어렴풋이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아니. 추억이라고 할 만한 대단한 것도 없지만..
어찌됬든. 그 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Reddish 에 카페 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본 안은
평소보다 상당히 어두웠고. 분위기도 달랐다.
.....이상하다.
원래 이 카페가 이 지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카페 라서 사람이 항상 붐비고는 했는데.
심지어는 이 시간 까지도 왁자지껄 할 정도로 붐비는 카페였는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사람 또한 없었다.
의아한 마음을 품은 채로
결국 카페의 문을 열어 살짝 고개를 넣어 카페 안을 들여다보면..
........내 눈앞에 펼쳐지는..
도저히 믿지 못할 광경..
.
...........
.......................세상에.
....세..상에....
..
나도 모르게 크게 벌려지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완전히 카페 안에 발을 들여놓고
유리문을 살짝 닫으면...
........더욱 더 큰 놀라움에 할 말을 잃고 만 나 였다.
[예화야 사랑해.]
[축하합니다! 예화와 유현이의 800 일을 축하합니다!]
[예화랑 유현이랑 오래 오래 예쁜 사랑 나누자.]
화려하게 꾸며진 플랜 카드와 배너들.
그 넓디 넓은 카페 안이
그 화려한 배너와 플랜 카드, 그리고 여러 색깔의 풍선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시선을 가장 사로잡는 것은..
....
[예화야. 나랑 결혼해주지 않을래?]
..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배너였다-.
..........
.....순간..
심장이 확 멎어버리는 듯한 느낌..
.....그런.. 알 수 없는 느낌이 휩쌓여버린 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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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가시려는 경우, 메일을 먼저 보내주세요. (kissing_him@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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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예화야. 나랑 결혼해주지 않을래?]
......저 문구를 보는 순간.
사고가 정지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 안은 온통
풍선들과 그 외의 데코레이션들로 가득 차 있었고.
하나 하나 손이 안간 곳이 없는 것 같은
그런 정성스럽게 꾸며진 실내 였다.
.....도저히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건지.
결혼은 무슨 이야기고 또 갑자기 밀려오는 이 감정은
도대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건지.
..혼란에 빠진채로
어쩔 줄을 몰라 그저 멍하니 서있으면..
"은 예화."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차갑고. 또 싸늘한 그런 목소리.
유현의 목소리.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뜰 정도로
흠칫 놀래버렸다.
정말, 아주 깜짝 놀랐다.
그 싸늘하고 얼어붙어있는 듯한 딱딱한
목소리는 유현의 것이였다.
....
........항상..
내게 따뜻하고 자상한 목소리만 들려주던
유현의 것이 였다.
...믿기 힘들정도 였지만, 분명히 유현의 목소리였다.
처음으로 듣는 그의 차가운 저음에
나도 모르게 확 긴장을 해버리고.
침을 꿀꺽 목구멍 너머로 삼켜버린 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서보았다.
.....그리고.
..그리고 그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한층더 세련되진 머리 스타일을 한 채로
멋지게 정장을 빼입고. 한 손에는 장미꽃을 들고 있는 그가 보였다.
이미 그의 손에 들려있는 장미는
생기를 잃은 채 시들시들해 보였고
그것이 그가 얼마나 날 오랫동안 기다렸는가를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
"........이게.. 니 대답이지?."
..카페 유리 문 옆에 걸려있는 시계를
가르키며 그가 말했다.
이미 10 시 40 분을 훌쩍 넘긴 시간.
....
............소름돋을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
처음으로.
처음으로 들어보는 그의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에
난 그만 얼어버렸다.
그냥 그 자리에서 뭐라고 말도 하지 못한채.
미동도 하지 않은채로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렸다.
...
..........여전히 시계를 가리키고 있는
그의 손을 힘없이 떨구었고.
난 말 없이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울고 있었다.
그의 눈이.
너무나도 구슬프게 울고있었다.
..내 앞에서는 언제나 눈부신 미소만
보여주던 그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
아아.
내가 대채 무슨 짓을 한걸까.
...내가.. 내가..
..
'툭.'
작은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들고있던
장미 꽃 다발을 놓아버렸다.
땅바닥에 떨어져서는 이리 저리 흩어진 장미 꽃 잎들.
이제는 시들시들해져버린 장미 꽃.. 잎들....
..그리고.
장미 꽃 다발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유현이 날 노려보았다.
.....너무도 시린 시선으로.
날 노려보며... 그는 입을 열었고.
난 그저 입도 뻥긋 하지 못한 채 바보처럼 서있어야만 했다.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 은 예화."
...
.............
도저히 유현이 내뱉은 목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차갑고 어조 없는 말투였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멍하니 정말 바보 처럼 서있는 나를 지나쳐
카페 문으로 나가버렸다.
....멍하니..
..한참을 아주 멍하니....
그가 나갔다는 걸 내게 마치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짤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솟구쳐오르는 눈물에.
그리고 확 힘이 빠져버린 내 다리 때문에.
카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바닥에 내팽겨쳐버린 시든 장미처럼.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유현의 아픈 얼굴은. 그의 얼어버린 목소리는.
