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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 2012 겨울호 집중 조명 ■
설악, 귀엣말하다․1 외 3편
송준영
어떤 사람이 나를 만나 뵙고 싶다고 부처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참 잘난 놈이라고 속으로 웃고는 큰소리로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했더니 그 사람이 “언제 돌아오십니까”하고 묻기에 “그건 나도 몰라 어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실 나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길을 평생 나로부터 떠나고 떠나고 있다.
— 설악 무산,「여행」
설악 큰스님의 시를 읽다가 나는 문득 서산 스님의 「삼몽사(三夢詞)」가 떠올랐다.
주인은 손님에게 제 꿈 이야기 하고 主人夢說客
손님은 주인에게 제 꿈 이야기 하네客夢說主人
이 꿈 이야기 하는 두 나그네今說二夢客
역시 모두 꿈 속 사람이리라亦是夢中人
꿈과 지금이 이어지지 않을 때는 환각이나 이것이 현실일 때는 진실로 꿈이다. 그렇다. 이것이 지금일 때는 함이 없는 진인(眞人)의 삶이 아닌가. 역시 설악 선사의 시, 평이(平易)하듯 하나 그대로 여시(如是)하여서 평자가 무얼 더 보태고 무얼 더 깎을 일이 아니다. 「여행」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문하겠다는 사람’, 여행 중인 노승, 어디선가 들려오는 ‘언제 돌아오십니까?’ 하는 소리, 노 선사는 ‘돌아오지 않으므로 돌아왔기에 영원히 떠나지 않을 거’다.
그럼 여행 중인 사람은 누구인가? 평생 나에게서 떠나고 또 떠나고 하는 이놈은 누군가.
서산 스님의 꿈이 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존재하듯이, 설악 큰스님의 여행이란 여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늘 여행 중인, 절대 현재의 이 찰나를 보라한다.
설악, 귀엣말 하다․2
진작 찾아야 할 부처는 보이지 않고
허공에 떨어지는 저 살인도 저 활인검
한 사람 살아가는데 만 사람이 죽었구나
— 설악 무산, 「萬人古則․1 : 조주대사(趙州大死)」
조주의 대사저인(大死底人)은 『벽암록』 41칙에 나타나는 공안이다. 우리는 사실 본칙인 공안의 기록보다 우리를 더 창망한 선의 세계로 몰고 가는 것은 이 고칙을 있게 하는 선화(禪話)다. 그럼 고칙을 읽어보자.
여기 참구할 말머리[話頭]가 있다. 조주화상이 투자화상에게 “아주 철저히 죽은 자가 갑자기 살아난다면 어떻게 하겠소” 투자가 대답했다. “밤에 쏘다니면 안 되지요.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십시요.”
(擧 趙州問投子 大死底人 却活時是如何 投子云 不許夜行投明須到)*
* 거(擧) - 선문(禪門) 제1서라 할 수 있는 『벽암록』엔 선사상, 선문학을 여법하게 기록하는 선문(禪文)의 5대 강목이 있다. 즉 수시(垂示), 본칙(本則), 평창(評唱), 착어(着語), 게송(偈頌)이다. 앞의 수시는 본칙에 들기 전 전언(前言)과 같이 미리 자리를 펴는 것이고, 거(擧)는 공안을 들어 보이는 것을 말한다. 단지 공안을 거기(擧記)하여 기재할 때만 쓴다. 좌상에서 공안을 창(唱)할 때는 기득(記得)이라 한다.
* 고칙(古則) - 화두, 공안, 본칙에 해당하며, 선사상사 대표적이 선덕(先德)과 선사들의 선리(禪理)와 실화(實話)를 말한다.
* 대사저인(大死底人) - 일체의 알음알이를 잠재운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기관[六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 경계[六境]를 만나 자유로운 사람이나, 다시 대긍정의 여시한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다.
* 각활(却活) - 반드시 대사저인이 되어야 각활한다. 대사각활(大死却活)은 크게 한 번 죽어야 만 곧 활활발발(活活潑潑)한 경지에 이른다. 이것은 입전수수(入廛垂手)의 경지다.
* 투명(投明) - 날이 새는 것을 기다려서.
이 뒤죽박죽인 화두, 고칙은 우리를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을 주고 있다. 우리의 오랜 관습과 지식의 바탕을 철저히 빼앗아 간다. 속지 말라. 이것이 선장(禪丈)들이 우리에게 들이대는 적기법문(賊機法門)이다. 그리나 천길만길 빠져들면 들수록 점점 뒤풀이가 푸짐함을 알게 된다. 투자가 말하듯이 깨달은 사람은 ‘밤에 쏘다니면 안 된단다. 그럼 평시에 해 뜨는 아침에 평상심으로 오라’[不許夜行投明須到]한다. 그렇다. 선의 요체 역시 평상의 일상사를 빼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이 선화에 나오는 인물은 조주(趙州從諗, 778~897) 선사와 투자(投子大同, 819~914) 선사다. 조주는 마조의 제자인 남전보원의 법제자며, 그의 행장에 의하면 120년 살다간 선장 중에 대종장이다. 특히 그의 세 치의 혀로 학인을 꼼짝 못하게 적기해버리는 조주(趙州)의 구순피선(口脣皮禪)을, 선문에서는 덕산의 방, 임제의 할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존중되어 온다. 당시 제방에서는 조주를 고불(古佛)이라 불렀다 한다. 투자는 단하 천연의 법제자인 취미 무학의 사법제자다. 이 고칙을 좀 더 가까이 가자면 『전등록』 실린, 고칙 앞에 있는 문장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어느 날 조주가 투자산에 가까이 갔을 때, 路中에서 만났다. 서로 일면식이 없지만 조주는 이내 투자란 것을 짐작하고 묻는다. “혹 당신이 대동 스님이 아니시오?” 투자는 대답 대신 “나는 저자에 장보려 가는데 돈이 있으면 보시 좀 하시오.” 얼마 동안 조주는 홀로 투자를 기다렸다. 이윽고 투자가 기름 단지를 들고 돌아왔다. 조주가 불쑥 말했다. “투자, 투자하더니 하찮은 기름장수 중이군 그려” “그래요, 스님은 기름 단지에 정신이 팔려 나를 못 보는군요” 투자가 응수했다. 이어 “그럼 투자의 본색을 보여 보시오” 조주가 말하자, 바로 기름 단지를 불쑥 내밀며, “기름 사시오, 기름, 기름 안 사겠소” 투자는 당시 기름을 짜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름장수로 즉시 돌변한다.
