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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아는가 ! 기독교인들이 알면 안 되는
마귀의 불편한 진실 !!
어떤 사람이 생명책에 관한 질문을 해 왔다. <인간이 어떻게 천국에 있는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보고 이단이라고 하던데- 혹시 이단 아니예요 ? 하나님과 대화한다고 한 사람들한테서는 생명책 운운하는 것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우째 이곳에서만 생명책 운운하는지... 이것도 하나님 권한 아닌가요 ! >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구원하나만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지구촌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물어야 될 물음이다.
반드시 누군가가 물어야할 물음은 대표로 한 것이다. 기독교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 있다면 바로 구원이다. 수천구절의 성경책도 오직 이것 하나를 위해 기록되었고- 오직 구원하나만을 외치고 있다. 구원이란 생명책에 이름이 없느냐 없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좌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도 또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계시록20장에도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없으면 다 불 못에 던지우더라고 기록돼 있다.
성경기자들도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 알았기 때문에 - 사도바울도 빌4:3에 =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했고- 모세도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출32:32 =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아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생명책에 관한 성경구절은 시69:28 -계3:5 -계13:8- 계17:8 -계20:12 -계21:27 -출32:32 -빌4:3 이렇게 8번이나 나오고 있다. 성경은 유기적 완전 축자 영감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느 구절은 믿고 어느 구절은 안 믿고 하면 한 되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기준이요- 원칙이며- 잣대요- 척도이다. 믿으려면 100% 의심없이 – 갈등없이- 믿고 순종하든가 -아니면 어느 구절만 믿고 - 어느 구절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되거든 완전히 성경을 부인하고 세상으로 나가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차든지 더웁든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저 저도 아닌 중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미지근하면 입에서 토하여 내처 버리겠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 생명책 운운하면 이단이다 -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고 한 사람들을 통해서는 그런 소리 들어보지 못했는데 왜 이 카페만 생명책 운운하는가 ? ” 가장 소중한 생명책에 관한 말을 한 카페들이 없고- 교회들이 없으니 이 카페만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는가 ! 어찌 보면 생명책 운운한 것이 세상을 사랑하고 돈과 재물을 사랑하고- 육체적 성욕을 따르고 – 명예와 권력을 추앙한 기독교인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명책에 관한 것을 제일 먼저 알고 난 다음 -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될 기독교인들이 [생명책]에 관한 말을 못하도록 입을 봉하려 하는 그 자체가 바로 마귀 역사의 목적인 것이다.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될 것. 그것이 바로 생명책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성경의 핵심교리인 생명책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의 생명책은 알맹이다. 그 외의 말씀들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생명책이 목적이라면 그 나머지 구절들은 과정이다. 만약 생명책을 빼버린다면 – 모든 교리들은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들이다.
한국을 포함한 기독교안에는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는 주의 종들과 평신도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책]에 관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참 성령의 은사들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성경대로의 거룩하고 정직한 순종의 삶을 살면서- 한결같이 시간바쳐 중심바쳐 회개와 기도로 살다가- 참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 생명책에 관해 모를리 없는 것이다. 생명책에 관한 말은 하지 말라고 해도- 그 말을 하면 죽인다해도- 생명걸고 그 말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짜 은사들을 가지고 사기를 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 오직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관한 것을 안다고 한 사람은 이단이요 사이비이다. 생각해 보라 !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것을 인간이 어찌 알 수 있는가 ” 사기꾼들의 그럴듯한 마귀논리이다. 이 논리에 모든 기독교인들이 속았다.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니 삶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지 방법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참 성령의 역사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면 그 사람은 생명책에 대해서 반드시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영혼구원을 위해 그 은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령께서 주신 예언의 은사는 “ 자기과시형으로 주신 것도 아니며 – 돈이나 재물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주신 것도 아니며 – 명성을 얻게 하기 위해 주신 것도 아니다.
주께서 피흘려 값주고 사신 불쌍하고 가련한 양무리들. 나를 믿고 맡겨 주신 양무리들을 천국으로 잘 인도해서 하나님 앞에 오게 해 달라고 – 능률적인 목회 효과를 위해서 연장으로 주셨고– 죄와 마귀로부터 양무리 지키라고 무기로 주신 것이다. 그 은사로 양무리들의 영혼상태/ 신앙상태를 잘 점검하고- 그 이름이 없으면 그 이름이 기록될 때까지 회개시키고 – 기록된 이름이 삭제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잘 지키고 잘 먹이고 잘 돌봐 달라고 주신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그렇게 쓰는 것이다.
