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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심연수의 대표시 해설 <2000년 4월 교단문학 발표>
- 일제 암흑기와 심연수 문학의 개요 - 이 재 호(한국언어철학연구회장)
l. 심연수 시인을 중심으로
936년 일본은 총독 미나미 지로를 앞세워 <내선융화, 선만일여, 일시동인>이라는
통치방침을 표방한다. 보다 철저한 우리 민족말살과 황민화 정책을 강행하는데 면 단위마다
신사 설치를 하게 하고 l937년부터는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의 서사 제창을 강요할 뿐 아니라 이듬해에는
국체명징, 내선일체, 인고단련의 강령에 따라 한국 학생의 황국신민화를 꾀하고 조선과 만주의 교육령을 개정,
학교의 명칭, 교육 내용을 일본 학교와 동일하게 했다.
우리말의 사용을 금지했으며 l939년, 창씨개명 제도를 실시 우리의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칠 것을 강요하면서
한국인들을 강제로 징용 전쟁터와 탄광 등지로 끌고 갔다.
l940년부터 일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국말 신문을 폐간시키고 조선어학회,
진단학회 등을 강제 해산시켜 민족문화의 말살을 꾀했다.
심연수 시인은 이러한 시기에 우리말 우리의 정신인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동흥중학을 2l살의 나이에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발굴된 민족시인 심연수 선생의 작품들은 l939년부터 l943년까지 5년 동안의 미발표작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일제는 l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을 만들었고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전개했으며 l94l년 3월, 사상범예방구금령을 공포, 언제라도 감금이
가능한 체체를 갖추였으며, l942년 학도동원체제, 국민근무체체 등 징용의 강제력을 비상수단화했다.
l943년과 l944년에는 징병제와 학병제를 실시, 대학생들도 강제 소집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심연수 선생이 l943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용정에 돌아오면서부터 일제의 학도병 강제소집을 피해
신안진으로 가 초등학교에서의 교원생활을 통해 반일사상을 학생들에게 고취한 사실과 이로 인해 두 번이나
유치장에 갇힌 것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사실을 알고 신안지에서 용정까지 걸어서 오던 중
l945년 8월8일 일본군에 의해 마침내 확인 사살된 근거가 학병제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당시 일제강점기의 자료를
일본정부에 요청했으나 묵살된 바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따라서 필자는 l944년 일제가 아베 노부유키 총독으로 하여금 전쟁 지속을 위해 비협조적인 한국 지식인들에 대한
대규모의 가혹과 탄압과 검거에 이어 1945년부터 발견 즉시 확인사살을 명령한 바 있음을 문제로 제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의 제기는 l944년 8월 여자정신대 근로령과 l945년 애국반, 경방단 등의 조직적인 한국인 통제가 주 원인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계속된 만행임을 심연수 시인의 발굴 과정에서 밝혀냄으로 민족 시인의
자리매김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데 있다.
2. 심연수 시문학의 특징
심연수 시인의 문학적 어휘력은 다시 연구되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그 시적 주제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선구자적 언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 시기에 흔히 나타나기 쉬운 무슨 애련이나 자연을 감상하는 감각적 시풍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에서
문학혼을 불태울 삶의 결연한 프側?돋보이는 사실주의적 경향이 시의 주조를 이룬다.
또한 강인하고 비타협적이며 생명력 넘치는 정의와 신념, 그리고 남성적 삶의 지조를 견지하는
서정적 자아의 지사의식과 주의시적(主意詩的) 기법이 모던하고 비장하다.
심연수 시인의 시적 특징 가운데 또 다른 현상은 약소 민족에 의한 현실적 고민을 문학을 통해 초월하는
진실과 자유와 생명력의 서정적 자아의지 극복이라 할 것이다. 이는 적극적 정서의 측면이 강렬한 만큼 선생의 시가
르포르타주한 기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심리적 리얼리즘을 시의 한 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학을 통한
투쟁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시적 언어의 리얼한 비유와 은유의 씀씀이가 모던하게
내면의 주제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한계의식에 의한 초월조건을 차용하는 것인데
이러한 정신적인 힘이나 시적 경향은 내적 관조보다는 능동적인 자기의 생각을 표출하는 데 중심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거창성과 모호성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연수 시인의 시적 자아가 비교적 직설적이며 작품이 생경하기도 하고 투박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서정적 자아의 내면적 여과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그 예술성에 있어서는 감칠맛이 덜 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시어의 선택과 배열, 배합을 보면 단순미와 함께 절대생활용 어미의 변용을 보편적인 일상용어로 다스려나가고 있다.
