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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故鄕)-현진건(玄鎭健)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 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미는 것이다. 인물의 외양 묘사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도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도 곧잘 철철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꼬마데 오이데 데스까?” 어디까지 가십니까?
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도쿄가 어떠니, 오사카가 어떠니, 조선 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느니,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거린다는 등,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짧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까땍까땍하는 고개와 함께 “그렇습니까?”란 한 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하였다. “니상 나얼취, 니싱 섬마?” 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는 그 기름 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띨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에라고 연해 웅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짐승을 놀리는 요술쟁이가 구경꾼을 바라볼 때처럼 훌륭한 재주를 갈채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 꼴이 어줍지 않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더걱더걱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주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소설적 장치
▶ ‘그’와의 만남(인물 소개)
“서울까지 가요.”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오?” 그는 또 물었다.
“육칠 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 길인데, 우리 같은 막벌이꾼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오? 일본식으로 말하면 기진야도 같은 것이 있는기오?”
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였다.
그 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가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비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죄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십년 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辛酸)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기오?”라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채쳤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히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흠,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 타령의 실마리는 풀려 나왔다.
<속 이야기>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 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驛屯土)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치는 못할 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 척식 주식 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나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엔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의 삼 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타처로 유리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쇠진해 갔다.
지금으로부터 구 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新新)하랴. 그 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 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라, 무슨 형세로 적어도 일 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팔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 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 가는 중, 사 년이 못 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그’의 비참한 북간도 생활(우리 민족의 비참한 유이민 생활)
“모친꺼정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죽 한 모금도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그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그 눈이 번들번들함은 눈물이 쏟아졌음이리라.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 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무르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돈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슈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카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 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서울로 돌아오게 된 경위 설명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뭔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구 년 동안이니 퍽 변했겠지요.” 상전벽해(桑田碧海)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폐농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더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는기오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구경했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소리를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 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십 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우!”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 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키고,】일제 강점하 피폐한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제시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이 두어 방울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
▶‘그’를 통해 비참한 조선의 현실을 본 ‘나’
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었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 되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 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
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했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겠지요?”
“반갑다마다. 죽은 사람을 만난 것 같더마.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혼인 말이 있던 여자구마.”
“하아!”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이나 하구마.”
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 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다. 그가 열네 살 적부터 그들 부모들 사이에 혼인 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일곱 살 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비 되는 자가 이십 원을 받고 대구 유곽(遊廓)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처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 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 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녀는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이십 원 몸값을 십 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빚이 육십 원이나 남았는데, 몸에 몹쓸병이 들어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 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십 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 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십 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더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얼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따라 마시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한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이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 하면 무얼 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 묘지로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조선의 얼굴>
▶ 줄거리
‘나’는 서울행 기찻간에서 기이한 얼굴의 ‘그’와 자리를 이웃해서 앉게 된다. 이 좌석에는 각기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짜르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거리는 일본인과 ‘기름진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띠운’ 중국인 사이에 한국인 ‘그’와 ‘나’가 합석하고 있다. 즉, 세 나라 사람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라는 사나이에 대하여 ‘나’는 처음에 남다른 흥미를 느끼고 바라보다가 이내 싫증을 느껴 애써 그를 외면하려 하였지만, 그의 딱한 신세타령을 듣게 되자 차차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술까지 함께 마시게 되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조선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는 정처 없이 유랑하는 실향민이었으며 ‘나’는 ‘그’의 유랑의 동기와 내력을 듣는다.
대구 근교의 평화로운 농촌의 농민이었던 ‘그’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의하여 농토를 빼앗겼다. 떠돌이가 되어 간도(間島)로 떠났으나 거기서 부모는 굶어 죽고, 구주 탄광을 거쳐 다시 폐허의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 무덤과 해골을 연상하게 하는 고향에서 ‘그’는 이십 원에 유곽(遊廓)에 팔려 갔다가 질병과 부채(負債)만을 안고 돌아온 옛 연인과 해후했다.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일자리를 찾아 지금 경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어릴 때 부르던 아픔의 노래를 읊조린다.