내가 상상해오던 그런 짓밟음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비웃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내 가슴이 비수로 갈기갈기 찢겨나가는것 같았다.
.......
...........................
.........
......................
..
"유현아!!!!!! 나 커피!!!!!!!!.."
....
..리포트를 작성하던 도중.
꽤액 크게 소리를 질러놓고. 대답이 없는
유현에게 뭐라고 하려고 벌떡 일어나보면.
..그제서야 떠오른다.
아아. 그는 오지 않았지 참.
....
그가 그렇게 떠나고 난 뒤 처음 찾아온 주말.
....내가 지방에 내려온 뒤로.
유현이 날 찾아오지 않은 토요일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갑자기 이 오피스텔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것 같다.
씁쓸한 기분에 젖어들며.
그 날 서울로 올라가버렸던 탓에
늦어버린 리포트 작성에 몰두하고 있는 나 였다.
..지금 시간 쯤이면
유현이 자신이 정성스레 끓인 동태찌개를
식탁에 올려두고는 먹어보라며 환하게 웃어줬었는데.
..할줄 아는게 찌개류 밖에 없는 놈이
그래도 나 먹인다고 앞치마 까지 둘러가며 진짜 열심히 요리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부엌을 바라보면..
텅 비어있는 주방.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도 없고.
빨리와서 먹으라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부엌을 가득 찬 것처럼 보여주는 유현이 없다.
너무나도 공허해보이는 오피스텔 안.
이렇게 컸던가.
....오피스텔이 이렇게 컸던가..
..아니면.....
그마만큼 유현의 자리가 컸던건가..
.....
또 다시 눈물이 흐르려는 걸 애써 참았다.
그 날.
유현과 내가 사귄지 800 일이 되던 날.
그를 농락한 나를 그가 보기 좋게 버리던 그 날..
유현이 냉정하게 카페를 나가버린 뒤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평생을 살아오며
흘려봤던 눈물의 양을 다 합쳐도 그날 밤 흘렸던
눈물의 양보다는 훨씬 적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왜 눈물이 흘렀는지.
내가 왜 그리도 서럽게 엉엉 울어댔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유현의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저음의 음성과.
너무나도 아파보이는 상처받은 표정과.
그 동안 내게 받아왔던 상처를 담아낸 그의 눈물 한 방울이
왜 내 숨을 멎게 했는지. 그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제서야 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
............그의 빈 자리를..
너무나 공허하게 비어버린 유현의 자리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나.. 니가 좋아 예화야.'
..
'예화야. 너 동태찌개 좋아해?'
'너 한테는 이 분홍색이 잘 어울려.'
'....사랑해, 예화야.'
..
환상처럼.. 마치 내 곁에서 머무르는 환영처럼.
그의 목소리는 내 귀를 떠날 줄을 몰랐다.
...
지금처럼 문득 과제를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날 보며 환하게 웃는 유현이 눈에 아른거렸다.
3 년이란 기간 동안 나도 모르게.
난 유현을 내게 흡수해 버린 것이였다.
...그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버렸다.
...............그리고...
....바보같게도.
...그걸 이제서야 깨달아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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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랑해, 예화야.'
......
................................
..쑥쓰러운 듯이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여주던
사랑한단 말이 듣고 싶다.
유현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그 우스꽝 스러운
모습 마저도 미칠듯이 그립다.
....모든게 한 번에 정리가 되어버린다.
단 두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단어가 모든 혼란을 잠재운다.
......'사랑'........
.............
아아.
내가 그를 사랑했구나.
내가 그를 사랑하는구나.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구나.
항상 유현의 미소를 볼 때면 느껴지던
이상한 감정도.
애써 그를 외면하면 할 수록 무거워지는
가슴 한 구석도.
다 사랑이란 감정 때문에 그랬던 거구나.
너무 뒤늦게 깨달아버린 한 가지.
내가 지 유현을 사랑한다.
...
항상 모진 말로 그에게 상처를 입힌 나 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그 였는데.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내가 차버린 것이다.
빛을 잃어가는 유현의 사랑에 희망을..
..그 애절하고 안타까운 마지막 희망을....
내가 엉망으로 짓밟아 버렸어.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걸었던 기대를 모질게 깨트려버린 거야.
그의 상처받은 눈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미칠 것 같이 그가 보고싶었다.
.....
...생각해보면.. 난 정말 많이 사랑받고 있었다.
유현은. 내 남자친구 유현은..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해주는 남자였다.
내가 아무리 상처주는 말로
투정을 부리고 못살게 괴롭혀도 그는 날 사랑해주었다.
.....비오는 날이면 언제나 우산을
들고 날 마중나오고. 정작 자신은 다 젖어도 내게는 물 한방울
비 한방울 튀기지 않으려 작은 우산 아래를 다 내게 내어주고.
내가 심심할 때면 귀신같이 알아내서는
전화를 걸어주고. 조금이라도 우울한 표정을 내비치면
날 웃게만든 답시고 우스꽝 스러운 광대짓까지 마다하지 않는 유현이였다.