사물에 대한 내적 의지를 본질로 하는 순수함이나 긴요한 정직성과 그 독창적인 시작법은 시적 공감에 따른 윤리적 교훈뿐 아니라
고귀한 의지의 언어 경험을 감득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심연수 시인의 문학적 특징 가운데 또 다른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을 통한 근대정신이라 할 휴머니즘의 시적 주제의식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연수 시인의 문학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사상이나 그 의식구조가 인간 중심적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성적 존재자로서 자립해야 한다는 민족의 중심성을 실현코자 하는 시적 휴머니티가 돋보인다.
시대적 피지배 현상에 따른 합리적 휴머니스트로 민족 구성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음을 선생의 문학은 웅변한다.
그러므로 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사료전집에 수록된 선생의 시와 시조가 보고 읽는 이에 따라 다소 편차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이유를 큰 관점에서 볼 때 심연수 문학의 초기시와 후기시의 영향 때문이리라. 또한 일본 유학 시기와 유학 후에 창작된
시편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중국에서 문학 공부를 하던 것과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서 공부한
문학의 정보 역량에 따른 차이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문학에의 변화는 일본에서 친구 이기형(생존) 선생과 함께
몽양 여운형 선생을 만나고 나서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이 주된 원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심연수 시인의 지사적 열정이 때로는 강인한 신념에 의한 시적 체험으로 다소 엇갈리게 우리와 만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의 독립을 위한 문학적 정의가 아름다운 것은 심연수 시인이 사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발굴되어
우리들에게 그 책임을 되묻고 있다는 것이다.
3. 심연수 시인의 시적 언어
민족시인 심연수 선생은 시의 종결어미에 있어 남다른 언어 씀씀이를 보이고 있다.
들으라, 부르라, 보라 할꼬. 배였구나, 설레인다, 가누나, 가버린다, 주려무나, 스며든다, 찾더라오,
어찌한담, 왠일인고, 나이다, 주었소, 으리니, 오리다, 얻노라, 쉬다니, 소이다, 오지요, 자란다, 큰다,
굶어라, 네것이다, 로다, 납소, 소서, 는고, 세라, 으리라, 더이다, 졌구나, 일이냐, 맞노라,
스럽다, 것이다, 봐라, 하여라, 들이다, 었다, 알리라, 다녔다, 하구나, 였구나, 싶구나, 좋겠소, 하나니, 이냐, 하라, 한다, 간다, 썼다, 란다
이러한 언어의 씀씀이는 주의시적 의지의 시풍을 형성하는 데 있어 사용되는 시적 용어임을 알 수가 있다.
선구자적 언어의 배열을 몸에 익힌 듯한 이 종결어미의 사용은 심연수 시인의 시 도처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왜 이러한 주의시적 시관을 통해 역사적 격변과 충격을 시적 위안으로 삼았는지 그 심층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관조일 것이다.
시인은 그의 시적 대상으로 민족의 생활양식을 가장 먼저 꼽고 있다. 우리 민족이 늘 꿈꾸는 지평선이며, 대지며, 나무며,
들이며, 바다와 강, 그리고 아침과 낮과 밤이며, 새벽을 주제로 노래했다. ‘나와 너’와 ‘우리들’과 ‘나그네’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한편 ‘소년’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민족해방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심연수 시인의 또 다른 시적 특징은 시의 직설적 표현 기법을 쓰고 있음이다. 이러한 모더니즘적 시풍이 주의시적 경향과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시어의 선택이란 목적시의 유형을 벗어나기 어려운데도 블구하고 서정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그 문학적 깊이를 느끼게 한다.