그 양무리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고 - 그 이름이 올라갈 때까지 회개시키고 - 회개한 죄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그 신앙들을 관리해 주는데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적표적 행한다면서 예언한다는 많은 목사들은 “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한 특별한 사람이야 ! 알았어 ! 그러니 건들지 말어 ! 절대 순종이야 ! ” 이런 식의 은사자들은 모두 가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말하면 은사자랑은 하는데 양무리 영혼구원을 위해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그런 은사들은 모두 가짜인 것이다. 상담한번 해 주지 않고- 그 은사를 사용해서 양들의 영적인 상태한번 점검해 주지 않는 목사/ 부흥사들은 모두 삯군 직업목사들이다.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난 굶주린 이리들인 것이다.
예언한다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보라 ! 얼마나 교만한지 ... 자기만이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을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다. 주께서 믿고 맡겨준 양무리들 영혼에는 무관심 무책임하면서- 본 교인 놔두고 타 교회에 가서- 신학교 가서 부흥사/ 교수노릇 하기 좋아하면서 – 본 교회 성도들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돈 많이 내는 부유층 사람들- 사회 지위가 있고- 명성이 있는 지식층 사람들은 목사한테 관심을 받지만- 힘없고- 못 배우고- 가진 것이 없는 불쌍한 양무리들은 미운털 박힌 오리새끼들로 소외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참 성령의 은사자들은 아프지 않는 손가락보다 아픈 손가락에 더 관심을 쏟게 돼 있다. 그리고 일꾼을 세워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 세운다. 돈 많다고- 많이 배웠다고- 사회 고위층이라고- 마구잡이로 직분남용 안 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식한 목회자들이 세상 정부처럼 투표로 일꾼을 뽑고- 출마자는 당선되려고 수많은 돈을 뿌리게 하여 –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한 사람들이 교회에서도 권력을 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왜 그럴까 ! 둘 중 하나다. 진짜 성령의 은사를 받았는데 사용방법을 제대로 몰랐다든가 – 아니면 가짜인 것이다. 그러나 사용방법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임하시면 양무리치는 목회방법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라면 자기에게 속한 양무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있는지 조사해 보고 - 한 명이라도 더 생명책에 이름 올려 주려고 생명을 걸 것이다. 한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성령께서 가만히 구경만 하시겠는가 !
필자의 교회는 1년에 한 두 번씩 신앙진단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회개한 죄로 다시 돌아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삭제되지는 안았는지- 이름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항상 노심초사하며 신앙관리를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예언의 은사는 자기 호주머니 채워주고 - 인간 권위세워 주고 - 유명간판스타급 만들어 주려고 성령께서 임하신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언의 은사 받았다면서 - 하나님께서 늘 자기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 하면서도 - 양무리들의 영혼의 현주소를 각자에게 말해 주지 않는 목자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목사들도 성도들도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 영혼의 현주소를 모르고 무조건 신앙생활하다가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 각자가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목회하고 -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신앙행활 하다가 다 멸망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 기준의 목회 - 인간 기준의 신앙생활.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과연 자기 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 그 길을 잘 가고 있는지 --- 잘못 가고 있는지 – 정확한 목표지점도/ 방향도 모르면서 목회도 하고 – 신앙생활도 하니 참으로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는다. 인생은 장난삼아 살아볼 수도- 시험 삼아 살아 볼 수도 - 맛보기로 살아볼 수도 없는 것이 단 한번의 인생이다. 한번 가고 나면 두 번 다시 육신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육신으로 사는 동안 자기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천국과 지옥은 남이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행동적믿음과 생명책 ! 이 두 가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란 사실을 ...... 그러므로 [ 빠르고 정확한 하늘 정보를 가진 멘토]를 둔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섬긴 목사가 그런 선한 목자가 되도록 – 그런 멘토가 되도록 교인들은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기준에 맞는 목회자를 만나야 자기 영혼이 산다.