혹시라도 내가 아플 때면 밤낮을 지새어가며
내 옆에서 꼬옥 손을 잡아주고.
끼니 거르는 날 위해 앞치마 두르고 서투른 솜씨로 요리해주고,
언제나 다정하게 웃어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고,
무엇보다 항상 내 곁에 있어줬던..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다.
...
그리고.
너무도 멍청한 난....
너무도 바보같은 난..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가 내 곁을 떠난 뒤에야 깨달아 버렸다.
....이제와서 사랑을 잡기에는
난 너무도 잘못을 많이했고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그럴 자격마저 잃었어.
내겐 그를 잡을 권리 조차 없어.
........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시간을 거꾸려 돌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행동으로 하지 못했던 것들.
실행하지 못했던 것들 중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행동들이 너무나도 많인데...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널 '맘에 들지 않는 사람' 이 아닌
그저 '남자'로 받아들 일 수 있을텐데......
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
..내게서 뒤돌아서는 달려가서 붙잡을 수도 있을텐데...
그리고는 사랑한다고. 미칠 듯이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수도 있을텐데.
..
.............밀려오는 후회와 나에 대한 자기혐감에
나오는 건 눈물 섞인 한숨 뿐 이다.
유현아.
나 너무너무 잘 알어.
내가 용서 받을 가치도 없는 나쁜 년인거.
더이상 널 잡을 자격도 없는 그런 쓰레기 같은 년인거
너무 잘 알어.
....근데..
그런 나라도 넌 사랑해줬잖아.
나 나쁜 년이니까. 원래 이기적인 년이니까...
........나 널 잡아도 될까..
..나 그럴 권리 없는 것 알고있는데..
지금 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 처럼 나쁜년.드러운년.. 다시 한 번만 더 사랑해주면 안될까.
.....유현아... 안될까..
...........
...................
....
"이번 성적이 나빴다고 해서
이런 판단을 섣불리 내린거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
".............."
"일시적인 슬럼프 일 경우가 대부분이야.
너의 경우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하니까...."
"아니요 교수님.
그런 것 때문에 자퇴서를 내는게 아니에요."
..직접 내손으로 작성한
자퇴서를 가운데 두고. 늙은여우.. 아니, 교수님과
면담을 가지고 있는 내 모습에는 확신이 서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 갈꺼에요."
또박또박.
한 글자도 흐리지 않고 말하는 내 모습에
교수님은 당황하신듯 싶었다.
"그래. 아직 늦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힘들거야. 많이 힘들거란다 예화야. 어딜 희망하고 있는데 그러니?"
...
그녀의 물음에.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눈을 뜨고
아까보다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똑똑히 대답했다.
"서울에 있는 S 대요. 꼭 갈거에요."
....
.........
또각또각.
모든 서류 제출이 끝나고 모든 과정을 통과해서
결국 '자퇴' 라는 이름을 걸고 학교를 나왔다.
시끄러운 구두굽 소리마저
경쾌히 들릴 정도로 내 마음은 가벼웠다.
다시 시작하는거야.
인생 재부팅 쯤으로 생각하지 뭐.
미친듯이. 정말 미친듯이 공부해서 가보자 S 대.
내가 전공으로 하고 싶은 컴퓨터 그래픽
학과도 꽤나 알아주는 학교니까.
그리고...
...유현이 있는 학교니까.
바보같이 보일지는 몰라도.
자퇴를 하고 다시 수능을 치룬다는게 어리석어 보일지는 몰라도.
모든 걸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인생 재부팅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나, 은 예화에게 무슨 소릴 지껄여도
듣지 않을 것이다. 아니,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공부도, 사랑도.
둘 다 손에 넣기로 마음 먹었으면
하는거야 은 예화.
얼마나 니가 독한 년인지.
그거 제대로 한 번 보여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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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랑해. 사랑한다고."
얼굴이 잔뜩 발그스름해 진채로
정확하지 않은 발음과 함께 연신 사랑한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예화 였다.
그녀는 그 예쁘고 큰 두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은채
비틀 비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은 예화. 너 많이 취했다."
그런 그녀가 결국에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던 참에 그녀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던
수혁이 예화를 부축했다.
하지만 그런 수혁의 손을 뿌리쳐버리는 예화.
그녀는 여전히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랑한단말이야!!!!! 나쁜 새끼!!!!!!!!!!!!!"
"꼬장 부릴려거든 집에 가서 부려. 사람들이 다 보잖아!!!!"
커다랗게 고함 지르듯이 욕과 사랑한다는 말을
섞어서 내뱉은 예화의 모습을 사람들은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쳐갔다.
하긴.
해가 쨍쨍 내리쬐는 12 시 정오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고함지르는 여자를 본다는 건 그다지
흔치 않은 일이였다.
"나쁜 새끼. 뒤도 안돌아보고 가냐!!!!!!."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는 조금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고야 마는
예화였고, 그런 예화를 말리는 수혁은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니가 아무리 가도!!!! 아무리 날 뿌리치고 가려고 그래도!!!!