― 「서주투자산대동선사」, 『전등록』, 15권.
그리고 두 선장이 진검승부로 펼쳐 보이는 『벽암록』 본칙으로 이어진다.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에 목숨을 잃은 대사저인의 참모습 보라고 귀엣말하는 설악노인의 자태 좀 보소.
설악의 시 1행은 그곳에 이르러도 찾을 것이 없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그 자리조차 없으니 부처 어디 있느냐? 되묻는다. 그래 우린 원래 부처다. 오직 칼은 칼일 따름인데, 굳이 마음 내어 살인도니 활인도니 분별치 말라 한다. 그대로가 일체가 반야의 현현(顯現)이라고 귀엣말한다.
2행 “허공에 떨어지는 저 살인도 저 활인검”에서 우린 단박에 살인도와 활인검을 잉태한 허공이, 바로 허공이 아닐진대, 살인도라 활인검이라 하지 말고 그냥 허공으로 막든지 끌어안든지 해야 당연하다. 허공이라는 당체를 무엇으로 사량할 것인가. 악(噩)! 이어
3행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거적 덮은 만 사람이 진짜로 죽은 발가숭이 사람에게 딸려가고 있다고 보는 안목이다. 안목을 가진 대사저인을 보라고 그 옆에는 귀엣말하는 설악 노인도 있다.
살짝 조주의 얘기를 하나 곁들이면 산사의 한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조주의 문하의 한 스님이 입적을 하자, 조주고불이 장례 행렬에 참가하여 말한다.
“수많은 죽은 사람이 단 하나의 산 사람을 쫓아가는군!”(許多死漢 送一個活漢)
반어(反語)하여 보아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 하나 쫓아가는군. 보라, 찬 서리 어린 지혜란 놈이 눈을 살며시 깔고 있다.
아니, 불같은 금모사왕의 한 백년 굶주린, 포효하는 설악의 고함을 들어보자. 암, 필히, 귀랑 귀는 꼭 막아야 되지.
놈이라고 다 중놈이냐
중놈 소리 들을라면
취모검 날 끝에서
그 몇 번은 죽어야
그 물론 손발톱 눈썹도
짓물러 다 빠져야
–설악, 「일색변 . 6」
설악, 귀엣말하다․3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 설악 무산,「무자화(無字話)」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가 활동사진 필름처럼 흘러가고 나는 있는 듯 흐르고 흐르면서 여기엔 없는 듯하다. 이와 같은 도리를 단 3행의 시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선관이 체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에 대한 평설이 있기 전에 우리는 일찍이 우리 곁에 왔던 대선사이이며 시승이었던 경허의 게송을 만나게 된다. 아래 시와 설악 노인의 「무자화」와 아울러 읽기로 하자.
해질녘 빈 절 안에 斜陽空寺裡
무릎 껴 앉고 오는 한가로운 졸음, 꺼덕꺼덕 抱膝打閒眠
쓸쓸하여 놀라 깨어보니 蕭蕭驚覺了
서리 잎이 섬돌에 가득하여라 霜葉滿階前
―경허 성우,「우음(偶吟)」
선의 3조 승찬 대사의 『신심명(信心銘)』 모두의 글에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이란 말이 있다. 곧 ‘지극한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간택심을 꺼릴 뿐이다’ 이니, 이 간택심인 분별하는 버릇의 마음만 벗어나면 바로 그 자리가 도라는 것이다.
이 지도(至道)를 비유하여 옛사람들은 한결같이 ‘천지가 넓대도 지도에 비하면 옹색하고 일월이 아무리 밝대도 이 지도에 견주면 칠흑 어둠이며, 아무리 미사여구의 문장과 간결 명징한 선설(禪說)을 한다 해도 이곳에 가까이 갈 수 없다’고들 말했다. 또 고함을 지르고 몽둥이질을 한다 해도 그곳을 표현하기 어림도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우리들을 후려쳤다. 그렇지만 굳이 문장으로 표현 못할 바가 아니고 행동으로 표현 못할 바가 아니다 하고 우리를 꼬드기고 있다. 그럼 대체 이것이 무엇이라 말인가?
여기에 필자는 두 선사의 시구를 들어내어 지도를 다시 한 번, 당처를 꼬드겨 일어서게 하고자 한다.
설악의 「무자화」는 지도에 대한 동태적인 표현이니, 요지부동(搖之不動)인 지도를 흔들어 흐르게 하고 있고, 경허의 「우음」 게송은 지도를 더욱 고요로 들게 적조적멸(寂照寂滅)시키고 있다. 참 지극한 귀엣말이다.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놓고” 하는 고 놈은?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하는 고 놈은?
그렇다. 그건 바로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니,
아시는가?
선문에선 우리를 깨달음으로 들게 하는 지극한 간절 노파심의 법문이 있다. 귀엣말이 있다. 이 상당법문을 적기법문이라 한다. 이것을 필자는 선시의 적기수사법(賊機修辭法)이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선, 언어로 읽다』, 소명출판, 27-58쪽). 곧 『금강경』 전문에서 주 수사법으로 쓰이는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如法受持分」,『금강경』 제13)”이란 법구가 있다. 이 경문은 우리말로 표현하면 ‘부처가 말한 반야지혜는 곧 반야지혜가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지혜다.’가 된다. 여기에다 반야 대신 책, 책상, 연필, 뗏목다리 등을 넣어도 똑같다. 바로 모든 두두물물의 실상의 겉과 속, 불이(不二)의 표현이 된다.
부처가 말한 ‘A는 곧 A가 아니고 그 이름이 A다’로 읽을 수 있다. 이것을 도식으로 나타내면 A=Ā가 된다. 곧 A는 A 아니므로 A이니, 위의 시 ‘뗏목다리’도 늘 우리가 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뗏목다리가 아니라 그 이름이 뗏목다리인 것이다. 뗏목다리는 우리의 편리만 주는 통나무 다리가 아니라, 아이들이 놀다가 굴러 떨어지거나, 깔리어 압사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의 상황에 따라 전변하는 뗏목다리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이렇게 고정된 시점으로 대상을 보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결국 뗏목다리 A는 위험에 처하게 하는 Ā와 동시에 보는, A=Ā의 세계인 진리에 계합시키고 있다. 설악은 강과 강물과 뗏목다리의 동태적인 문장을 통하여 선문의 상당법문인 적기수사법을 써서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몰아넣고 있다. 제발, 깨닫기나 하라 한다.
