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오경근 선생의 조카 오국환정형외과 오국환 원장 석내과 석영관 원장의 아들 석준 원장
충북 의료계는 유업을 이어 현재 청주에서 왕성한 진료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료인들이 있다. 충북 의료계에 발자취를 남긴 의료인을 돌이켜 보고 유업을 이은 후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들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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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가을 청주시내 개업의들이 문의 오가리강변에서 모였다. 왼쪽부터 권내과 권영표, 오외과 오성효, 석내과 석영관, 신외과 신필수, 삼화이비인후과 이원종, 동일의원 김락형 선생. <사진제공=김락형 선생> | 충북에서 유업을 이은 의료인들을 찾아 보면 지난 1961년부터 14·15·20·21대에 걸쳐 무려 9년 동안 충북의사회장을 지낸 故 신필수 선생의 3남인 한국병원 일반외과 신희용 과장(53)이 있다. 지난 95년 향년 77세의 숙환으로 별세하신 아버지에 대한 살아생전 기억은 화내는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하고 해박한 지식과 구수한 유머로 늘 주변을 편안하게 해 줬다고 한다.
사실 신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재활의학과 전문의이자 원로 봉사인이었다. 신 과장은 생전에 부친께서 피부과나 방사선과를 전공하라는 조언을 했지만 아버지처럼 외과의로 살고 싶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부친이 37년 청주고보와 41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뒤 49년에 개원한 청주 신외과에서 진료를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개원중인 형 희준(65)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신 과장은 앞으로 "의료수가가 현실화 되고 미국처럼 개인병원에서 진료하고 종합병원 병상을 이용해 입원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유업을 이어 형과 함께 신외과를 개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과장은 "현재로써 계획은 없다"며 "다만 대장암과 창문외과쪽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신 과장은 "아버지가 62∼65년 충북도립 청주병원장을 지냈고 73∼76년까지 충북도의사회장을 지내는가 하면 충북의료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며 "79∼80년까지 국제로타리 제 368지구 총재, 80∼89년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장, 81∼93년 평화통일 자문회의 운영위원, 85∼95년까지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충북지회장을 맡을 정도로 평생을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다"고 말했다. 신 과장은 "아버지가 많은 발자취를 남겼지만 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며 "의료인도 생활인으로 봐 줬으며 좋겠다"고 덧붙였다.
남궁 선생 '늘 환자들에게 최선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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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남궁윤, 오경근 선생, 조카 오국환 정형외과 오국환 원장, 신필수 선생의 3남 한국병원 신희용 외과장. |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故 남궁윤 선생의 조카이자,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북장로회 소민병원에서 1940년대 초반 왕성한 진료 활동을 벌인 남궁건 (남궁 윤 선생의 선친)선생의 손자인 청주 남궁비뇨기과의 남궁견 원장(60)도 대표적인 유업을 이은 충북 의료인 중에 하나다. 소민병원에서 선친과 함께 진료 활동을 벌이다 30살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 남궁인 선생까지 3대가 의료인으로 살아왔다.
남궁 원장은 "숙부이신 남궁윤 선생은 늘 정직하고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진료를 당부했다"며 "서울의대를 나와 미국에서 내과의사로 개원중인 형님 남궁승도 숙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사실 98년 5월 10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별세하신 故 남궁윤 선생은 충북 의료계의 산 증인이자 충북지역사회발전에 일생을 바쳐 왔다.
76∼79년 22대 충북의사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선생은 청주고를 졸업하고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뒤 의학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45년 청주도립의료원 외과장, 50년 9월 육군군의관으로 육군병원에서 하루 27회 이상 수술을 집도하는 등 초인적인 진료활동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57년 육군소령으로 예편한 선생은 같은해 남궁병원의 전신인 남궁외과를 개설해 64년 남궁병원으로 증축하기까지 최첨단 의학장비를 도입해 한수이남 최대의 외과의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66년에는 서울대학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남궁병원은 한 때 전국병원 소득 1위와 전국병원 납세 순위 안에 들 정도였다. 왕성한 사회활동도 회자된다. 79년 충북유도협회장을 맡으면서 남궁유도회관을 건립, 사회에 기증했했다. 80년에는 보이스카웃 충북연맹회장, 81년 국제로타리 368지구총재, 83년 청주지방검찰청 청소년선도위원장, 84년 충북지역개발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89년부터 95년까지 6년간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회장을 맡아 충북도내 30여개에 불과하던 봉사조직을 100여개로 확대하면서 청소년 인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남궁 선생은 뛰어난 외과수술실력으로 남궁병원을 청주의료계의 고유명사로 성장시켰지만 96년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98년 5월 10일 51년간의 인술을 마감했다.
오경근 선생 '충북대 의과대 설립 견인차' 79∼82년 제 23대 충북의사회장을 지낸 故 오경근 선생의 조카인 청주 오국환정형회과 오국환 원장도 유업을 이은 의료인중 하나다. 오 원장은 숙부의 영향을 받아 현재 청주시의회장으로 국내외를 넘나들며 의료 낙후지역에 인술을 펼치고 있다. 청주 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오경근 선생은 한국전쟁 직후 고향인 청주에서 40여년간 인술을 펼쳤다.
52년 충주 도립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55년 청주 도립병원(현 청주의료원) 산부인과장을 지냈다. 58년에는 오산부인과의원을 개원해 99년 8월 22일 오랜 투병생활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역주민의 건강과 보건향상을 위해 헌신해 왔다. 선생 또한 왕성한 사회사업이 회자된다. BBS 충북도지부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후원하는가 하면 충북축구협회와 야구협회장, 민주평통 자문위원, 충북도정 자문위원, 운호학원 이사장, 로타리클럽 총재로 지역사회발전에도 열과 성을 다했다.
오 원장은 "숙부는 생전에 환자들을 내 가족, 내 친지처럼 항상 따뜻한 손길로 보살펴 주셨다"며 "청주시의사회장, 충북도의사회장을 하시며 지역 의료계 발전은 물론 더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양질의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 동분서주 하셨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결과가 충북대학 의과대학 설립이다"고 전했다.
한편 유업을 이은 충북 의료인으로 석내과 석영관 원장의 아들 석준 원장 등이 있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의료인들이 유업을 있고 있지만 수년째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는 의료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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