넌 절대 그렇게 못해 지 유현!!!!!!!!
왜 냐고?!!!!!!!!!!!"
"은 예화!!!!"
"그래, 맞어!! 내가 은 예화니까!!!!!!.
나쁜 년 못된 년 쓰레기 같은 년 이기적인 년.
그게 바로 나니까!!!!. 절대로 너 그냥 안보내!!! 까짓거!!!!!!!!!
내가 가고 만다 S 대!!!! 가서 너 잡는다고!!!!!!!.."
...그말을 마지막으로.
마치 최후의 발악이라도 했던 것 처럼 그걸 끝으로
예화는 털썩 쓰러지듯 바닥에 누어버렸다.
그렇게 시끄럽고 크게 떠들어대었던게 마치 거짓말이였던 것 처럼
그녀는 조용히 숨소리만 내 쉬며 잠에 들어버렸다.
.....종로 길 바닥 한 가운데서.
"아아악!!!!!!! 은 예화!!!!! 나보고 널 업고 집까지 가라고?!!!!!!!!!!"
야속하게도 그저 길거리에서 뻗어버린
그녀에게 소리도 질러보고 나름대로 화도 내보는 수혁 이였지만
예화는 꼼짝도 않을 뿐 이였고
조금만 더 그대로 길바닥에 방치해 두었다가는
차에 깔려서라도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수혁은 한숨을 푹푹 쉬며
예화를 등에 들쳐업었다.
....새근새근 작은 숨을 몰아내쉬어가며
잠에 들어있는 그녀의 모습은 예뻤다.
수혁이 자제력 좋은 남자가 아니였다면 벌써 길거리 끝 쪽에
있는 여관으로 들어가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마만큼 예화는 충분히 매력적이였으니까.
...................
.........
...드디어 그녀가 깨달은 모양이다.
자기가 유현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이 사랑이란걸.
이제서야 깨달은 모양이다.
수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등에 업혀있는
예화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다짜고짜 서울로 올라와서는 S 대에 간다고.
갈 곳 없는 자기 좀 지내게 해달라며 수혁의 집에 쳐들어왔을 때는
적지 않게 놀란 수혁 이였지만 달리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를 좋아했으니까. 아니. 여전히 좋아하고 있으니까.
비록 일방통행이지만 예화를 향한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 였나?
그래. 중학교 2 학년 이였다.
그녀를 만난것도. 또 예화를 자신의 마음에 담은 지도
어느덧 6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야!! 지 유현!!! 가긴 어딜가... 니가 가긴 어딜...가아..."
....다른 남자 때문에 잔뜩 술에
취해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예화의
모습을 보는건 여간 마음 아픈 일이 아니였지만..
예화에게 자신은 그저 편한 친구일 뿐이니까.
중학교 때 부터 붙어다녔던 절친한 친구 정도 밖에는 되지 않으니까.
이걸로라도 만족했다.
우스꽝 스러운 잠꼬대를 해대는
예화의 모습을 미소가 가득 담긴 얼굴로 바라보며.
6 년 전 그날을 다시 떠올린 수혁이였다.
수혁과 예화가 처음 만난 그 날을.
그리고. 수혁이 예화에게 반한 바로 그 날을..
..
....
............
"자, 주목!!!! 오늘은 새로 전학온 친구 소개를 하겠다."
씨발.
낮게 욕을 읊조리며 미친돼지, 우리 학주의
등장에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있는데.
작지만 예쁜 목소리가 내 귀로 뚜렷히 들려왔다.
".......은 예화.."
..'자기소개'.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자신의 이름만
툭 내뱉고는 입을 꾹 다물어버린 새로 전학온 여자아이.
같은 반 여학생들과 입고 있는 교복이
같은데도 그녀는 달라보였다.
상당히 예쁜 얼굴에도 불구하고 새침하게 입을 꾹 다물고는
아무런 표정도 담고 있지 않은 그녀를 보고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가 어떻게 비슷한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저 은 예화라는 여자아이랑 내가 비슷하단거.
그녀를 처음 보고 느낀 것이였다.
또 뭔가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하얀 얼굴에 나있는 멍자국 이였다.
........어디서 맞은건가..?..
..........
.....너무도 짧은 자기소개에 당황했던 건지
학주는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런건 신경도 안쓴다는 듯이 간단히 무시해버리고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 그 여자아이였다.
뚜벅뚜벅.
'털썩.'
..아무런 말도 없이.
무작정 비어있는 내 옆자리에 앉아버리는 그 여자아이.
덕분에 우리 반 교실은 웅성웅성 거리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차버렸다.
"야야. 저 여자애 강 수혁 옆에 앉았어!!!
저 새끼 꼬라지 보면 질 나쁜 놈이란거 모르나?."
"빈자리 저기도 말고 여러개 있는데
왜 하필이면 강 수혁 옆에 앉았냐? 쟤도 안됬구만."
....밀려오는 짜증에
콰앙 책상을 발로 차버리면.
