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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거니는 산 봉우리 더욱 푸르고 붉은 태양은 맑은 하늘에 떠 있다. 망망대해 깊고 천지 또한 넓지만 하늘을 받치고 대평원을 이루어 산행하는 자가 천공을 향해 발걸음을 띄우는 곳, 오직 한곳이니, 바로 이곳 취서 신불 간월의 산정이다. 영남에는 중첩된 산 덩어리 하나 있다. 백두에서 뻗어 나온 낙동정맥이 영남 동부지방을 남북으로 뻗어 내리다 경주 단석산과 고헌산을 이루고, 큰 힘을 내어 산 군의 최고봉인 가지산(迦智山, 1240m), 운문산(雲門山, 1188m), 간월산(肝月山, 1083m), 신불산(神佛山, 1159m), 취서산(鷲棲山, 1092m), 사자봉(獅子峯, 1189m), 수미봉(須彌峯, 1108m)을 일구며 거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 1000미터급 산 7개를 중심으로 경상 남·북도 울주, 경주, 청도, 밀양, 양산에 걸쳐있는 넓이만도 수백 킬로평방미터에 이른다. 이곳 산군에서 형성된 크고 작은 계류들은 영남지방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낙동강으로 유입되면서 주변에 비옥한 토지와 수자원을 제공한다. 이 땅에 이토록 커다랗게 자리한 산군은 무릇 지리산, 설악산밖에 없으니 그에 견주어도 어깨를 겨룰 만하다. 어떤 이는 이 산을 두고 ‘영남 알프스’라 부른다지만 어찌 이토록 광활하고 이국적인 절경을 이루는 산이 한 지역의 이름이나 딸 정도로 형편없겠는가.
이 산군 중 취서·신불·간월산은 남북으로 길게 뻗으며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이룬다. 활짝 트인 들녘만큼이나 평화로운 산정은 ‘신불평원’이라 불린다. 굳이 이 산군의 줄기를 각각의 산으로 나누어 둘러보면 행정 구역상 취서산은 양산시에 속해 있으며 신불산은 울산에 접해 있고 간월산은 경북에 놓여 있다. 1000미터가 넘는 이만한 산들이 어깨 죽지를 나란히 하고 있는 곳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어느 한 방향 치우치지 않고 둘러앉은 널찍한 앉음새가 불당에 앉아 참선을 하는 스님의 모습인양 고요하기 그지없다. 이 산정을 오르기 위해 통도사는 하나의 관문이다. 비 개인 산아래, 바람맞으며 홀로 새벽녘 통도사 긴 소나무 숲을 거닐면, 수많은 나무와 풀 피어나 선의 진면목 보이니 절이 이 산에 위치한 까닭이다. 태초에 하늘이 빚은 산이듯 이역만리에서 옮겨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안치된 장소가 이곳 통도사이니, 아무 이유 없이 성스러운 자리를 가꾸고 이곳에 위치했다. 산정으로 접어드는 서쪽 들녘에는 아침 일찍 일어난 촌부들이 이미 밭고랑의 흙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시원한 들녘 바람은 그네들을 위한 벗인양 불어제끼며 신록의 투명한 연녹색 이파리를 흔든다. 통도사를 둘러싼 암자는 이르는 곳마다 밝은 빛을 발하며 취서산 자락을 수놓는다.