선생의 시 <불탄 자리>, <빨래>, <만주>, <등불·l>, <들꽃>, <한야기>, <잃어버리는 글>, <우주의 노래>,
<거울 없는 화장실>, <소지>, <육화>, <귀한 그들>, <인류의 노래>, <들불>, <벙어리>, <폭상>, <기적>,
<새>, <파향>, <추락한 명상>, <돌아가신 할아버지>, <세기의 노래>, <소녀>, <폭풍>, <밭머리에 선 남자>,
<지구의 노래>, <님의 넋>, <환마>, <너는 나와 같더라>, <밤>, <벽>, <편지>, <밤이 새도록>, <지설>,
<가난한 거리>, <심문>, <좁은 문>, <전차>, <나그네·1>, <고독·1>, <샘물>, <봄의 뜻>, <고독·2>, <맨발·l>,
<새벽>, <기다림>, <밤은 깊었으련만>, <대지의 겨울>, <소년아 봄은 오려니>, <고집>,
<턴넬> 등을 내용으로 한 시적 언어 구성은 심연수 시인의 정신적 지조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데 있어 바로미터가 된다.
여기에서 필자는 l943년 당시 일제의 탄압과 우리 언어말살정책에 의한 검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심연수 선생의 시 대부분이 직설적이며 주의시적(主意詩的)임으로 목숨을 건 시작 행위를 서슴치 않았던
이 위대한 민족시인을 일본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 밖의 일이었다. 일제의 확인된 학살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민족시인들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필자의 심연수 시인에 대한 애착은
시인이 자신의 민족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문학이라는 정신적인 무장으로 일본에 저항한 그 숭고함 때문이다.
4. 대표시의 감상과 이해
소년아 봄은 오려니
봄은 가까이에 왔다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
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
전지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
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 게다
가산은 팔렸으나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
저 밑의 대장간 집 멀리 떠나갔지만
끝 풍구는 그대로 놓여 있더구나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소리를 다시 내어 보아라
너의 집이 가난해도
그만한 불은 있을게다
서투른 대장장이의 땀방울이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
너는 농부의 아들
대장의 아들은 아니래도…
겨울은 가고야 만다
계절은 순차를 명심하자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
...........필자가 중국조선족문화예술후원회<회장:이상규시인>의 도움을 받아 <소년아 봄은 오려니>를
심연수시인의 대표작으로 가려 뽑지 않았다면
이 시는 묻혀버렸을 것이다. 당시 심연수 시인의 대표작은 일부 비 전문가들에 의해
<수평선>으로 알려졌으며 수평선이란 시는 후일 심연수시인 시비 제막식이 끝난 뒤 일제에 아부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안겨준 시가 별로 없었던 시기에 <소년아 봄은 오려니>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민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불태운 청년 심연수 시인의 짧고 위대한 영혼이 문학을 통해 지조를 지킨
몇 안 되는 우리 민족의 저항 시인이었음도 그의 시 도처에서 밝혀지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문학인들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거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에 아부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을
선택받아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을 일제로부터 저항의 탈출구로 삼았던 심연수 선생은 오히려
일본을 알기 위해 유학길에 오르고 이를 바탕으로 일제의 패망을 예언하는 한편, 선생의 수많은 유작 가운데
<소년아 봄은 오려니>와 <고집>, <턴넬>, <전차> 등 이미 앞에서 열거한 시작들이 가장 극명하게 선생의 저항정신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제목에서 보듯이 소년과 봄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시구 풀이는 민족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리얼하게 암묵적 은유기법을 이용하여 명시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봄은 가까이에 왔다(=일제로부터 민족 해방)”는 전제를 통해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는다고 예견하는
자연의 이치를 시적 바탕에 내재하고 있으므로 그 이미지의 대상을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너의 조상은 농부”였고, “너의 아버지도 농부”라 말하는 시적 언어 속성에서 보듯이, 일제에 강점당한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비유할 뿐 아니라 농부가 뜻하는 경작의 형상화를 교훈조로 통찰케 한다.
제5행에 이르러 시인은 봄과 소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은유하면서 직관을 차용한 극복의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농사를 지을 “전지(땅)는 남의 것(=일제에 빼앗김)이 되었으나 / 씨앗(=민족해방을 위한 국권 회복)은 / 너의 집에 있을” 것이라며
예언자적 저항성을 표현하고 있음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이 시에서 백미를 장식하는 6행에서 16까지의 시적 긴장감은 투사적 언어 씀씀이가 그 위대성을 발휘하고 있다.