덕분에 내 앞에 있던 책상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는
언제 그렇게 소란스러웠냐는 듯이 싸아 조용해지는 교실 안.
"..큼큼...!! 그럼 자습하도록."
이제는 아예 날 포기 해버린듯한 학주는 헛기침을
하며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고.
반 아이들은 내 눈치만 보며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이였다.
그렇게 한도안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그 조용함을 깨버리는 작은 목소리.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
"책상 발로 차지마. 시끄러워."
....
..........바로 그 여자아이였다.
은 예화라는 그 새로운 전학생이였다.
그다지 큰 목소리도 아니였지만
아주 또박또박한 말투였고. 그녀의 말은
교실 안을 또 한번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쳤구만. 강 수혁한테 저러다
한 대 맞고 질질 짤텐데."
"쯧쯔. 쟤가 아직 저 놈 성질을 모르는구나.
화나면 여자도 패는 새끼인데."
...
반 아이들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난 오죽 했을까.
화가 난다기보다는 황당했다.
작게 질나쁜 욕을 중얼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똑바로 내 눈을 직시해오는 그녀의 눈동자에
괜스레 자존심이 상한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철없는 나였기에
그 여자아이 앞에 놓여있던 책상도
발로 뻥 차버렸다.
교실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내가 어쩔거냐는 듯한 눈으로 그 여자아이를 바라보면
여전히 무표정 한 얼굴로 나만 쳐다보고 있는 그녀였다.
"....차지말랬잖아. 귀는 어따 쳐박아뒀어?."
아까와 마찬가지로 전혀 주눅들지 않은
목소리와 말투였다.
보통내기가 아니란걸 그제서야 깨달았고
상대해봐야 나만 피곤하단걸 알아버린 나 였기에
작은 목소리로 여전히 욕만 중얼거리며
교실을 나와버렸다.
....황당한 계집애.
거의 내 전용 휴식처가 되어버린
옥상문을 열고, 무작정 누워버렸다.
파란 하늘을 보며 주섬주섬 담배를 주머니에서
뒤적거리고 있으면.
..
"던힐 하나 있으면 나 좀 줘."
언제 왔는지 쭈그리고 앉아서
내게 말을 건내는 아까 그 여자아이.
이름이.. 은 예화라고 그랬나?.
"너 말귀 진짜 못알아먹는구나.
음.. 혹시 귀 먹었어?"
장난이 아닌 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그 여자아이에게 발끈해서는 대답을 했다.
"귀 안먹었고. 나 던힐 말고 말보로 밖에 없어."
내 딴에는 위협적인 목소리였는데
그 여자아이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는 모양이다.
그저 그녀는 툴툴거리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갈 뿐 이였고,
겁을 먹었다든지 그런 표정 따위는 지어보이지도 않았다.
"쳇. 말보로는 나 잘 안피는데.
그럼 말보로라도 주던가."
".....너 담배 피냐?."
....얼굴도 하얗고 예쁘고 천사 같아 가지고는
담배라니.
물론 나도 피지만... 그래도 저 애는 여자아이가 아닌가.
"넌 되고 난 안되는 이유는 뭔데.
있으면 내놔봐."
여전히 당당한 그 여자애의 말에
난 더이상 아무런 말 없이 담배를 순순히 내어주었고.
그런 내게서 담배를 받아들더니만
능숙한 폼으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 입에 무는 그 여자아이.
...
...그리고는 날 보며 씨익 웃는다.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히며 그야말로 예쁜 미소를 짓는다.
...
"너. 나랑 닮은 구석이 많다.
이름이 뭐야?"
..
.....
"......강 수혁.."
담배 물고 있는 천사.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녀는 천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아직도 그날 처음 봤던 그녀의
그 예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
.........
그래 그 때부터였지.
예화를 좋아하게 되버린게.
...문득 떠오른 과거의 회상에
작은 미소를 얼굴에 머금고 있으면.
언제 잠에서 깨어났는지
거실 소파에서 속쓰린다고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예화였다.
"야!!!! 강 수혁!!!!!!!!!!
나 걸쭉한 해장국 좀 끓여줘!!!"
"오케바리바리!!!!"
..
...........짧은.. 수혁의 이야기 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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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서울에 올라와서.
무작정 수혁이 놈에 집으로 쳐들어가버렸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던 수혁이였지만
역시 6 년 우정이란게 그냥 이름만 6 년 우정은 아닌가보다.
갈 곳 없는 날 유일하게 받아준건 역시 수혁이였다.
서울로 올라온 뒤로 가는 곳곳 마다
유현과의 추억이 묻어난다.
하필이면 수혁이 놈 집에 Reddish 에서 가까울 게 뭐람.
....
..그와의 처음 데이트 장소이자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장소.
그 외에도 그와 갔던 공원, 유원지, 산책로, 음식점 기타 등등.
우리는 왜 그렇게도 많이 만나고 싸돌아다녔던 건지.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그와 만들어온
추억거리는 상당한 양이였다.
