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폭포와 소
너럭바위에 앉으면
선비의 풍류에 젖는다
개인땅 출입지역 제한 흠
큰 산은 골이 깊다. 대개
물 맑고 숲 울창한, 멋진 바위골짜기를 거느렸다. 여름이면 이름난 계곡은 피서
인파로 덮인다. 경치 좋은 골짜기를 찾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옛
사람들은 멋진 골짜기마다 이름을 붙이고 이를 바위에 새겼다. 이런 새김글 가운데
‘동천(洞天)’이란 게 있다. 흔한 건 아니지만, 빼어난 골짜기 한쪽 바윗자락엔
‘무슨무슨 동천’ 하는 한자가 새겨진 걸 볼 수 있다.
‘동천(洞天)’이란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을 가리킨다. 도교에선 신선들이 사는 곳, 이상향을 뜻한다.
중국엔 36대 동천이 있다고 한다. 우리 선인들도 수려한 골짜기를 찾아 즐기며, 그
곳을 ‘동천’이라 일컬었다. 금강산 만폭동의 바위에 새겨진
‘봉래풍악원화동천’, 동해 무릉계곡의 ‘두타동천’, 하동 쌍계사 앞의
‘화개동천’, 강화도 마니산의 ‘함허동천’ 따위가 그것이다. ‘~동천’이란
글씨가 새겨진 골짜기라면, 일단 볼만한 경치를 갖춘 곳으로 볼 수 있다.
지리산에 안긴 고을 산청의 웅석봉(1099m)에서 흘러내린 백운계곡도 이런 곳 중
하나다. ‘용문동천’ ‘백운동’이란 글씨가 골짜기 바위에 새겨져 있다.
대원사계곡·내원사계곡·중산리계곡·거림계곡 등 지리산 자락의 장대한
골짜기들의 유명세에 눌려 외지엔 덜 알려진, 훌륭한 바위골짜기다. 본디
용문천으로 불린 물줄기인데, 골짜기에 용이 산다는 용소가 있고, 부근엔
용문암산이 있다. 웅석봉은 동쪽으로 경호강, 서남쪽으로 덕천강을 낀, 지리산권
동북쪽 봉우리다. 산세가 곰을 닮았다고도 하고, 옛날 곰이 떨어져 죽은
곳이라고도 한다. 백운계곡 물줄기는 산 남쪽으로 뻗어내려, 지리산 동쪽
골짜기들의 물을 모아 내려온 덕천강으로 흘러든다.
규모가 웅장하지는 않으나
깨끗하고 거센 물줄기가, 구름처럼 널린 희디 흰 바윗자락을 타고 굽이쳐 쏟아지는
모습이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길고 짧고 넓고 좁은 폭포들과 깊고 얕고
짙푸르고 맑은 물웅덩이(소)들이 줄줄이 이어져, 폭포와 소의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이 풍경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 널찍널찍한 바윗자락이다. 어디에
앉아도 편안하고, 어디를 보아도 경치가 그림같이 펼쳐지는 반석들이다. 크고 작은
폭포와 소, 너럭바위들엔 옛 사람들의 풍류가 깃들여 있다. 이곳을 자주 찾아 즐긴
7명이 있었는데, 이를 백운동 7현이라 부른다.
이 멋진 골짜기를 말할 때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이자, 영남 사림파의 거두였던 남명 조식(1501~1572)을 빼놓을
수 없다. 합천에서 태어나 61살 때 백운계곡 부근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를 짓고,
생을 마칠 때까지 후학 양성에만 전념한 전형적인 선비다. 나라가 어려울 땐
상소를 올려 직언을 서슴지않던 분이다. 명종·선조 등 임금들이 그의 학덕을
평가해 거듭 불렀으나, 끝내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대자연에 묻혀 산
‘산림처사’였다.
덕산 시절, 남명이 가장 즐겨 찾던 곳이
바로 백운계곡이다. 제자들과 함께 수려한 경치를 즐기며 풍류에 젖기도 하고,
나라를 걱정하며 시름에 잠기기도 했다. 골짜기 중간쯤의 너럭바위 옆 바위에
‘용문천’이란 글씨가 보이고, 그 뒤쪽 바위엔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구(나막신 구)之所)’란 글씨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남명이 탁족을 하며 즐길 때 지팡이와 나막신을 뒀던 곳으로, 제자들이 새긴
글씨로 추측된다.
