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선락 傳
1.
황선락이 마산 내려온다는 기별 왔다. 그의 말은 ‘니 얼굴이나 보고 식사나 한 끼 하면 된다.’ 그게 목적이다. 막상 그날 되니 그래도 되나 하는 생각 든다. 마침 근처의 그와 구면인 임신행에게 상의한다. 그러면 우포늪 한번 보여주는 것이 어떠냐 한다. 그것 괜찮겠는데? 동행으로 창녕사람 소설가 김현우 까지 나선다. 마침 우포늪에서 창녕문협 행사도 있고 하여 겸사길이 된다. 서마산 아이씨 입구에서 만나 함께 우포늪으로 간다. 사전에 그런 얘기 하지 않았다. 설명을 듣더니 좋다고 한다. 어쩌면 마산시내보다 우포늪을 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생각도 않던 임신행, 김현우까지 나서니 딴 생각 있더라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좀 미안하고 찜찜하고 그렇다. 말은 안하지만 그냥 시내서 얼굴보고 밥 한 끼 먹고 갈려고 생각했다면 불편 할 텐데, 하는 생각 자꾸 들어서다.
2.
그의 낡은 가방이 눈을 끈다. 가죽가방인가 봤더니 가죽은 아니다. 흔한 비닐가방인 것 같은데, 그냥 비닐은 아니고 무슨 천에 비닐을 씌운 질감 같은데 무슨 가방인가 묻기도 그렇다. 내 관심은 이 가방이 구멍 나기 직전의 낡은 가방이라는데 있다. 비교적 매끄럽게 처신하는 그가 이런 가방을 애지중지 들고 다니는 것은 필연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는 세계가 비좁게 안다니는 데가 없다. 그것도 자신이 이야기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실토하건대 그는 여행이야기와 여자이야기를 나에게 잘 한다-. 어떻든 가방은 그의 행적을 알고 있을 것이다. 너덜너덜 구멍 나기 직전의 이 가방, 어떤 곳인들 가지 않았으랴. 가방은 얼핏 주인을 구두쇠로 설명한다. 얼핏 난봉꾼? 인양 설명한다. 그러면서 주인이 대단히 활동적이면서 사업수완이 괜찮다고 설명한다. 그의 회사가 괜찮게 성장한 것이 그것을 잘 설명한다. 그러나 저러나 가방은 주인 잘 만나 여행 잘 하고 다닌다. 은근히 가방 녀석이 나보다 열배 백배 났다는 생각 든다. 나는 여직 꿈도 못 꾸는 세계 여행을 가방은 제집 안방 드나들 듯 하니, 엉뚱한 부러운 생각도 든다. 아무튼 가방은 세련된 황선락의 행색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은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고, 가방은 당당히 주인의 소지품을 소중히 챙겨 담고 동행하고 있다. 지금은 주인 따라 우포늪에 와있다. 우리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우포늪 언덕길을 달린다. 이거 몇 해만인가. 황선락은 익숙하게 자전거를 잘 탄다. 나도 덕분에 자전거를 탄다. 40여 년 전 마산 선창에서 장사할 때 타고 다니고 처음이다. 아무튼 우포늪 길의 자전거 타기라니, 어떻든 상쾌하다. 임신행도 같은 생각인지, 실실 웃으며 꽤 밝은 표정이다. 실은 임신행은 자전거 귀신이다. 심심하면 우포늪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는 자전거 마니아다. 이 자전거로 하여 얼마나 많은 우포늪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겼는가. 이날 자전거 타기는 황선락 덕분이다. 그가 와서 우포늪에서 웃어보는 한때가 된다. 같이 사진을 찍는다. 추억이 되겠다 어쩌고 농담 나눈다. 그 사이 가방은 그늘 한편에 늙은 개처럼 웅크리고 앉아 주인을 지켜보고 있다.
3.
어느 해던가.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니까 수십 년 전이다. 마산서 서울 간 김에 전화를 했더니, 그는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승용차 한대를 보내주었다. 운전사까지 딸린 고급 승용차였다. 가보고 싶은데 가보라면서. 얼마나 미안했든지, 소문만 듣던 용인자연농원에서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도 따뜻한 친구다. 그런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이래서 되는가. 새삼 미안함과 송구스런 생각이 들어 이제라도 시내로 나가 밥 이나 챙겨 먹여 보내야지 궁리하고 있는데, 이걸 어쩌랴. 어딘가 열심히 전화를 하는가 받는가 싶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며, 오히려 “김해 공항까지 좀 데려다 줄 수 있나?”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헤어졌다. 그 이후에는 마산에 오겠다는 말을 잘 안한다. 지가 있는 제주 별장에 놀러오라고 하는 걸 보면, 그때 서운하게 여긴 것 같지는 않다. 황선락, 그를 어찌 잊으랴. 근년 들어 회사를 아들에게 맡기고 소설 쓰는 재미에 빠져있다. 장편 <풍화>, <월곡리로 간 한국전쟁>을 잇달아 펴내었다. <풍화>로는 ‘유승규 문학상’을, <월곡리로 간 한국전쟁>으로는 ‘박영준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에는 여러 지면에 에세이를 써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소설가 李振雨는 이 에세이가 황선락의 작가적인 특질을 잘 보인다는 코멘트를 보내준바 있다.
4.
-쥐구멍
60년대 초반 문청시절 나는 갓 제대한 사회 초년생. 가난한 황선락은 초보 소설가로 그때 우리는 철없던 이십대였다. 어느 날 그가 난데없이 나를 찾아와 부인이 해산을 했다고 난감한 표정이었다. 황망히 배내옷 한 벌과 미역 한 단을 들고 그의 셋방을 방문하였다. 세월 흐른 후 나는 한동안 그때 뭐든 좀 넉넉하게 사들고 방문하지 못한 것이 걸렸다. 민망한 것은 그가 한 번씩 무슨 칭찬인양 그것을 들먹거려 쥐구멍을 찾게 하는 것이다.
<잉여촌 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