....그와 내 모습이 겹쳐보일 때마다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과거 회상을 하는 것 뿐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고작. 그것 뿐이였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유현의 오피스텔로 찾아가 보았지만
이미 유현은 그곳에서 나와버린 상태였고.
그의 원래 집주소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였기에
그의 집으로 찾아갈 수 조차 없었다.
어느새 바뀌어버린 그의 핸드폰 번호에
발만 동동 구르며 그의 행방에 대해 알지 못함을 안타까워했지만...
결국 내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건
S 대를 가는 것 뿐이였다.
...
"......후우. 정말 서울에 있는 대학교 가는거
장난이 아니구만.."
재수생들을 위한 학원 등록을 한지도
어느 덧 시간이 꽤 흘렀다.
상당히 빡빡한 공부 스케줄과 산더미 같은
문제집에 이리저리 치어 다니느라 이미 쭈욱 힘이 빠져버린지도 오래였다.
현재 수혁이 놈에 신세를 지고 있었고,
그놈에게 항상 잡일들을 미루어두기 마련이였지만
그 잡일들을 제외하고도 날 지치게 하는 일들을 너무도 많았다.
......아아..
이렇게 밤 늦은 시간 학원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오면.
먼저 떠오르는건 역시나 유현이다.
항상 웃어주고 힘을 복돋아 주던
그는 이미 내 옆에서 사라진지 몇 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날 지극정성으로 지켜주고 옆에서 봐주던
유현의 태도에 너무도 익숙해진 탓인지 그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었다.
....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
수 없이도 많이 그런 생각을 해봤다.
눈 앞에 아른거리는 유현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 눈을 감으면
더욱 더 뚜렷히 떠오르는 그의 환한 미소.
그리고. 그날 밤의 마지막 눈물 한 방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하고 또 해보았지만.
결국에 깨달았다.
흘러버린 시간을 한탄하고 아쉬워해서는 결국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 매달리는 건 너무나도 바보 같은 일이라는 사실.
이런 사실들을 깨달아 버린 이상
내가 하고자 하는 건 아주 분명하다.
내게서 떠나버린 유현에게 다시 다가가기.
그의 사랑을 다시 찾아오기.
....그러기 위해서 내가 우선 첫 번째 목표로
세운 건 바로 S 대 붙기 였다.
고등학교 3 년을 거의 탱자탱자 놀기에
미쳐서 지냈던 나로써는 지방대도 거의 턱걸이로 붙었었는데.
S 대에 합격이라는 목표 자체가
내게는 어림도 없는 일 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보통 사람들과 다르니까.
그마만큼 독하고 질기고 지독한 여자니까.
지금으로써는 유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그를 괴롭혔던
나의 과거처럼.. 아니. 지금은 그보다 더 필사적이다.
...
후우..
무겁고 가슴아픈 마음을 담아낸 짙은 함숨을
내어쉬면.
문득 떠오르는 오늘 들었던 이야기.
"인터넷 강좌가 그렇게 좋다던데..
흠.. 그 웹사이트 주소가 뭐더라........"
이토록 변화한 내 모습에
내 스스로도 놀라며. 그렇게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컴퓨터를 키고는 인터넷 강좌에 몰입하고 있었다.
....
..............
..............................
...........
"은 예화, 우리 놀러가자아."
"안되. 나 공부해야되."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어김없이 내 공부를 방해하려고 하는
수혁이 놈.
참나.
고등학교 복학생이라는 놈이
저렇게 맨날 학교 안가도 되는거야?
또 몇 해 복학해야하는거 아니야?
상당히 커다란 의심이 갈 정도로
팽팽 놀기만 하는 못난 복학생 수혁이 놈.
그는 내가 안된다고 대답하자
인상을 팍 구기며 날 설득 시키려고 한다.
"공부도 어지간히 해야되는거 알지?
너 그렇게 미친듯이 공부하다가 정말 미쳐서 수능 못 본다!!!!."
...설득이라기 보다는 신빈성 없는 '저주'에
가까운 그의 말이였지만,
얼마나 놀고 싶었으면 저런 말도 안되는걸 지껄여대었을까.
난 피식 웃으며 열심히 풀고있던 참고서를
잠시 닫아두고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한참동안을 계속 고정된 자세로
앉아있어서 그런건지 어깨가 뻐근해왔고,
기지개를 키며 수혁이에게 미소로 대답해주었다.
"그래. 오랜만에 까짓거 하루 신나게 놀아보자!!"
내 대답에 히죽히죽 웃으며
얼른 어디선가 멋진 가죽 자켓을 입고 오는 수혁이였고.
그런 그의 모습에 나도 히죽히죽 같이 웃으며
오늘 하루 쯤은 쉬자는 생각과 함께 수혁이의 집을 나섰다.
"밥 먹으러 가자. 밥밥밥밥."
수혁이는 마치 철이 덜 든 어린아이 마냥
우스꽝 스러운 행동과 함께 밥을 외쳐대었고
우리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한 분식점이였다.
.....왠지 오랜만에 오는 분식집.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빨간 떡볶이와
냄새만 맡아도 배가 고파지는 라면이 속속들이 테이블 위로
올려져왔다.