▶ 어휘 및 구절 이해
· 옥양목 : 양잿물에 삶아 바래지 않은 생목(生木)보다 발이 곱고 흰 무명의 피륙
· 유지(油脂) : 기름 먹은 종이
· 감발 : 발감개. 발에 감는 좁고 긴 무명
· 철철대이거니와 : 거침없이 말을 잘 해대거니와
· 뉘엿거리다 : 토할 듯이 메슥거리다
· 횡설수설(橫說竪說) : 조리가 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말
· 뚜우하다 : 말씨가 적고 묵직하다.
· 주적대는 : 아는 체하며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 어쭙지 않고 : 말이나 행동이 분수에 넘쳐 비웃을 만하고
· 무료(無聊)한 : 할 일이 없이 심심한
· 겅성드뭇한 : 띄엄띄엄 성기고 드문드문 돋아난 듯한
· 양미간(兩眉間) : 두 눈썹 사이
· 소태 : 소태나무나 소태 껍질의 준말. 맛이 매우 쓰며 한약재로 쓰임
· 신산(辛酸)스러운 : 매운맛과 신맛이 있는. 세상살이의 매섭게 쓰라리고 고된
· 미주알고주알 : 사소한 것까지 속속들이 캐어 묻는 모양
· 역둔토(驛屯土) : 역토는 역에 딸린 땅이고, 둔토는 지방에 주둔하는 군대 경비를 · 충당하기 위한 논밭. 모두 농민에게 대여되어 소량의 소작료를 받던 땅
· 사삿집(私私-) : 공공 관서가 아닌 개인의 가정
· 부치다 :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 소작료(小作料) : 소작인이 지주(地主)에게 빌려 쓴 땅값으로 주는 곡식이나 돈
· 실작인(實作人) : 착실하게 농사를 잘 짓는 소작인
· 남부여대(男負女戴) : 남자는 짐을 지고, 여자는 짐을 이고 감.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꾸려 가지고 떠도는 모습을 일컫는 말
· 유리(遊離) : 이리저리 떠돌며 빌어 먹음
· 신신(新新)하랴 : 사는 것이 넉넉해져 생기가 돌고 새로워지려는가
· 주추(←柱礎) : 기둥 밑에 괴는 돌 따위
· 탐탐(耽耽)하다 : 매우 즐겨 좋아하다.
· 유곽(遊廓) : 창기(娼妓)가 모여 손님을 맞는 영업집
· 궐녀(厥女) : 그 여자
· 탕감(蕩減) : 진 빚을 온통 없애 줌
· 이글이글하던 : 정기나 정열이 왕성하게 일어나던
· 유산(乳酸) : 무기산(無機酸)의 하나로, 빛도 맛도 없는 끈끈한 기름 모양의 유독성 액체. 황산(黃酸)
· 새록새록 : 거듭하여 새로움을 느끼는 모양
· 나는 무엇이라고 - 몰랐다. : 일제에도 농토를 빼앗기고, 남의 땅 서간도로 가서 고생하다가 부모를 잃었다는 ‘그’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나’의 ‘그’에 대한 반감이 완전히 해소되면서 동족, 동포 의식의 일체감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
· 썩어 넘어진 - 놓은 것 같더마. : 완전히 폐허가 된 고향을 표현한 말로서, 확대하면 망국(亡國)의 한을 상징하고 있다. ‘넘어선 서까래’, ‘구르는 주춧돌’을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힌 것으로 본 것은 직유와 과장의 수법이다. 또한 이 부분의 방언에서 사실적 기법이 잘 나타나 있다.
· 나는 - 본 듯 싶었다. ‘그’의 눈물을 통하여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어둡고 비참한 조선의 현실을 보는 듯하였다. 이 대목에서 현진건의 정치적 고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조선의 얼굴’이란 말에 이어 ‘똑똑히 본 듯싶었다’의 상징성과 강조법의 효과는 독자로 하여금 현실과 자아의 각성 내지 의식을 야기한다.
