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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회비 모금의 역사 1905년 10월 27일 대한적십자사 창립 당시 반포된 칙령 제47호에 따르면 당시 적십자의 재정은 황실에서 내린 은사금으로 시작되었다. 전 국민의 회비가 아닌 황실의 은사금만으로 재정을 유지했던 대한적십자사는 당시 일적 한국위원부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사원확보 및 재원 모집으로 대한적십자사를 폐쇄시키고 국제기구로서의 활동을 없애려는 의도가 있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하에 대한적십자회의 회비모금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누구나 일정액을 기여하면 회원이 될 수 있었으며 모금을 위한 전담조직을 구성하였다는 특징이 있었다. 적십자회 임원들은 본격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조직적이고 공개적인 모집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1919년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 「대한적십자회 대모집 경쟁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적십자회에서는 회원 모집운동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달력과 배지를 만들어 동포들에게 배부하기도 하였다. 당시 회원에는 외국인도 있었으며 회비는 국내지회 및 해외동포가 보내온 돈도 보태졌다. 정부수립 후 1949년 4월 30일 대한적십자사가 재조직되어 그 해 지사 조직을 완료하고 12월 12일부터 익년 1월 31일까지 모금기간을 정하여 회비를 모금하였다.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의 선포문과 이범석 총리의 담화문도 발표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은 적십자에게 있어 큰 타격을 가져왔다. 이 시기에는 전쟁전의 자금과 미적으로부터의 원조금으로 운영하였으며 예산의 부족으로 직원이 감축되기도 하였다. 제3대 구영숙 총재는 1952년 12월 15일 적십자회원모집을 정부의 지원과 행정기관의 협력을 얻어 임시수도 부산에서 실시하였다. 전쟁에서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한 인도주의 사업을 펼치기 위한 노력이었다. 전쟁 후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1953년 적십자 부가금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1953년은 단체회비의 시초가 된 군인이 적십자회비를 납부하기 시작한 해이다. 군인회비는 현재 50년간 적십자를 후원하는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고액회원제도는 1971년 전국의 기업체에 요청한 것이 시초로 고액회원을 모집하기 위하여 승용차, TV수상기, 전화 등의 보유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계획을 세웠으며, 76년에는 고액회원증강운동을 펼쳤다. 1980, 90년대는 적십자 사업이 성장 발전한 시기로 국민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적극적인 참여로 적십자 회원 및 회비가 증가 되었다. 그 후 회비모금제도는 1984~86년 서울시에 한해 은행자진납부제(지로제) 시범실시후 1997~2000년 지로납부시범실시를 거쳐 2000년 현행 회비모금제도를 완성하였다. 1999년에는 후원회원제도를 실시하여 2006년 현재 매월 15만명의 회원이 연간 25억원 이상을 기부하고 있다. 韓赤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국민의 참여로 인도주의 사업을 펼쳐왔다. 지난 100년 韓赤의 활동은 국가의 시련과 국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이겨내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항상 국민이 적십자의 사랑과 봉사 정신을 깊이 이해해주고 사랑해준 든든한 후원자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글: 100주년사무처 임군빈] |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