그럼 경허의 시, 「우음」을 살펴보자. 앞 설악의 시는 문장의 흐름이 동태에 있음에 반하여, 고요를 더욱 더 고요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1행에 ‘해질 즈음의 빈 절’은 해가 사라져가는 빈 절인 동시에 텅 빈 우주 삼라만상인 지도라 아니할 수 없는 요란스러운 빈 절 안이니, A=Ā의 진경이다. 2행에서는 동중정(動中靜)을 “무릎 껴 앉고 고개를 꾸벅꾸벅 찧는 한가로운 졸음”은 졸음이 아니라, 3행에 이어지는 “놀라 깨어 본다”는 시행 역시 2행에서 이어지는 천지보다 더 넓고, 해와 달이 비쳐주는 더 할 수 없는 밝음보다도 더 밝은 지도에 계합이니, 이 소식은 4행에서 여지없이 지도의 실상을 드러낸다. “서리 잎이 가득한 저 섬돌 앞” 역시 섬돌 앞에 무엇이 있는가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 서로 친하게 되는 것이다.
선장(禪丈) 두 분 시의 기표는 서로 머리와 꼬리를 물고 물리고 있으나, 살펴보면 꼬리가 머리를 치고 머리는 꼬리를 두르고 상호 회감회통(回感會通)하여 같은 자리에 있음을 읽게 된다. 간절노파심절에 점두(點頭)함.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설악, 귀엣말하다․4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 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어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도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 설악 무산,「나는 길을 잃어 버렸다」
선시에 두두물물의 드러남을 살펴보며 그 존재가 그대로 여시(如是)하니, 바로 무의(無意)이고, 무색(無色) 무성(無聲) 무향(無香)이며, 무미(無味) 무촉(無觸)이지만, 굳이 우리들의 6식(識)과 18계(界)로 따져볼 땐 단순 청량 명징 무사로 드러남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있는 온통 그대로 여시할 뿐이어서 설악 큰스님이 내는 기러기 고함 같은 일성의 파열음도 역시 여시할 뿐인 것이다.
여기서 여시란 긍정과 부정을 아우르는 말이니, 우리는 긍정과 부정으로 이원화된 언어를 그냥 긍정이라 말하지만, 더 확실한 말은 ‘이와 같다’는 여시가 제격이라 보아진다.
위의 선시에는 표현상 예닐곱 살 되는 초동과 일흔 둘 잡순 설악 노장, 그 외에 이 텅 빈 공간이 있다. 그리고 산하대지도 초목삼림도 없는 하얀 백지의 무대가 있을 뿐이다. 단지 우리들을 선문에 들기 기대하는 설악 큰스님의 간절노파심절인 바람으로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이러함은 위의 시 「나는 길을 잃어 버렸다」가 우리에게 주는 단수무사(單純無事)함과 청량명징(淸凉明澄)은 존재의 여시함에서 옴을 자연 느끼게 한다.
시 속으로 사라진 텅 빈 무대와 생각 밖의 먹먹함이 저쪽 세계와 맞닿는다. 그리고 아주 잦아들고 깃드는 귀엣말,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이고, 일흔 둘에 산골 초동에게 받아먹은 감자 한 알이 눈 속 깊이깊이 티눈 같이, 노장의 심장 깊숙이 박혀 있음이, 우리들을 망망한 곳으로 인도한다. 몸도 마음도 모두 태운 설악 노장은 오직 그 아이에게 받은 감자 한 알, 돌려줌이 아니라, 다시 받을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시 되돌아 갈마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한다. 3연에서 “오늘도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아!
무작정 걷고 있는 나, 생각도 없는 생각 속으로 영원히 걷고 있는 나. 아무리 귀엣말하시더라도 솔깃하지 말라. 에라, 나 역시 모른다 몰라[我亦不知].
이 부지[不知]를 노래한 근래의 대 선지식인 효봉 학눌(曉峰學訥, 1888~1966) 선사의 오도송을 같이 읽어보자.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海底燕巢鹿抱卵
타는 불 속 거미집에 고기가 차 달이네火中蛛室魚煎茶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此家消息誰能識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白雲西飛月東走
― 효봉 학눌,「오도송」
1931년 여름 금강산 법기암. 1년 6개월 간 두문불출, 오직 정진에 매진하던 효봉 스님이 토굴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 깨달음을 읊은 오도송이다.
1행과 2행은 분명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하여 즉 여섯 가지 기관[六根]으로 느껴지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 경계[六境]의 해체이다. 곧 본래면목에서 옮겨 앉은 알음알이의 해체이며 앞생각, 뒷생각의 절단이다. 다시 말해 자성(自性)이 무자성(無自性)임을 형상화하고 있다. 관념을 형상화하여 두두물물의 본질에 도달하여 자기 회귀를 하고 있다. 이럴 때는 관념이 실재니, 언어의 길이 끊기고 마음이 가는 곳이 사라짐(言語道斷 心行處滅)의 글귀다. 아는가? 이 소식을 알고 싶은가? 4행에 와서는 바로 천연덕스럽게 소식을 현장감 있게 그리고 있다. 그래, “백운서비월동주”야,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달리지.” 그 밖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앞의 설악 큰스님의 「나는 길을 잃어 버렸다」나 효봉 선사의 「오도송」은 모두 『금강경』 주된 표현인 부처님이 설한 “불법은 곧 불법이 아니라 그 이름이 불법이다”라는 즉 ‘A는 곧 A가 아니고 그 이름이 A다’로 읽히며, A=Ā로 회통되니, 곧 삶이란 A와 죽음이라 불리는 Ā로 회통된다. A는 A가 아니므로 A이어서, 위의 시 ‘뗏목다리’도 늘 우리가 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뗏목다리가 아니라 그 이름이 뗏목다리이듯이, 호봉의 오도송 1행의 “바다 밑 제비집”은 우리의 정상화(定相化)된 ‘처마 밑 제비집’이나, ‘은행나무 위 제비집’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곧 Ā의 ‘바다 밑 제비집’이며, 우리가 늘 보고 알고 있는 ‘처마 밑 제비집’은 일상적인 육식(六識)으로 만나는 A의 제비집인 동시에 “바다 밑 제비집”인 Ā의 제비집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제비집은 선적 사유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제비집일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제비집은 곧 보이는 제비집이라고 볼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어지는 “사슴이 알을 품고”나 2행의 “불 속 거미집”이나 ‘차 달이는 물고기’. 역시 “불 속 거미집”은 ‘헛간에 친 거미집’이고, ‘차 달이는 물고기’는 ‘회를 치기 위해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가 된다. 이러함은 A는 A인 동시에 Ā로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의 삶에 낮과 밤이 있듯이 생과 사과 동시에 존재해 있다고 보는 트인 견해다.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엔
무릇 있는 바의 상은 凡所有相
모두 허망한 것皆是虛妄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봄은若見諸相非相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卽見如來
제상(諸相) (A)과 비상(非相) (Ā)이 회감 회통하는 봄, 곧 여래를 봄이라.
