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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에 다녀왔다. 지난 달에 강연차 홀로 대지초를 찾았다가 우포늪 지킴이 이인식 선생님이 가꾸는 우포자연도서관에서 하룻밤 묶어왔는데 이번에는 가족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 이인식 선생님
5월 1일, 운동회를 마치고 서둘러 길을 나섰는데 도로는 나들이 나선 차량 행렬로 곳곳이 막혔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 우포자연도서관에 도착했는데 선생님은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계셨다. 서둘러 창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지폈다. 이미 찾은 길손도 자연스럽게 하나되어 밤 늦도록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새벽 무렵에 잠이 들었는데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이른 아침 우포늪을 같이 거닐자는 것이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쉽사리 오지 않는 기회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이들은 일어나지 못하고 어른들만 길을 나섰다. 선생님을 따라 3시간 남짓 걸었다.
▲ 우포늪에 서 있는 미루나무
▲ 우포생태기념관 산책로의 철새 조망대
▲ 우포의 하늘과 미루나무
▲ 물안개가 자욱한 우포높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우포의 아침은 신비로웠다. 페이스북에서 아침마다 선생님이 올려주시는 사진을 보았지만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는 우포는 느낌이 달랐다.
▲ 우포늪 안에 있는 '비밀의 정원'
일반인 출입통제구역도 우포를 살피는 선생님을 따라서라면 걸을 수 있었다. 우포늪 한 가운데 선생님이 이름 붙인 '비밀의 정원'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선생님은 비밀의 정원 너머로 건너가시더니 사진을 찍겠다며 우리에게 포즈를 취하게 했다. 나는 아내를 등에 업었다. 역광이 이렇게 아름다을 수 있을까. 참 고마운 선물이다.
왕버들나무에 올라 기다리고 있으면 온갖 야생동물이 물을 먹으러 연못을 찾는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왕버들에 올라 등을 기댔다. 선생님은 휴대전화를 열더니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을 띄웠다. 영화 '아웃오브 아프리카'에 삽입된 곡을 들으며 물을 마시러 오는 동물들 모습을 나무 위에서 지켜보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우포늪 산책을 마치고 아점을 먹고 선생님은 가족들과 식사 약속이 있다며 길을 나섰고 간밤에 잠이 부족했던 어른들은 낮잠에 들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너른 창고도서관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배드민턴을 치며 놀았다.
해 저물 무렵에 선생님은 돌아왔고 우포 해넘이를 보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라 해넘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네잎크로바도 찾고 미나리, 씀바귀도 뜯으며 걷는 우포늪길은 한가롭기만 했다.돌아오는 길에 도축장을 겸하고 있는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몇 근 샀다. 참나무 숯불에 익은 소고기를 선생님이 준비한 막걸리에 곁들였다. 부슬부슬 비는 내리기 시작했고 모닥불 옆에서 밤늦도록 또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튿날 아침에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침 산책을 거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도 이제 따라나서겠다고 단단히 기대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옷을 꺼내 입고 선생님의 1톤 트럭에 모두 올랐다. 선생님은 차를 몰다가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망원경을 설치했다. 우포늪 들녘에 새들이 노니는것을 그렇게 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렇게 차를 타고 우포를 모두 살폈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오는 길에 우포늪에서 어부로 살아가시는 황씨 할아버지에게서 갓 잡은 쏘가리를 몇 마리 샀다. 아내는 양념도 변변하지 않은데 뚝딱뚝딱하더니 매운탕을 한 냄비 끓여냈다. 된장을 푼 쏘가리 매운탕은 국물도 육질도 그 맛이 일품이었다. 해장 술을 저절로 불러오게 했다.
모닥불 앞에 앉아 선생님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궁금한 게 많았던 내가 물었고 선생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셨다.
나: 언제부터 우포늪 지킴이로 사실 생각을 하셨나요?
선생님: 교육운동을 하다가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자연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우포 살리기에 뛰어들었지. 그런데 왔다갔다 하면서 우포를 살피는 것이 한계가 있는 거야. 그래서 5년 전에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아예 우포에서 살기로 맘을 먹었지.