골짜기 바위엔 이 곳을 즐겼던 이들이 새겨놓은 글씨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마지막 민가 지나 100여m 오르다 오른쪽 벼랑 밑을
내려다보면, 물줄기가 좁아져 급류와 폭포를 이루고 있다. 물길 오른쪽 바위벽에
‘백운계원’들의 이름이 작은 글씨로 정연하게 적혀 있다. 여기서 상류로 20여m
떨어진 곳엔 ‘영남제일천석’이란 글씨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이 주변을
등천대라 부른다.
기록에 따르면 각각 20여개에 이르는 폭포와 소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목욕을 하면 자연히 많이 알게 된다는 다지소(多知沼)를 비롯해,
청의소·아함소·장군소, 오담폭포·수왕성폭포·15담폭포·칠성폭포 등이 있다
하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아 일일이 확인해 보기는 어렵다. 골짜기 주변엔
바위구멍에서 쌀이 나왔다는 화장암, 한림사·용문암·백운암 등 절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주변 볼거리, 즐길거리
남명 기념관=시천면 사리엔 남명기념관과 남명이 후학을
가르쳤던 산천재가 있다. 남명 조식의 일생과 그가 읽던 전적과 편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시천면 원리엔 후학들이 남명을 기려 세운 덕천서원이 있다.
대원사=삼장면 유평리, 지리산 동북쪽 자락의 수려한 골짜기 안에 자리잡은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548년 연기조사가 화엄사·법계사 등과 함께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깊은 소들이 이어진 물길을 따라 차로 오르면 왼쪽 언덕으로 아늑한
절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장율사가 세운 다층석탑(보물 1112호)이 있는데,
철분이 많이 든 돌을 써서 전체 빛깔이 붉은 것이 특징이다. 다층석탑이라
얼버무린 것은 실제론 8층이지만, 홀수 층으로 세우는 관례상 9층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1948년 여·순사태로 폐허가 된 절을 55년 다시 세웠다.
골의 들머리 왼쪽엔 육이오 때 불탔다는 삼장사터의 3층 석탑이 논 가운데 있다.
차로 골짜기 끝마을인 새재까지 오를 수 있다.
내원사=마지막 빨치산으로
불리는 정순덕이 붙잡힌 내원골과 장당골이 만나는 지점 언덕에 선 천년 고찰이다.
17세기초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논밭으로 바뀐 터를 1959년 한 스님이 사들여
다시 절을 세웠다. 3층 석탑과 장당골 석남암터에서 옮겨온 비로자나불이
보물이다. 내원골과는 달리 장당골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아름다운 골짜기지만,
생태계 보호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단속사터=백운계곡 오른쪽,
역시 웅석봉에서 발원한 골짜기인 청계계곡 중간 마을에 있는 신라 때의 절터다.3층 석탑 2기와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이곳에 있는 630여년 된 정당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로 알려진다.
목면시배유지=단성면
사월리, 고속도로 단성나들목에서 3분 거리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면화를 재배한
곳임을 알려주는 기념관이 있다. 목화밭과 면화의 역사, 물레·베틀 등
길쌈도구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이밖에 남사예담촌(고가마을), 성철 스님의 생가와
겁외사, 가야 마지막 왕의 능이라는 구형왕릉 등에도 들러볼 만하다.
오늘님 방가 방가 날도 더운데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오늘님이 가신다면 당연 들여야죠
36등 예약 되셨습니다.
글로리덕님이 직접 신청하신다 하시고선 아직도....
말근삼님이 집안 사정으로 이번 여행을 취소하셔서 글로리덕님이 36덩으로 예약.
어제 술먹어서 어디에다 등록하는지 헤메다 지금합니다.
쿠키맘 신청할께요..
반갑습니다. 37번 창가쪽 자리로 예약 되셨습니다.
일욜날 뵐께요(*^▽^*)
38●39번 / 동시다발과 동반 1인 / 1초 스피드 참.
동시다발님과 따라님 감사합니다 낼 뵐께요
하루사메 따라4님, 따라5님 신청하셨습니다
40번과 41번 자리에 앉게 되심을 축하 드립니다.~~ㅎㅎ
은새 따라 한명 추가요.
진짜루요 ~~ㅎㅎ 아이 좋아라
은새님 따라2님 42번째로 예약 되셨습니다.
김남균님과 용팔이님 개인사정으로 여행 취소 하셨습니다.
그리고 김경고님 신청...41등 신청 되셨습니다.
은새 따라1이 초딩 아들을 데리고간답니다.
자리 하나 주세요.괜찮겠죠? 데려가도.
여차하면 물놀이 하고 논다네요
ㅎㅎ~~좋습니다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