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홍씨중랑장파20세
諱 무적 字 면숙 號백석.대종손충헌공휘세공의삼종아우
선조정축1577년1월16일생.
광해경술1610년생원
인조계미1642년병조참판
효종7년병신1656년정헌대부 우참찬 諡 충정
효종7년1656년4월21일.
졸 수80세 묘 장단백석동 건좌 문정공 송시열찬 신도비
인조대왕이 명나라 어명을지극히 순응하여 姦行하는흉악범은 誅責제거하고
어질고 뛰어난 사람을 나아가 기용할새 처음생원 홍공으로서청령현감을제수하다
공이 병으로 사양하였더니 또한 진천을 通津하다가 임종할 무렵에는 6경에 이르렀다
효종묘에 이를때는 더욱오르는데 주의하여기용되었다 폐지되면 야인으로 돌아가니
그의 뜻이 장차 크게 쓰이리라했더니
마침네병신년4월21일에 졸하였다
장차 죽음에 이르러 스스로 글 을 쓰되
동해 에 한 늙은이가 있으니이름은 무적이요
자는면숙이요 홍 은 나의성이요
백석은 나의 호 라 문인도 아니요 무인도 아니지만
성군의 세상을 만난지라
깨달으고 감격하게 맞이하여 마음에 품은 것이 있으면뜻 한바를 반듯이 이루우니 오랑케의위협에는절개를 하나로하여 죽음에이르러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모름지기 나라에 이로움이 있으면 소용돌이 치는 물과깊은 구렁에도
다 달았고
임금에게 예의가 없는 자를 보면 송골매가새를 쫓듯이 하였다.
두가지 얼룩을 관철하지아니함이없고
80을 나타내는 나이에 壽를아니했다할수없으며
인정과은택에의지함이 다하여 나의 마음이 편안하다 하였으니
이는 비록 공이 스스로 말한것이나
이를 론평하는자 모두 정도 라 하였다
대체공이 이위경및 윤인, 정조,등 이 인목대비의페모론 내세움을 당함에 모든 생원을거느리고
그것은 불가하다 극언하고.
크게聖母后 로섬기는데 힘쓰다가
드디어 거제도 바다섬으로유배하였다,
게해년에이름에 대략 9년이라,
이때 백성들이 기름에 불타는데서 새로운 몸이
솟아 나왔다고 하였다
공이 읍 에 나아가서마음을 다하여 어루만지며 위로하니
기사년에법제정의 신임을받고
임신년에호조로 부터 떠나 사헌부지평을 제수하였다가
영월군수로
바꾸려 말하니 취임하지않는지라
후에 김제로하니 취임하고
곧 돌아와서갑술년숭례에따라차례로 글 을올리고
거듭삼가하여왈 2세가독단으로함이없읍니다
*공의 생부 의필 공이 신천군수요
공이 영월군수면 부자가 단독으로 군수를 한다는 뜻****
뒤에임금의교지가 미안하게되었다하니 이어 명을 사양하고,
마을로 돌아와서 집에서 숙식을하더니
병자년호란에장단에서 부터변란에닿았다가 길이막혀서
더 나아감을얻지못하여元帥의 幕을 따르니
元帥가영남으로 主揮를 시키거늘 가면서 안동에 이르렀다
오랑케의 물러갔음을 듣고 서울로 돌아왔다
정축년에 잠시 공주목사를 하다가 들어와서사헌부장령을하니
그사이에
제사정이되다,
기묘년가을명을받고,해서 로 탐문하니(해서 어사)이때주인이 사람을 알고 점점 정중하게바라보고 공 또한임금에게 천만가지말씀을 포게서 올리게하니 무릇 부끄러움을 씻게되었다 주장한다
다시 장령을 하여 김자점과심기원의 죄를 논하였다
신사년 사간원에 특승하고 가로되
그표지 가 진정이라하였더라
신사년에 다시 승정원에 특승하고
임오년에 예로 우승지에 이르렀다
형조참의로 옮기고 또 병조참판에 특승하였다
이때 杞平君유백승이 승평부원군김류 를 논하니
서로가 옳커니 그르거니하거늘 공이 임금에게글을 올려 말씀하니
임금이 아름다운 호피를 하사하며권장하고 끝내다
계미년에대사헌을 제수하니
익이 장관이되어군병을 사사로이 부리는지라
공 이일깨워효용을 보이니
황익 이 바로 심귀원의귀와 눈이더라
공 이 귀달이가 직위를탐하고 행장이 없음을 론 하니 벼슬이 좌의정이라 임금이 또한상신인고로 공의말을쓰지아니하다
갑신년에 심양에 사신으로 명을 받들으니 이때 저 가운데는 힘센놈이 으르렁 거린다는 말이있다하여
사람들이 다 공이 위태롭다 하는지라
조정의 의론을 바꾸어 공을 보내지 말자하거늘 공 이가로되
오랑케의위험을 피 하지아니함은 사람과 신하의 분별하는유의라하고
글을 올려 자기를 청하니임금이 옳다하고허락을한지라
이미심양에 이르름에 상신사 백강이공경여 와 더불어구류를 당
하였다가
공 을 먼저 돌려 보내거늘 공이 가져간 전대 가 다 되었으므로자빈관에서 곤한몸을풀다.