이것을 설악은 “길을 잃어버”림이 곧 “길을 잃어버”리지 않음이어서 “오늘도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하고, 효봉은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달리고 있다고 절대 현재 이 순간을 드러내고 있다.
송준영
1947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199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18세에 초발심하여 선문에 든 후, 탄허 고송 성철 서옹 설악 등 제 선장들을 참문하였다. 시집으로는 『눈 속에 핀 하늘 보았니』『습득』『조실』, 연구서로 『선으로 읽는 반야심경』『황금털사자의 미미소』『현대 언어로 읽는 선시의 세계』『선, 언어로 읽다』등이 있다. 제6회 박인환문학상과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했다.
<대담>
송준영․맹문재
맹문재 :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제가 초창기에 박인환문학상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뵌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요즘 선생님께서 선시에 관한 글을 잡지들에 열심히 발표하는 것이 눈에 띄는데, 근황은 어떠하신지요?
송준영 : 날마다 쪼들리고 힘들고 지친 날일수록 좋은 날입니다. 절대로 편치 않는 그런 날의 연속이지요.
맹문재 : 이번 『서정시학』에 발표하는 「설악, 귀엣말하다」 연작시를 보면서 이러저러한 생각이 들었는데, 우선 실험적인 시 형식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이와 같은 시를 어떻게 명명하는 것이 좋을까요? 시도하는 의도가 궁금합니다.
송준영 : 굳이 이 시편들에 이름을 붙이자면 평설시(評說詩)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릍테면 설악의 현대선시와 경허의 고전선시는 상호 텍스트적이면서도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지요. 곧 반상합도(反常合道) 됨으로 새로운 수승(殊勝)한 세계를 보이게 되며, 이 결과물이 바로 「설악, 귀엣말하다」의 시편들입니다. 다시 말해 두 선사의 선시를 인용하여 병치시켜 다른 한 통일된 작품인 「설악, 귀엣말하다」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혼성모방인 페스티쉬 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의도는 「설악, 귀엣말하다․4」에서 보듯이 한 편으로 보면 해독하기 극히 어려운 효봉 선사의 오도송과 단순(單純)하고 명징(明澄)하며 무사(無事)한 설악 스님의 시를 같이 보여주므로 상호작용이 되어 회감회통(回感回通)되는 낙처(落處)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맹문재 : 설악 무산의 시를 대상으로 삼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이번 기회에 독자들에게 설악 무산 시의 의의 내지는 주목해야 될 점을 말씀해주시지요.
송준영 : 제가 이즘 설악 스님의 8순 기념문집을 편저하고 있습니다. 제방에 흩어진 설악 스님에 대한 글들을 모으다 보니 1,000쪽이나 되었습니다. 교정을 보고 윤문을 하며 색인을 찾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스님의 글에 침잠하게 되고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모두 제가 소싯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찾아보고 익혀왔던 글들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점두(點頭)하기도 하고 소리 내어 줄줄이 읽기도 하며 환희용약하기도 하였습니다. 스님의 「무산심우도」나 「달마십면목」은 시절 인연을 맞은 수자(修者)들에게는 단도직입(單刀直入)적이며, 또한 돈오(頓悟)적인 계기를 만나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로 성큼 뛰어들어가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시편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인고칙(萬人古則)」의 연작들은 『벽암록』이나 옛 선화(禪話)에서 스님 특유의 선안(禪眼)으로 발췌한 공안에다 뜻을 열어주기 위해 게송을 붙인 것이기에 선장들이 아니고는 감히 어리대지 못하는 통증(通證)된 글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지요. 이런 연유로 해서 설악 스님이 한글로 쓴 현대선시의 비조인 한용운의 맥을 이어가는 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설악 스님의 시, 특히 한글로 쓴 현대선시에서 오는 에너지가 한글이 상용화되기 전, 옛 조사들이 한문으로 쓴 심오한 고전선시의 에너지와 같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한문으로 된 어려운 고전선시를 더 쉽게 이해하고 더 널리 읽힐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한글로 작시된 현대선시도 더 쉽게 더 널리 보급되고 대중화되는 방안은 없을까? 고민해 오면서 다양한 방안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이런 시도 속에서 한문으로 쓴 고전선시와 한글로 쓴 현대선시를 대비, 병치시켜 상호작용을 하게하므로 선장들의 낙초자비심절(落草慈悲心切)을 읽도록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새로운 반상합도(反常合道)된 평설시로 나타나기에 이르렀습니다. 굳이 명명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 글쓰기의 한 형태로 나타나는 혼성모방인 패스티쉬 시를 쓰게 된 것이지요.
맹문재 : 「설악, 귀엣말하다․2」의 평설에는 『벽암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어보았고 가끔씩 뒤적이고 있는데, 선생님께는 시를 쓰거나 선시를 공부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송준영 : 사실 이 중요한 문제, 선문(禪門)에서는 ‘대장부의 가장 큰 일[大丈夫一大事]’의 인연이라 불리는데, 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오직 한 길을 곧게 갔습니다. 대학교 입시생이었던 젊은 제가, 어느 겨울밤 산사의 골방에서 책을 보던 제가, 강하고 선연한 느낌에 몸을 떨다가 보니, 책상 위에 켜 놓은 촛불이 자기 자신을 태우며 세상을 밝게 하고 있다는, 초등학생도 아는 이 사실을 체험하고, 세상에 이런 일들도 있구나,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세상에 대한 강한 체험에서 비롯되는 심신(心身)의 변화의 강한 힘을 다시 한 번 만나겠다는 생각이 쌓여, 일념이 된 저는 그 일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목숨과 바꾸겠다는 이 맛이 저를 돌려볼 수 없는 막바지에 헤매게 했습니다.
