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는 노랑머리다. 최근 연한 갈색으로 염색을 처음 해 본적이 있다. 그런데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본격적으로 노랑머리가 되어 보기로 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거센 반대가 있기는 했지만 내가 결정하면
노랑머리로 변신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결국 노랑머리 되기에 성공했다. 그런 내가 좋다.
내가 노랑머리가 되고 난 뒤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단지 헤어스타일 하나 바꾼 것 뿐인데 말이다.
내 노랑머리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노랑 머리가 된 사연은
1. 해보고 싶었다.
결핍에 대한 욕구든, 인습과 사회적 틀에 대한 거부이든 저항이든 뭐든지 해 보고 싶었다.
젊고 멋진 아이들의 노랑머리를 따라해 보고 싶은 것보단 뭔가 나는 일반 목사들과는 다른 특별한 목사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 '노랑머리'에서 친구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는 상희보다 뭔가 특별함을 생각하며 머리를 바꾼 유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노랑머리(탈색)를 하고 난 뒤 처음 드는 느낌은 "헉 ~~ 이건 아니다. 심하다"였다.
내 스스로가 감당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원상회복시킬까 고민도 했다. 솔직히 그렇게 노랑머리를 하고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내게 노랑머리를 해 준 미용원장이 안정장치를 건넨다.
좀 지내보다 더 이상 감당이 안되겠다 싶으면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원상복귀 해 주겠다는 조건을 붙여 주었다.
사실 욕구는 있지만 그 욕구를 저항의 형식이든 뭐든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들 나보고 대단하다고 한다.
자기도 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안난다고 하면서 말이다.
2. 삶과 사회에 필요한 틀에서 갖는 일탈적 느낌과 사회의 굳은 틀 속에서 한번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일탈의 욕구는 어디서 발현된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필요하니까 존재하는 틀이 있다.
예를들면 목사는 이러 이러(노랑머리를 하면 안된다)해야 한다.
대통령은 체통을 지켜야 한다.(그런데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틀을 일찍감치 깨버린 사람이다 ㅎㅎ)
그런데 사실은 그런 틀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 틀은 께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에 메이고 집착한다.
그런데 나 또한 그 틀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사실은 엄청 죽기만큼 싫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일탈을 꿈꾼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일탈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개인은 느끼는대로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사회는 틀에서 벗어나는 존재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전체 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의 동굴의 비유에 동굴 밖을 보고 온
용기있는 노예가 동굴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탈출하자고 설득하지만, 동료노예들로부터 비웃음만 받고
질서를 어지럽히고 기만한다고 생명위협까지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플라톤은 그만큼 현실세계의 벽이 높고, 깨기가 쉽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나의 욕구의 일탈을 두 가지 측면에서 관찰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틀을 새로이 지으려는 야망이고,
또 하나는 일탈을 강요하는 욕망의 힘이다.
욕망의 힘이든, 새로운 가치의 빌드 업 이든 상관없다.
나는 이미 사회의 굳은 틀로 부터 벗어나 있으니까.
단지 나의 일탈로 인해 경험되어지는 다양한 세계를 잘 보고, 잘 들으며 성자되는 걸음으로 나가면 될 듯 싶다.
머리하나 물들이고 너무 복잡한 애기를 많이하는 것 같다 ㅋㅋ
나는 노알머리를 하고선 그런 동굴에 갇힌 우상숭배자들의 틀을 깨는 원수가 되었다.
우상숭배들의 원수가 된 내가 좋다.
3. 실천프로그램 중 하나다.
부당한 선택을 강요받고 살아가는 멀티튜드, 아웃사이더들의 삶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다.
나는 현재 10주간의 다문화 사회 강사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직접 이주민 노동자나,
이주민 여성, 이주 아동 등을 만나는데 그들의 차별이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생각해 낸 것이
노랑머리다.
노랑머리가 너무 부담스러웠지만 원상복귀를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헤어스타일 하나로도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다양한 관심과 말을 듣게 되고, 심하게는 상처까지 받게 되는데,
낮선 땅으로 결혼과 노동으로, 꿈을 위해 이주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힘든 고통이 될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자국민보다 열약한 처지에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국적, 피부색, 말 등 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너무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나의 노랑머리는 이런 부당한 차별이나 인권침해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신앙적으로는 수육신(Incarnation) 정신을 경험해 보는 것이라고 나 할까 ㅋㅋ
장병기 목사가 머리를 하고 난 뒤 사람들로부터 이런 다양한 반응들을 들었다.
