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표석골] 경상북도 문경시 공평로 38-8 (공평동429-9)
[점촌동성당]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5길 39-9 (점촌동 440)
점촌동 성당의 모태가 되는 표석골 공소
표석골(表石谷)이 속한 공평동은 원래 1895년(고종 32)에 문경군 호서남면(戶西南面)에 속한 지역으로 공평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곡리(長谷里)와 모전리(茅田里) 일부를 통합하여 공평리가 되었다.
1956년 8월 호서남면이 점촌읍(店村邑)으로 승격함에 따라 점촌읍 공평리가 되었다가 1986년 점촌읍이 시로 승격하여
점촌시 공평동이 되었다.
1988년 동(洞)을 (里)로 개칭하여 공평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되어 도농복합형의 문경시가
됨에 따라 문경시 공평동이 되었다. 공평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신평동(新坪洞) 관할하에 있다.
개고개, 시자고개, 장구배기 등의 고개, 구억마을, 배실, 임촌(林村), 미리실, 장승배기, 표석골 등의 자연마을, 남산골,
약디밭골, 띠밭골, 못골, 시암골, 편자골 등의 골짜기, 바위인 장수바우 등이 있다.
표석골은 공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상주군 사벌면에서 이주한 평해 황씨(平海 黃氏)가 처음으로 개척하였다고 하며
신라 때 김유신 장군이 함창과 점촌 사이에 있는 땟다리(唐橋)에서 당군(唐軍)을 물리치고 이곳에 전승비(戰勝碑)인 표석을
표석골 뒤 돈달산 자락에 세웠다고 해서 표석골(表石谷)이라 칭하여 왔으나 지금은 그 때의 표석(表石)은 찾아볼 수 없다.
표석골 국도변으로는 공평들과 유곡들의 황금들녘이 자리한다. 이 들판은 조선시대 유곡찰방 소속 1천명 역졸을 먹이기 위한 둔전(역전)이었다.
이 둔전 가장자리에는 문경시 공평동 장승백이 마을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현재 점촌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있으며 문경읍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이곳에 처음 신자 가정이 생긴 것은 가은 먹뱅이 공소의 방사선 요한 회장의 권유로 1882년경 황범인 베드로 가정이 교회에 입교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후 차츰 신앙의 자유가 완전히 생기면서 전교가 잘되어 크게 신자 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부근의 모전과 함창에도 전교가 잘 되었다. 이렇게 해서 1901년 김천 본당이 설립되어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마침내 1922년 본당으로 승격되어 문경군 호서남면 공평리(현 문경시 공평동)에 본당을 건립하고
그해 10월에 초대 주임신부로 김문옥 요셉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런데 김문옥 신부는 김천 본당의 2대 신부로 있으면서 이 지역과 다른 문경, 상주, 예천, 선산, 성주, 금릉 지방 등에 전교활동을 하였다.
이제 본당이 설립되자 더욱 전교가 잘 되었다. 그러나 이곳보다 함창 지방이 더욱 선교가 잘 되므로 1948년에 본당을 함창으로 옮겼다.
그래서 1948년10월부터 1954년까지 함창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이때 이곳의 신자들은 많이 실망을 하였다.
그러더니 1954년에 다시 이곳에 점촌 본당이 설립되었고 또한 1959년에는 현재의 점촌 3리에 새 본당 건물을 신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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