그 후 제가 즐겨보는 책을 들라하면 『벽암록』과 『선문염송』이라 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두 선서는 말로는 다한 깨달음의 내용이 글로 적혀 있습니다. 『벽암록』 가운데 <송고백칙>의 저자는 설두 중현(雪竇重顯,990~1052) 선사이며 설두 선사는 운문종의 4대 손에 해당됩니다. 이 고칙과 게송에다가 수시와 착어와 평창을 붙여 『벽암록』을 편찬한 사람이 원오 극근(圜悟克勤,1063~1135)입니다. 원오 선사는 임제종 양기파의 적손입니다. 곧 『벽암록』은 설두 선사가 『전등록』이나 그 외 선서에서 선화(禪話) 100편을 뽑아 고칙에다 게송을 부친 <송고백칙>으로 선문학의 빼어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송고(頌古)란 말은 게송과 고칙을 말합니다. 선화는 고칙이라 불리는 화두, 공안이 만들어지는 에피소드를 말합니다. 칙(則)은 모범(模範), 귀감(龜鑑) 전형(典型)을 말합니다.
『벽암록』을 공부하면서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동서양의 글쓰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그것은 서구의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에 기초를 둔 논설문과 불이사유(不二思惟)에 뿌리를 둔 선어록이나 법문이 서로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구의 분석과 논증에 의해 연역(演繹)하여 얻어지는 논설문의 글쓰기는 결국 그 결론은 ‘나’ 밖으로 추구하여 얻어지는 지식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 얻어지는 체달(體達)의 지혜와는 서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온다고 보아집니다. 따라서 논설문으로는 선을 담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벽암록』에서 보다시피 선화(禪話)인 염(拈)의 본칙(本則)에다 본칙을 들어내기 위해 게송(偈頌)을 붙이고, 또 전문(前文)에 해당하는 수시(垂示)를 더하고, 이어 할주(割註)라 할 수 있는 착어(着語)를 붙이고, 총평인 평창(評唱)을 붙여 학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체달하도록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곧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를 체득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천변만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진리란 똥막대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 말은 『벽암록』을 찬술한 원오 선사의 수제자인 대혜 종고(大慧宗杲)에 의해서 『벽암록』이 불태워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벽암록』을 암송할 정도로 익힌 참학도가 꼭 깨달은 것 같은 언사로 농(弄)하는 것을 보고, 제일의(第一義)의 화두 간화선(看話禪)이 구두선(口頭禪)으로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태웠다는 기록(구판, 『벽암록』, 경산휘능의 후서)이 있는 것을 보아, 임제선의 실참실수(實參實修)를 위해 편저자 원오의 수제자 대혜에 의해서 소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벽암록』을 지금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로 지극한 영향을 받은 것은 선문 존숙(尊宿)들의 일거수 일투족, 선행(禪行)에 의한 것입니다. 제가 석가세존을 스승으로 모시는 것도 『아함경』에 나타나는 문구 하나에 있습니다. ‘80세의 노걸사가 제자에게 어깨가 아프니 주물려 달라’는 말씀을 읽고 그를 진짜 스승으로 존경하게 되었고, 선문에 든 후, 제가 참문한 탄허, 고송, 성철, 서옹, 설악 등의 선장들과 많은 수행납자들이 그대로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또 부처님의 마음을 사자상승(師資相承)한 조사(祖師)들에게 신심을 내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맹문재 : 「설악, 귀엣말하다․3」에는 ‘적기법문’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선생님께서 간행하신 『선, 언어로 읽다』(2010, 소명출판)에서는 ‘적기수사법’이라고 명명하고 있지요. 설명을 부탁드려볼까요?
송준영 : 선은, 선사들은 고달픔에 갇혀 허덕이는 중생을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선불교 고유의 본분(本分)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상당(上堂)하여 설법을 할 때 가장 상승법문(上乘法門)인 적기법문(賊機法門)을 합니다.
적기란 우리를 한 순간 깨달음의 세계로 돈입시키는 선문에서 쓰는 최상승 법문입니다. 이미 선이 중국화 되기 이전 석가세존이 그의 제자들에게 수시한 삼처전심(三處傳心) 선화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처전심이란 세존이 세 곳에서 대중들에게 수시한 밀지(密旨)인데, 우리에게 알려진 ‘염화시중의 미소’가 그중 하나입니다. 영축산에서 법을 설하던 세존이 언어가 없는 곳에 이르러 갑자기 연꽃을 들었고, 일체 대중들이 적기되어 어리둥절하였는데, 오직 가섭만이 세존의 비밀한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이에 세존은 가섭에게 밀지를 이심전심(以心傳心)했다는 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달마가 서래(西來)하여 중국선의 초조가 되어 이조 혜가(二祖慧可)를 깨닫게 하는 선화가 있는데 이 역시 적기에 의해 깨달음으로 인도합니다. 그 후 선불교는 가풍에 따라 5가 7종(五家七宗)으로 황금기를 맞았고, 적기어법에 의한 법문 역시 번창하게 됩니다. 오늘 날 1,700 공안이라 부르는 화두가 바로 적기법문, 적기어법을 쓰고 있습니다.(송준영, 『선, 언어로 읽다』, 15쪽, 116-121쪽 참조)
적기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바탕을 빼앗아 감으로 오는 정신적 공황을 말합니다. 우리는 선문답이라든가, 선화를 접하면 얼떨떨해 합니다. 이런 내용을 처음 접한 분들은 한동안 어쩔 수 없이 캄캄해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내용에 있어 진기한 일화, 정상을 뒤집는 언설, 엉뚱한 사건들, 여러 가지 모순당착, 신비하고 은밀한 발언들, 어긋남에서 오는 위트와 유머의 사태, 비논리적인 횡설수설, 알고도 시침을 떼는 것 같은 천연덕스러움 등은 서구적인 논리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지요. 분명히, 확연한 이해에 닫지 못하게 하는, 다른 하나의 암호로 나타나게 되지요. 바로 이것은 선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밀의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선의 목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려는 선장들의 언술과 행위와 상황은 우리에게 보이고자 하는 본질을 그대로 우리 스스로 체득하게 하려는 간절노파심절(懇切老婆心切)이 있게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마음에 영회(領會)하면 그로써 선은 얼굴을 환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선은 인위적인 생각이나 논리적인 이해 차원을 넘어서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이나 이해, 분석이나 논증 밖에 덤덤히 자존(自存)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선은 우리가 이해하고 만들어진 어떤 철학적 종교적 범주에 맞추어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선의 알맹이를 들어내기 위한 선적 글쓰기가 오랜 세월을 통하여 다듬어져 내려왔습니다.