부류 1
" 미쳤어! 정말 미쳤어". "못 살아, 목사님~~~~~~(말꼬리 늘어지면서)". "머리 왜 그래요. 부담스럽게". "목사님 교회 교인들은 뭐라 말 안해요." "이상하네..... 목사가 어떻게 노랑머리를", "제발~제발 ~제발~", "그런 모습으로 목사님이 옆에 있는 것도 신경이 쓰이네요", "당장 쩨발", " 머리 좀 까맣게 하세요."
다름을 부담스러워하고, 거부하고, 약간은 비난성도 있다. 그런 헤어스타일은 아닌것 같다고 당장 바꾸라고 하는 사람들.....
최근 '노랑머리' 영화 주인공 이재은이 "나는 노랑머리가 컬트 무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들 노출만을 이슈화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나를 창녀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고 당시 심경을 말했다.
노랑머리를 한 내게 드는 느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나를 창녀같은 천박하고 이상한 목사 쯤으로 취급하는 거 같다.
그런 다른 느낌, 감각 그런 것들이 나를 흥분시킨다.
부류2
"머리 멋진데요. 목사님 정말 멋져요". "쨩! 용기가 대단해요". "최홍만 되었네". "알라브 목사님! 이해해요". "취향이라고 생각해요."
수용해 주고, 받아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
다름을 수용해 주고, 받아 주고, 상대방의 행동을 온전히는 이해 못하지만 받아 주려고 하는 애쓰는 사람들을 만나니 참 좋다.
'불편하고 아니다'라며 '당장 바꾸라'고 말하는 사람들 보다 편하고 좋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임을 다시 느낀다.
부류3
그런데 정작 내가 노랑머리 하고 가장 많이 경험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 주위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나를 잘 못알아 본다.
한번은 수술하는 환자가 있어 기도해 주러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수술 중이라 보호자대기실에 여러 지인들이 모여 있었는데 나중에 온 분이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알아보는데
정작 저는 못알아 본다는 것이다.
나를 바로 못 알아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놀랐다.
왜 그럴까?
내가 아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노랑머리를 하는 사람들을 잘 쳐다보지 않거나, 아에 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아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류(?)의 사람이 없다는 그 생각, 고정관념이 사물을 제대로 못보게 하고,
나를 못 알아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의 노랑머리는 내게는 흥분된 경험인 것은 사실이다.
[ 성모병원에 입원중인 나장 도반인 꺌마 한미정과 함께 ]
노랑머리가 된 뒤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궁금하거나 이해가 안되면 잘 물어봐야겠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왜 그런 노랑머리를 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궁금해 하고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먼저 자기 느낌이나 인상부터 말해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극히 몇사람만이 심경에 변화가 있었느냐? 반항하는 것이냐? 정도의 가벼운 물음을 해 왔을 뿐이다.
나는 이 일로 변화가 생긴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관심을 받는 것, 그 느낌은 소중한 것이다.
관계를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려면 먼저 이유를 물어보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머리를 물들인다고 해서 삶이 새롭게 바뀌거나 새롭게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자기 정신을 스스로 가꾸는 본질적인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노랑머리가 되고 나서 부터 나를 더 잘보게 되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의 가치관 의식 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차이와 다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고
이런 가치들을 어떻게 조율하며 조화할지를 배우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내 노랑머리가 무조건 싫은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다.
노랑머리가 된 뒤 부터 나는 삶의 자신감을 얻었다.
노랑머리를 한 내가 너무 좋다.
사람들은 모두 다 답이 없는 각기 자기 방식으로 보기 때문임을 온 몸으로 느겼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힘들고 아픈 상태에서도 장애인공동체에 와서 미용봉사로 사랑을 나눠주시고,
저에게 이런 귀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제 머리를 노랑머리로 만들어 주신 미용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고맙습니다. ^*^
최근에는 제 머리에 고도의 전문가들만이 낼 수 있는 구리빛 색으로 머리혁명을 일으켜 주셨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