나: 기족들의 반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 없었던 건 아니지. 교육운동을 하다 5년간 해직의 설움도 겪고 구속도 되고 했으니 가족들 고생이 많았지. 다시 복직해서 교육운동과 환경운동을 시작하면서 여생을 몸 바쳐서 할 수 있는 일을 이곳에서 하기로 했지. 어짜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
나: 이렇게 홀로 사시는 게 외롭지는 않으세요? 저도 자취를 십 년 넘게 해보았는데 혼자 밥 먹는 것이 서러울 때도 있던데요?
선생님: 할 일이 아주 많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우포를 살펴야 하고 글도 글도 써야하고. 그러니 외로울 틈은 없지. 그리고 라면을 먹지 않으려고 해. 밥 차리기가 귀찮을 때는 라면 같이 편한 게 없지. 거기에 소주 한잔 하는 게 좋구. 그러나 그러다 보면 폐인 되기 십상이거든.
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선생님: 매일 우포늪이 주는 기운을 받으니 이렇게 건강하잖아. 요즘 일정이 과해서 잠을 잘 못 잤는데도 우포늪을 거닐고 나면 기운이 나. 특별히 아픈 곳도 없구.
나: 외부에서 운동을 할 때와 이렇게 마을에 거주하면서 할 때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선생님: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외부인은 이방인이라 여기거든. 그래서 주민들과 하나 되기가 쉽지가 않아. 그런데 이곳에서 살다보니 이제 나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
나: 저도 10년째 시골마을로 이사해서 살고 있지만 주민들과 온전하게 소통하는데는 한계가 있던데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하는 일도 다르니 쉽지가 않아요.
선생님: 당연하지. 처음에는 나도 힘들었지? 어느 여름날, 마을 할머니한테 아이스크림을 사드린 적이 있어. 그랬더니 고마워하지는 않고 이런 걸 사주면 마을에 소문나면 어쩌냐며 주위를 살피시는 거야(웃음).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으로 봐서는 그런 것도 신경이 쓰이나 봐.
나: 에이, 그건 선생님 외모가 끌리지 않아서 할머니가 그런 것 같은데요. 제가 드렸으면 단박에 두 손을 덥석 잡았을 텐데요.(웃음) 주민들과 마찰도 종종 있었을 것 같아요?
선생님: 처음엔 많이 있었지. 개발을 하려는 주민들과 보존을 하려는 나와 입장이 맞서니 말야.
나: 어떤 마찰이 있었나요?
선생님: 왕버들나무 때문에 소란이 일었던 적도 있지. 물길을 새로 낸다며 왕버들나무를 베어내고 포크레인으로 찍어낸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갔어. 그리고는 '차라리 나를 베라'며 왕버들나무를 끌어안고 버텼지. 그 덕에 왕버들나무를 살릴 수 있었어. 물길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고.
나: 참 큰일을 하셨네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주민들과 마찰이 생길 텐데요?
선생님: 그런 적도 있지. 물을 빼려는 동네 형님과 맞서다가 맞아서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거든. 이제 다 지난 일이라 서로 웃고 살지.
나: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길을 가시는 선생님이 존경스럽구요. 지난 달에 왔을 때보다 창고도서관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떻게 된 일이죠?
선생님: 창고도서관을 빨리 완성하려구. 앞으로 2년은 걸릴 것 같은데 그것이 완성되면 이를 발판 삼아 또 할 일이 많이 있거든.
선생님은 이곳에 정착하면서 농형창고로 쓰던 건물을 사서 이를 '우포자연도서관'으로 만들고 있다. 거기에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간, 세상을 여는 벗들이 머물며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만들 계획이란다.
나: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이 낫지 않나요?
선생님: 부담이 많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고 계시지. 빨리 하려면 기관의 지원을 받으면 되지만 그러면 오히려 내가 끌려다니게 되면서 순수성에 타격을 받게 되거든. 그래서 더디더라도 이렇게 가려고 해.
나: 참 큰일을 해내시는 것 같아요. 강연 활동도 하시죠?
선생님: 환경부에서 종종 찾아. 그리고 환경운동 단체에 입문한 사람들 교육한다고 찾기도 하고.
나: 주로 어떤 내용으로 강연을 하세요?
선생님: 내가 하는 일이지. 늪지의 의미를 생태와 결부시켜 보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거지.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십년을 매진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거든. 정 선생도 돌직구 전문가가 됐잖아?(웃음)
나: 아이구, 저는 아주 부끄럽구요(웃음) 참 대지초 아이들에게 교육도 하신다면서요?