선가에서는 그 뜻을 체득(體得)시키기 위해 선문 특유의 글쓰기인 어록이나 법문집을 통해 기록되어 왔습니다. 특히 선의 진수요, 선문학의 제1호라 불리어 지는 『벽암록』과 선시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선문염송』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벽암록』에 대해서는 앞 질문에서 말씀드렸고, 우리나라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제자인 진각 혜심 선사에 의해 찬술된 『선문염송』에는 약 1,700가지의 공안(칙, 화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공안들은 하나 같이 지식적인 차원으로 답을 낼 수 없는 풀리지 않는 명제로 이루어진 것들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아야 하는 수행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를 푼 명확한 답도 다시 의문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깨달음에 이르고자하는 선의 특성이, 선적인 글쓰기 방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학인 스스로를 체달시키려고 수시(垂示), 념(拈), 게송(偈頌), 착어(着語), 평창(評唱) 등을 써서, 선장들은 학인을 깨달음에 이르게 합니다. 『선문염송』은 본칙(공안)에 대한 염[拈]이나 게송(偈頌)으로 학인을 북돋고자 하지요. 게송은 오늘날 우리가 일컫는 운문시이고 염은 산문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시의 수사법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선시를 읽다보면 아방가르드 시에서 많이 나타나는 환유, 병치은유, 유추, 아이러니, 패러디, 패스티쉬 등의 수사법으로 풀리지 않는 근접할 수 없는 선게(禪偈)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극도로 발전된 문화의 산물인 아방가르드의 주수사법으로도 읽을 수 없는 선시들이 1,500년 전부터 줄곧 이어오고 있지만, 이 시들이 깨끗하게 풀리지 않는 것은 아직 그들의 생각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고, 현금의 수사법이 가볼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지 않고 사유하지 않았던 사회나 세계에 대해서는 언어가 없고 그 수사법도 없다는, 곧 한 생각이 한 수사법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제가 그 동안 1,000여 수의 고전선시들을 번역하고 읽어본 결과 이 모든 공안이나 공안을 드러내기 위한 각종 덧붙인 글들은 결국 선이 목적으로 하는 우리를 절대자유인, 자아의 본래면목으로 환지본처(還至本處)하기 위해 장치한 기관임을 알 수 있었고, 또 이곳은 선장들이 자유롭게 쓰고 있는 적기에 의해서만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선장들이 우리를 깨달음으로 들게 하는 말씀이 적기방편법문(賊機方便法門)이고, 그 법문에는 적기어법(賊機語法)이 쓰였고, 또 운문시인 게송(偈頌)이나 산문시라 할 수 있는 염(拈), 공안인 본칙은 모두 적기수사법(賊機修辭法)으로 씌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대승경전인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도처에 주수사법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선시의 백과사전 『선문염송』의 주 수사법입니다.(송준영, 『선, 언어로 읽다』, 소명출판, 27-41쪽 참조)
선시의 적기수사법에서 나타나는 그 하위 단위의 비유법으로는 선시의 반상합도(反常合道) 선시의 초월은유(超越隱喩) 선시의 무한실상(無限實相)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선시의 계승과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오면서 서양시론에 편제되지 않는 ‘선시론’의 연구는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선을 정의하고 선시를 아방가르드 시와 비교한 글들을 본 적이 있지만, 선의 알맹이 선시를 해독할 수 있는 수사법의 연구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적기법문인 적기어법에 의한 깨달음, 그것을 언어로 기술한 글들은 당연히 ‘적기수사법’에 의한 문장들입니다. 이것을 제가 선시의 적기수사법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최근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있어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여겨집니다.
맹문재 : 「설악, 귀엣말하다․4」에는 ‘두두물물’이란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다른 글들에서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강조하는 바가 있는지요?
송준영 : 두두물물(頭頭物物)은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이라는 선게(禪偈)에서 나온 말입니다. ‘두두시도’에서 두두란 정신적인 측면, 도(道)적인 면을 이릅니다. 절대현재 이 찰나에 보는 그대로가 도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어떤 사물을 볼 때 미리 눈, 귀, 코, 혀, 몸[眼耳鼻舌身]이라는 기관들에 의해 전달되어 6식인 의식으로 가고, 이것은 제7식인 말나식인 무의식을 거처 일체를 갈무리하는 8식인 아뢰야식(含藏識)으로 전달됩니다. 불멸의 식인 함장식(아뢰야식)에는 우리가 생명을 갖게 된, 무시이래(無始以來) 온갖 정보가 갈무리 되어 있다고 『유식론』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보는 그대로가 함장식(8식․아뢰야식)의 정보와 관계없이 있는, 여시(如是)하게 보는 것, 이것이 도(道)라는 뜻입니다. 그 정보가 함장식에서 갈무리하고 있던 정보와 부딪힘으로 판별하는 정신작용은 두두가 아닙니다. 이렇게 여시(如是)하게 알고 받아들이는 실재의 물물들 전체가 참[眞]이라는 것입니다. 곧 물물 그대로가 모두 진여(眞如)라는 말입니다. 두두물물은 천하에 존재하는 유정무정의 일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리 갈무리해 있던, 8식 함장식에는 각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런 관계로 순수 그대로 사물을 보지 못하고 정상화(定相化)된 정보가 각 개인의 상황에 따라 기쁘고, 성내고 슬프고, 즐겁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하고자[喜怒哀樂愛惡欲] 하는, 우리의 심신(心身)에 나 자신도 모르게 감싸이게 됩니다. 이것은 두두물물이 아닙니다. 오랜 관습이나 정보를 지니고 있는 8식 작용에 의해 여시하게 보지 못한 까닭으로 생긴 것입니다.
맹문재 : 이번 『서정시학』에 발표하신 작품들에 대한 말씀은 이 정도로 듣고 좀 더 영역을 넓혀보기로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시단에서 알려져 있듯이 선시에 대한 연구를 강구하셔서 여러 권의 저서를 간행했고, 지금도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선시란 어떤 것이고, 왜 연구를 하시는지요?
송준영 : 선시란 내용상으로는 선사상을 시적으로 표현한 언어 양식을 말하겠지요. 곧 선수행자들의 선적 체험, 선수행으로 체득된 오도의 경지를 표현한 시입니다.
우선 선은 불교의 삼학(三學)인 계(戒) ․ 정(定) ․ 혜(慧) 가운데, 정에 해당합니다. 정은 산스크리트어 Dhyāna가 선나(禪那)로 음역되어 줄여서 선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정려(靜慮), 사유수(思惟修), 정(定)으로 의역되기도 하였습니다. 의역에서 보다시피 ‘생각을 고요에 들게 한다’, ‘생각을 닦는다’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러한 선(禪)자에 시가 합쳐져 선시가 된 것입니다. 곧 고요에 든, 생각을 닦는 또는 닦은 이런 노래가 게송, 선시입니다.