“가산은 팔렸으나 /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에서 가산과 나무의 역할 분담을 이중화시킨 것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목숨을 내건 사건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저 밑의 대장간 집 멀리 떠나 갔”다는 시적 진술은 선생 자신의 고백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끝 풍구는 그대로 놓여 있더구나(=민족의 구성원은 빼앗긴 땅에서 그대로 살고 있구나)
/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소리를 다시 내어보아라(=여기에서 화덕과 숯의 역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뿐 아니라
3·l 독립 징신을 시적 내용의 화두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너의 집이 가난해도 / 그만한 불은 있을게다(=이 지사적 통찰력은 민족 해방의 깨달음을 염두에 둔
선생 특유의 시적 기법으로 다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 서툰 대장장이의 땀방울이 /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선생의 시적 정서와 의지적 언어관은 보편적 민족성을 획득하고 있다.
모국어에 담겨 있는 문학의 전통성을 선생께서 후세에까지 교감케 한 그 민족적 체취는 경건한 것이기도 하다) /
너는 농부의 아들 / … / 겨울은 가고야 만다(= 일제 시대는 겨울과 같아서 패망할 것이다) / 계절의 순차를 명심하자 /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자연의 이치를 이 시 속에 도입한
선생의 내적 고백성은 역동성을 갖기에 더욱 선명하다. 선생의 내적 의지의 발현 또한 민족의 자아를 찾는 데 목숨 건 비장함을 동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에서 비타협적이며 시적 생명의 의지를 민족애 하나로 견지하다
일본 헌병의 조준된 흉탄에 젊은 청춘을 버린 민족시인의 숭고한 시정신을 우리는 다시 찾아 기려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민족시인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심연수 시인이 이육사 선생과 이상화 시인과 같은 분들에 비해 한치도 손색이 없다는 것은 이 작품 이외에도
선생께서 남기신 수많은 유작들이 증명하고 있다.
고집
고집을 써라 끝까지
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고
타고난 엇장을 굽히지 말라
벽을 문이라고 우기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우기고
소금이 쉬여 곰팡이 낀다고 뻗치라
우기고 뻗치다 꺾어지건 통쾌해도
뉘게다 굽석거리는 꼴은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선쟁의 의도는 절개와 같은 것이다.
일제의 수탈이 극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시 <고집>이 뜻하는 민족정신의 뚜렷한 목적이 근본적인 물음에 접근하고 있다.
선생은 이 시를 통해 “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 것을 강변하면서, 우리의 “타고난 엇장(비분, 기개,
고집불통, 비타협)”과 같은 절개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벽을 문이라고 우기고(=절망을 희망이라 하고) /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우기고(=일제의 거짓말을 비유하고 있음)”에 유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선생은 <고집>이라는 이 시에서 그 저항의 본질을 이렇게 표현했다.
“소금이 쉬여 곰팡이 낀다고 뻗치라” 즉 사랑이 썩어 냄새난다고 뻗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뻗치다의 말뜻이 갖는
시적 의미는 위에서 말한 절개의 정신과 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서 차라리 꺾어질지라도 타협하거나
일제에 순종하지 말 것을 고집이라는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뉘게다(누구에게) 굽석(굽신)거리는 꼴은 /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하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제 치하에서 죽음을 뜻하는 일이었다.
턴넬
길다란 턴넬
감캄한 굴 속
자연이 가진 신비를
뚫어놓은 미약한 힘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찾아도
밟히우는 송장
바닥 가득 늘어자빠진 꼴
아, 빛이 없어 죽었나
그러나 또 무수한 생명이
레루를 베고 침목을 베고 누워
지나갈 바퀴를 기다리고 있음을
또 어찌하리
싸늘한 송장의 입김에서 들려오는
울부짖는 소리
우를 우러러도
아래를 굽어보아도
캄캄한 굴 속, 캄캄한 굴 속
시의 본성, 곧 시란 무엇인가? 시는 어떤 예술인가? 시는 어떤 언어인가? 시는 어떤 역사와
사회적 문화 현상인가? 시는 어떤 심혼의 소산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선생으로 하여금
일제의 흉탄에 돌아가시기까지 계속된 과제였을 터이다.