· 그 신세도 내 신세만이나 하구마. : 그 여자의 신세도 서글프게 떠돌아 다니는 나와 다름없다는 뜻으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그’와 ‘그 여자’의 모습을 통해 ‘조선의 얼굴’을 더욱 뚜렷이 나타내려는 부분이다.
궐녀는 이십 원 몸값을 -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 육십 원이나 남았는데 : 당시 유곽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일제의 강제 수탈에 대한 저항 의식이 배어 있다. 10년 동안 몸을 바쳐 빚을 갚았건만, 오히려 3배나 더 빚이 늘어났다는 것은 일제의 강점당했던 시대에 대한 기막힌 현실 고발이라 할 수 있다.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 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 노예처럼 부려먹다가 늙어 쓸모없게 되자 선심 쓰는 척하고 놓아 주었다는 뜻. 일제의 간교한 속성이 여기서도 드러나 있다.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 자나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 슬프고 한스러운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새롭게 생각해 내어 마음에 되씹기에도 지쳐 있더라.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 일제가 국토와 주권을 강점하는 방법으로 농토를 빼앗아 길을 내고 지주가 됨으로써 한국인 지주는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소작인은 생활의 근거를 잃고 유리걸식(遊離乞食)한다. 폐농(廢農), 폐촌(廢村)의 원인이 된다.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 바른말로 일제를 비판하는 지식인, 언론인은 탄압당하고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 묘지로 가고요― : 나라를 잃은 슬픈 시대의 노인들이 맞는 한 많은 죽음을 뜻한다.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극빈으로 인해 생계유지가 곤란한 여자들이 생계 수단의 한 방법으로 어쩔 수 없이 창기(娼妓)가 되어 타락의 길을 걷게 되는 당시의 비극적 사회상을 말한다.
▶ 작품 해제
· 갈래: 단편 소설
· 배경: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의 서울행 열차 안
· 경향: 사실주의
· 표현: 작중 화자의 이야기 속에 주인공 ‘그’의 이야기가 내부 서사를 이루고 있다.
· 구성: 액자 구성
· 주제: 일제 수탈로 인한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 일제시대 우리 농민(민중)의 참혹한 생활상의 폭로와 일제에의 저항
▶ 작품 해설
‘고향’은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에서 1인칭 주인공인 ‘나’가 한 사내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식민지 정책 속에서 희생되는 민중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을 쓰는 시기에 이르러 현진건은 초기의 과도기 지식인의 불만과 갈등을 주로 다루던 경향으로부터 이제 사회 계층의 양극화에 주목하게 되고 하층 민중의 불행의 근원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게 된다. 사실적인 필치로 민족의 아픔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펼쳐 내는 이 작품의 내면에는 작가의 분노와 연민이 담겨 있다.
다만 민족의 아픔을 사건의 구성 속에서 보여 주지 못하고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서술한 점은 소설적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려는 작가의 정신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의 제목이 ‘조선의 얼굴’인데 그 제목과 이 작품의 내용은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 작품 이해
이 작품에는 두드러진 개성의 소유자나 극적인 흥미를 자아내는 사건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처럼 일제 치하의 한국인의 비참한 삶의 현실을 집약적으로 극명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그려 보여 주고 있는 소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 소설은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현실성뿐만 아니라 소설의 기법면에 있어서도 훌륭한 성취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즉 상징법과 구체적인 외양 묘사, 토운의 변화 등에 의한 점차적인 성격 노정, 대화의 사용에 의한 효과적인 사건 서술, 사실적인 언어 구사 등 제재의 광범함에 비추어 단편 소설로서의 작품적 효과에 작자가 매우 깊은 배려를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 “고향”의 문체와 표현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문체: 이런 문체의 특성은 주인공인 ‘그’에 대한 인물 묘사에서 나타난다. 그 반면 ‘그’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주관적 감정이 개입된 해설체로 표현되어 있다. ‘그’는 처음에는 객관적 관찰의 대상에서 나중에는 ‘나’와 ‘그’가 완전히 융합되는 상황으로 이끌어진다.
*영탄조의 서술: ‘그’에 대해 ‘나’가 갖는 동정적 태도는 서술자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논평자, 해석자의 위치로 변화한다. 이런 점에서 현진건의 서술적 미숙성이 지적된다.
