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많아 출발부터 이동이 여간 번거롭지가 않았다. 25일동안 주로 캠핑장을 이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전기밥솥과 전기냄비, 햇반과 김치, 통조림 등 먹을 것 준비와 일부 캠핑장의 경우 침구가 제공되지 않는 곳이 있다고 하여 담요 등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짐이 많고 무거워 당초 공항버스를 타고 이동하려던 생각을 접고 비싼 밴(60,000원)을 불러 출발하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밟는 데 우려했던 가방의 무게가 최대 32kg를 넘는다며 무게를 줄여 올 것을 요구한다. 어쩔 수 없이 근처 박스를 파는 대한통운에 가 담요등 침구류와 옷을 박스에 분리하여 이민가방의 무게를 줄이고, 박스 짐 1개를 더 만들어 짐을 부쳐야만 했다.
홍콩 국적인 케세이퍼시픽을 타고 3시간만에 홍콩에 도착, 이곳에서 약 1시간 30분을 대기하다 영국행으로 갈아탈 예정이었으나, 연착이 되어 예정보다 4시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했다. 공항은 무척 넓었고 기다리는 동안 매킨토시 PC와 삼성의 독자 브라우저가 설치된 삼성PC 부쓰에서 PC를 사용하며 무료한 대기시간을 보냈다.
약 17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09:30 도착. 홍콩에서 연착이 없었다면 2시간 전인 07:30에 이미 도착했어야 했다. 비행기에 내려 대부분의 승객들이 빠져 나가는 쪽으로 합류하여 주의깊게 터미널 게이트 번호인 T3와 Arrival(도착), Immigration(입국심사) 표시를 찾으며 나가는 데, T3 Arrival은 보이지 않고 T2 Arrival 표시만 있고 같이 타고온 대부분의 승객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잠시 멈춰서 잘못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T3 Arrival은 보이지 않고 T2 Arrival 방향으로 가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Fligt Connect(연결편 갈아타는 곳) 방향 표시만 돼있을 뿐이었다.
잠시후 한국인 단체관광객과 가이드가 뒤따라와 가이드에게 T2 Arrival을 가리키며 저곳이 출구가 맞느냐고 물어보니 가이드 역시 출구를 찾고 있는 눈치였고 자기네 식구들 챙기느라 경황이 없어 보였다. 답변을 듣지 못하고 같은 비행기를 탄 대부분의 승객이 나가는 곳이 맞겠지하며 그곳으로가 줄을 서려고 하는데 뚱뚱한 아줌마 직원이 다가와 어느 항공기를 타고 왔느냐고 묻는다. 홍콩발 CX라고 하자 이곳은 터미널 2이고, CX는 터미널 3이므로 저쪽으로 가라며 오던 방향을 가르킨다. 분명히 같이 타고온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곳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오면서 찾아 봤지만 T3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얘기하니 단호한 어조로 이곳은 아니니 돌아가란다. 마치 화가 난 사람의 표정같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 가 비행기에서 내려온 시점부터 T3 Arrival을 다시 찾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T2 Arrival과 Fligt Connect만 눈에 띈다. 분명히 홍콩발 CX는 T3에 도착했을 것이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당연히 T3 Arrival 표시가 보여야 할텐데 보이지 않는다. 공항의 직원으로 보이는 2명에게 다가가 T3 Arrival 위치를 물어봤으나 정확히 알고있지 않은 것 같다. 한사람은 잘모르겠다고 하고, 한사람은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찾더니 Fligt Connect 쪽을 가리킨다. 은근히 외국인에게 자세하고 친절히 가르쳐주겠지 하고 기대를 했으나 무표정하고 딱딱한 모습이다.
가르쳐준 Fligt Connect 쪽으로 찾아가며, 공항내 안내표시가 너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국인도 아닌 외국인이 T3에 내렸으면 나가는 곳 표시를 T2와 같이 T3쪽의 Arrival 표시를 분명하게 해놔야 되지 않는가?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Arrival 표시는 보이지 않고, 이번엔 Connect와 T3 Departure 표시만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은 아닌 것 같다. 연결편 갈아타는 곳과 비행기 출발하는 곳이 나란히 있는 것은 당연한데, 입국심사를 위해 나가야 하는 Arrival 표시는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T2 Arrival 쪽으로 향했다. 필시 우린 T3가 아닌 T2에서 내린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리자마자 T2 Arrival만 있고 T3 Arrival은 보이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T2 입국심사대 쪽의 아까 그 직원에게 다가가 "우리는 홍콩발 CX를 타고오기는 하였지만 T2 터미널에 내린게 틀림없는 것 같다"라고 하니 역시 단호한 태도로 "NO"하며 CX는 T3로 나가야 하고 이곳은 아니라고 한다. '이 아줌마가 혹시 지금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아무리 찾아봐도 사인이 보이지 않는다. Fligt Connect 사인을 따라 가 봤는데 없더라. 그곳으로 가는게 정말 맞나?"라고 물으니, 그곳으로 가는게 맞다며 쌀쌀맞게 대꾸한다. 출발부터 전혀 예기치 않게 헤매서는 안될 곳에서 헤매며 출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니.... 도대체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어쨌든 Connect가 있는 쪽으로 다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조금전 Connect와 T3 Departure 표시만 보고 너무 성급하게 판단을 하고 되돌아온 모양이다. 이곳을 지나 조금더 가니 비로소 T3 Arrival 표시가 잠시 보이고, 사람들이 줄서있는 입국심사대가 나타났다. 입국심사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간단히 끝났다. 여행목적과 며칠 묵을 것인지 정도만 간단히 물어본 것 같다.
입국심사가 끝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동양인, 러시아계 쪽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터미널1, 2, 3으로 가기위해 셔틀버스를 타는 버스 정류장이었다. 아까 본 한국 단체관광객 들은 바로 앞에 있었고, 이들도 헤매다 이제서야 도착한 모양이다. 이곳에서 T3까지는 한참 떨어져 있었고 셔틀버스를 타고 그곳까지 이동을 해야 했다.
헤매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사전 정보부족. 이곳에서 수하물 찾는 곳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은 의존했던 여행가이드 북에 없었고, 사전에 좀더 꼼꼼히 체크해 두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를 찾지 못해 헤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여 영국인에 대하여 가진 첫느낌은 매우 차갑고 딱딱하며 보수적인 인상이었다. 짧은 시간에 불과 몇마디 나눠본 것에 불과하지만 공항직원과 경비들은 한결같이 무표정하고 냉랭해 보였다. 2년전 미서부 여행으로 인해 생긴 서양인들의 따뜻한 배려와 친절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고, 당시 미국인들이 보여줬던 사교적이고 개방적인 태도와는 사뭇 대조가 되었다.
영국이후 여행중 접한 일부 유럽인 들의 표정과 태도에서 이런 느낌을 몇 번 더 경험하였으며, 그들이 동양인에 대해 문화적 우월감이나 차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아내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에 불쾌해 했다.
2시간 이상을 헤매며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 수하물을 찾으러가니 콘베이어 위에서 여태 돌아가고 있으려니 하는 예상과는 달리 누군가 우리 짐을 한쪽에 이미 치워놓았다. 아마 다음 도착하는 비행기 때문에 수하물 관리담당 직원이 치워놓은 모양이다. 짐을 찾아 이상없음을 확인한 후 지하철을 타기위해 각자 배낭을 메고 짐을(끌 수 있는 무거운 짐 2개, 옷가방 1개, 박스 1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지하철 역으로 이동하였다. 이동중 면세점에서 멀티콘센트를 5파운드(우리돈 만원)에 구입하였다. 기내에서 18달러에 판매하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