오늘날 선시, 아니 선의 뿌리는 인도의 불교에서 잉태되었지만, 인도에는 오늘날과 같은 선은 없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물론 내용상 말입니다. 현금 선은 깨달음을 닦는데 적극 동참하여 견성(見性)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수레이며, 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요. 선종은 불교가 중국에 뿌린 종자가 발아하여 중국, 우리나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에 전래되고 전 세계로 퍼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지구상에 가장 오래되었지만, 오늘날 새로운 사상으로 정신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세계의 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선은 우리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분명 한 소식이며 큰 물건입니다.
맹문재 : 선시와 불교시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현대 언어로 읽는 선시의 세계』(2006)에 밝히시기는 했는데, 중요하다고 여겨 다시 질문을 드려봅니다.
송준영 : 선시(禪詩)를 불교시라는 범주에 두고 볼 때, 교시(敎詩)와 선시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교시는 불교의 현상적 교리를 노래하고 교리를 전도하기 위해 작시된 시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교시는 다른 종교의 종교시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현금 시단에 논의 대상이 미미한 것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선시가 생명 그 자체를 움직이는 그대로 포착하려고 하는데 비해, 교시는 움직임의 흔적을 지적으로 추상화하여 일반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곧 선시는 생명의 최고를 구체적인 것, 실제적인 것 가운데 구현하려 하고, 교시는 그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 상대적으로 대상화하여 눈앞에 세계를 고착화하고자 애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집단화된 종교의 정신세계와 선사상과의 차이에도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맹문재 : 선생님께서는 많은 글에서 선시를 서구의 아방가르드 시와 같고도 다르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것인지요?
송준영 : 선시와 서구의 아방가르드 시는 상호 시에서 표현되는 수사가 식별되지 않을 정도로 거의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사실 그 속내를 파헤쳐보면 전혀 다릅니다.
선과 다다이즘이나 쉬르리얼리즘과 같은 점은 표현 형태상 기존의 모든 것을 일단 부정한다는 것에는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깊이 들어가면 이런 행위, 글쓰기 후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느낌, 그리고 그 영향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행위자의 근본 마음 자세 역시 판이하다는 데 있습니다.
다다이즘은 모든 현실적인 것을 부정하고 있고, 쉬르리얼리즘은 정상적 합리에서 오는 모든 관습과 지성들은 부정했지만, 꿈이나 무의식 세계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은 무의식 세계를 혼침(昏沈) 무기(無記)라 하여 선의 스승들은 학인들에게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8마계(魔界)라 하였습니다. 무의식에서 진일보한 툭 터진 것, 이를테면 초의식의 세계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초의식마저 깨뜨린 것을 깨침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무문관』에서는 ‘백척의 낭떠러지에서 한 발 내디뎌라 그러면 시방세계의 전신이 바로 현재다’(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을 통하여 인간의 정신적 정점(頂點)에 도달하고자 한 것입니다. 초현실자들이 추구한 꿈, 무의식과 상상력은 명징한 본래의 자아에다 덧붙인 옥상옥(屋上屋)과 같을 뿐입니다. 선에서 현실도 무의식도 초의식도 일체 비움으로 본래의 자아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선은 원래 있던 곳, 본지(本地)로 환처(還處)하는 것이지 새로운 집을, 고향을 마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것을 시에다 대입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례를 들면 서구의 다다이즘 시나 쉬르리얼리즘 시들은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자동기술법에 의해 작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와 선과의 관계를 살펴볼 때 속내를 잘 모르는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것 같으면 거의 같은 행위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시를 짓는 선장들은 깨달음에 들어 확연하고 명징함 속에서 깨달음의 세계, 혹은 미혹한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이르게 하려고 작시합니다. 그들의 글을 간절노파심절(懇切老婆心切), 낙초자비(落草慈悲)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다.
제가 제시하는 적기수사법의 주 어법은 초기 선의 소의경인 『능가경』이나 돈오의 남종선의 소의경이라 할 수 있는 『금강경』과 기본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반야심경』, 그리고 세존의 마지막 가르침인 『열반경』 등 여러 경전에 무수히 나타나는 법문입니다. 그중 『금강경』의 한 경구를 뽑아 사상적 근거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결정된 내용이 없음을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 여래가 말씀하신 진리는 취할 수 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진리도 아니고, 진리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 모든 깨달은 현인과 성 인은 상대의 세계를 빼어난 면이 없는 절대법 가운데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無有定法 如來可說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 無爲法 而有差別 (『금강경』 「무득무설분」. 제7)
*불설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금강경』「여법수지분」 제13)
*이른바 불법이란 곧 불법이 아니다.
所謂佛法者 卽非佛法(『금강경』「의법출생분」 제8)
위의 예문 중 『금강경』 제7분의 예문은 일체의 현상의 자성이 무자성임을 설파합니다. 일체의 두두물물은 스스로의 고유한 성품이 없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은 현재의 이름으로 가유(假有)해 있지 실제로는 진공묘유(眞空妙有)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적어법으로 제8분, 제13분과 같이 ‘A는 곧 A가 아니다 그 이름이 A이다’ 하는 A=Ā의 세계며, 적기에 의한 본래의 근원지에 돈입(頓入)하기 위한 가르침이 됩니다. 그리고 본래의 실상자리로 합일됨은 적기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랜 관습에 의해 누적된 우리들의 정상성(定相性)을 해체시키려는 방편법문이 적기법문이며 적기어법입니다. 적기의 세계인 공(空)은 우리가 떠나온 본래의 세계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악, 귀엣말하다․4」에서 상호 병치하여 설악 선사의 현대선시와 효봉 선사의 오도송을 위의 적기수사법에 의해 풀어서 보인 결과, 두 선장의 시가 서로 반상합도되어 빼어난 경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평설시’로 보여준 것입니다.