선생님: 응, 매주 금요일에 대지초 아이들을 데리고 생태교육을 하고 있지.
나: 아이들이 잘 따라서 배우나요?
선생님: 고 녀석들은 우포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신 나지. 나를 왜가리 할아버지라 부르며 아주 잘 따라.
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궁금하네요. 주로 어떻게 가르치세요?
선생님: 어제, 오늘 배운 것이랑 똑같지. 5감을 다 이용해서 직접 경험하게 하는 거지.
나: 오랜 시간 선생님을 귀찮게 했네요. 이렇게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서 신세를 많이 졌어요.
선생님: 신세는 무슨? 이렇게 찾아준 것이 고맙지. 시간 되거든 또 와. 애들 겨울방학하면 오라구. 독수리 먹이 주는 것도 같이 해보게. 강의 다니다가 이곳 인근에 오면 또 들리고.
나: 네, 그럴게요. 내내 건강하셔야 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선생님: (창고 앞 들녘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곳도 원래 늪지였거든. 여기에 물길을 돌리고 초지를 만들어서 소를 방목하며 키우고 싶어. 새떼와 소떼가 어울려 노니는 자연 그대로의 목장이지.
비는 그치고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운전을 할 것 같아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나는 텐트에 들었다. 두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났다. 그 동안에도 선생님은 창고도서관에 들어 글을 쓰셨단다. 몸도 마음도 참 맑고 굳센 분이시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려고 서둘러 짐을 쌌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손을 돌아가며 잡아주시며 또 오라고 했다.
"아빠, 왜가리 할아버지가 꼭 우리 시골 할아버지 같아. 할아버지도 우리가 시골집 출발할 때면 서운해서 눈빛이 달라지시거든. 왜가리 할아버지도 그래."
룸미러를 보니 선생님은 우두커니 서서 길을 나서는 우리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계셨다. 그래, 아들 말대로 고향에 계신 아버지도 이렇게 서서 우리를 보내곤 하신다.
"아빠, 나는 왜가리 할아버지가 사인도 해줬다. 내 별명도 호사비오리라고 지어줬어."
딸도 신 나서 이야기에 끼어든다. 집에 와서 딸이 건넨 종이를 보니 '왜가리 할아버지'라는 노래가 실려있고 그 위에 선생님의 사인이 담겨있다. 노랫말에 선생님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족들 모두 어느 여행보다 이번 여행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 이런 여행은 억만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여행이다.
집에 돌아와서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선생님이 우리를 보내는 서운한 마음을 남긴 글이 있다. 우리 가족은 잘 도착했다는 인사와 더불어 고마운 마음을 댓글로, 메시지로 전했다.
우포늪 지킴이, 왜가리 할아버지, 이이식 선생님을 보면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에이자 부키에가 떠오른다. 삶의 궤적이 비슷하고 말없는 실천이 그러하다.
에이자 부키에가 도토리를 심어 사막을 가나안 땅으로 만들었다면 이인식 선생님은 내딛는 걸음으로 우포늪을 생명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어디 우포뿐이겠는가? 책과 강연, 페이스북을 타고 선생님이 날마다 내딛는 걸음은 각박한 세상에 푸르름을 실어나르고 있다.
그 빛은 말한다. 세상은 살만하니 함께 열어가자고 .
첫댓글 선생님, 대지초 오숙희입니다. 이인식샘과의 대화내용을 보니 선생님의 삶을 그대로 보는듯 합니다. 완전 자유인답게 학습연구년제를 잘 활용하고 계시네요. 부럽습니다.
교장선생님, 반갑습니다. 어떻게 이 카페까지 다 찾아오셨는지요?
대지초 가족들 모두 잘 지내죠? 대지초에 갔던 날 처음 이인식샘을 만났는데 이렇게 깊은 인연으로 이어졌네요. 이인식 선생님과 오치근 선생님 통해서 종종 대지초 소식 전해 듣고 있습니다. 요즘은 출강 일정이 많아 하루도 빈날이 없이 떠도느라 몸이 고단해요. 많이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걸요. 가까운 곳에 들리거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마 겨울 무렵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