시가 당시의 현실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던 선생으로서는 민족문학을 위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1943년 일본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오던 해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진
시 <턴넬>은 선생의 문학적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
이 시를 읽지 않으면 심연수 선생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겠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터넬과 선생의 시 터넬이 뜻하는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길다란 턴넬(=일제의 오랜 억압) / 캄캄한 굴 속(=일제 식민 치하에서의 생활) / 자연이 가진 신비를 /
뚫어 놓은 미약한 힘(=일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 / 눈을 감고 걸어도 / 눈을 뜨고 걸어도 /
밟히우는 송장(=일제 식민 치하에서 죽어간 백성들의 시체) / 바닥 가득 늘어자빠진 꼴 /
아, 빛이 없어 죽었나 / 빛이 싫어 죽었나(=자포자기한 상태의 암울한 현실을 비유) /
그러나 또 무수한 생명이 / 레루(레일)를 베고 침목을 베고 누워 / 지나갈 바퀴를 기다리고 있음을 / 또 어찌하리”
일제는 그들의 야욕을 위해 철도를 건설했으나 철로에 놓인 침목의 수만큼이나 많은
우리의 백성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는 것은 이 시는 확실한 증언처럼 증명하고 있음이다.
“싸늘한 송장의 입김에서 들려오는 / 울부짖는 소리”
선생께서 턴넬을 바라볼 때마다 일제가 학살한 우리 민족의 귀중한 목숨들과 그 영혼의 처절한 울음 소리를 귀에 쟁쟁 듣지 않았으랴.
“우를 우러러도 / 아래를 굽어보아도 / 캄캄한 굴 속, 캄캄한
굴 속”
이 시의 자아의지가 턴넬이라는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턴넬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적극적인 의지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데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선생의 문학은
세계를 지성적으로 갈파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봄의 뜻
읽고서 알았쇠다
님마음 알았쇠다
보고서 알았쇠다
님마음 알았쇠다
글자마다 살았고
구절마다 뛰더이다
─ 원문(당시 사용되는 언어)
읽고서 알았습니다
님 마음 알았습니다
보고서 알았습니다
님 마음 알았습니다
글자마다 살았고
구절마다 뛰고 있습니다
─ 수정(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즉, 봄을 뜻으로 풀이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전체 6행의 시적 언어 의미가 ‘알았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을 읽고 알았다는 것은
님이라고 하는 마음을 말한다. 여기에서 님은 봄이 뜻하는 개화와 해방의 님인 것이다.
보다 더 의미심장한 싯구는 “글자마다 살”아 있다는 것과 그 “구절마다 마음이 뛰고 있”더라고 하는 내적 의미의 완결성이다.
봄의 뜻이 담고 있는 독창성은 개성이다. 이러한 개성이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시적 언어의 주제의식이 참신해야 한다.
따라서 심연수 시인의 문학적 이원성은 봄이라고 하는 의미를 뜻으로 파악하고 있는 데서
이 작품의 독창성과 함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록 짧은 시이긴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또한 충족하고 있다. 봄의 뜻이 말하고자 하는 심미성, 대중성, 상징성이 시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어서
살아 있는 정서를 경험케 한다.
따라서 원문과 수정된 시를 함께 싣는 것은 1940년대 당시에 사용된 우리말의 씀씀이를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참고되어야 한다는 뜻에서이다.
새벽
미명의 광야를
달리는 자 누구냐
동 터올 새벽을 기뻐 맞을 젊은이냐
짧아진 희대에 활활 붙는 불
새빨간 불길이 춤을 춘다
푹푹 우그러든 자국마다
땀이 고였고
대기를 몰입한 듯한 호흡의 율동
지심을 놀랠 만한 그 무보(武步)는
피 묻은 싸움의 여세(餘勞)의 연장
암흑을 익힌 개선장병아
분투의 앞에 굴복한 과거는
캄캄한 어둠 속에 쓰러졌다
승리자여,
만난을 극복한 투사여
오래지 않아 서광이
그의 얼굴을
그의 몸을 비치리니
속으로 웃어 마음에 간직하라
잡고 있는 횃불 아래
따라오는 무리의 갈 길을
가르쳐주라
해 돋는 동쪽 하늘가
넓고 넓은 그곳으로
심연수 시인의 일반적인 시들의 주제가 주의시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어두운 시대에 대한
고뇌와 자아 성찰이 비교적 쉽고 상징적 표현 속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회의와 번민,
처절한 고독 속에서의 희망을 잃지 않는 새벽을 꿈꾸는 자세는 예언자적 미명을 기다리고 있다.
