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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이야기 나눔 ▒▒ 스크랩 정 때문에
대은 추천 0 조회 9 06.07.19 05: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 때문에

 


                                                                                            - 여강 최재효

 

 

 

 

  정은 업(業)이며 활력소이며 독약이며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또한 정은 거머리이고 질경이며 비 온 뒤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는 땅에 떨어

진 가랑잎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은 물고기에게 절대적인 물과 같고 우리

에게 산소와 같다. 어떤 경우 정은 똥보다 더럽다. 그러면서 그 모든 정의

요소들을 우리는 뱃속 가득 채워놓고 있다. 미우면 미운 정을 주고, 고우면

고운 정을 흠뻑 준다. 그러다 얼마만큼 세월이 흐르면 정은 변모 하기도

한다. 미웠던 정이 측은함으로 바뀌거나 고왔던 정이 배신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본다. 또한 대개는 준만큼 배로 돌아오는 게 정이다.


  몇 년 전 나는 사회에서 사귄 벗이 부탁으로 보증을 서준 일이 있었다. 친구

가 신용상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우정이라는

명분아래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얼마 못가 친구는 부도를 맞았고 나는

수년 동안 은행원에게 원금과 이자를 내라는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이 같은 일은 현재도 내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친구는 종적을 감추었고, 아직

도 전화 한통 없다. 처음에는 괘씸하고 배신감에 가슴 아팠으나 이제는

친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친구가 나에게 미안한 감

을 느끼고 찾아오리라 믿는다. 나는 그때 그 친구를 탓하기보다 세상을 탓

며 소주잔을 건네며 어깨를 쳐주리라.


  나처럼 정에 약해 친인척이나 지인들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긴 세월 고통

속에서 방황하거나 삶의 의욕을 상실한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주변

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친구에게 도장을 맡겼다가 전 재산을 날렸

다는 사람, 형제를 믿고 빌려준 담보가 남의 손에 넘어가 죽지 못해 사는

이들, 부인이 남편 모르게 남편 명의로 사채를 끌어 쓰다가 감당 못하자 잠적

하고 남편은 파산자가 되어 세상을 한탄하며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경우 등등

 어려운 요즘의 현실을 보면서 나는 업(業)이란 단어를 생각해 본다. 물론

어느 특정 종교 이론을 화제로 삼고자함은 아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숨을 쉬며, 가정을 이루고 한 가정의 가장이며, 아버지

이며, 남편이며, 어느 조직의 장이며, 어느 학교 앨범에 사진을 실었다는

이유로 동문이 되었으며, 어느 성씨(姓氏)를 지닌 연유로 인하여 생전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형님이나 아저씨로 불러야 하며, 이 시간

이 같은 문장을 쓰며, 앞으로도 여러 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 모든 일련의

 인연이 나를 중심으로 한 업이라는 한 단어로 의미를 해석해 본다. 거대한

수레바퀴가 나라는 축을 지렛대로 삼아 내 심장이 멎는 그날까지 돌고 돌

것이리라. ‘내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길래 내 인생이 요 모양 요 꼴인

가?‘하고 푸념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나는 지금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 씨앗이 어느 일정한 때가 되면 결과를

피우게 될 것이다. 또는 밑거름이 부실하여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하고 땅속

에 썩어서 문드러질 수도 있다. 현재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의 결과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이 세상의 여행을 마친 이후 그 씨앗의 결과를 알게

되리라 본다. 운이 좋다면 그 이전에도 가능할 테고. 내가 뿌린 씨앗이 훗날

 독초(毒草)로 피어 나 자신은 물론 나와 인연을 맺었던 모든 이에게 큰 고통

을 줄 수도 있겠고, 향내 은은한 방초(芳草)로 자라난다면 나는 그 만큼 세상

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리라.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또는 그저 그런

 일 이든 알게 모르게 업이라는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현재의 내 행복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남의 고통을 전제로 할 수 있고, 나의 불행은 나와

직간접적으로 연이 이어진 자에게 행복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내가 시간의 여유가 있어 친척이 운영하는 치킨가게에서 배달하는 일을

도와 줄 경우 길 건너 또 다른 치킨 집은 그만큼 매상에 영향을 받게 된다.

