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람을 들어 분별함
第三約人分別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삼취(三聚) 중생에 대한 분별이요, 둘째는 사의(四疑) 중생에 대한 분별이다.
於中有二 初約三聚衆生分別 後就四疑衆生分別
1) 삼취(三聚)
삼취란 아래의 경에서 “어떤 중생이거나 그 국토에 난 자는 다 정정취(正定聚)에 머무른다. 왜냐 하면 그 불토에는 사정취(邪定聚)와 부정취(不定聚)가 없기 때문이다” 한 것과 같다.
初三聚者 如下經云 其有衆生 生彼國者 皆悉住於正定之聚 所以者何 彼佛土中 無諸邪聚 及不定聚
이런 삼취의 그 현상은 어떠한가.
그 이치의 자세한 것은 저 “보성론(寶性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즉, “일체 중생 세계를 대략 말하면 거기에는 세 가지 중생이 있다.
첫째는 유(有)를 구하는 자요, 둘째는 유를 구하기를 멀리 떠난 자이며, 셋째는 이상의 둘을 다 구하지 않는 자이다.
유를 구함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해탈의 도를 비방하고 열반의 성품이 없어서 항상 세간에 살기를 구하고 열반을 증득하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불법에 있어서 천제(闡提)와 동위(同位)이니, 그는 대승을 비방하기 때문이다.”
如是三聚 其相云何
此義具如寶性論說
彼云 略說一切衆生界中 有三種衆生 何等爲三
一者求有 二者遠離求有 三者不求彼二
求有有二種 一者 謗解脫道 無涅槃性 常求住世間 不求證涅槃 二者 於佛法中 闡提同位 謗大乘故
그러므로 “부증불감경(不增不滅經)”에서 “만일 어떤 비구나 내지 우바이로서 첫째 소견이나 혹은 둘째 소견을 일으켜 모든 부처님을 세존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내 제자가 아니다” 한 것이다.
是故不增不減經言 若有比丘 乃至優婆夷 若起一見 若起二見 諸佛如來 非彼世尊 如是等人 非我弟子
유를 구하기를 멀리 떠난 자에게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도를 구하는 방편이 없는 자이며, 둘째는 도를 구하는 방편이 있는 자이다.
遠離求有者 亦有二種 一者無求道方便 二者有求道方便
방편이 없는 자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여러 외도의 갖가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이요, 둘째는 불법 안에서 그 행이 외도들과 같아서 불법을 믿는 다 하더라도 전도(顚倒)에 집착하여 마치 독자부(犢子部)들과 같은 것이다.…(이하 생략)…
無方便者 亦有二種 一者 多種外道種種邪計 二者 於佛法中 同外道行 雖信佛法 而顚倒取 如犢子等 乃至廣說
방편이 있는 자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이승이다.
그 둘을 다 구하지 않는다는 자는 이른바 근기가 가장 예리한 중생과 여러 보살들이다.
有方便者 亦有二種 所謂二乘
不求彼二者 所謂第一利根衆生諸菩薩等
또 유를 구하는 중생과 일천제는 불법 안에서 동일한 일천제의 지위이니 그것을 사정취 중생(邪定聚衆生)이라고 하고,
유를 구하기를 멀리 떠난 중생 가운데 방편이 없이 도를 구하는 중생을 부정취 중생(不定聚衆生)이라고 하나니 성문과 벽지불이며,
그 둘을 구하지 않는 자를 정정취 중생(正定聚衆生)이라고 한다.
又彼求有衆生一闡提人 及佛法中 同一闡提位 名爲邪定聚衆生
又遠離求有衆生中 墮無方便求道衆生 名爲不定聚衆生 聲聞辟支佛
及不求彼二 名爲正定聚衆生
논에서 말한 것은 이상과 같다.
論說如是
이 가운데서 이승과 보살을 총판(總判)하여 정정취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지위의 분제(分齊)를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지위에 이르러야 정정취에 들어가며 어떤 뜻에 의하여 정정취라고 하는가.
결정코 퇴타(退墮)함으로써 선근을 끊지 않는 것을 정정취의 뜻이라 한다.