*사투리를 통한 사실적 표현: ‘그’의 사투리는 극심한 고생으로 무디어져 버린 감정을 드러내는 데도 효과적일 뿐 아니라 인물의 신분이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 작가 및 작품 소개
현진건(玄鎭健) 호는 빙허(憑虛). 1900년 8월 9일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한문을 수학하다가 1912년 일본에 건너가 일본 세이조중학(成城中學)을 졸업하고, 그 이듬해인 1918년에는 중국에 건너가 상해 호강대학(扈江大學) 독일어전문부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대구에서 이상화, 백기만 등과 함께 동인지 <거화>를 발간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다가 1920년 11월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처녀작 “희생화”는 황석우에게서 혹평을 받았으나, 1921년 빈곤 속에서 나타나는 아내의 따뜻한 애정을 그린 “빈처”와 암담한 현실을 탈출하는 길이 술밖에 없음을 보여 준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함으로써 소설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1922년에는 박종화, 홍사용, 박영희, 나도향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유린”, “할머니의 죽음”과 같은 사실주의적 작품을 발표했다. 1943년 4월 25일 사망하였다.
현진건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1인칭 화자의 고백 형식을 통하여 작가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토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운수 좋은 날” 이후의 작품에서는 3인칭을 도입하여 작중 인물의 삶을 좀더 치열하게 묘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대표 단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운수 좋은 날”, “불”, “B사감과 러브레터”, “고향” 등이 여기에 속한다. 1931년 10월 그의 최후의 단편이라고 할 수 있는 “서투른 도적”을 발표한 이후 “적도”, “무영탑”, “흑치상지”, “선화 공주” 등 장편 역사소설만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역사소설은 일제의 군국주의화로 인해 전시대의 문학이념이었던 민족주의가 내면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타락자>, <지새는 안개>, <조선의 얼굴>, <현진건 단편선> 등의 단편집과 <적도>, <무영탑> 등 장편 소설을 출간했다. 이 외에 <악마와 가치>, <첫날밤> 등의 번역집과 <단군성적순례(檀君聖跡巡禮)>라는 기행문을 출간하였다.
▶ 작품집 <타락자>에 대하여
현진건(玄鎭健)의 소설집. 1922년 11월 13일 조선도서에서 간행되었다. 1921년 <개벽>에 발표된 단편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 1922년 같은 잡지에 발표된 중편 “타락자” 등 세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현진건의 첫 작품집이다. ‘타락자를 쓴 후’라는 작가의 후기가 수록되어 있다. 단편 소설의 개척자이자 탁월한 리얼리스트로 알려진 현진건이 작가로서 이름을 얻은 작품인 “빈처”는 표제 그대로 가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 요소나 경험적인 자아가 투사된 1인칭 서술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신의 가치가 물질의 힘에 눌려 무력화되고 있는 시대와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옷을 전당 잡히는 가난한 작가 지망생 내외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현실적인 삶에서 패배한 지식인의 경제적인 무능력함을 그리면서도, 그런 삶에 대한 자긍과 서글픈 위안을 동반하고 있다. 서술자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개 서로 다른 삶의 가치 중에서 정신의 힘이나 가치 쪽에 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물질적인 면에서 우세한 동서네의 삶을 사랑의 고갈이나 윤리적인 전락이라는 속성이 내재된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가난한 정신과 사랑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기 위안이겠지만 작가는 이러한 불균형의 대비를 통해서 사회적인 삶에 편재되어 가고 있는 배금의식과 물질적인 탐욕성 그리고 식민지 상황에서 교양과 문화의 고갈로 위축되어 가고 있는 지식인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술 권하는 사회”는 동경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뒤 자주 술에 만취되어 오는 남편을 관찰하는 아내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가 술을 권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은 명예나 지위 다툼으로 일관된 사회를 비난하면서, 그러한 조선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대답하고, 소박한 의식상태의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고 한탄한다. 아내를 관찰자로 설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아이러니는 현진건 소설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