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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며 산야초를 들고 환하게 웃는 전문희씨. |
[아시아투데이=양승진 기자] “제 스승은 지리산이고, 자연이다.”
경남 산청에서 산야초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희씨(50)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섭취하는 건 고맙고 행복한 일”이라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산야초를 채취하면서 뱀에게 물리고 바위에서 떨어지는 등 17년 동안 산야초 연구에만 매달려 이제는 달인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대한민국에 처음 ‘산야초’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시한 그는 야생생활을 지속하면서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동안 100가지 약초가 들어가는 ‘백초차’를 만들어 내는 등 한 순간도 몸을 쉬게 한 적이 없다.
지리산 600~700고지 이상에서만 나는 100가지 약초를 구포로 해서 만든 백초차는 최근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찾는 이가 많다. 하지만 혼자의 몸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어서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그가 개탄스럽다며 조심히 꺼낸 말이 차이야기다.
“우리나라 차 문화는 소위 녹차문화라고 해서 정착한지 이제 10여년인데 그것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중국산이 판을 치고 있으니 이게 문제”라며 “우리 것에 대한 멸시감이 너무 강한 게 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꼽은 것이 허브다.
그는 “깻잎, 미나리, 산초 등 냄새나는 모든 게 허브인데 우리 산야초는 완전히 뒷전”이라며 “외래문화에 너무 길들여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최근엔 외국에서 블루베리 등 효소가 많이 들어오는 데 무엇이 좋다 하면 물밀듯 들어와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고 허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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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통키타 가수여서 흥에 겨울 때면 한곡조식 뽑는데 그의 목소리가 참 구성지다. |
전문희씨가 산야초라는 ‘화두’를 붙잡은 것은 우연치고는 묘하다.
전남 장흥 천관산 아래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우연찮게 20대 초반에 패션모델, 통키타 가수, 인테리어 가구 디자이너 등 예술가적 소질을 키우는 데 매달렸다. 그런 그가 여성잡지에 성공한 사람으로 소개되는 등 성장가도를 달리던 때 어머니가 임파선 암 말기 판정을 받은 데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전문희씨는 건강에 늘 관심을 갖고 자연의학과 대체의학을 공부 하던 터라 모든 걸 접고 어머니 치료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한약방을 하던 외삼촌에게서 배운 온갖 약재 다루던 솜씨를 발휘하면서 곧 돌아가실 것 같던 어머니는 3년 넘게 살아 그의 효심을 확인했다. 병수발을 하며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다잡자는 뜻에서 다시 산을 찾은 그는 ‘산야초’라는 새 길로 완전히 들어서게 된다.
‘정말 두렵고 무서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질병의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주변에 산야초가 무궁무진한데 이걸로 우리 차를 만들면 작품이 되겠다는 판단에 ‘이게 평생 할 일’이라며 그 길로 들어섰다.
허준과 유의태를 스승으로 황제내경, 동의보감 등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자연이 주는 선물에 매료된 채 올해로 17년째 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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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5분도 되지않아 집 주변에서 채취한 산야초를 정리하고 있는 전문희씨의 손. |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잠깐 다녀오겠다며 한 5분이나 됐을까 새순을 한 웅큼 가지고와 이름과 효능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산당귀, 더덕, 두릅, 똑두서니, 인동초, 북나무, 산초, 얼음덩굴, 도토리, 돌배나무, 민들레, 쌍두릅, 찔레꽃, 산딸기, 가시오가피, 으아리, 머위, 취나물, 산벚꽃, 산뽕나무, 청미래덩굴, 멍석딸기, 진달래, 옷나무, 층층나무, 병꽃, 이질꽃 등 무려 39가지를 눈 깜짝할 사이에 따왔다.
집 주변에서 채취한 새순치고는 대단했다.
그게 그거 같은데도 그 여린 잎을 하나하나 구분해내는 것을 보면서 약초에 관해선 이미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가 만든 백초차는 지리산 600~700고지 이상에서 채취해 집 주변에서 채취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원래 백초차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환자가 먹는 것이냐는 물음이 많아 ‘산야초차’로 개명했다”는 그는 “산청에 와 살면서 이제는 이곳 사람이 다 됐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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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희씨의 찻상 한 켠을 차지한 도화와 매화차.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봄기운이 스멀스멀 몸을 파고 드는 듯하다. |
그는 장흥에서 태어나 지리산 곳곳에서 살아봤지만 산의 동쪽 사면인 산청에 와서야 뭔가 기(氣)가 통한다는 걸 실감했다. 피아골에서 이곳으로 오면서 아픈 몸도 평안을 찾았으니 말이다.
조용조용하던 그의 목소리가 축제 대목에 와서는 갑자기 커졌다.
5월3일부터 열리는 산청한방약초축제와 관련해 심사가 뒤틀린 듯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한방약초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건강을 생각한다는 그 취지는 높이살만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뭐가 좋다고 하면 나무 밑동까지 싹둑 잘라 썰어 내놓는 것은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이런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강나무나 헛개나무, 뽕나무 등 눈에 보이는 것은 죄다 이 모양”이라며 “순 따고 열매 따는 정도는 괜찮은 데 지금은 멸종돼 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히 “싹쓸이 하는걸 어떻게든 단속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침을 튀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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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희씨가 내놓은 매화, 수국 등 야생차. 이놈들은 그 자체가 자연이다. |
한편으로는 지면을 빌려 이 말을 꼭 써 달라는 부탁도 했다.
“산야초와 효소에 관한 책을 내니까 전국에서 오는 손님과 전화 때문에 산에 갈 수도 없고, 허구한날 전화통화에 매달려야 하는 데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될 수 있으면 책을 참조하시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메일이나 편지를 보내면 좋은데 꼭 통화를 고집하니 연구할 시간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게 다 유명인이 됐기 때문 아니겠냐. 참으시라”하면서 전화번호를 묻자 그것마저도 가르쳐줄 수 없다고 고개를 돌렸다