此中總判二乘菩薩爲正定聚 而未分別位地分齊
齊何等位入正定聚 依何等義名正定聚
決定不退墮斷善根 如是名爲正定聚義
그 지위를 논하여 “유가론”에 의하면, “정정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본성(本性)의 정정취(正定聚)요, 둘째는 습성(習成)의 정정취이다”하였다.
만일 이 말에 의하면 다섯 가지 종성 가운데 보살 종성의 사람이 원래부터 오역죄를 짓지 않고 선근을 끊지 않는 것이 본성의 정정취이며, 이승의 종성과 부정성에 속하는 이들은 오역죄를 짓고 선근을 끊는데, 선근을 끊을 때에는 사정취에 떨어지며 선근이 계속한 뒤에도 들어가지 못하면 그것을 부정취라고 할 것이다.
論其位而依瑜伽說 正定聚有二種 一者本性正定聚 二者習成正定聚
若依此而說 五種種性中 菩薩種性人 從無始時來 不作五逆及斷善根是名本性正定聚也 其二乘性 及不定性 得作五逆 及斷善根 斷善根時 墮邪定聚 善根相續後 未趣入 爲不定聚
이미 들어갔을 때에는 곧 3품(品)으로 분별해야 할 것이니,
만일 그가 본래 하품의 선근으로서 들어가는 사람이면 난법(煖法)이더라도 부정취일 것이요. 정법위(頂法位)에 들어갔어야 비로소 정정취가 되는 것이니, 논에서 정법 위에서는 선근을 끊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 煖法 - 난위(煖位)를 말한다. 불 앞에 있으면 따뜻해지는 것과 같이 번뇌를 태워 없앨 수 있는 견도(見道)의 무루혜(無漏慧)의 불에 접근하여 그에 앞선 유루(有漏)의 선근(善根)을 내는 지위.
已趣入時 卽當分別三品
若其本來下品善根而趣入者 乃至煖法 猶爲不定 入頂法位 方爲正定 論說頂不斷善根故
만일 그가 본래 중품의 선근으로서 들어가는 자라면 난법에 이르렀을 때 정정취라고 하며, 만일 그가 본래 상품의 선근으로서 들어가는 자라면 처음 들어갔을 때 곧 정정취가 되는 것이니, “유가론”에서 말했다.
“만일 하품의 선근에 편히 머무르면서 들어가는 자라면 그는 하품이니, 이름을 유간극(有間隙)이라고 하여 간극이 없지 않고 매우 청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만일 중품의 선근에 편히 머무르면서 들어가는 자라면 그는 중품이며,
만일 상품의 선근에 편히 머무르면서 들어가는 자라면 그는 상품이니, 이름을 무간극(無間隙)이라 하여 이미 간극이 없고 이미 매우 청정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미 들어간 모양이라고 한다.”
若其本來中品善根而趣入者 至煖法時 名爲正定 若其本來上品善根而趣入者 始趣入時 便作正定 如瑜伽說
若有安住下品善根而趣入者 當知下品 名有間隙 未能無間 未善淸淨
若有安住中品善根而趣入者 當知中品
若有安住上品善根而趣入者 當知上品 名無間隙 已能無間 已善淸淨
如是爲已趣入相
또 그 논에서 말했다. “이 하품에 의하여 해탈분(解脫分)의 선근을 따른다. 바가범(婆伽梵)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세간의 상품의 정견(正見)을 갖추면 천생(千生)을 지나더라도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글은 본래 상품의 선근에 편히 머물다가 들어가는 이는, 비로소 하품에 들어가서도 해탈분의 선근을 따를 때에는 곧 물러나지 않게 되는 것을 밝힌 것이니, 그것은 간극이 없기 때문이다.