맹문재 : 선생님께서는 선시에 관한 연구에 비해서는 창작한 작품이 많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간행한 시집이 『눈 속에 핀 하늘을 보았니』『습득』『조실』 등 세 권입니다. 약력을 살펴보니 1995년부터 작품 활동을 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뒤늦은 나이에 창작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네요. 『습득』에 실린 ‘연보’에 선생님의 삶이 재미있게 정리되어 있는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기 이전의 삶과 왜 시를 쓰시기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송준영 : 예, 저는 18세 청년기에 선(禪)에 관한 강한 의문을 품고 처음 발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이게 무엇인가?’ 하는 떨칠 수 없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이것을 푸는 것이 저의 전 생애에 제일 명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흔이 되는 해에야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저 밑에서 올라오는 덩어리를 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선의 스승들을 찾아 참문을 하며 보림[保任] 기간을 거쳤고 마침내 47세가 되는 해에 서옹 상순(西翁尙純, 1912~2003) 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시민 선방을 열고 강원도 각 사찰을 다니며 선에 대한 법회를 개최하였고 강릉포교당에서 10여 년간 선에 관한 설법도 하였지만, 삭발치의(削髮緇衣)를 하지 않는 법사로서 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끝내는 제가 심신을 기울여 맛을 보게 된 선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自由), 안심(安心), 무애(无碍)에 대한 염원을 보여주기 위한 직접 설법을 거두게 되었지요. 그런 후, 젊은 날에 한때 침잠했던 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친구였던 이외수, 최돈선을 자주 만나 문학토론을 하며 시(詩)로서 선(禪)을 대중에게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대학 재학시절에 박동규, 이승훈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시를 습작하게 되었지만 선에서 추구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한 강한 의구심 때문에 시는 그저 심드렁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고전문학을 말하려 하면 더듬어볼 만한 민족의 혼이 비상된 글이 극히 적습니다. 이것은 그것을 읽어 내야 하는 문자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향찰로 된 몇몇 향가, 속요 등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 민족의 정서나 사상적 깊이는 어쩔 수 없이 한자를 빌려 쓰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민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선불교의 선은, 선시(禪詩)는 오늘날 우리 민족의 정서와 혼을 더 할 수 없이 보여준 지혜의 보고입니다. 빈약한 향가나 속요와 비교할 때, 고려 중엽 송광사 16국사로 이어지는 선승들의 어록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제1 대인 보조국사 지눌의 직전 제자인 진각국사 혜심이 출현하여 당시 세상에 다시 없는 선시 사전인 『선문염송』을 편찬하였고, 또 혜심의 선시집인 『무의자시집』에는 그의 자작 선시 408수가 남아 오늘날 전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말엽에 돌출한 태고 보우, 나옹 혜근, 백운 경한 선사와 조선 중기 서산대사나 그의 제자 소요 태능의 선시, 한말의 경허 선사의 선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문화국이고 강국이며 선의 황금시대였던 당(唐)과 송(宋)의 선사들의 선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준한 정신의 수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심원한 정신세계의 노작을, 그것도 한자로 씌어진 선시들을 오늘날 누가 어떻게 풀어내고 그 향을 만끽하고 즐길 수 있을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민족 전체의 문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위의 「설악, 귀엣말 하다」 연작에 제가 많은 말을 한 것이 그 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자에 이 풀어야할 문제를 저의 대(代)에서 꼭 해결되어야 한다는 발원, 아니 조그마한 소로(小路)라도 열어야 하겠다는 발원이 이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오늘날 서양편제에 의한 글쓰기를 한 10여년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만해시인학교>가 열리고 있는 정확하게 2,000년 여름 설악산 백담산장에서 오랜만에 대학 은사인 이승훈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선(禪)에 관한 이야기와 현대 서양의 이론에 관해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었으며, 그 후 매주 목요일 저는 서울로 올라갔고, 빠짐없이 이승훈 선생님을 만나 깊은 밤까지 선과 선시,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시적 사상을 듣고 배우고 선을 말하기를 10년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설악, 귀엣말하다」의 연재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맹문재 : 『습득』『조실』을 비롯해 선생님의 여러 글에 서옹 선사가 등장하는데, 그만큼 큰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요. 독자들에게 서옹 선사를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송준영 :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시님에게 받은 은혜는 백골이 난망(難忘)하여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저를 낳아준 분이 어버이라면 저를 바른 자리에 앉게 한 분이 서옹 스님입니다. 삶에 찌든 저를, 저의 일천한 살림살이를 7년 동안 일곱 번이나 점검해 주셔서, 오늘날 무탈하게 삶의 맛을 보게 한 은혜에 감읍합니다.
서옹(1912-2003) 스님의 법명은 상순이며 석가모니 부촉, 76대 법손인 근래 대선장입니다. 제5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였으며, 무문관 조실, 만년엔 백양사 방장으로 선법을 일으키기 위해 무차법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임제록 연의』가 있으며, 2003년 12월 91세 일기로 백양사에서 좌탈입망하였습니다.
서옹 선사의 법계를 더듬어 보면 석가세존으로부터 76대에 이릅니다.
↱백장회해 ↴
*세존…달마(28대)…혜능(33대)…마조도일(35대)→서당지장→도의…태고보우
↳염관제안→범일…보조지눌…나옹혜근
*세존…달마(28대)…혜능(33대)…남악회양(34대)…마조도일(35대)…임제의현(38대)…양기방회(45대)…석옥청공(56대)…태고보우(57대)…청허휴정(63대)…편양언기(64대)…환성지안(67대)…연담유일(69대)…취운도진(74대)→만암종헌(75대)→서옹상순(76대)
위의 법계도를 살펴보면 서당지장과 백장회해의 인가를 받은 도의 선사가 신라 구산선문인 가지산문을 최초로 개산한 이래 그의 후손인 고려 말 태고보우에 이르러, 중국에 들어가 임제종 양기파의 법손인 석옥청공으로부터 인가를 받으므로 태고는 우리나라 양쪽의 선맥을 아우르게 됩니다. 서옹 선법사께서는 만암 선사의 법계를 이으니 청허의 13대 법손이 됩니다.
맹문재 :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나 창작 계획을 들을 수 있는지요? 혹시 선시의 대중화를 위한 계획도 가지고 계신지요?
송준영 : 제가 주간하고 있는 계간 시전문지 『시와세계』가 지령 40호이고 꼭 10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선시와 아방가르드 시를 병치하고 반상합도하는 새로운 문학운동을 전개하고자 고심하여 왔습니다. 선이나 선시라는 글과 서구의 아방가르드 시와 상호 격의(格義)하므로 보다 발전된 새로운 글을 보이고자 애써 왔습니다. 이제 겨우 바탕이 서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이어질 새로운 10년은 선시의 활성화와 대중화에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환으로 선과 선시를 알겠다는 동호인을 맞이하여 학당을 운영했으면 합니다.
맹문재 : 여러 가지로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선시와 선시 연구가 나오길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