아름다운 꽃 기이한 바위 모두가 석가의 모습이다. 첩첩이 쌓인 봉우리의 흰 구름 또한 하나의 중생이 되고 법문이 된다. 인적없는 산길을 따라 올라 신록에 감싸인 공기를 들이키니 몸도 마음도 온통 한없는 영롱함으로 끝없이 힘을 얻는다. 그 힘을 타고 산정으로 걷는다. 태양도 가로막는 거침없는 투광에 산정은 5월의 부드러운 빛을 토해낸다. 등산가의 마음이 이처럼 넓고 편안하게 광활하게 거칠 것 없는 바람의 흐름 마냥 다가오게 하는 곳이 어디 있는가. 유독 이 땅. 이곳만이 걷는 자의 행위를 하늘로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하늘이라 말할 수 있는 평원. 움직임 없는 참다운 부동의 경계에서는 만고의 세월을 지새온 산이 이제 푸른빛을 띄우며 태초의 생명과 같이 몸을 부풀리고 있다. 또한 더불어 대평원 이곳에 한 기운이 돋우니 이것이 무엇인가, 비록 형상은 없어도 그 기운이 산을 휩쓸고 사방에 향기를 뿌린다. 걷노라면 절로 불문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람도 가를 것 없는 평야의 이름은 곧 공(空)이니 아무것도 없음이라, 곧 욕심도 잡스러움도 없는 하늘 그 자체이다. 도통 거칠 것 없는 바람도 오히려 걷는 자의 부딪침을 반기며 다가온다. 산정에는 아직도 무너진 천연의 돌들이 한줄기 긴 띠를 이루어 평원에 신비함을 더한다. 바로 단조성지이다. 일찍이 이곳은 신라가 양산지방에 성을 쌓아 왜구방비에 힘썼던 곳으로 이 지역이 군사기지의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말해준다. 첩첩이 드러낸 산줄기 사이, 그 안에는 통도사에 봉안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만큼이나 신비롭게 배내골이 안치되어 더 없이 깊은 흐름을 갖는다. 고봉들에 감싸 안겨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맑은 계류들은 모여서 내를 이루어 가다 한줄기 덩어리가 되어 폭포를 이루며 곳곳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이곳 사방은 산으로 둘러쳐져 있어 한참이나 머리를 치켜들어야 비로소 하늘이 바라보인다. 통도사를 보듬고서야 취서산이 되다 취서산에 자리 잡은 통도사를 찾아 산문에 들어서면 푸른 소나무 우거져 새벽 불광이 가지 틈새에 걸려 해맑은 햇살을 비껴들게 한다. 물씬 온몸을 짓누르는 소나무 숲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계곡에서 발 담그며 축축한 이끼를 느낄 때 생명체의 힘을 알까 싶다.
산 속에 깊이 묻혀 그늘이 자욱한데 계곡에 흐르는 물 저절로 차갑게 느껴진다. 한나절도 보낼 수 있겠구나 싶어진다. 맑은 기운이 산아래 봄을 태우며 가득하다. 푸른 소나무 기운 가득 뱃속에 채우며 걷노라면 그대로 허공을 답보하게 된다. 금수강산에 불광(佛光)이 한없이 깃 든 곳이 이곳 통도사라, 산 또한 서역만리 인도 영취산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취서산의 또 다른 명칭, ‘영축산’, ‘축서산’이라는 이름은 천축국(인도)의 영취산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 불광의 빛이 이곳 통도에 자리 잡음이다. 양산시 취서산 남쪽 산속에 자리하고 있는 통도사는 조계산의 승보사찰 송광사, 가야산의 법보 사찰 해인사와 더불어 3보 사찰 중의 하나로 불보종찰이다. 또한 31본산의 하나이자 제3교구의 본사이다. 경내에는 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서기 646년 선덕여왕 15년에 자장 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이 절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다. 통도사라는 이름은 승려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누구나 불사리를 모신 이 절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수계식(受戒式)을 해야만 승려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통도사 뒤로는 취서산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취서산은 통도사 주변의 자장암, 극락암, 비로암, 백운암, 취서암 등의 암자를 품고서 통도사를 굽어보고 있다. 취서산쪽으로 걷다보면 통도사와 취서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안양암을 지나고, 급경사 길을 내려서 다리 건너면 통도사 요사채와 보광전이 나온다. 여기서 계곡을 끼고 난 길을 가면 곧바로 취서산 가는 길이다. 통도사를 감싸고 있는 구릉이 끝나고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주석했다는 자장암 가는 길이 정법교 건너 왼쪽으로 들어선다. 금와보살이 있는 자장암에 올라서니 예불하는 스님들의 불경 담드는 소리가 산사를 경건하게 휘젓는다. 절로 경건함을 갖게 한다.