오늘날 전 세계 주의 종들이 그런 은사를 받아 자기 양무리들 영혼에 관심을 두고 신앙관리를 철저하게 해 주었더라면 -어찌 양무리들이 공허함을 느꼈겠는가 ! 육신은 그것을 못 깨달아도 - 그 영혼들은 깨닫기 때문에 그 영혼의 갈급함을 해소시켜줄 능력있는 종들을 찾아 이 카페 저 카페 - 이 블로그 저 블로그를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처량한 양무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영혼을 책임져 주어야할 목회자들에게서 만족함을 얻지 못한 영혼들이 목마른 사슴처럼 갈급하여 그 갈증을 해소시켜줄 사람들을 찾고 찾아 헤매고 있지만 결국은 만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 시대를 염두에 두고 아모스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암8:11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
기독교인들은 자기 영혼의 몸부림을 모른다. 육신은 배가 불러 못살겠다할 정도로 배가 불러 있지만 그 영혼은 항상 굶주릴 대로 굶주려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암8:11처럼 영혼의 만족을 얻으려 쫓아 다녀도 - 이 목사 저 목사 - 이 카페 저 카페 - 이 블로그 저 블로르 아무리 찾아 다녀도 - 정신만 피곤할 뿐 영혼의 만족을 주는 곳은 없는 것이 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안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종말의 징조인 것이다. 내 영혼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 죄로 인해 어두워진 육신의 눈은 감겨 세상 것만 보이지만 - 영혼의 눈은 용광로처럼 타오르고 있는 지옥 불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은 생명책에 없다. 육신으로 지은 죄 때문에- 불순종의 더러운 삶 때문에 – 자기 영혼이 저 무서운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뛸 것을 생각하며 오늘도 불쌍한 영혼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처절하게 몸부림 치고 있는 영혼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영혼의 처절한 몸부림과 비명이 인간의 뇌를 통해 전달되면- 인간은 왜 그러는지 진실을 모른채 – 그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이 카페 저 카페 유리방황하며 떠돌아다니며 영혼을 시원케 해 줄 생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분노와 갈증과 몸부림은 인간의 뇌를 통해 나타난다. 시42:1-11은 이것을 말해 주고 있다. 3차에 걸친 바벨론의 침략으로 성전 성가대의 직임을 맡았던 고라의 후손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원수들의 비방을 받으며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갈급한 영혼이 자기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은 신앙고백이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 시편 기자는 자기 영혼의 상태와 현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기 영혼의 현주소에 무지하다. 육신으로 지은 죄에 대해 시간마다 분초마다 영혼은 매일 분노하고- 하나님 품으로 가고 싶어 – 육신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 훨훨타는 저 지옥물을 바라보면서 – 회개하라고 나 지옥보내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있는데- 육신의 영혼의 소리를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처절하게 외치는 구원요청에 육신의 귀는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카페 저 카페 - 이 블로그 저 블로그- 이 집회 저 집회 – 이 기도원 저 기도원을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니다가 무엇을 얻었는가 ? 묻고 싶다. 영혼의 만족을 얻었는가 ? 시간 소비하고- 돈 뜯기고- 마시면 안 될 홍수만 –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난 바닷물 같은 – 들어도 들어도 만족함이 없는 – 다섯 남편을 둔 사마리아 여인이 퍼갔던 물만 먹고 오지 않았는가 !
진정으로 영혼의 갈등과 번민과 고민과 고통을 풀어주고 싶은가 ! 그 영혼이 원하는 시원한 생수를 주고 싶은가 ! 생명걸고 - 옷이 흠뻑 젖어서 물이 줄줄 흐를 때까지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내 영혼 살려달라고 - 내 영혼 버리지 말라 달라고 - 굶주린 사자처럼 소리를 질러 울부짖으면서 기도해 보라 ! 자기 영혼의 현주소가 보일 때까지 -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소리를 질러 기도해 보라 ! 천지가 우렁우렁하도록 – 소리를 질러 기도하라 ! 마치 화재가 있는 곳에서 살려달라 외침같이 --- 깊은 물에 빠져 살려달라 외침같이 ---- 호랑이에게 물려 가면서 살려달라 외침같이 ----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 통회자복하며 살려달라 기도하라 !
그런 기도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속히 이를 것이다. 천국과 지옥이 왔다갔다하는 하는 판국에 무엇을 더 소중이 여길 것이 있겠는가 ! 생명책 ! 잊지 마라 ! 거기에 이름 없으면 그 영혼은 비극이다.
계3:5 =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13:8 =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17:8 =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계20:12 =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20:15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21:27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싶은 자는 <회개하는 방법>에서 어긋남이 없이 철저하게 회개하라 ! 그리고 회개한 죄로 다시 되돌아가 가지 마라. 오직 구원하나만을 위해 살기로 정신을 뜯어고치고- 끊임없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와 싸우면서 그 이름을 유지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아는가 ! 마귀가 가장 불편해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 생명책 !! 바로 그것이다. 천국에서 살았던 마귀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몰라야 한다. 오직 마귀만 알아야 한다. 이유는 기독교를 황폐화시키는데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알면 안되는 마귀의 불편한 진실. 생명책 ! 이것을 잊지마라 !
■ 그럼 생명책 운운하면 정통인가 ?
누가 물었다. “ 생명책에 관한 것은 소문난 이단들이 제일 많이 강조하고 있다. 생명책이 중요한 문제라면, 왜 기존 교회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 오히려 이단들이 더 많이 다루고 있는가 ” 하는 질문이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생명책 운운 할 가치도 없는 곳에서는 더 강조하고 – 반드시 귀하게 다뤄야할 기존교회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 생명책을 강조한 이단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곳인가 ? ” 그것은 아니다.