매일 저녁 친척이라는 정에 의해 무료로 친척을 도와줄 경우 길 건너 치킨

집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결과는 길 건너 치킨집 사장의 계획적인

 청소년 음주판매를 유도하면서 친척이 영업정지를 당하게 되는 비극으로

이어지거나 더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정이 헤픈 사람은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를 받게 되는 경우를 본다. 정에 이끌

행동이 타인의 눈에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지탄(指彈)

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눈뜬 장님 같은 행동을 계속한다. 어떤

 친구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어느 날은 손님이 밀려들어 일손이 부족

하게 되었다. 마침 가까이 사는 여자동창에게 서빙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고 한두 번의 일로 끝났다면 좋았으나 열 번 스무 번이 이어지면서

여자동창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당하는 곤란한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

 역시 정 때문에 공사(公私)가 혼돈되면서 야기 된 개인적 불행이며 또 다른 업을

 쌓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웃에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의 지나친

 바람 끼로 부부는 이혼을 하였고 남자는 부인에게 운영하던 업소를 넘겨

주었고 자신은 새로운 업소를 차려 나갔다. 남자의 업소는 얼마 안 가 부도를

맞았으며 남자는 알거지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조강지처를 버린 남자가 잘

 되는 일을  보지 못했다‘는 말로 홀로 된 여자를 위로 하였다. 여자는 옛정과

아이들의  아빠라는 점을 생각해 재결합을 하였지만 운영권이 없는 남편은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늘 먼 하늘만 바라보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역시

한 때의 무분별한 정의 남발로 스스로 만든 좋지 못한 업을 쌓게 된 경우다.


  외국인에게서 대한민국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더치페이나 개인주가가 팽배한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일 더하기

일은 반드시 둘이 되어야 하는 결과를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그

들의 눈에는 일 더하기 일은 둘도 되고 열도 되는 우리네 정서를 그들은

신기한 눈으로 본다. 정이란 끈적끈적하고 비상식이 지극히 상식으로 통하

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상식을 뛰어 넘는 한민족 특유의 기질이 발산된다.

나는 이 같은 정이 많은 우리 이웃들을 사랑한다. 그 같은 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는 재미와 묘미를 맛 볼 수 있다. 동양 3국에서는 유독 우리 

대한민국만이 끈끈한 정을 지니고 있다. 돈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짱꿰

들이나 단돈 일원도 손해 보지 않는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물 건너 사람

들에게서 온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렵다.


  받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 돈을 꾸어주는 지극히 어리석은 정이 있어

눈물이 있고, 싸움이 있고, 고통이 있고 다시 먼 훗날 화해가 있으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가슴을 훤히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정이 결코 바보

같다거나 눈뜬 장님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유년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뒤 부모님은 집안 청소를 하시고

대문에 금줄을 매달고 새로운 흙은 뿌린 뒤 목욕재계를 하시고 초저녁 시루

떡을 쪄서 정화수를 올려놓고 지신(地神), 조상신(祖上神), 터주신, 부뚜막신,

 성주신, 잡신, 삼신(三神)에게 절을 하며 소원을 빈 뒤 온 동네에 떡을

돌렸고 가까운 이웃을 불러 떡과 술을 차려 내셨다. 이때 나와 형제들은

온 동네에 떡을 돌리는 일이 신나서 힘든 줄 몰랐다.


  이렇게 아버지 어머니는 혹 우리 가문과 원한이나 안 좋은 감정이 있는

집안과 화해의 손길을 내미셨고 한 겨울 어려운 이웃이 찾아오면 아버지는

 아무 조건없이 곡간 문을 여시고 인심을 베풀었다. 그 같은 부모님의 정

베풂은 지금도 고향을 찾는 칠남매에게 좋은 이미지로 작용하고 있다. 이웃

과 일년 내내 대화 한 마디 없는 콘크리트 숲의 동네에서 나는 자주 회의를

 느끼거나 나 자신이 로봇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 순간 잘 못된 업을 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정은 잘 못 쓰면 나를

 죽이는 독약이고 잘 쓰면 보약이 된다는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닫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 죄가 자꾸 가슴을 짓누른다.


 오늘 밤은 積善之家必有餘慶(적선지가필유여경)과 種豆得豆(종두득두)의

 뜻을 다시 한번 음미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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