작고 아담한 자장암 산령각에는 자장율사의 영정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 제작된 마애불과 금개구리 전설로도 유명하다. 금와보살이라고 불리는 이 개구리는 자장율사와의 인연으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통도사 여러 암자에 가끔 나타난다고 한다. 자장암 뒤 암벽, 조그만 구멍에서 청동빛 개구리가 햇볕을 쐬고 있다. 염불에 동면하던 잠을 깨고 참선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조용히 숨을 죽일 따름이다.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절 따라 금와보살이 분명하구나. 기쁨에 들뜬 생일을 맞이한 기도하는 스님이 반가이 객을 맞으며 내놓은 차와 과일이 향기롭다. 서로 이야기 하며 마음을 논하는 곳에 어느덧 취서산의 영기가 슬며시 움직여 깨우침을 알게 한다. 옷 한 벌 그릇 한 벌 이것이 승려의 생활로 가난한 삶을 살지만 마음은 궁하지 않아 보인다. 산은 참으로 통도사의 스님들이 사랑하는 산이니 불자와 함께 거듭난 곳이다. 산은 방석이 되고 지붕이 되고 병풍이 되어 통도사의 암자들을 어우러지게 한다. 극락암을 지나 비로암에 들렀다 통도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파른 백운암을 땀 빼고 오르니 산정이 바로 위다. 시살등과 취서산이 병풍을 이루며 통도사를 보듬고 있다. 가히 자장율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실만한 장소이다. 숲이 우거진 암릉과 평원을 지나니 암반으로 이루어진 취서산 정상이다. 취서산 산정에 야생화 한 송이 손 끝으로 건드리니 봄빛이 산정에 가득해진다. 봄 빛깔에 물든 산줄기를 바라보며 하늘을 우러러본다. 신불산 평원에 단조성지가 있다 하늘과 맞닿아 유독 맑고 푸른 평원에서 그 경계를 거닌다. 만추의 황금빛 억새의 어울림을 뒤덮는 초원의 풀들이 꿈틀거리는 신불평원을 걷노라면 도를 즐기듯 이내 걷는 자의 마음은 하늘에 통한다. 5월의 산정은 성큼 성큼 다가온 봄기운에 야생화들이 갈라지고 꺾인 갈대 속에서 샛노란 꽃방울을 피워 아름답기 그지없다. 신불산은 영취산 북쪽 능선 2.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산으로 영남알프스 산군에서 가지산에 이어 두 번째 높은 산이다.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 3개의 산이 종주 주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취서산에서 신불산으로 가는 구간은 억새평원으로 나무라고는 멀찌감치 한 그루씩 서 있는 것이 전부이다. 신불산은 신령님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문헌상으로는 간혹 ‘간월산 단조봉’이라는 지명이 보일 뿐이다. 울주의 지명유래에 보면 ‘홍류폭포의 유원은 단조성 안의 정천(井泉)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적혀있고 ‘구름 덮인 단조봉에서 한폭의 청수가 흘러 폭포를 이루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본다면 단조봉은 간월산이 아니라 신불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신불산 평원에는 아직도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바로 단조성지(丹鳥城地)이다. 언양현읍지에는 ‘단조성은 언양현에서 남쪽으로 13리 떨어진 취서산 위에 조성된 석성으로 그 둘레는 4천 50척으로 성안에는 식수용 못이 있었고 축성연대는 알 수 없다’고 기록돼 있다. 지리적으로 볼 때 낙동강 하구에 사는 사람들이 육로를 이용하여 언양·경주 방면으로 여행하려면 자연 이 산성 아래를 지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왜구가 낙동강 하구에 상륙하여 신라 수도인 경주로 쳐들어 갈 때에도 같은 과정을 밟아야만 했을 것이다. 때문에 신라는 국방상으로는 중요한 국경지대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이제 허물어져 오랜 역사와 함께 남겨진 돌무더기들은 단지 단조성의 흔적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후에 쌓여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가을이면 환상적인 억새능선으로 변모하는 이곳 신불평원의 일부는 국내 최대규모의 대표적인 고층습원으로 밝혀졌다.