마귀의 전략은 이렇다. 이단에서 아무리 “ 생명책 운운 ” 해도 정통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아예 그곳으로 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마귀는 잘 알고 있다. 왜 그럴까 ! 이름난 이단들은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이미 잘못되어 아무리 “ 생명책 ” 운운해도 그곳에 가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마귀는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마귀가 장악해 버린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자기 영역화시켜 놓은 곳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안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경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성경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기존 교회들을 장악하는 것이다. 아직 정복되지 않는 기존 교회에서 생명책의 중요성을 안다면 아마도 순교적인 신앙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귀의 전술은 실패로 끝난다. 마귀는 그것을 염려하고 있다. 마귀의 술수와 전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장악해 버린 곳은 신경쓰지 않고 가만 놔두고 본 것은 저절로 버림받는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든- 어느 교파든- 어느 집단이든 “ 생명책 강조한다”고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회개와 성경대로의 순종의 삶을 살지 아니하면 생명책에 기록될 일은 절대로 없다.
2014년 5월 15일 목: 그리운소리
첫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회개를 시작하고 제자훈련을 교혀에서 받아보았습니다. 어느순간 영이 깨끗하져가니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정결의 기준을 목사님은 외면하고 영이 서로 반대라는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인터넷을 통해 어렴풋하게 알아가는진리를 찾기위해 사방팔방을 돌아다녔습니다. 목사님께. 질문할때마다. 제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기에 허무했습니다. 제가 이곳을 찾아 길을 찾았는데 제 뒤에 제자 훈렷을 받는 사람도 그런 질문을 하는 성도들에게 똑같은 대답을 하신다는것을 들었는데 그 성도들은 목사님의 말 을 맞다고 듣습니나. 서글픕니다. 지도자가 모든성도들을 지옥으로 가는길을 가르치고 제자삼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만큼 만연해져 있는 기독교안에 있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생명책을 키워드로 구글에 검색해보면, 10개 중에 8개는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등에서 가르치는 글들입니다. 일부 교회 목사님들이 생명책을 언급하며,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봤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적힌다. 짧게 언급하시고요. 저는 다시 긴가민가 합니다. 생명책이 중요한 문제라면, 이단들이 더 많이 다루는 건 왜일까요? 그래서인지 기존 교회에서는 더 언급하지 않는 것 같고..
그것이 문제입니다. 생명책을 다룬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교회나 카페는 아닙니다
마귀의 전략은 이렇습니다. 이단이라 규정된 곳에서 생명책 운운해도 정통기독교인들은 믿거나
그곳으로 가지 않을 것을 압니다. 또한 여화의 증인이나 하나님의 교회나 신천지는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잘못되어 아무리 생명책 운운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마귀는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마귀가 장악해 놓은 교단이나 교회나 교파들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성경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그런 교회들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교회들이 생명책의 중요성을 안다면 순교적인 신앙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마귀는
@그리운소리 그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술수와 전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미 장악해 버린 곳은 아무 신경쓰지 않습니다. 가만 놔 두어도 버림받는 길로 가고 있느니까요
철저한 회개와 성경대로의 순종의 삶이 없이는 절대로 생명책에 기록될 일은 없습니다
아멘
역시 생명책이라는 말이 핵심 키워드이었군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그래. 성경 중에서 가장 큰 핵심이 바로 생명책이다
중생을 위한 회개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 위해 하는 것이고
성화를 위한 회개는- 한번 기록된 이름이 삭제되지 않도록 날마다 지은 죄들을 죽는 그날까지 회개하며
살아야 됨을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그런 자녀들을 향하여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다. do와 not이다. 하라는 것은 해야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여기에서 어긋나면 그것이 바로 죄요. 그 이름이 삭제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원리요 원칙이다. 생명책에 외의 모든 나머지 말씀들은 생명책의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 계명들인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다
생명책이 이처럼 중요한데도 절대 다수의 교회에서 1년 열두달 설교해도 단 한번도 언급조차 안 합니다.
교회에 앉아 있는 그 수많은 영혼들은 자신들이 구원 받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데.....
그 영혼들을 다 어찌할지..
정말 주의 종 사명을 제대로 감당 못하면 심판이 엄청나겠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신천신지, 생명책, 생명수, 재림...이런 좋은 말들을 이단에게 빼앗겨서 이젠 그런 단어를 쓰기만 해도 이상한 눈으로 봅니다.
기존 교회에서 강조해야될 핵심적인 교리나 단어들은 이단쪽에서
다 뺏아 가버렸으니 - 기존교회들은 빈 껍데기만 가지고 목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책 운운하면 무조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무엇이 이단인지-- 무엇이 성경적인지.... 자기 영혼 지옥문턱에 세워놓고도
구원받았다고 자부심을 가지니 무식이 용감을 낳고 있습니다
전도사님 글은 전에 읽었던 글이라도 다시 읽으면 또 은혜가 되고 다시 배우게 됩니다.
전도사님 날씨 점점 더워지는데 일 욕심내셔서 무리하지 말고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집사님도 건강관리 잘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