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로 광복 60주년을 맞았다.
일제에 부역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방해하고, 광복 후까지 득세해 이 땅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친일파를 가려내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는 일은 시대의 소명이 됐다.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한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은 친일 역사 청산을 국가적 사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가속화 하고 있다. 더불어 일제가 강점한 조국의 독립을 소원했던 투쟁의 역사는 새롭게 조명되고 평가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화성시는 최근 3·1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제암교회 주변을 ‘3·1운동 순국유적지’로 성역화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화성시는 학계에서 이미 친일파로 분류된 홍난파의 생가 복원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시가 추진해 온 이 사업은 각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역사 의식이 없는 지자체의 야누스적인 두 얼굴’이라고 혹평했다.
1919년 4월15일, 일본군은 독립 만세시위을 벌이던 주민들 가운데 23명을 화성시 제암리 교회로 불러 무차별 사격한 뒤 교회에 불을 질러 학살했다. 바로 뒤이어 일본군은 이웃 고주리로 가 주민 6명을 총으로 쏴 학살했다. 제암리·고주리 사건은 수원, 화성지역에서 장날 만세 시위 등으로 일제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했던 주민에게 일제가 자행한 만행의 결정판이었다.
화성시는 주민들이 벌인 항일운동의 뜻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2001년 38 억원의 예산을 들여 제암리에 순국기념관을 세웠다. 이어 2003년부터 이곳을 성역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암리 교회 창립 100년을 맞은 올해부터는 2008년까지 국비 28억원, 도·시비 42억원 등 모두 70억원을 들여 유적지 부지를 매입·확장하고, 만세광장 조성, 제암교회 이전 등 성역화 사업을 잇따라 추진할 계획이다.
화성시의 이 사업은 특히 광복 60주년이 되던 지난 광복절에 집중적인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시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나라 사랑의 산 교육장이 되도록 할 것”이라며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난파 홍영후 기념사업...
본명은 홍영후, 1898년 출생,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등 잘 알려진 노래 작곡, 본관은 화성시 남양.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조선총독부가 주도해 결성한 친일 사회교화 단체 ‘조선문예회’에 가입. 이어 ‘대동민우회’,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단체에도 잇따라 가담해 친일가요 ‘희망의 아츰’, ‘태평양행진곡’, ‘정병사를 보내는 노래’ 등을 발표.
1939년부터 경성방송국 관현악단을 지휘하면서 일본천황에 대한 충성을 노래한 ‘애국’, ‘황국정신을 되새기며’ 등 많은 곡을 지휘, 방송해 조선청년들을 일본 전쟁터로 내몰았다.
화성시는 지난 89년 활초동 283-1번지에 있는 친일파 홍난파의 생가를 도·시비 6천 500만원을 들여 복원했다. 지난 2001년 민간단체 ‘난파 생가 정화사업 추진위원회’가 홍난파 기념사업을 요구하자 42억원의 예산을 세워 이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반발이 컸다.
2003년 초 화성시는 울며 겨자먹기로 공청회를 열었으나 역시 광복회와 주민들의 반발로 결론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화성시는 사업추진을 중단하지 않았다. 경기도도 지난해 전체 사업비 가운데 12억원을 요청한 화성시의 요구에 투·융자 심사를 거쳐 이를 조건부로 승인해 줬다. 화성시는 올해 토지보상비 일부를 포함한 15억원의 예산을 정식으로 편성했다.
경기도음악협회에 발주한 ‘난파 선생 일대기 재조명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사업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념사업의 부당함을 증명하기 위해 제작하고 있는 난파 연보는 아예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일부 전시 자료로 활용할 분위기다.
‘친일’과 ‘반일’.
두 역사에 대한 화성시의 사업은 거의 같은 시기에 추진됐다. 모두 기념사업의 형태다. 시의 의도는 무엇일까. 화성시의 한 관계자는
“2000년을 넘어서면서 지자체의 관광자원을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 붐이 조성됐고 화성시에는 변변한 문화재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화성에는 남양 홍씨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화성시 문화시설담당은 “자료관은 홍난파의 음악적 업적을 중심으로 만들어 질 것”이라며 “친일행적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것 역시 함께 전시해 평가받도록 하겠다”며 “난파 생가복원사업으로 제암리 성역화 사업의 의미가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친일 경력이 확인된 홍난파 기념사업을 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며 “이를 막기위해 연구소가 제작하고 있는 연보가 엉뚱한 방향으로 활용된다면 연구사업을 중단할 수도 있다. 아무런 역사 의식없이 상황에 따라 닥치는 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역사적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2005/09/04)
[인천일보 송명희 기자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