취서산과 신불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신불평원 80만평 가운데 취서산 북서쪽 산성터 주변의 20여만평에서 흰색꽃을 피운 황색식물과 흰제비란, 분홍색의 설앵초 등 습지에서만 서식하는 대표적인 지표식물군이 억새밭 초원 곳곳에 형성된 물웅덩이와 주변의 습지에서 발견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층습원으로는 강원도 대암산의 용늪과 산청 지리산의 왕등재늪, 울산 정족산의 무제치늪 등 3곳으로 이번에 발견된 단조늪은 4번째인 셈이다. 산정아래 신불재에는 신불산 대피소가 있다. 오두막집에서 맞이하는 저녁 밥상의 고기와 장터에서 산 향기로운 야채가 구미를 들게 한다. 황금 갈대 온 산을 덮었던 만추가 지난 지 이미 오래지만 달빛도 밝은 밤에 동료 몇과 홀로 조용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볼 수 있는 시간. 텅 빈 신불산 대피소 슬레이트 지붕에 가로 댄 통나무 사이로 사위가 짙은 어둠에 사그러들 무렵 달빛은 창연한 빛을 드리우고 산정 멀리 도시의 거나한 빛들이 젖어 들어온다. 내륙 저편 울산 건너 동해의 푸른 물결 출렁이는 가운데 오로지 밤을 유영하는 고깃배의 휘황찬 불빛도 가까운 양 파고든다. 밤을 꾸미는 그 모든 불빛이 한 송이 연꽃으로 나타난다. 자리에 누워 흔들림 없는 고요에 젖어 드니 심중에 이는 파동은 잠자는 듯이 조용하다. 발걸음은 언제나 억새를 스치고 평야를 걸어 푸르고 맑기 그지없다. 신불산 산정에 서면 북으로 주능선이 간월재의 평원을 지나 간월산으로 이어진다. 동으로는 길게 공룡과도 같은 암릉이 흘러내린다. 설악산 공룡릉과 흡사하다고 하여 이곳 산꾼들 역시 ‘공룡능선’이라 부른다. 암릉을 따라 내려서다 암릉이 끝날 무렵 좌측 계곡으로 접어든다. 급경사를 이루던 내리막길이 끝날 때쯤 신불산에서 흘러내린 홍류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흩어져 내리는 한폭의 청수가 햇빛을 받아 갈라 뿌려진다. 널찍한 등산로를 내려서면 등억리 벌판위로 야트막한 야산들이 봄빛에 푸른 빛깔을 드러낸다. 간월산에 올라 세상사를 잊고 간월산(肝月山 1083m)은 신불산과 맞닿아 배내봉(906m)을 뒤에 두고 있다. 정상을 오르기 직전 간월재부터 펼쳐진 수 만평의 대평원은 취서산 신불산과 더불어 형제지간의 닮은꼴을 과시한다. 간월산은 이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여 세상사 잊게 하는 신성한 산이다. 그러나 왠지 어스름한 빛을 띄고 있는 모습이 처연히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 모습의 간절함은 무릇 황폐하게 헤쳐진 동강난 허리춤에서 배어 나온다. 간월산의 ‘간(肝)’은 곰 등과 함께 우리 민족이 써오던 신성하다는 뜻이며 ‘월(月)’은 넓은 평온을 뜻하는 말로 주변에는 널찍한 억새밭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신성하고 평온한 이 땅위에 임도가 간월산 안부인 간월재까지 연결되어있다. 임도는 다시 파래소 폭포 상단 지구 자연휴양림을 향하기도 하고 또 다른 먹이감을 찾아 산비탈을 헤치고 다닌다. 양산국유림관리소와 남부지방산림관리청에서 울창한 숲과 맑은 물, 깨끗한 공기를 흡입하며 휴양과 정서를 함양한답시고 뚫었다는 도로이다. 신불산 폭포 상단 자연휴양림을 이용하기 위해 그들이 산림의 공익기능(혜택)을 들먹이며 내놓은 자연휴양림 안내서를 보면 임도의 개설은 흙흐름막이, 깨끗한 물 선사와 큰물막이, 맑은 공기 제공, 들짐승 보호, 산사태 방지, 쾌적한 쉼터를 제공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산길은 등산객의 사람이 지나다니며 자연스레 만들어졌다가 인적이 뜸해지면 또다시 숲이 우거져 제모습을 찾아가는 게 자연스런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지 못하는 위정자들은 ‘산림도로’라는 어여쁜 이름 속에 날카로운 비수를 숨겨 천년만년 지켜온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하물며 산정아래 위치한 옛 간월사 터는 그대로 방치되어 처음 보는 이로 하여금 쓰레기 하치장 정도로 여기게 한다. 주변의 등억온천 개발을 빌미로 드나드는 수 백대의 차와 인파들, 그리고 공사장의 각종 폐자재와 오물에 뒤덮여 있는 것이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저질러지는 자연파괴 현장을 보면 결국 인간 스스로 파괴될 것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간월사지(기념물 제5호)는 신라 진덕여왕(647∼654, 재위)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초기에는 선인단좌형(仙人端坐形)으로 볼 수 있는 이 명당에 좌청룡 계곡수와 우백호의 골짝물이 흐르는 신라 고찰 간월사가 있는데, 그 후 임진왜란 때 폐사되었다가 조선 인조 12년(1634)에 재건하였다하며 현재 금당지(金堂地)등의 건물터와 축대, 주초석, 장대석 등을 비롯한 석조여래좌상과 2기의 석탑재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를 읽을 수 있는 간월사지는 인적이 끊기고 수풀에 우거져 있다. 