청음 문정공이 선시에깊은 마음이 있는 지라
백강공과아울러 사연을써서 임금께 올리도록 보내었다
공이 패강을 건너돌아와서 타고 다니던준마를 백금에 환전하여심양에 있는 백강공에게 자금을 보내다
이때공 이 백강공에게 일러왈 심기원이 임금의 마음에 있기도하고 없기도 한다
하더니 사신을 마치고 돌아옴에기원이 이미 불역한죄로 엎드려서 주살을 당하였다
다시 대사헌을 배 하니 일을 논함에 더욱 의지 하지 아니하더라
을유년에 오랑케사람들이 쌀10만곡을 급히 구하여 달라하고
왈기일을 잃은즉,일을 밭은자, 죽음을 당한다 하거늘
조정에서 공을 보내니 많은 사람들이 원망하다,
병술년에 동지 의금부사 爲대사헌하여 강희빈의 옥서건이 일어남을 만난지라,
공이 姜을 여쭈어 폐 하는것은 옳거니와죽이려 함은 옳지 아니하니
반듯이 姜을 죽이고져 하면臣을 먼저 죽이라 하니
임금이 그의 뜻에크게 거슬려서 정의로유배했다가
정해년에남해로 옮기려하니
장령 이응서가 글을 올려 가로되
전하 가 일찍이홍모 를 견주어 아득하게 높이부르시더니
이제 충성 이아니라 하여죄를 내리시니
한사람의몸으로 어찌앞과뒤가 다르십니까?
응서 또한 먼곳으로 가서앉아서 귀양살이 하도록 보내다,
공이 또 갑산으로옮기니
이때 후사 출납이
마땅하지않은지라
임금이 편지로 공을 생각함에 얼마안되어홍천으로옮기다,
기축년5월인조가 태상으로 올라가고
효종이 명하여 자기의고형으로 돌아가게하더니,
경인년봄에
나라에크게 꾸짖는일이있어서 안과 밖이 용솟음치거늘
공이 감히 고향에물너나있지아니하고
드디어장단성ㅇ으로들어가서 서추총관을 경유하여
한성부윤에 옮겼다가
또 대사헌을 배 하다
변사기 가 김자점의심복으로 수원부사를하니
수원은 실로 둔병이 있는곳이라,
공이 심히근심하여
여쭈어왈옛적에적청이 추밀로 조정에있음에 ,사람들이다 어질다하니 구양수 가 청하여 왈당나라의
주 체(사람이름) 는 본래 반역자 가 아니라 아래에서갑자기한것이 닦친바이니
옛적부터 난을 일으키는 자는 반듯이 그의근본을 다 살피지아니함이라,
곧바로 말려들어서 점점쌓여서차질에 이르렀나이다
싱 은 나이 늙어서현혹하기 쉬우니 심히 염려가없지아니하나
형적에 이르름이없어 사람들이 감히말을하지 못함으로
위로 총명을 더렆히고
아래로 대신의성냄을 범 하는지라
그러하오니 어찌 지나친
염려를반듯이옳지아니하다는심산이리오,
불행히 만에하나라도 變이있으면,
노신이 말을 아니하였다 ,
이르지마소서,
자점의 모반사건을 깨달음에사기가 과연미리모의 하였음이 흐트러져 어지러우니 사람들이 비로소 공이 먼저 보는 눈 이 밝다 하였다,
옥고를 마침에 특히 두 벼슬을 뛰어넘어 공조판서를
제수하니공이 사양해 가로되공의망언이 비록 시험한바 있드라도,
뜻하지 아니한일에지나지아니합니다
임금이 공경을 보고 먼저비판하는것은 지혜요,
충직하게 고 하는것은 충성이라 하다,
임진년에 우참찬 을 배 하고
계사년에 또 대사헌을 순차로 아울러 배 하다
이로부터정부서벽관이있음에
공의 이름이 그 가운데잊지아니한데가 없더라,
두번째형조판서를하니 옥사에 미혹이 있음에
그사건의끝트머리가
심히 공교로우되
공이 한번심문하여 곧 판결하니 사람들이 귀신같이 밝게한다고칭찬하였다,
병신년에 나이82세로정헌대부의 위계에올라 임종하니,
부고를 들음에 임금이 놀라고 슬펴하여 공신이 죽음에 은전을 더 하다,
공의본관은남양이니 그위선조는 중국으로부터 처음온지라
당정관사이에 5학사를보내여 본국에와서 가르키니 홍씨가 그한사람이라,
우리조선에 들어와서더 더욱성하였다,
고조휘약침공은돈령부정이요
조휘응경은증 좌승지요
고휘 의필은 정랑이니,증 사인이라 ,
비 는창령성씨니
그의아버님은절도사 세칙이라
공이 백부 휘 인필의후로 출계하여 공의 행적이 이미귀 하였으니 증 판서 하다, 공이효도하고 우애함에인륜이 끊어져서, 동복인 누이동생이 병 이위급하여