"라면에 있는 계란은 내가 찜.!!!!"
"그런게 어딨어!!!!"
어느 새 라면에 들어있는 계란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한참동안. 라면이 우동처럼 뿔어버려도
수혁이 놈과 난 계란을 포기 할 줄을 몰랐고.
결국에는 가위 바위 보로 계란을 누가 먹을 것인지를
정하기로 마음 먹은 수혁과 나였다.
"가위 바위 보!!!!!!!"
...
그 짧은 순간동안.
우리 둘 사이에는 희비가 교차하고.
주먹을 낸 수혁은 함박 웃음을 지었고
가위를 낸 나는 인상을 팍 써버렸다.
"그래, 너 다 먹어라!!! 너 다..!!!!!"
...
잠깐만...
....순간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거.. 방금 유리창 지나친 사람..
...유현..
유현 맞지.?...
수혁에게 고래고래 지르던 고함을
도중에 멈추게 만들어버린건 다름아닌 분식집
유리창 너머로 스쳐지나간 유현의 모습.
분명 유현이였다.
..갑자기 벅차오는 가슴에
뛰어오는 심장에 당황스러웠지만
우선은 그를 잡아야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야, 왜 갑자기 일어나고 그래."
"...지..지금... 유현이였어.
유현.. 유현이 지나갔어."
말까지 더듬으며 서둘러
핸드백에 내 핸드폰과 소지품들을 쑤셔넣는 내 모습에
갑자기 수혁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버린다.
".....은 예화.
지금 가려고..?"
"빨리 잡아야되. 빨리.. 빨리...."
빨리라는 말만을 되풀이 하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분식집을 나서려는 날 멈추게 만드는 수혁의 목소리.
"....가지마."
...
.....뭐..?
이해할 수 없는 수혁의 말에
난 순간적으로 수혁을 돌아보았고.
그는... 그의 표정은..
...유현이 지었던 슬픈 표정과 아주 흡사했다.
"계란 줄께. 너 다 줄께.
노른 자도 주고 흰자도 줄테니까 가지마."
"지금 장난하자는거야?
나 가봐야겠어.."
......당황스러웠다.
날 바라보는 수혁의 슬픈 눈동자가 가슴에 와닿았다.
대채 저 자식은 또 왜저러는거야.
..애써 그의 슬픈 표정을 모른 척 무시하고
분식집을 나와버린 나 였다.
제발 내가 생각하는게 아니길.
수혁의 가지말라는 그 말이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가 아니길.
...
수혁의 모습에 잠시 복잡해지던 내 머릿속은
곧 깨끗이 비워졌다.
유현과 어떤 여자가 함께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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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지금 이 상황을 대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유현.
분명히 유현이였다.
바로 몇 발자국 앞에서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
키가 아주 큰 남자.
다리가 긴 남자.
얼굴이 주먹만한 남자.
유현이 확실했다.
....
누구지? 저 여자는 누구지?
유현은 왜 저 여자와 있는거지? 팔짱은 대채 왜낀거야?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이 솟구쳐 올라왔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아니.
그런 사소한 것으로 혼자 끙끙대는 것 보다는
차라리 지금 당장이라도 유현에게 다가가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두근두근.
한 발자국 그를 향해 발을 내딛을 때 마다
심장이 미친듯이 떨려온다.
그가 앞에 있다.
내가 짓밟아버린 그 착한 사람이. 그 불쌍한 사람이.
너무너무 사랑해버린 그 사람이. 내 앞에 있다.
거의 3 개월 만에 보는 유현의 모습인데.
그를 보고서는 활짝 웃어주며 예쁘게 다시 다가가고 싶었는데.
...지금 내 표정은 너무도 일그러져있다.
질투로 미쳐버린 너무도 추한 표정.
어쩔 수 없어.
내 본심인걸. 유현의 옆에 서있는 저 여자가 밉고 질투가 난다.
감히..
유현을 넘보다니.
".......지 유현.."
사람들이 웅성웅성 대는
복잡한 길거리 한 복판에서 그의 이름을 나즈막히
중얼 거렸다.
...하지만 그는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고.
곧이어 난 크게 소리쳤다.
"......지 유현!!!!!!!!!!!!!!.."
순간 거짓말 처럼 조용해진 길거리.
사람들은 모두 날 바라보고 있었고
단 몇 초만에 모든 시선은 날 향했다.
그리고 유현과 그 여자 또한 뒤를 돌아보았다.
...
...........왜.....
지 유현.. 너......
......왜.......
"..니가 어쩐 일이야."
...왜......
왜 날 보고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
......
바보처럼 그의 말에 대꾸조차 못했다.
저런 차가운 말을 뱉어낼 줄 몰랐는데.
...당장이라도 저 여자를 뿌리치고 내게 달려올 줄 알았는데.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날 발견하고는
싸늘하게 굳어버리는 그의 표정에 내 사고회로는
그만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
보지마.
..그런 눈빛으로 보지마.
날 다시 따뜻하게 바라봐줘.
"다신 보지 말자고 했잖아!!!!!!!!!!!."