간월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살이 등억리를 지나면서 작천정 앞을 지난다. 영겁의 시간이 흐르면서 하얗게 바랜 화강암 바닥은 선경을 방불케하며 매끈한 속살을 드러낸다. 작천정은 계곡의 물이 맑고 풍경이 뛰어나 한편의 시를 노래하던 곳이다. 조선조 세종20년에 지방의 학자들이 세종을 생각하여 지었다는 정자주변은 청정한 물과 하얀 바위가 조화를 이루어 절경이다. 소나무 우거진 정자는 애초 조선조 고종 때의 현감인 정긍조가 시화를 열고 정각 짓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 제안에 모두들 찬성했지만 뜻은 이루지 못했는데 후임으로 최시명이 헌양시사(당시 언양지방 시인들의 문학단체)를 정비하고 1902년 정각을 세워 작천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맑게 흐르는 계류를 따라 사람들은 세상사 근심을 잊고 이곳의 풍류를 즐기기 위해 북적거린다. 하지만 옛 선인들의 풍류를 따라갈까 배내골 물살에 떠가는 배꽃잎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무릇 사람들은 광대함과 수려함을 논하며 기암의 오묘함과 빼어난 계곡, 단애가 주는 멋스러움을 얘기한다. 그리하여 산천은 ‘금수강산’이란 수식어를 사용함으로써 견줄 만하다는 뜻으로 가장 뛰어난 듯 비유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화려함과 수려함을 지니지 못했음에도 그 깊이만큼은 옹골지고 질박하여 우리네 진솔한 삶을 보여주기에 더욱 아름다운 곳이 있다. 배내골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듯, 산세에 뒤덮여 숨어있는 배내골은 산문을 지나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비구니 수련도량으로 유명한 석남사를 지난다. 배내고개에 서면 울창한 숲을 이룬 배내골은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오지의 전형을 드러낸다. 산을 사방에 끼고 내가 흐르는 모양새이지만 워낙 깊어 계류가 보이지 않는다. 창창한 숲을 이룬 청산은 첩첩이 솟고, 청산은 그 속에 흰 구름 몰고 다녀 날마다 구름 산 벗하며 배꽃을 피워낸다. 배내골의 아름다움은 이처럼 그 물의 시원함보다는 골 주변을 가득 메우며 어우러지는 하얀 배꽃에 있다. 그래서 배내골이라 불린다. 매끈하게 뻗은 하얀 암반을 타고 조락조락 흘러내리는 물살에 섞여 꽃잎들이 밀려 내려올 때, 아마도 진리는 자연이라는 생각을 시나브로 갖게 만든다. 이곳을 찾는 이의 발걸음이 끊일 날 없음은 진리를 찾아 골에 모여드는 탓인지도 모른다. 작은 담에는 거친 물살을 헤치고 올라온 산천어들이 여유로운 몸짓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묶어둔다. 때론 도시를 벗어나 오지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이런 물고기의 여유를 닮아보기 위함이 아닐까. 갈라진 암반 사이로는 긴 여정을 통해 달려온 물들이 쏟아지며 하얀 포말을 그린다. 그러나 화려함도 잠시. 깊은 소는 시퍼런 산의 깊이를 알리듯 틀어지고 꼬이며 제 살을 부딪쳐가며 장관을 연출하다 한편으로 놀란 듯 금새 꼬리를 접는다. 배내골에서 지류를 타고 더욱 깊이 들어가면 한가한 휴식공간인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신록을 찬탄할 듯한 연녹색을 뿜어내는 잎사귀들에 가려 찾는 이를 맞는다. 신록의 더해가는 수목들이 찾는 이의 마음 마저 보듬는다. 산책을 나갈 만한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파래소란 이름의 폭포가 있다. 굉음을 토하며 하얀 배꽃처럼 조각조각 파편이 되어 떨어지던 물살은 그대로 조용히 소에 머금는다. 완전히 보여질 수 없는 인간의 세속처럼 한줌의 시원함만 흩뿌리다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한다. 그리하여 눈길은 무작정 물살을 좇다 그대로 잠겨버린다. 그 깊이에 알 수 없는, 그래서 너무도 파란, 파래소폭포. 배내골의 깊이는 한편으로 무릉도원처럼 다가오지만 속을 드러낼 수 없는 그 깊이는 가슴에 한줌의 응어리만 남기며 떠나오게 한다. <글|강윤성 기자 사진|이훈태 기자> |
