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포라는 고장은 예로부터 수많은 고기들이 잡히는 나룻터로서 유명했다.
지리적으로도 부안과 고창, 정읍 세 지역 정확히 사이에 위치했다는 점 때문에,
이 곳에서 건져올린 수많은 물고기를 부안, 고창, 정읍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줄포항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굉장히 번성했다.
하지만 일제시대 때 주변의 야산을 개간하면서 수많은 토사가 유입이 되면서,
수많은 토사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차츰 항구에 배가 들어오기 힘들게 되었다.
줄포항이 만 끝자락에 있어 토사가 쌓이면 제대로 유출이 되지 않는 까닭에 결국 폐항을 결정하였고,
그 이후 줄포항과 줄포읍내는 끝없이 쇠락하였다.
지금도 이 곳 줄포에 가면 예전에 배를 댔던 줄포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곡식과 바다에서 수탈한 어물,소금을 저장해뒀던 일본식 창고도 남아있다.
일본인들이 만들어놨던 신작로가 아직까지 비포장도로로 남아있을 정도다.
줄포의 시내버스터미널 또한 마찬가지로 일제식 건물이다.
터미널로 쓰이기 전에는 곡식을 저장해뒀던 창고로 쓰였는데,
아마도 전국에 있는 터미널들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일 것이다.
일제식 건물과 도로, 백년 전 항구의 흔적이 폐허처럼 남아있는 줄포.
'줄포'라는 고장은 하나의 유적지나 마찬가지이다.
줄포면은 현재 인구가 5,000명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만 촌락이다.
하지만 줄포항이 크게 번성했던 시절은 부안읍보다도 많은 20,000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줄포항 폐항 이후 이 곳은 약 70년의 시간이 멈춰져버렸다.
시내버스가 정차하는 건물도 일제가 지어놓은 무척 오래된 건물이다.
말이 시내버스터미널이지 현재까지도 미곡창고로 쓰이고 있어 대합실이나 매표소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시내버스터미널 도롯가에서 바라본 줄포면내.
인구 4,000여명에 불과한 동네치고는 제법 규모가 있어보인다.
워낙 도로가 좁고 건물이 조밀하게 모여있어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내버스가 들어오는 미곡창고 건물에는 시간표가 걸려있다.
만든지 대략 30~40년 정도는 된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아주 오래되었다.
직접 손으로 일일이 자필해서 그런지, 그 어떤 시간표보다 정감이 가고 따스한 노고가 느껴진다.
정감이 가기는 해도 워낙 오래되어 알아보기가 그리 쉽진 않다.
그래서 부안군에서 옆쪽에 따로 부안읍내로 가는 시내버스 시간표를 달아주었다.
일제시대 건물에 40년된 시간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시간표...
왜 이게 이런 곳에 있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줄포면은 시내버스터미널과 직행버스터미널이 따로 떨어져 있다.
시내버스터미널 왼편의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줄포면사무소가 나오는데,
면사무소앞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으면 곧바로 터미널 건물이 나타난다.
거리는 무척 가깝지만 골목길을 뚫고 가야 하는 것이라서 찾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여차저차해서 도착한 직행버스터미널.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2분.
하지만 보이다시피 워낙 터미널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터미널에 도착했음에도 직행버스 타는 곳을 못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꽤나 있을 것이다.
터미널 앞 주차장엔 택시 두 대와 주민들의 차량들이 몇몇 주차되어 있다.
바로 저 곳이 줄포터미널 주차장이기도 하지만, 이 곳을 종점으로 삼는 직행버스는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버스주차장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형편이다.
하기사 부안과 고창, 정읍과 격포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인데,
무리해서 여기까지만 시외버스를 운행하려는 직행버스 회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명칭은 당당한 시외버스터미널이지만, 실상은 직행버스터미널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시외버스를 시외버스라 하지 않고 직행버스라 칭한다.
충청남도나 전라남도 등 꽤 먼거리를 나가는 버스들이나 시외버스라고 칭한다.
하지만 줄포에는 그런 버스가 없고, 잘해야 군산, 익산, 전주 정도가 전부기 때문에,
'시외버스'가 줄포로 들어오는 일은 결단코 없다.
터미널 건물 또한 정식 건물이 아니라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임시 건물이다.
바로 옆의 길쭉한 건물을 터미널로 사용하였을 것이라 추측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옆으로 밀려나 컨테이너박스를 임시로 설치해 영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터미널도 아니고, 정류장도 아닌 묘한 분위기가 물씬물씬 풍겨온다.
줄포터미널은 할머니 한 분께서 홀로 영업을 하고 계신다.
평소에는 오른쪽의 문으로 이어진 길쭉한 건물로 들어가서 쉬고 계시지만,
손님이 오거나 하면 이 곳으로 나와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주신다.
거동이 꽤나 힘들어 보이시는데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재주도 좋으시다.
이 곳에 왜 왔냐고 하시면서 방긋 웃는 모습까지 보이시는 할머니.
시골의 넉넉하고 푸근한 인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시간이 70년 전에 멈춰버린 마을 정경처럼,
터미널 시간표 또한 60~70년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글씨체만 봐도, 안내문만 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눈치챌 수 있다.
1995년 2월 이후 사라진 '정주(현 정읍시내)'가 버젓이 남아있을 정도이니...
매표소 문에는 또다른 시간표가 걸려있다.
위의 시간표가 워낙 오래되고 구석에 있어서 새로 컴퓨터로 뽑아 붙인 듯 하다.
부안, 정읍, 고창 세 지역의 중점인 지역이라 세 지역으로 가는 버스들이 무척 많다.
그래서 여기로는 들어오지도 않는 정읍→서울, 부안→서울 고속버스까지 친절히 안내해주고 있다.
마침 터미널 앞으로 전주고속 두 차량이 유유히 들어와 '교행'을 하고 있다.
하나는 내소사로 가는 시외버스, 또 하나는 정읍으로 가는 직행버스이다.
의외로 수많은 승객들을 태우고 내려주면서 짧은 인사를 나누고 제 갈 길을 향해 나아간다.
5분 후, 고창으로 가는 안전여객 직행버스가 들어온다.
일제시대 폐항 후 갯벌 한 가운데에 초라하게 남아있는 옛 줄포항,
일제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신작로와 미곡창고, 어물창고...
모든 시간이 그 때 그 시절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줄포를 한 장의 추억으로 담으며,
제 갈 길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첫댓글 좋은여행 축하드리고 평소 가보지 못해던곳 많은체험하게 되어 감사 드립니다.
잘보고갑니다. 줄포 시외터미널 근처에 만두를 정말 맛있게 만들어 팔던 분식집이 있었는데 그생각이 먼저 떠오르네요 -_-ㅋ
아.. 저희집이 줄포 입니다.. ;; 어제 줄포에서 쉬고 서울 올라왔는데..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ㅎㅎ. 시내버스 정류장 바로 옆 국수집에서 버스 안오면 기다리면서 국수를 먹고.. 겨울이면 찐빵도 먹고.. 저 중학교때 줄포에서 정읍까지 아침 6:00시 차 타고 등교 하던 때도 생각나네요.. 지금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다니고 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