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 할아버지
- 경주시 최해경 -
5년 전 몹시도 추운 겨울날 개 짖는 소리에 나가보니 팔순쯤 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사이좋게 손을 꼭 잡고 계셨습니다.
그때 저희가 흑염소를 키우고 있었는데 노부부께서 이웃 동네에서 소식을 듣고 소일거리로 몇 마리 키워 보시려고 흑염소를 사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잠시 몸을 녹이시라고 방안으로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방에 들어가실 때까지도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두 분이 조금은 이상하다 여겼는데,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우리 영감님은 백내장이 10여 년 전에 와 수술도 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지금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하시고 감각으로만 생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으신데 흑염소를 키우시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씀드리니 소일거리로 키워 보려고 벌써 ‘우리’도 만들어 놓고 왔기 때문에 꼭 몇 마리 필요하다고 간청을 하셨습니다.
몇 마리 차에 싣고 가면서 할머니께서 자식이 5남매인데 아들 둘은 외국에 나가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이라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계속되는 할머니의 자식 자랑에 할아버지의 얼굴엔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좀 이상했지만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요.
할아버지 댁은 마을의 맨 끝자락 야산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두우신 눈으로 대나무와 소나무를 이용해 만들어 놓으신 ‘우리’는 놀랄 만큼 섬세했고, 가을 내내 준비하신 먹이가 광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흑염소가 노부부의 적적함을 채워주는 친구가 되어주길 기원하면서 돌아오려고 하는데 할머니께서 우리 부부를 기어이 방으로 끌다시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부엌으로 나가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앉아 있지 못하고 아내와 따라 나갔습니다.
손님이 오셨으니 군불을 지펴야 한다면서 재래식 아궁이 불을 지피시면서 할머니가 눈가에 이슬을 보이시며 말씀을 이어나갔습니다.
시골에 그런대로 사과밭도 있고 야산도 소유하고 있어 노후를 그냥 그렇게 보낼 수 있는 처지였으나 인근에 대단위 위락시설이 서면서 높은 가격에 땅이 팔리게 되었는데
자식들이 서로 많이 가져가겠다고 싸움이 벌어져 1년 전부터는 아예 두 노인을 두고 자식들이 연락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는 할머니의 절규에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이 집터도 1년 정도 있으면 개발이 시작되는데 내어 주고 나면 노부부는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아내의 손을 잡고 엉엉 소리 내 우시는 모습에 꼭 친정어머니 같은 연세이시라 마음이 아픈지 아내와 할머니의 눈물은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아내의 눈에 손수 노부부가 가꾼 채소로 숨죽여 놓은 김장거리가 있어 언제 김장을 담그실 거냐고 여쭈니 할머니께서 미안해하시면서 시기를 넘겼다고 하셨습니다.
준비해 놓은 재료로 김장을 버무려 넣고 김장독을 땅에 파묻고 나니 겨울저녁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발길을 돌리는데 담근 김장을 한 봉지 싸주시면서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터라 인사를 드리고 돌아온 차 안에서 아내는 “여보! 흑염소 값으로 받은 돈을 돌려 드리고 가면 어떨까요?”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형편도 여의치 않은 현실에 50여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돌려 드리자고 한 아내의 마음 씀이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방 안에 급히 던져 놓다시피 하고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 이후로 몇 번 노부부를 찾아가 보살펴 드렸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또 자식들처럼 조금 남아 있는 두 분의 쌈짓돈을 젊은 부부가 어떻게 하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을 때 조금은 서운했지만 오히려 그런 말에 자극이 되어 두 분께 더 정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일 년여 시간이 지나 노부부가 사시던 집을 비워 주어야할 시점이 되어 집을 방문했을 때 이제 막내딸이 노부부를 모시고 간다고 하셨습니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기 때문에 키우던 흑염소를 전에 가져 올 때 돈을 돌려 받았으니 그대로 가져가서 키우라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값을 치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배로 늘어난 흑염소를 제값대로 치르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사용하시기 쉽도록 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만 원짜리 별로 잔돈으로 바꾸어 건네는 아내에게 할머니는 한 없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곧 있을 이사에 초조해 하시는 것 같아 토요일 세 아이와 두 분을 모시고 시내에 가서 저녁을 먹고 두 분이 그렇게 애착을 가지셨던 그 집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이사 가던 날 아내와 나의 손을 꼭 잡으시고는 “잘살아라”하시면서 서운해 하시던 모습이 항상 마음속에 남아 아련한 부모의 정을 다시 느끼게 했습니다.
그 이후 할아버지는 2003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할머니와는 소식이 끊겨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하룻밤의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나 저희 부부에게 ‘정’이란 선물을 남겨 주셨으니 말입니다.
할머님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온천에 모시고 가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