지성의 면모를 보는 듯하지 않는가? 시대의 현실을 통찰하는 이 역사적 자아의 승화는
심연수 시인의 정신적 지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벽이라는 이 시의 주제의식은 우리 민족의 해방에 대한
간절함을 비유와 은유기법을 이용해서 작품화했다.
시인의 시적 소재는 실제의 사건과 그 일어날 것에 대한 개연성과 필연성을 동시에 갖는다.
시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일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보편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성이란 우리 민족의 미명인 해방이라는 현실적인 명제가 내재되어 있으므로 이 가능성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암흑을 익힌 개선장병아 / 분투의 앞에 굴복한 과거는 / 캄캄한 어둠 속에 쓰러졌다 / 승리자여, / 만난을 극복한 투사여”
오래지 않아 서광이 비칠 것이니, 이때 마음 속으로 웃고 그 섭리를 마음속에 간직하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필자의 견해는 심연수 시인의 시적 의지가 불가능을 가능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것의 가능성은 믿을 수 없지만 일어날 것에 대한 가능성이 있음을 필자는 믿고 있다.
심연수 시인의 시 <새벽>은 민족의 숙원인 해방을 일어날 것에 대한 가능성의 새벽으로 본 것이라는 점에서
예지적인 시인의 통찰력을 놓이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다.
등불
존엄의 거룩한 등불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다가
한줄기 폭풍에 꺼져버렸습니다
그 옛날 조상께서
처음 켠 그 불이
그동안 한 번도 꺼짐이 없이
이 안을 밝혀 왔습니다.
그들은 그 빛을 보면서
옛일을 생각하였고
하고 싶은 말을 하였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는 이 있으니
또 다시 밝아질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 등잔에는 기름도 많이 있고
심지도 퍽으나 기오니
다시 불만 켜진다면
이 집은 오래 오래 밝아질 것입니다.
이 시의 시적 언어의 특성은 함축적인 의미의 서정을 예언자적 목소리로 표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는 민족의 역사적 숨결을 느끼게 한다. 등불을 일컬어 ‘존엄’이라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민족애의 이상을 노래하고 있다. ‘한줄기 폭풍’에 비유되는 일제치하를 시인은 집 안의 촛불이 꺼진
것으로 바라볼 만큼 비범하기까지 하다.
내면의 토로가 이러할 만큼 내적 의지의 시적 구현이 분노보다 저항보다 더 이상적이다.
배경지식 없이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지는 않다.
들불
임자 모를 불
거침없이 타는 천리 저쪽 녘
누가 놓은 블씨이기에
저토록 꺼짐 없이
밤하늘을 붉히느뇨
사정없이 타오르는
불길! 불길! 불길!
끌래야 끌 수 없는 위대한 작탄!
언제까지 이 들판에 살아 있을지
어두운 저녁 혼자 보는 들불
그 불똥이 이 가슴에 튀어오기를
삼가 경건히 머리 숙이고
말없이 숭엄히 바라보노라.
l945년 2월 16일, 이 날은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날이다.
1945년 8월 8일, 이 날은 심연수 시인이 학살된 날이다.
여기에서 윤동주와 심연수라는 두 시인 가운데 왜 윤동주 시인은 우리에게 알려졌으며
심연수 시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이토록 뒤늦게 발굴되어야 했는지
그것이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윤동주 시인은 비록 고향이 중국 용정이라 하더라도 당시 서울 연희전문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심연수 시인은 고향이 강릉일지라도 중국 용정 동흥중학을 마치고 일본 유학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일제가 패망한 후 심연수 시인을 알고 있는 문학인이나 연고자가 안타깝게도 서울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윤동주의 동생과 심연수의 동생은 서로 친구 사이였고 그렇다면
윤동주의 집안에서라도 심연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윤동주의 집안으로 하여금 심연수라는 시인의 이야기가 50년이란 세월 동안 묻혀 있도록 했을까?
시 <들불>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의문들을 생각해보자.
지사적 시인의 면모가 잘 드러나 보이는 이 <들불>이라는 시에서 시인의 육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은
이 시가 지니고 있는 사상과 시적 호흡의 긴장감이다. 민족의 들불, 조국 해방을 위한 들불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는
위대한 작탄(炸彈)을 시인은 바라보고 있다. 그 불길을 가슴에 안고 삼가 경건히 머리 숙이고
숭엄하게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은 이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분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