又彼論云 依此下品 順解脫分善根 婆伽梵說 若具世間上品正見 雖歷千生 不墮惡道
此文正明本來安住上品善根而趣入者 始入下品 順解脫分善之時 便得不退 無間隙故
또 그 논에, “만일 때로 하품에 머물다가 성숙한 자이면 그는 여전히 악취(惡趣)에 왕생하며, 중품이나 혹은 하품이면 그들은 악취에 가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 글은 본래 하품의 선근에 편히 머물다가 들어가는 사람은 비록 난법에 이르더라도 하품의 성숙위(成熟位)에서는 물러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악취에 간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이승의 지위에 대한 분별이다.
又彼論說 若時安住下成熟者 猶往惡趣 若中若上 不往惡趣
此文正明本來安住下品善根而趣入者 雖至煖法 下成熟位 未得不退 故往惡趣
是約二乘位地分別
만일 그가 부정종성(不定種性)인 사람이라면, 그는 곧 대승을 향해 들어갈 때에 종성위(種性位)에 이르러야 비로소 정정취가 되는 것이니,
그것은 저 “기신론”에서 “어떤 사람을 의지하고 어떤 행을 닦아야 믿음을 성취하여 발심할 수 있는가.
이른바 부정취의 중생을 의지하면 선근은 훈습(熏習)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업의 과보를 믿고 십선(十善)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하여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위없는 보리를 구하기 위해 부처님을 만나 친히 받들어 공양하면서 신심을 수행하여 1만겁을 지나면 신심을 성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그들로 하여금 발심하게 하되, 혹은 대비심(大悲心)으로 인해 스스로 발심하며, 혹은 정법(正法)이 멸하려 할 때 그 법을 지키기 위해 발심하게 한다.
이렇게 신심을 성취하여 발심한 이는 정정취에 들어가 끝까지 물러나지 않나니, 이것이 여래의 종성(種性)에 머무르는 것으로서 정인(正因)과 상응하는 것이다.
여기서 여래의 종성에 머무른다는 것은 이미 습종성위(習種性位)에 들어간 것으로서, 그것은 곧 십해(十解)의 초발심(初發心)에 머무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한 것과 같다.
이상에 말한 것은 다 습성의 정정취를 밝힌 것이다.
* 習種性位 - 성종성(性種性)의 상대. 습소성종성(習所成種性)이라고도 함. 훈(熏)해서 만들어진 무루(無漏)의 종자를 말함.
* 十解 - 보살의 52위(位)중 십주(十住)의 위를 말함.
若是不定種性人 直向大乘而趣入時 至種性位 方爲正定
如起信論說 依何等人 修何等行 得信成就 堪能發心
所謂依不定聚衆生 有熏習善根力故 信業果報 能起十善
厭生死苦 欲求無上菩提 得値遇佛 親承供養 修行信心 逕一萬劫 信心成就故
諸佛菩薩敎令發心 或以大悲故 能自發心 或因正法欲滅 以護法因緣 能自發心
如是信心成就 得發心者 入正定聚 畢竟不退 名住如來種中 正因相應
此言名住如來種者 名已入習種性位 卽是十解初發心住
上來所說 皆明習成之正定聚
또 “만일 그 본래 보살의 종성이 바로 대승을 향해 들어가면, 처음 들어 갔을 때 아주 물러나지 않고 또 업력을 따라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 말에 의하면 십신위(十信位)에 들어가면 다시는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앞에서 말한 부정성의 사람과 같지 않은 것이니, 이런 말은 다 예토에 대해 한 말이다.
만일 저 정토에 나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정성(定性)의 이승은 왕생하지 못하고 부정성(不定性) 중의 3품 사람으로서 대승에 대해 발심한 사람은 다 정토에 나되, 거기 났을 때에는 바로 정정취에 들어가나니, 그것은 외연(外緣)의 힘에 주지(住持)되기 때문이다.
若其本來菩薩種性 直向大乘而趣入者 始趣入時 永得不退 不由業力墮於惡趣
依此而言 入十信位 便得不退 不同前說不定性人 如是等說 皆就穢土
若就得生彼淨土者 定性二乘 卽不往生 不定性中三品之人 發大乘心者 皆得生彼 生彼之時 卽入正定 由外緣力所住持故
삼취의 뜻은 대략 이상과 같다.
三聚分別略義如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