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으로 나선 걸음
구월 셋째 토요일은 일찍 든 추석을 쇤 지 이레째다. 새벽녘 잠 깨어 전날 다녀온 작대산 야생화 탐방기를 쓰고 있으니 벗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우리 사이 으레 새벽이면 그날 동선을 정하는 문자가 오가기 일쑤다. 더군다나 벗은 지난 팔월 말 퇴직해 남은 여가를 주체 못하면서도 은퇴 후 여생을 보낼 시골 처가의 묵은 집을 헐고 그 터에 집을 새로 짓느라 바쁜 나날이지 싶다.
나는 날이 밝아오면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근교 강둑이나 산자락을 누비며 가을에 피어난 가을 야생화를 탐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광쇠농장 벗은 새벽에 텃밭으로 걸음을 하려 하기에 일정을 변경해 나도 여산농장으로 가기로 했다. 벗은 시골 처가댁에서 받은 시금치와 상추 씨앗을 마련 텃밭으로 간다고 했다. 나 역시 종묘상에서 채소 씨앗을 구하려는 참이었는데 잘 되었더랬다.
새벽녘 광쇠 친구의 텃밭 행차 제안이 오지 않았다면 근교 산행을 나서볼 참이었다. 어제는 작대산 임도를 걸었다만 이번엔 외감 동구에서 양미재로 올라 구고사를 찾고 싶었다. 산중 저수지가 있는 절에서 산기슭을 올라 상봉 꼭뒤를 트레킹하면서 이즈음 피어난 가을 야생화들을 탐방할 예정이었다. 구고사에서 상봉 꼭뒤 트레킹은 후일로 미루고 날이 덜 밝은 새벽에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메타스퀘어 가로수길에서 도지사 관사를 지나니 잔디밭에서는 밤새 울어댔을 귀뚜라미 소리는 그치질 않고 들려왔다. 단독 주택지와 아파트단지에서 관공서 거리를 지난 도청 광장 앞에 이르니 날이 거의 밝아왔다. 도의회와 시립테니스장을 지난 법원 청사에서 창원축구센터 앞으로 가다가 상남동 집을 출발해 온 친구를 만나 함께 체육관 뒤 텃밭으로 올라갔다.
광쇠농장 친구는 시골 농가 장모님이 작년에 채종했다는 시금치와 상추 씨앗을 가득 꺼냈다. 채소 씨앗은 한두 해 넘겨도 싹이 트기에 시험 삼아 먼저 뿌려 보고 발아가 된다면 남겼다가 동부콩을 딴 빈자리에 더 심을 생각이다. 시금치와 상추를 심을 자리는 팔월 중순 상추와 쑥갓과 함께 아욱까지 심었는데 발아 조건이 맞지 않았는지 싹이 트지 않아 비워둔 채 있는 이랑이었다.
친구는 친구대로 농장의 작물을 돌보고 나는 나대로 호미로 작은 골을 타서 시금치와 상추 씨앗을 흩어 흙을 덮어주었다. 씨앗은 여유가 많아 여름에 오이를 가꾸었던 이랑에도 더 심어 놓았다. 이후 가을 감자를 심은 이랑의 김을 매고 무와 배추 이랑을 살펴봤다. 지난여름에 열무 농사는 약을 뿌려주지 않아 거둘 것이 없었으나 실패를 거울삼아 약을 뿌렸더니 벌레가 꾀지 않았다.
배추가 한 이랑이고 무와 얄타리가 각각 한 이랑이라 가을 푸성귀는 모두 세 이랑이다. 한 달 전 처서에 씨앗을 뿌려 싹을 틔워 약을 두 차례 뿌렸더니 벌레가 달라붙지 않아 싱그럽게 자란다. 그새 태풍으로 세찬 비가 내려 여린 싹이 넘어지기도 했으나 북을 돋우며 일으켜 세우고 김도 매주었다. 이제는 잎줄기가 굵어지고 날씨가 서늘해져 벌레가 꾀지는 않을 듯해 마음이 놓인다.
내일모레 예보된 강수가 있고 나면 텃밭으로 올라 채소 이랑의 무를 솎으면 김치를 담글 재료로 삼아도 될 듯하다. 이번에 뽑아가도 될 만큼 자랐으나 지표면의 습기가 적어 무 뿌리가 잘 뽑히지 않을 듯해 비가 온 뒤로 미루었다. 대신 밭의 흙이 말랐을 때는 고구마를 캠이 좋을 듯해 낫으로 넝쿨을 자르고 호미로 이랑을 뒤졌더니 그루터기마다 황톳빛 고구마 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캔 고구마를 광쇠 친구와 절반씩 나누어 챙겨 텃밭에서 내려와 축구센터를 지난 법원 청사 부근에서 헤어졌다. 광쇠 친구는 오후에 동호인들과 테니스를 치기로 약속되었고 나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집 근처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새벽에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원이대로와 관공서가 밀집한 중앙대로는 아침인데도 주말이라 오가는 차량이 한산했다. 2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