...소리치지마.
내게 그런 차가운 말투로 고함지르지마!!!!!..
"......유현아..
난. 난 말이야..."
이제 유현의 옆에 있는 그 여자 따윈 눈에 차지도 않았다.
길거리에 모든 시선이 유현과 내게 집중된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걸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심장이 찢어질 듯 고통스럽게 죄어와.
"뭐가 부족해!!!!!!!!!! 왜 또 내 앞에 나타났어!!!!!!!
이미 썩어문드러질 정도로 상처받은 나 비웃으러 오기라도 한거야!!!!!."
그의 눈에 투명한 액채가 비쳤다.
아주 살짝. 그것도 아주 잠깐이지만 눈물이 그의 눈에 어렸다.
얼굴에 핏줄이 설 정도로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에 난 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썩어문드러질 정도로...
상처받았다는 그의 말에 난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거라면 그만 둬.
이제 나도 그만 뒀으니까..!!!!!"
"..그런거 아니야....."
눈물이 솟구치는 걸 겨우겨우 참아낸 채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런거 아니야 유현아..
미안해. 내가 너무너무 미안해."
나올 듯 말 듯 한계점에 다달은
눈물이 터져나오려는 걸 온힘을 다해 참아내며
미안하단 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차가운 표정은 그대로였다.
"은 예화. 난 널 도저히 이해 못 하겠어."
...그 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버린다.
처음으로 그의 등을 내게 내비춘다.
유현이. 나의 사랑 유현이..
내게 등을 돌린다.
"유현아, 저 사람이 은 예화야?"
"...몰라.."
유현의 옆에 있던 여자가 날 흘끔 돌아보며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그는 '몰라' 라는 대답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문채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의 옆에 있던 여자의 손을 잡고
유유히 사라져버리는 유현의 모습에.
붙잡아야하는데.
빨리 가서 붙잡아야하는데.
..하필이면 그 때 터져버린 눈물에
주저앉아버릴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주체할 수 있는 양의 눈물이 아니였다.
참는 다고 멈출 눈물이 아니였다.
"......미안해... 유현아...
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만두지마.. 등돌리지마..."
미친 사람 처럼
이미 멀리 사라져버린 유현에게 닿지도 않을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며 눈물만 흘렸다.
....유현아..
내가 다 미안해.
못되게 군것도.
너에게 상처를 준것도, 모질게 내리친것도.
다 미안해.
...앞으로 딱 한가지만 더 미안해야할 짓 할께.
정말 미안한데..
나 절대 니 앞에 다시는 안 나타날 수가 없어.
....
.....정말 미안하지만.너에게서 다시 사랑 받아야겠어.
"은 예화.. 지 유현은 어딨어."
"수혁아..."
...예쁘게 해두었던 화장이 다 번질 정도로
엉엉 서럽게 울고 있는 날 내려다보는 수혁이가 보인다.
"지 유현 그 자식 어디갔냐고!!!!!!!!!!!!!!!"
"..수혁아.. 유현이 갔어...
나한테 왜 다시 자기 앞에 나타났냐고 소리질러."
"일어나."
"..나한테 한 번도 큰소리 낸적 없는데.
막 나한테 소리질러."
"일어나라고. 은 예화 일어나!!!!!.."
"근데 어떡해. 수혁아, 나 어떡해.
..유현이 아무리 고함을 지르고 소리를 질러도.
유현이 좋아. 그래도 사랑해."
...
일어나라는 수혁의 말도 무시한채
넉두리 하는 사람처럼 마냥 중얼 중얼 혼자 지껄여대는 날
보고 큰 소리로 욕을 뱉어내는 수혁.
"제기랄..!!!!!!!!.."
한동안 계속해서 나에게로 집중되었던
시선들이 하나 둘 씩 흩어지고 사람들도 자기 갈 길을
향해 떠나갔다.
그리고 길거리 전체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 꽈악 찰 때 쯔음.
시간이 꽤나 흐른 뒤에야.
그제서야 수혁의 부축을 받아 수혁의 집으로 향했다.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 만큼이나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가슴을 떠안고.
...
카페 게시글
장미가족 완결소설
(중편)
※ ※ 왕자님 괴롭히기 、※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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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혁이가 ..좋아하는구나 ㅠ ㅜ .....재밋어요 ㅜㅜ
너무 재밌어요 ㅠ ㅠ 근데 너무 슬퍼서 제가다 눈물이 나네요 ㅠ 3ㅠ 다음 이어질 내용보러 전이만 ㅠㅠ
ㅜㅜ 모에요, 이야기가 너무 슬퍼지구 잇잔아요ㅜㅜ 이러다 중독되겟어 ;
뭐야 ㅠ_ㅠ* 너무~ 재미있잖아 ~ 흐엉~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ㅜㅜ 체면이 아니다
어떡해..넘 슬포.┭.┮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슬퍼여.ㅠㅠ~!.....저두 그럼 다음내용보러..ㅠㅠ
재밌당,, 그런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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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불쌍하다 ㅠ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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