기절하거늘 공이 손가락을 찢어서 그피를 마시게하였다,
뒤에 집 재산이치우치게 넉넉하니 노비가50구 로 그아우와 더불어나누어 한담장안에서 함께살아서 아침 저녂 기뻐하고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받들어 모심에은혜와 예절을 갖움을 지극히하였다,
이로써 미루어본즉 그가 부모섬김을가히 알것이다
어릴때부터소통하고 발달하여 남에게 배푸는것을즐겨서 가난하여 춥게 지내는자 를 봄에 문득옷을 풀어주어아끼는빛이없었다
,만력신묘(선조24년)공의나이15세라,
왜 의 두목 풍신수길이가임금을 시해하려고사신을 보내서 엿보게 하니
중봉선생이 왜 나라사자의머리를 베혀서 글을올려 강론하고
명나라 조정에 아뢰어듣게하라 하니,
공이 듣고 일어나는욕심에서 명나라조정에 가서 아뢸것을맏겨달라 하거늘
중봉이 크게 기특히여겨 이상한일인지라,
드디어 임금에게올리는말이,
더듬없이 곧은말로하며,아는데로말을아니함이없고,
말은 반듯이생각하여 정도 로하였다,
늙도록벼슬을 번거롭게 함에한사람도 포만이없었고
조정이선지40여년에생활이 항상궁핍하여
집담장이 무너지고,지붕이엉을 더 하지못하여 빗물이 세기도했었다,
친함과두터움은 청음,백강과같이
계곡 장公유와
택당이公식과 ,
술옹 이公명준 이를
그이가 가장 좋아 하였다,
古인의 글읽음을 좋아하여,늙음에 이르도록게으르지아니하니
그에게 賜하신제문에힘이 굳세고 성품이예민하고할달한식견이있다고하니
이 말씀이 다 함이로다,
부인은 광산김씨이니 동지사 원록의따님이시라,
먼저 죽음으로장단화장산에子坐를 등진둔덕에장사하고,
공의묘는 장단백석동에 유좌를 등진둔덕에있다,
장남은九疇요
차남은九淵이요
계남은九韶라,
손서 강증황은맏아들의사위요
심석과감사정창도는둘째아들의사위요
계남에서 출생한 子둘이니
萬이고
億이라,億은문과등재하고 지평으로구연의뒤로출계하니實로 공의祭主가되었다,
銘왈 백석은 의젖하여,바야흐로 굳세고正直하였다,
옛사람의글을 통독하여높은식견이 있는지라
,접대혼미한조정에서있음에 벌레가먹어가는윤리를 떳떳하게이루었다,
공의 뛰어난 붓글씨는멀리흘러가는물처럼 말끔하고 번개같이빠른지라,
흉악한무리들을 놀라게 부릅떠보다가,
굽이치며 매사운 바다섬으로 귀양살이를함에
9년의세월을 구류당하니임금의 옥쇄가 바뀌어 진지라,
하늘의햇빛이 거듭밝아서,어진것은오르게되고,간사한놈은 능지처형되다,
공을郡과邑에試用할새,백성이恩澤을입고 노래하였다,
임금의돌보심이 날 로 더하고높아서 臺閣에배풀어 두기도했다
조정에 정곡하게입조함에날로 여쭙고아뢰었으며,착한마음이 치우치게 많으니
官에 간사한것들은 두려워서 굴복하였다
갑자기 변고를만나매 가시나무길로 가게된지라,
대저 어찌하여太古의글이 야박하게맞이게 되는고!
방 을 베풀어주심을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임금의생각하시는글이 자리앞에있는지라,
임금의 부르심이조금늦어지니
聖君의얼굴뵈옵이늦어질까 두려워 한지라,
聖君이 寶位를이어도 계속하여函書로불러쓰시었다,
임금을 도와 바른政事를할려고 이르름에 있더니,
몹쓸 병 이 위급하게 닥친지라,
聖朝가 놀라 슬펴 하였고,착하였던 모든일들이傷하고 없어젔었다,
대체로, 그의시작과죽음은옛적에도,의당있음인지라,氣와 이마가 호걸하고
건강하여 風流와韻致가 卓越하였다.
해마다 쌀쌀하고초출한몸이워낙깨끗하게志操를 지켰으며
政事가 파멸 되니聖君을苦難케한지라,
이제곧 죽어 없어지니九旬을넘기지 못하였도다.
내가 銘辭를 지어서 無窮無盡하게보이리라!!
尤菴 宋時烈 지음
번역권산.홍 순달 자료옮김 홍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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