취서산∼신불산∼간월산 종주가 단연 압권 통도사를 출발해 취서산∼신불산∼간월산 정상을 거쳐 배내고개까지 가면 9시간 가량 걸린다. 통도사 매표소를 들어서 경내를 지나 40분 정도 오르면 스님들이 마음을 수련하는 선원인 극락암에 이른다. 이곳에서 벼랑 위에 걸려 푸른 노송과 어우러져 흰구름 떠도는 백운암을 거쳐 오르면 시살등에서 취서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1시간 30분이면 당도한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50여분 걸으면 취서산 정상이다. 취서산 정상에서 신불평원이라 불리는 드넓은 억새능선이 신불산, 간월산으로 이어진다. 취서산에서 신불산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신불산에서 간월산까지는 간월재를 거쳐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간월재에서 배내봉을 거쳐 배내고개까지는 2시간 정도 가야 당도한다. 식수는 능선에 오르기 직전 백운암에서 구할 수 있다. 또한 신불산 아래 신불산대피소 옆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가 흐른다. 신불산 최단 코스는 가천리방면 가천리 코스는 신불산을 오르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35번 국도를 타고 가다 한일주유소에서 북서방향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천마을 회관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두 개의 계곡 중에 오른쪽 방향으로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약 2시간 30분이면 신불재에 도착한다. 신불산 정상까지는 25분 정도가 소요되고, 이천리쪽으로 계곡을 타고 내려서면 2시간 30분이면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다. 가천리∼건민목장∼큰골∼신불재∼신불산∼백운암∼이천리 코스는 6시간 걸린다. 이색 코스 ‘신불공룡능선’ 작천정을 지나 주행하면 ‘간월자연휴양림 1.5km’란 표지판이 나오고 표지판에서 온천교로 좌회전하여 오르면 간월산장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이 산행 들머리이다. 등산로는 계곡을 끼고 평탄하고 넓은 산길이 이어진다. 계곡을 가로지는 철다리를 건너면 갈림길을 지나 왼쪽 길로 오르면 홍류폭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가파른 경사면을 타하야 한다. 오르면 능선에 다다른다. 이곳에서부터 정상까지는 ‘신불공룡능선’이라 불리며 암릉을 타고 스릴을 즐기다 보면 신불산 정상이다. 등억리∼간월산장∼홍류폭포∼공룡능선∼신불산 코스는 2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 |
통도사는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를 지나 통도사 인터체인지를 나와 1025번 지방도에 진입하면 곧바로 도착한다. 배내골은 언양 분기점을 지나 서울산 인터체인지를 나와 24번 국도 타고 석남사를 지나 좌측 69번 지방도로로 차선을 바꾸면 곧 배내고개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울산광역시와 경상남도 경계선까지 접어든 다음 이정표를 따라 좌측 계곡을 1.7킬로미터쯤 올라가면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이 나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통도사는 울산에서 8:20, 10:40, 14:30, 17:00, 19:40에 있다. 울산시외버스터미널(☎052-257-4114) 울산→언양 버스는 6:30부터 21:40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 언양시외버스터미널(☎055-262-1007). 언양→배내골 버스는 08:45 16:00. 언양→간월산장은 7:15분부터 19:50까지 대략 1시간 간격 운행, 30분 소요. 서울→울산 버스는 서초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6:00부터 19:00까지 20∼30분 간격으로 있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02-535-4151) 통도사와 작천천, 배내골 주변에는 많은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통도사 주변에는 황토방모텔(☎055-384-0332). 원조 손두부(382-8751)는 식당으로 방이 3개. 작천정 주변 간월산자연휴양림(☎052-262-3770). 간월산장(262-3141)은 한가족부터 단체까지 사용. 배내골 주변 상북면 이천리의 신불산폭포 자연휴양림(☎055-383-6492). 베네치아(☎052-264-8184) 배내고개에서 6킬로미터 거리에 있으며 콘도형 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